어쩌다 벤져스(행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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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2년 5월 29일 주일
제목 : 어쩌다 벤져스
본문 : 사도행전 18장 1-8절 *신219
[도입]
저번주 우리는 야외예배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다들 즐거우셨나요? 단순히 야외에서 예배를 드렸다 뿐 아니라 교제하며 더 친해질 수 있었던 시간이기에 감사했습니다!
특히 저번주를 위해 많은 섬김의 손길들이 있었습니다. 삼겹살을 섬겨주신 신영숙 집사님과 토마호크를 섬겨주신 조윤환 선생님이 계시고, 고기를 구워주신 서형만 집사님과 강경윤 집사님이 계십니다. 텐트 장비들을 가지고 오셔 셋팅을 진두지휘하신 홍성표 선생님이 계시며, 무엇보다 전날부터 함께 셋팅하며 당일까지 여러분들의 편의를 돕기위해 힘써주신 청소년부 모든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섬겨준 선생님들을 위해서 우리 박수 한 번 쳐 줍시다.
또 박수 받을만한 자들이 있습니다. 더운 야외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예배의 자리를 사수하여 나아온 우리 친구들에게도 감사하며, 또 찬양으로 함께 해준 예람이와 재민이, 사진 촬영으로 홈페이지에 업로드 될 수 있게 해준 선하와 예람이, 어린이부 친구들에게 직접 라면을 끓여 제공해준 성훈이 등 많은 친구들이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함께 해준 서로를 바라보며 축복의 박수를 쳐 주는 시간가져보겠습니다.
여러분. “뭉쳐야 찬다”라는 프로그램을 아십니까? 이 프로그램을 보면 각자의 운동 분야에서 위상을 떨쳤던 자들이 ‘축구’라는 매개체로 하나되어 우승을 목표로 나아가는 프로그램입니다. 이번이 시즌2인데, 시즌2의 팀명이 오늘 설교제목과 동일합니다. “어쩌다 벤져스”
주일날 우리 친구들을 보며 이러한 생각을 가졌습니다. 각자의 달란트와 재능이 다르며 하나님의 쓰임도 다르지만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 함께 들어와 “말씀”으로 하나되어 “복음”을 목표로 나아가는 것이, 이 축구팀인 “어쩌다 벤져스”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대표기도한 지원이도 지금껏 매주 미디어로 섬겨주었으며, 성훈이도 사실 미디어팀 지원했는데, 새가족 교육이 먼저라 미뤄진 것이지 조만간 투입될 예정입니다. 또 저번주는 허율이 드럼을 친다며 지원했는데, 사실 셋팅과 해제를 매주 해야 하는 환경이기에 이 문제를 가지고 학교와 협의 중에 있는데, 결과 나오는대로 바로 진행하고자 합니다. 이처럼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각자의 모습으로, 또 재능으로 예배를 만들어가는 것이, “어쩌다 벤져스”가 우리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텐트메이커는 무엇인가?]
1절부터 함께 봅시다. 사도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를 향합니다. 이때 누구를 만나는가 이게 중요한데,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누구를 만납니까? 사도 바울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부부라는 겁니다. 또 이들의 직업이 공개 되는데, 3절입니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그들의 직업이 무엇입니까? 텐트를 만드는 자라 기록합니다.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어떤 텐트를 만들었을까? 텐트 만드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을까? 먼저 우리는 “텐트메이커”에 대한 이해를 하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주로 텐트는 누가 사용했을까요? 보통 목축을 하는 유목민들을 위해 텐트가 제작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텐트를 제작하는 비용이 상당하다보니, 대게 유목민들은 동굴에서 생활하며 보냈지요.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텐트를 지은 것은 가난한 유목민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텐트를 제작하는데 드는 비용 또는 재료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보통 70에서 80마리의 양가죽이 사용된다 합니다. 어마어마한 양이지요. 또 이를 제작하는데 평균 700에서 800시간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된 일입니까? 그래서 텐트를 제작하는데에는 혼자 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팀으로써 협업하여 움직인다 합니다. 오늘 본문도 보십시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그리고 사도 바울이 함께 협업하여 텐트를 제작합니다. 이처럼 텐트는 들어가는 재료도 상당하고 그렇다보니 비용도 상당하여 혼자 할 수 없을 뿐더러, 가난한 유목민이 구매해 사용하기에는 제한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제작하고 있는 텐트는 누굴 위함일까요? 또 어떤 목적을 지닌 텐트를 제작하는 것입니까? 주로 축제나 운동경기에서 쉼터로 사용되는 텐트를 제작했습니다. 그렇기에 상당히 큰 텐트를 제작해야만 했던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군용을 목적으로 한 대형 텐트도 제작했는데, 이렇게만 생각해보아도 사도 바울이 텐트를 만드는 것이 첫째, 가난한 유목민을 위함이 아니라는 것과, 둘째, 상당히 큰 텐트이기에 혼자 할 수 없는, 즉 협업해야 하는 작업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번째로 알 수 있는 것은 그렇담, 이들이 제작한 텐트는 누구를 위함이었을까요? 도시에서 축제를 행하고 운동경기를 기획하며 군용시설을 지휘할 수 있는 자들이 누구였을까요? 결코 일반 시민들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며, 정치적으로도 고위직에 있는, 또 군사력으로 통제권한을 지닌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즉 이들이 제작한 텐트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힘을 가진 자들을 목표로 했을 것입니다.
또 그런 자들에게 판매하기 위해서는, 판매하는 사람들 또한 정치적으로 소통이 가능한 자여야 했습니다. 소통의 창구가 없는 사람이 와서 그들에게 판매하기란 당연히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그래도 사람들로부터 꽤나 높임을 받던 자 아닙니까? 그런 그였기에 충분히 소통할 수 있던 위치에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선교 원칙]
3절을 통해 우리는 사도 바울이 누구를 위해 텐트를 만들었는가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어떤 형식의 텐트를 만들었는지, 누구에게 유통했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왜 텐트를 만들기 시작했을까요? 분명 그는 복음 외에는 배설물로 여길 정도로, 복음에 미쳐있던 자였는데 왜 그가 텐트를 만들기 시작했을까요?
이또한 우리는 3절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아낌이 없었습니다. 겁도 없었고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선교 철칙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복음을 전하며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이냐면, 주로 선교사님들은 낯선 타지에서 복음을 전하기에 생계유지가 매우 어려운 환경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로 파송된 교회로부터 선교후원을 받아 그곳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조금 다른 형태의 선교방식을 행하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비지니스 선교사”라 하여 자신의 직업 스킬을 가지고 타지에서 생활하며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있지만, 사도 바울은 선교가 우선이 되며 그저 복음을 전함에 후원만 받는 것이 폐가 될까하여 텐트제작을 생업으로 갖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정리하자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선교 사역에 있어 선교 원칙은 “선교 비용은 스스로 마련하여 복음을 전함에, 또 복음을 받는 자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중간 적용]
그렇게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길에, 자신의 생업인 텐트를 만드는 일에 하나님께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라는 믿음의 동역자들을 붙여주셔 외롭지 않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저 혼자 복음을 전하는 길에 서 있었다면 외로웠을 것입니다. 특히나 사람을 만나서 에너지를 회복해야 하는 제 성향상 혼자 이 길을 걸었다면 꽤나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저의 동역자이기에 저는 기쁨이 넘칩니다. 때로는 참 감사하고, 하나님을 전함에 있어 결코 실수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경각심 또한 가지게 합니다.
바라옵기로는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옆에 있는 친구가 동역자이길 소망하며, 저를 비롯한 이곳에 모인 모든 교사들이 여러분들의 동역자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디도 유스도와 회당장 그리스보]
사도 바울에게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만 동역자로써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5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실라와 디모데 또한 함께 동역했습니다. 그리고 7절과 8절을 보니 누가 동역합니까? 디도 유스도가 함께 했고, 회당장 그리스보가 함께 했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의 복음의 길에는 많은 이들이 동역했음을 알 수 있으며, 또 이들이 각자의 모습과 재능으로 헌신하며 오로지 “복음”을 위해 하나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도 바울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외로이 그 길을 걷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 지치지 아니하도록 동역자를 세워주셨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우리를 향한 비방]
그렇다하여 늘 행복한 것만은 아닙니다. 6절입니다.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세상은 우리를 욕하고 비방하며 하염없이 깎아 내리기에 그지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많이 지치기도 합니다. 복음을 들고 나섰지만 돌아오는 것이 비난과 욕설일 때 우리는 심히 좌절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사도 바울의 대답을 생각하며 희망을 바라보길 소망합니다. 6절 마저 읽어 드리겠습니다.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사도 바울은 비방하는 자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당신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여전히 당신들의 피는 머리에 맴돌 것입니다. 바뀌지 않는 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복음을 받아들인 나는 당신들과 다릅니다. 나의 피는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깨끗해졌습니다.”
[적용]
사랑하는 청소년부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두 가지를 기억하는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먼저는 복음의 길을 걸어가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동역자를 반드시 세워주십니다. 주변의 친구들이 동역자이며, 교사들이 또 제가 여러분들의 동역자이길 소망합니다. 다음으로 기억할 것은 세상이 우리를 욕하고 비난할지언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깨끗함 받은 자임을 기억하십시오.
이제 한 주를 살아감에 우리는 어떻게 결단할 것입니까? 복음을 잊지 마시고, 또 복음을 잃지 마십시오. 동역자를 세워주심도, 세상의 비난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음은 우리가 복음을 가진 자이기에 가능합니다. 그러니 한 주를 살아감에 복음을 늘 품고 잊지 마시고, 잃지 않으시는 그러한 삶 살아내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