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05 저녁] 예수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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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찬양팀 /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 + 나의 믿음 주께 있네
기도
본문 갈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서론
서론
우리는 모두 삶 속에서 삶의 흔적들을 남긴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모진 훈련들의 흔적인 굳은 살이 생기기도 하고, 요리사들은 요리를 하며 생긴 칼에 베인 자국이나 화상과 같은 흔적들을 지니며, 또한 나이가 들수록 나이듦의 흔적인 주름살이 생기기도 한다. 사실 이런 흔적들은 좋은 것이다. 숫한 운동훈련으로 생긴 굳은 살은 그만큼 훈련을 열심히 했다는 증거가 되며, 요리를 하며 생긴 숫한 상처들은 그만큼 열심히 요리를 했다는 증거이며, 점점 늘어가는 주름살은 우리의 인생의 연륜이 그만큼 쌓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에게 예수의 흔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가 예수로 인하여 박해를 받고, 예수로 인하여 갇힌 바 되었으며, 예수로 인하여 부당하게 매질을 당하고, 예수로 인하여 수차례 죽을 고비를 겪으며 그의 몸에는 예수의 흔적들이 새겨졌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는 과연 예수의 흔적들이 보이는가? 오늘은 이 ‘흔적'에 대해 설교하려 한다.
스티그마 : 상처
스티그마 : 상처
본문에서 ‘흔적'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스티그마(στίγμα)는 성경 안에서 크게 두 가지 용례로 사용이 되었다. 첫번째는 “상처, 흉터” 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라. 우리의 피부에 반복적으로 뭔가 부딪히고 긁힌다. 계속적으로 마찰이 일어나고, 계속해서 뭔가에 긁힐 때 상처가 생기고 어쩌면 피부가 찢어지고 피가 나고 딱쟁이가 앉는다. 어쩌면 물집이 잡히고 그 물집이 또 뜯어지며 또 물집이 잡히고 또 뜯어지며 그렇게 반복하면서 결국은 굳은 살로 단단하게 변화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와는 상반된 세상이다. 이 세상에는 의를 미워하는 악인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기본적으로 악을 추구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사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다면 그들 역시 죄인이며 영원한 심판 아래에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는 의인과 악인 두 부류 뿐이며 중립적인 사람이란 존재할 수 없다. 더군다나 이 세상에서는 의인보단 악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보니 이 세상은 기본적으로 악을 추구한다.
그런 가운데에서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만을 붙들며 살아가고자 한다. 세상의 가치관이나 세상의 정욕과 탐심을 물리치며 오직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이 땅을 살아내려 한다. 당연히 세상의 숫한 저항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우리를 실족하게 만들기 위한 거센 풍랑들이 몰아쳐올 것이다. 그러한 고난의 시련 앞에서, 거대한 풍랑이 밀려올 때에 두 부류가 있다. 첫번째 부류는 어떠한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주님 잡은 손을 놓치 않으려는 자들이다. 더욱 주님을 꽉 붙들려는 자들이 있다. 바로 참된 신자들이다.
그들이 예수를 꽉 움켜쥔다 하더라도, 눈 앞의 파도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욱 높이 치솟은 파도가 되어 마치 나를 산산조각낼 것처럼 밀려온다. 예수님을 더욱 의지하려 하여도 눈 앞에 쌓인 문제들은 조금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를 향해 밀려오는 거센 풍랑들은 예수님을 붙들고 있는 손에 조금만 힘을 빼어도 당장 나라는 존재를 소멸시킬 것같이 위협적이다. 너무 두렵다. 하지만 마음을 새롭게 하여 더욱 주님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 풍랑들은 내 몸을 치며 상처를 입히고, 거대한 비바람은 내 피부에 생채기를 낸다. 모래바람이 불어 상처가 생기고 거센 바람은 그 상처를 아물지 못하게 만듦으로 더 큰 흉터들이 생긴다. 세상으로부터 거센 바람과 풍랑들은 쉴세 없이 몰아쳐온다. 하지만 단 한순간도 예수를 놓은 적이 없고 더욱 주님을 붙들었던 신자들은 그렇게 몸에 예수의 흔적들이 새겨지기 시작한다. 결국 이 땅의 고생과 수고를 모두 마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우리의 자랑은 곧 우리 몸에 가득한 예수의 흔적들 뿐이다.
반면 그 풍랑에 나 자신을 내어주어 떠밀려 내려가는 자들이 있다. 시험과 시련의 파도 앞에서 그 마음이 물처럼 녹아내려 그리스도를 움켜쥐던 손에 힘을 빼는 자들은 어떠한 상처도 없다. 왜? 시험과 시련이 닥쳐올 때마다 나 자신을 넘어지도록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그 파도에 저항하지 않고 그 흐름에 나를 맡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들에게 예수의 흔적이 있을까? 없다. 물론 세상의 저항, 온통 생기는 상처들 아프다. 두려울만하다. 괴롭다. 그렇다고 이 순간 말씀을 포기한다면, 아프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를 포기한다면, 괴롭다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놓아버린다면 우리 몸에는 어떠한 예수의 흔적도 남지 않을 것이다. 상처는 까져야 생긴다. 굳은 살은 계속적으로 마찰이 일어나야만 생긴다. 하지만 상처가 생기는 것과 굳은 살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여 어떠한 대항도 하지 않는다면 그는 반드시 주님의 책망을 받을 것이다. 성경 기자의 말씀을 들으라. 히12:4 말씀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피흘리기까지 대항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책망하신다. 이러한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신다. 즉, 행위는 분명 있는 것 같은데 그 안에 온전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떠한가? 예수의 흔적이 보이는가?
스티그마 : 낙인
스티그마 : 낙인
스티그마의 두번째 의미는 “노예의 낙인”이다. 당시 로마는 노예제도가 있었다. 로마가 약소국들을 점령하여 그 지역 사람들을 노예로 사로잡아오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이때 노예시장으로 잡아온 포로들을 넘기게 되고, 그곳에서 노예를 값을 치루고 산 사람들은 이 노예의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그의 이마에 뜨겁게 달궈진 인두로 도장을 찍곤 했다. 그렇게 새겨진 노예의 낙인은 그 노예를 평생 따라다니며 그의 소유권이 다른 누군가에게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바울은 자신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노예 라는 낙인이 찍혔다고 말한다. 이는 그의 소유권이 오직 예수님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나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바울은 롬14:8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내 것이라고 여겨왔던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나니 더이상 내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내 몸이나 내 시간, 내 명성, 내 명예, 내 권리, 내 부귀영화, 내 소유, 내 것이라고 여겨왔던 모든 것들이 사실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주라고 고백은 하지만, 그에게는 예수 외에도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주가 있다. 어떤 때에는 자식이 주가 되기도 하고, 돈이 주가 되기도 하며, 가족이 주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을 주의 자리로 올려두기도 한다. 이러한 자들에게 예수님은 수많은 주 중에 하나일 뿐이다. 이러한 자들이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가? 반면 오직 예수만을 자신의 주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자들은 내 것이라고 여겨왔던 모든 것들을 예수님께 올려드려도 아깝지가 않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살아서나 죽어서나 우리의 유일한 위로자요 주인이 되심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자들만이 “나라가 임하시오며" 라고 간구할 수 있는 것이다. “주님 나의 나라는 이제 망했습니다. 내가 다스리던 나라는 끝장났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나라가 내 삶 가운데 임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통치하시고 주님이 다스리시는 나라가 나를 장악하여 주옵소서"
결론
결론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 앞에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자. 혹 지금 이 순간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세상을 사랑하여 돌아간 데마와 같지는 않은가? 혹은 상처 생길 것을 두려워하여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길 포기했던 몇몇 무리들을 뒤따라가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행위의 온전한 것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사데교회처럼 변질되어 가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며 생기는 수많은 믿음의 굳은 살들, 상처들이 여러분들에게도 많이 생기길 축복한다. 물론 아프고 괴로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의 흔적만이 우리에게 영광이요, 자랑임을 기억하라. 오직 예수의 노예라는 낙인이 찍인 종으로서 오직 예수님만을 우리의 주인으로 모시며 사나 죽으나 주의 것으로서, 주의 것 답게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길 축복한다. 기억하라. 예수의 흔적들만이 우리의 영광이요 우리의 자랑이다. 이 자리의 저와 여러분들 가운데, 그리고 우리 양문교회 가운데 더욱 넘치는 예수의 흔적들이 채워져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