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생각을 거스르시는 하나님

십자가의 복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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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ke 2:34–35 NKRV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우리는 2교구 새벽기도회 시간을 통해서 십자가의 복음을 쭉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보았고, 그 본질에서 떠난 타락한 삶, 즉 거짓신앙체계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우리는 거짓신앙체계에 빠지지 않으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의도하신 삶을 살아야 하며 우리 또한 그렇게 살기를 원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반드시 주어져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 분별력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선명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반드시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함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 영적 분별력은 우리가 성경적인 지식이 많다고 올바로 생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 지식에 능통했던 바리새인들에게 영적 분별력이 없었던 것을 보면 단순히 성경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이 하나님의 기준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영적인 분별력을 위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의 자세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올바른 마음의 자세를 가진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때, 그것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마음의 자세가 영적 분별력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의 중심, 우리 마음의 자세를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우리의 사고를 거스르시는 하나님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을 흥하게도 하지만, 패하게도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며, 예수님이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된다고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의 중심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이 실제적으로 일어났던 대표적인 예가 요한복음9장의 맹인의 눈을 띄게 하신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만나게 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기시고 그것을 맹인의 눈에 바르십니다.
그리고 맹인에게 실로암 못에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맹인이 그 말씀에 순종하여 실로암 못에 가서 씻고 눈을 뜨게 됩니다.
그리고 이 눈을 뜬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놀라게 됩니다. “너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어?” 사람들이 물었고,
눈을 뜨게 된 자는 예수라 하는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을 뜨게 된 맹인을 바리새인들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맹인이 눈을 뜨게 된 것, 예수님께서 놀라운 기적과 은혜를 베푸신 것,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진 것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맹인의 눈을 어떤 방식으로 뜨게 했는지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곧 예수께서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진흙을 이겨 이 사람의 눈을 뜨게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들은 뒤집어 졌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라는 작자가 감히 안식일을 지키지도 않는다고?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이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다! 이 사람은 죄인이다!
예수를 믿는 자는 출교를 시켜버리겠다고 결의 합니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은 안식일을 범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킨다는 그들의 생각과 기준으로 만든 안식일에 행하면 안되는 39가지 일 중 하나를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중심을 드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통해 맹인이 눈을 뜨게 됐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 부모를 찾아가서 그가 날 때부터 맹인이 맞았는지 확인하기도 하고, 맹인 본인에게도 몇번씩이고 연거푸 물어봅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눈 앞에서 행해지고 있는데, 눈 앞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은 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생각과 기준과 판단으로 하나님의 행하심을 난도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눈을 뜨게 된 맹인은 바리새인처럼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순수하게 예수께서 자신에게 한 일을 말했으며, 자신이 경험한 것 그대로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이 사실을 믿지 않는 바리새인들을 이상히 여기며 이렇게 얘기합니다.
John 9:30–33 NKRV
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 말을 듣고 화를 내며 그를 쫓아내버립니다.
John 9:34 NKRV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예수님께서는 맹인이었던 자가 쫓겨났다는 것을 듣고 그를 만나러 가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예수님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이야기 해주십니다.
John 9:35–38 NKRV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이 손 꼽아 기다리고 있는 ‘인자'인 것.
온 땅을 회복하시는 메시야이신 것을 그에게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야를 알아채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예수님을 저주하고 결국에 십자가에 못박히게 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의 자세가 올바르지 않자 영적 분별력이 가려지고,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John 9:41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정확히 그 마음의 자세를 지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없으며, 자신이 이제는 충분히 안다고 자부하며, 겸손하지 않고 교만함 가운데 있는 자들.
나는 본다고 자부하는 자들이 실은 진짜로 영적인 분별력을 잃은 맹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배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비난하기 위한 꼬투리만 잡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따라가면서, 우리 생각에 거슬리는 일들이 종종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거슬리는 일들을 하나님께로 가져가지 않고 내 생각과 내 판단대로 해석해버리면, 하나님께서 지금 이 일을 통해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 지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판단과 비난의 자세를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겸손한 자세와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버리면 하나님께서 지금 무슨 일을 행하시고 계시며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신가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운 기준과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생각들로 상대를, 공동체를, 리더를 비난하는 것에만 몰두하게 됩니다. 계속해서 불평 불만만 늘어놓고, 때로는 막 성을 내기도 합니다.
그 결과 공동체에서 행해지는 일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만 가득해지며,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고자 하시는 의도를 전혀 발견하지 못하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고 행했던 자세와 똑같아지는 것입니다. 눈이 완전히 가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그 거슬리는 일들을 하나님께로 가져가고, 하나님께서 질서를 통해 행하시는 일들에 주목하여 보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했던 나의 자세들이 비춰지고, 내 자세를 돌이켜 하나님 중심적으로 조정하며, 하나님께서 배우게 하시고자 하는 것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슬렸던 그 일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지금 공동체를 통해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에 대해 더 선명히 보게 됩니다.
때로 우리 마음에 거슬리는 일들이 발생할지라도, 그 마음을 주님께로 올려드리며, 내가 이것이 왜 거슬리는지, 내가 하나님의 관점이 아닌 나의 관점으로 이 일을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면서, 내 판단을 내리고, 배우고자 하는 자세로 주님의 일에 동참한다면, 질서를 통해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의중을 더 깨닫게 되고, 그 일에 더 동참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가고 계신지를 더 주목하게 되며, 하나님의 일들이 놀랍게 이루어져가고 있는 것을 더 ‘보게’ 됩니다.
보는 사람은 더 보게 되고, 보지 못하는 사람은 더 보지 못하게 되는 빈익빈 부익부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간단한 나의 예
하나님의 일을 섬기다보면 마음이 거슬리는 일들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단 한번도 빠짐없이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 제 마음의 중심을 돌아보게 하셨으며, 제가 마음의 자세를 올바로 할 때,
하나님의 비전을 더 선명히 보게 되는 은혜를 늘 부어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거슬리는 일들이 일어날 때,
‘아 지금 하나님께서 내 중심이 어떠한지 돌아보기를 원하시는구나’ 생각하며 다른 판단을 내리고 내 자세가 어떠한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게 더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있는지, 아니면 조금 안다고 생각하면서 내 생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거슬리는 일이 일어났을 때, 항상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질서를 따르는 것이 우선순위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질서 위에 두신 리더를 통해 배우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동참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 뜻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의도한 것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때 그 리더를 통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무엇을 가르치시는지, 내 중심을 어떻게 드러내시는지 보아야 합니다.
물론, 모든 리더가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완벽하시지만, 우리는 리더의 부족함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리더를 세우셨다면, 그 리더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보이시고, 리더를 통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배우게 하십니다. 우리는 가장 먼저 리더를 향해 배우고자 하는 자세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리더가 미처 채우지 못하는 부분을 보게 된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는 그것을 비난의 꼬투리로 잡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부족한 부분을 내게 채우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 부분이 누수되지 않도록 섬기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리더에게 잘 복종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배우고자 하는 겸손한 자세와 평생 배워야 한다는 낮은 자세로 모든 일에 임해야 합니다. 그러한 자에게 하나님의 영적 분별력이 부어짐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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