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

킹덤스토리 해설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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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오늘 하나님 나라 백성의 특징인 사랑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이 사랑이 필요한지 이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가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백성에겐 시험이 주어진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시험이 주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백세가 되던 해에 드디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약속의 자녀를 얻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제일 고민하던 후손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늘그막에 생긴 아들이라 너무나도 사랑스러웠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1절, 2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충격적인 명령을 내리십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사랑하는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시험이 너무 잔인해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냥 이삭을 바치라고 한 것이 아니라 첫 번째로 사랑하는 아들을 바치라고 했고 두 번째로 독자를 바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계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처인 하갈을 통해 낳은 아들이 있는데, 그 이름이 이스마엘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아들은 하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굳이 이삭을 독자라고 묘사하시는데,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이라는 아들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알고 계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 아시면서 이런 충격적인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육신적인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영적인 측면에서도 충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아브라함의 몸에서 난 자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룬다고 하셨는데 왜 굳이 기적적으로 태어나게 하신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죽이라고 명령을 하시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논리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의 명령은 모순이 있어 보입니다. 내가 알던 그 하나님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이해불가하고 어려운 명령입니다.
이 명령이 이행되는 장소도 보면 아브라함이 거주하는 곳으로부터 삼일정도 걸리는 거리입니다. 삼 일 안에 물론 신학적인 의미가 있는데 현실적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기 위해 이삭과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이 괴로웠겠습니까? 아들한테는 하나님을 예배하러 간다고 이야기해야 하지만 사실 아들의 생명을 거두러 가는 길이지 않습니까? 이 여행길동안 식사도 같이 하고 이야기도 같이하고 잠도 같이 자야 합니다. 여행길에 아무것도 모르고 잠자는 이삭을 보면서 얼마나 한숨을 많이 쉬었겠습니까? 남몰래 억지로 울음을 삼키며 눈물을 떨궜을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있어서 고통스러운 시험입니다.
참 불편한 사실이지만 오늘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시험이 따른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정도면 고향도 떠나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실수는 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잘못 이해하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좇으며 부지런히 살았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더 주셔도 모자랄 판인데, 이미 여러 역경을 겪은 아브라함이 이 어려운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입니다.
(적용)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논리와 이성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시험이 찾아옵니다. 억울합니다. 나 정도면 예수님 잘 믿고 은혜도 많이 받고 교회에 봉사도 잘하고 이웃도 잘 섬기는데 왜 이런 시험이 찾아오는지 이해가 안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이웃을 돌아봐도 그렇습니다.
(예화)제가 짧은 시간동안 사역을 하면서도 이런 경우를 종종 보았습니다. 어떤 청년들은 순간의 혈기를 참지 못해서 결혼 전에 임신을 해가지고 당회의 징계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반면에 제가 아는 어떤 집사님 부부는 자녀가 생기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부부가 같은 부서에서 10년 가까이 열심히 충성봉사하고 교회에서도 성품이 온화하기로 소문이 나있는 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기를 주실 법한데, 저 집은 아기를 진짜 잘 키울 수 있는 집인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앙생활 잘 하던 젊은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이제 아빠 혼자 어린 딸을 키워야 하는 그런 상황을 보기도 했습니다. 초등학생이 상례복을 입고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이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이런 시험이 왜 찾아와야 하는지 우리의 논리와 이성으로는 정말 판단이 되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잘 섬기고 열심히 하는 것만큼 복을 주시면 좋겠는데 믿음생활이 수학적으로 딱딱 들어맞지가 않습니다. 우리의 머리는 논리에 특화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항상 우리 예측을 빗나가고 나의 눈 앞에는 시험이 다가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선 이 사실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 자녀 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권능의 손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려던 것이 잘 되지 않고 기도했던 것이 당장 이뤄지지 않고 마음에 힘들만한 일이 계속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우리가 뭘 잘못해서 뭘 안했으니까 그렇게 된 게 아닙니다. 우리의 이성과 논리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지금 치르는 시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연단시키려는 하나님의 계획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논리와 이성을 초월한 시험으로 아브라함을 열방을 향한 복의 통로로 세우셨습니다. 우리의 이성으로 논리로 납득불가능한 시험이 있을 때 우리를 빚으시는 하나님을 기대해야 합니다.
2- 시험의 정답은 바로 사랑이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의 정답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단순한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순종을 담고 있는 그런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후에 아브라함의 실행력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원문상으로 보면 3절은 그리고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뒤에 며칠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실천합니다. 새번역성경은 이 그리고를 다음 날로 번역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나귀에 안장을 지웠습니다. 번제에 쓸 나무도 직접 쪼개어 가지고 떠났습니다. 이렇게 제사준비를 하는 모습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순종이 즉각적이고 능동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그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 자식의 안위가 걸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침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까지만 살펴보면 아브라함이 우리가 범죄 영화에서만 보던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2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듯이 아브라함은 이삭을 사랑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을 사랑하는 보통의 아버지와 다름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거침없이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에 근거한 행동이었습니다. 5절에 보시면 모리아 산 밑에 도착했을 때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말하기를 이삭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우리가’ 다시 돌아온다고 말합니다. 이삭이 번제가 되어 목숨을 잃는 것이 아니라 돌아온다고 말합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평범한 번제를 드린다고 하면 당연히 이삭과 같이 돌아오는 것인데 굳이 이렇게 우리가 돌아온다고 말할 이유가 없습니다. 필요 없는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할꺼면 이삭을 번제로 바치고 돌아오면서 이삭이 실종됐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한 말은 장차 히브리서가 말하는 부활신앙의 근거가 됩니다. 히브리서 11장 19절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분으로 믿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왜냐면 이삭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실 것이라 분명히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바른 믿음을 가졌기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시험에 사랑이라는 정답을 적어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순종이 있었습니다.
(증명+적용) 우리도 믿음의 선조인 아브라함을 따라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시험에 사랑이라는 답을 적어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을 통해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이 시험의 기출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할 가능성이 많은 것들입니다. 나의 자존심일 수 있고, 나의 이력일 수 있고, 물질이 될 수도 어떤 특정한 인간관계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로 하나님께서 문제를 출제하실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시험에 우리는 사랑이라는 답안을 작성해야 합니다. 즉각적인 순종이 있어야 사랑이라는 답안을 작성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사랑이라는 답안을 작성합니다. 너무 애매한 이야기 같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참 애매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러 미디어의 영향으로 사랑을 생각할 때 감정적인 부분만 생각하기 때문에 사랑이 무엇인지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성경의 한 장을 할애해서 사랑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이 무엇인지 잘 설명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온유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교만하지 않습니다. 무례하게 행하지 않습니다. 성내지 않습니다.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정말 사랑은 여러 가지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험에 대해서 사랑이라는 정답을 적지만 그 풀이하는 과정은 오래참음이 될 수 있고 온유함이 될 수 있고 시기 하지 않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이 가진 여러 가지 모양을 통해서 결국 사랑이라는 답을 도출해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나보다 더 잘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일 성수 열심히 한 우리 자녀보다 주일에 학원을 열심히 보낸 저 집사님 자녀가 더 좋은 대학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때 마음이 힘듭니다. 하나님이 물어보십니다. “네가 자식을 신앙적으로 잘 양육하고 주일에 예배드리게 해서 이렇게 손해 봤는데 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라고 하나님이 문제를 내십니다. 우리는 이때 시기하지 않음이라는 풀이 과정을 통해서 사랑이라는 정답을 도출해야 합니다. 제가 저 집사님 가정을 시기하지 않겠습니다. “제 자식 출세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서 제 자녀를 예배의 자리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저 집사님 축복하고 기도하고 더 사랑하겠습니다.” 라고 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신앙의 방정식입니다. 전혀 논리적이지 않고 이성적이지 않고 엉망진창인 계산법이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수학입니다.
3- 시험을 통과할 때 복음의 능력을 경험한다.
(설명) 그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세 번째 교훈은 우리가 시험을 통과할 때 복음의 능력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교재에는 순종하는 자에게 나타나시는 하나님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차피 하나님은 복음을 통해 드러나시는 분이기 때문에 복음의 능력을 경험한다는 것을 초점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갈 때 여러 가지 복음의 이미자가 드러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과 모리아 산을 올라갈 때 이삭에게 번제를 드릴 나무를 지고 가도록 합니다. 생각해보면 산 아래에 있는 종들에게 시키면 될텐데 굳이 이것을 이삭에게 시키는 것이 이상합니다. 주후 200년쯤에 유대인들이 만든 창세기 주석에서 이삭이 이 나무를 지고 가는 모습을 이삭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산을 오르는 것 같다고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많은 학자들도 이삭이 나무를 가지고 산을 오르는 모습을 장차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는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라 봅니다.
7절에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물어봅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여기에 대해서 8절에 아브라함이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준비하다는 히브리어 ‘일에’는 ‘보다’라는 의미로 많이 쓰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번제드릴 양을 보고 있다.” 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문상으로 바로 뒤에 “내 아들아”가 붙습니다. 하나님께서 번제드릴 양을 보고 있다. 내아들아 이렇게 됩니다. 마치 이삭이 번제드릴 양인 것처럼 애매모호한 문법으로 대답을 합니다. 이 본문을 읽는 독자들에게 이삭이 제물이 되어야 하는 가슴아픈 상황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제물로 바쳐질 것이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사실을 은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그분의 언약에 근거해서 이삭 대신에 어떤 제물을 보여주시거나 혹은 히브리서에서 말한대로 이삭이 제물로 바쳐지더라도 살리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곳에 두 부자가 도착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이삭을 묶었습니다.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했습니다. 9절에 결박하다는 단어 10절에 잡으려 한다는 단어는 주로 제물을 묶고 목을 찔러서 죽일 때 쓰는 단어입니다. 여기 쓰이는 칼은 성경에서 몇 번 등장핮 않는 칼입니다. 이 칼은 사사기에서 레위인의 첩의 시신을 여러조각으로 나눠서 각지파에게 전달할 때 쓴 칼입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제물삼아 죽여야 하는 가슴아프고 비참한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늉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실제로 이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 때 하늘로부터 다급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여기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했을 때 원문상으로 악센트 표시가 되어있는데 빠르게 끊어서 읽으라는 악센트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굉장히 급하게 아브라함을 말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시험에 하나님 사랑이라는 답안지를 잘 작성해 낸 아브라함에게 합격점을 주셨습니다.
13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았는데 한 숫양이 수풀에 걸려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까전에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어린양을 보고 있다. 라고 했는데 이제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서 숫양을 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 대신에 그 숫양을 잡아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지었습니다. 우리 성경에 이것을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라고 번역했습니다. 물론 이런 선택지의 번역도 있지만 본문의 문맥상 여호와께서 보여주시다. 여호와께서 나타나시다라고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여호와께서 무엇을 보여주시고 무엇을 나타내셨습니까?
이삭 대신에 죽을 숫양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숫양은 장차 우리 죄 대신에 죽을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줍니다. 22장 본문에 본다는 의미의 말이 참 많이 나옵니다. 4절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봅니다. 8절에도 친히 준비하시리라 이것이 하나님이 보신다로 번역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3절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숫양을 봅니다. 14절에 여호와가 보여주시다. 나타나셨다 라는 뜻의 여호와 이레가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시험을 통해 끊임없이 보여주시는데 그 보여주시는 것의 결과는 바로 대속제물이 될 숫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8장 56절에서 아브라함의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숫양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고 기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이 복음의 신비를 보도록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기뻐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시험을 통과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봅니다. 복음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적용) 우리가 어려운 시험을 극복했을 때 우리는 어려움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신 분, 우리의 모든 죄와 사망과 고통을 짊어지신 분을 진정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머리로만 알던 복음이 삶으로까지 연동됩니다.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러 고난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게 됩니다. 십자가에 박히면서 로마 군인들을 용서해달라던 예수님의 그 외침을 듣게 됩니다.
내가 어려운 가운데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힘듭니다. 이웃 사랑하는 것이 힘듭니다. 이런 시험 가운데 사랑이라는 답안지를 쓸 때 죄인인 나를 구원하시고 사랑하신, 그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랬겠구나 예수님이 이랬겠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글로만 알았던 복음이 삶에 스며들어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성도에게는 시험이 찾아옵니다. 너무 말도 안되는 그런 시험이 옵니다. 그 때 논리가 아닌 믿음과 순종으로 사랑이라는 답안을 적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답을 적을 때 우리는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경험하고 살아내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이 교훈을 통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백성으로 살게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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