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향한 마음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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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더욱 깊이 있게 묵상하기 위해선 각 장의 시간의 흐름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과 어제 본문의 시간적 배경은 같은 날일까요? 다른 날일까요? 같은 날입니다.
어제 본문에서 시간의 전환을 나타내는 부분을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14장 24절을 볼까요? ‘이 날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가 어떤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곤하였으니’라고 나와있습니다. 왜 피곤할까요? 이미 이스라엘 군대는 전쟁의 중심지에서 블레셋과 싸운지 오래 됐습니다. 당연히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31절을 보시겠습니까? 시간의 전환이 또 나옵니다. ‘그 날에’라고 나와있습니다. 여기서 그 날은 24절의 ‘이 날에’와 같은 날일까요? 다른 날일까요? 같은 날입니다. 31절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그 날에 백성이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으므로 그들이 심히 피곤한지라
24절에서 이미 이스라엘 군대는 매우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그들의 상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 날에’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믹마스에서 아얄론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습니다. 여러분, 믹마스에서 아얄론까지의 거리가 30km 정도입니다. 대구에서 구미까지가 약 30km인데요. 이 거리를 그냥 걸어간 게 아니라 블레셋 군대를 치며 이동한 거죠.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이 거리를 싸우며 이동했습니다. 24절에서 사울이 뭐라고 했습니까?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죠. 그래서 이스라엘 군대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심히 피곤할 수밖에 없죠. 말이 이렇지, 죽을 지경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눈이 돌아가는거죠. 그래서 32절에 보면,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서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끌어다가 그것을 잡아 피째 먹은 겁니다. 율법을 어긴 거죠. 죽기 일보직전인데, 율법이 생각 났겠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의 시간 전환이 나옵니다. 34절 후반부를 보면, ‘그 밤에’라고 나옵니다. 아직 그 날입니다. 이제 그 날 밤이 된 겁니다. 날이 어두워졌고 잠이 쏟아졌을 겁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으로 넘어옵니다. 오늘 본문이 어떤 말로 시작되나요? 36절에서, “사울이 이르되”라고 나옵니다. 하루가 지났나요? 아니죠? 여전히 그 날 밤입니다. 36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사울이 이르되 우리가 밤에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동틀 때까지 그들 중에서 탈취하고 한 사람도 남기지 말자 무리가 이르되 왕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소서 할 때에 제사장이 이르되 이리로 와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사이다 하매
사울이 뭐라고 말하나요? 하루종일 죽을 고생을 한 이스라엘 군대에게 동틀 때까지 블레셋을 탈취하고 다 죽이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지금 분명히 이상한 곳에 꽂혀있습니다. 무엇에 꽂혀 있길래 이런 말도 안 되는 지휘를 하는 걸까요? 자기 자신이라는 우상에 꽂혀 있습니다. 그런 사울에게 백성들은 이제 다 포기했습니다. “무리가 이르되 왕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소서”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때 한 제사장이 나서서 블레셋을 추격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여쭤보자고 합니다. 우리 37절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사울이 하나님께 묻자오되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되 그 날에 대답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여러분. 우리가 봐도 비상식적인 것 같은데, 하나님이 가라 하시겠습니까?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목숨 걸어 싸운 이스라엘 군대를 이제 동틀 때까지 밤새도록 또 싸우게 한다? 이건 말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이 일이 말이 안 된다는 걸 아셔서 대답하지 않으신 것도 있지만, 더 분명한 것은, 사울이라는 사람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왜 마음에 들지 않으셨을까요? 사울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대지
1대지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지켜야 하는지 두 가지 영적 교훈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선, 잘못을 내 탓으로 돌려야 합니다. 우리 38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사울이 이르되 너희 군대의 지휘관들아 다 이리로 오라 오늘 이 죄가 누구에게 있나 알아보자
하나님이 대답하지 않으시니까 열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군대의 지휘관들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이 죄가 누구에게 있나 알아보자.’ 이 말은, 사울 자신이 분명히 전투 중에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했는데, 먹은 자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블레셋을 추격하는 일을 막으신다고 잘못 해석해서 한 말입니다.
지금 사울 한 사람 빼고 모든 사람이 사울의 잘못 때문인 것을 알고 있는데, 지금 그만 모르고 있죠.
사울은 이 일에 대한 잘못을 자기에게 돌리고 회개했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이미 사울의 마음 속엔 하나님의 흔적이 단 일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죄를 범한 자를 정말 색출해 냅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 요나단이 뽑히죠.
사랑하는 여러분. 요나단은 지쳐 있는 백성들의 상태를 알고, 무기를 든 소년 한명을 데리고 블레셋 군대를 급습해서 승리를 얻어낸 영웅입니다. 요나단은 어떻게 하면 지쳐 있는 이스라엘 군대의 사기를 높여줄 수 있을까? 분명 고민했을 겁니다. 기도했을 겁니다. 그리고 왕의 아들인 자신이 본을 보이며 나서야겠다는 결론을 냈을 겁니다. 자신을 희생한 겁니다. 하나님은 그런 요나단과 함께 하셨고 큰 승리를 그에게 허락하시죠. 사울의 모습과 너무 대조되는 귀한 모습이죠. 그런 요나단은 끝까지 멋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나단이 43절에서 어떻게 말했을까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다만 내 손에 가진 지팡이 끝으로 꿀을 조금 맛보았을 뿐이오나 내가 죽을 수밖에 없나이다.”
자기 탓이 아닌데, 자기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자기가 죽겠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신이 희생해야 차후에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우리 죄를 짊어지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사망의 권세에 사로잡힌 건 우리 탓인데, 예수님은 자기 탓인 것처럼 우리 죄를 다 짊어지시고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탓입니다.’ 이 한마디가 다른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모세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려고 하실 때, ‘하나님, 제 탓입니다! 제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주시고 저 백성들은 살려주시옵소서!’ 외쳤습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닮아 다른 이의 부족함과 잘못도 그에게 돌리지 말고 내게로 가져오심으로 그들을 살리고 그들을 세우길 축복합니다. 그 사랑의 모습이 우리 교회에 가득 넘치길 소망합니다.
2대지
2대지
두 번째,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선 동역자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사울은 정말 요나단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군대가 지금 죽기 일보 직전인데 있는 힘을 다 쥐어짜내서 이렇게 말합니다. 45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역하였음이니이다 하여 백성이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
그들은 지금 목숨을 걸고 사울에게 말한 겁니다. 목숨을 걸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요나단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들은 요나단이 꼭 필요한 지체의 각 마디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나단이 몸의 오른손이라면 없어져서야 되겠습니까? 그럼 글을 쓸 수 없고, 밥을 못 먹는데요.
여러분. 그렇다면, 사울도 그 지체의 일부 중 하나였을까요? 그랬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하나님을 버렸고, 썩은 몸처럼 되었습니다. 썩은 신체 일부를 그대로 두면 다른 마디도 썩게 되어 결국 목숨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썩은 사울을 자르시고 다른 왕, 다윗을 택정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오해해선 안 되는 게 있습니다. 썩은 자를 잘라내는 것은 하나님의 주관입니다. 사울이 말도 안 되는 명령을 쏟아냈지만, 그 때마다 이스라엘 군대는 순종했습니다. 사울도 하나의 마디라고 여겼기 때문이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데에 필요한 동역자로 여겼던 거죠. 그래서 사울을 돕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울을 하나님께서 잘라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각 사람이 성덕교회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섬기며 각 마디로 부름 받아 서로 연합하고 동역합니다. 우리는 다른 동역자를 자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분량은 동역자를 돕는 데 까지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랑을 우리 동역자들에게 쏟으며 그리스도의 몸을 잘 세워갑시다. 그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교회가 더욱 굳건히 세워짐을 우리 눈에 보여주실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