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이루어질 선한 일(빌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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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우리는 대부분 그럴만 할 때에 혹은 그렇게 애기할 만 한 상황일 때에 이러한 말들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단어들을 그렇지 못한 상황일 때에 사용하는 모습들을 종종 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전혀 모르겠는 상황 가운데에서 확신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절망의 그늘 아래 앉아서 슬픔 가운데에 있을 때에 기쁨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난과 고통 속에서 복을 빌고 축복할 만한 상황이나 상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축복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오늘 저는 말씀을 통해서 왜 성경은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라도 확신과 감사 그리고 간구와 축복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배경설명

오늘 본문이 실려있는 빌립보서는 바울이 빌립보교회 사람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본문을 잘 이해하려면 본문이 가지고 있는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잠시 빌립보교회와 그리고 편지를 쓰는 바울의 상황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6장 11절 이하의 본문은 빌립보 교회가 세워진 배경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빌립보교회가 세워진 과정은 독특합니다. 안식일에 바울과 실라 일행이 기도할 곳을 찾다가 강가의 여인들과 대화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 여인들 중에 루디아라고 하는 여인의 마음이 동하여 그의 집에서부터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여인'들이 개척멤버인 교회인 것입니다. ‘빌립보'라는 지역은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었습니다. 빌립보는 본래 트라키아인들이 살던 땅이었는데,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이자 마게도냐의 왕 빌립2세는 이곳을 점령한 뒤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빌립보성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빌립보는 강국이었던 로마에 의해서 한번 더 점령되어 로마의 식민지가 됩니다. 빌립보는 금광이 형성되어 있었고 비옥한 토지에 무역이 발달하여 로마 제국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로마의 왕은 빌립보에 제대한 군인들을 정착시켜서 살도록 했고 빌립보의 시민들에게도 시민권을 주어서 로마의 시민과 같은 대우를 받게 하였습니다. 로마 시민으로서 누리는 특권은 법이나 행정 등에서 누릴 수 있는 유리함이 많았기 때문에 빌립보 시민들은 로마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강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마의 황제 외에 왕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이 처음 빌립보에 와서 복음을 전했을 때에 이를 로마에 대한 반역 행위로 여겼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때문에 빌립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환난과 핍박의 긴장 가운데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에 보면 이들은 극심한 가난 가운데에 시달리고 있었다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특히 하늘의 시민권자임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바울의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빌립보서를 썼을 때 바울의 상황에 대해 여러가지 추측들이 있지만, 로마에서 황제에게 받을 재판을 기다리며 썼다는 것이 가장 합리적입니다. 바울은 사형을 언도받느냐 무죄로 풀려나느냐의 삶의 기로에 놓여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빌립보교회는 자신들의 담임 목회자인 사도바울을 매우 사랑했고, 그를 위로하고 또 그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어려움 속에서도 십시일반 선교헌금을 하여 보내기로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에바브로디도라는 성도가 헌신했습니다. 당시 위문품과 헌금을 가지고 먼 길을 오가는 것은 목숨을 내건 일이었고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중병에 걸리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는 병에서 낫고 다시 바울의 편지인 이 빌립보서를 들고 빌립보교회에 가게 된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빌립보교회의 헌금과 위문 그리고 빌립보교회의 소식들을 듣던 중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문제에 대해서도 듣게 됩니다. 빌립보교회에 분열과 위기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두 여성도가 서로 의견이 달랐습니다. 그런데 이 의견다툼이 교회의 불화의 원인이 될 정도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율법주의가 교회 내에 들어와서 믿음을 흔들었습니다. 때문에 빌립보서에서는 이러한 사항에 대한 권면들도 실려 있습니다. 배경설명이 길었습니다. 이 배경지식들을 가지고 함께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생각할 때 감사, 간구할 때 기쁨

우리는 3절과 4절에서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간구할 때마다 기쁨으로 간구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과연 이 상황이 과연 감사하고 기뻐할만 한 상황이었습니까?
물론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바울을 향한 사랑으로 모아진 헌금과 위로에 바울은 감사하고 기뻐하였습니다. 하지만, 빌립보교회의 상황은 언제나 가난함과 핍박이 있었습니다. 환란과 시련이 있었고 여기에 내분과 이단이 들어와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가운데에 어떻게 감사하고 또 기뻐할 수 있었을까요?
단어들을 한 번 살펴보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생각할 때에 누구에게 감사했습니까? ‘나의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의 어떠한 상황이나 처지들에 감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 감사하다라는 표현의 원어를 살펴보면 휘 카리스테오 라는 단어로 ‘축사하다', ‘성찬'에 많이 쓰여진 단어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즉, 이 감사는 사람에 대한 감사보다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들어있음을 우리는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감사했던 이유는 그리스도 때문이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여러 문제들 중에서도 굳게 붙드시고 환난 가운데에서도 그 믿음을 잃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했던 것입니다. 이 감사가 저와 사랑하는 성도님들 가운데에도 있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의 감사는 그럴만 한 상황에만 나오는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감사는 선포와도 같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붙잡고 감사하였습니다. 동서울광염교회의 2주년예배였습니다. ‘감사하지 못할 상황 가운데에서도 감사하는 것'이라는 사연으로 감사에 대한 정의를 내리신 성도님이 계셨습니다. 그 때의 감사란 예수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을 붙잡고 하는 감사, 선포하는 감사일 것입니다. 감사할 만한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것, 우리의 모든 필요와 간구를 아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하는 감사일 것이라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그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수많은 문제와 위기들 속에서도 ‘감사'를 선포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옆에 있는 교회된 지체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분열의 소식, 분열의 위기를 듣고서 오히려 감사를 선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바라본 것이 그 상황이 아닌 그들을 위해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는 무슨 믿음이 있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산 교회는 원수들이 결코 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4절에 간구한다는 말은 간절히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기도할 때에 너희 무리란, ‘모든'이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 단어는 분열의 위기 속에 있는 빌립보교회를 향해 하나됨을 강조하기 위해 쓴 단어입니다. 바울은 간구할 때에도 형식적으로 하지 않고 기쁨으로 항상 간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바울의 상태가 어떻습니까? 그는 죽음과 삶 가운데에서 무엇이 자신에게 유익일지를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5절에서 더욱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그 이유는 너희 빌립보 교회의 모든 사람들이 첫날 그러니까 바울이 빌립보에서 교회를 개척한 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참여라는 단어에는 우리가 잘 아는 코이노니아라는 교제, 관계라는 뜻을 가진 단어가 쓰여졌습니다. 단순히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친밀하고 긴밀하게 그 일과 관련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복음을 위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모든 일일 것입니다. 현재 본문에서는 바울에게 보내진 헌금과 위로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는 빌립보교회는 지금 어떻습니까? 수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로 분열하고 율법주의가 교회 안에 들어와서 성도들의 믿음이 흔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뚫고 어떻게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복음을 위한 일에 아주 친밀하고 긴밀하게 참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바울이 빌립보 교회 사람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했던 이유와 관련이 깊습니다. 6절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착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복음을 위한 일입니다. 이 일을 시작하신 이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복음을 위한 일은 시작한 것이 아니라 시작된 것입니다. 누구에 의해서 시작되었겠습니까? 맞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시작되었습니다. 이 착한 일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구속은 이미 되어졌습니다. 우리가 믿기만 하면 이미 시작된 구속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아멘. 이 구속, 구원은 이미 이루어졌기에 반드시 되어질 일입니다. 언제 되어진다고 합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입니다. 이 일은 누가 진행합니까? 우리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다고 합니다. 얼마나 다행인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는 이 착한 일을 시작할 수도, 이룰 수도 없습니다. 당장 오늘 하루의 삶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성경에 내로라 하는 인물들도 자신의 힘을 의지했을 때에 무너지고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상황과 뜻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봅니다. 교회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교회와 하나님께서 완성하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완전한 교회가 있습니다. 이 땅의 교회는 안타깝지만 빌립보교회와 같이 문제가 많습니다. 분열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또 다양한 문제들로 교회됨을 잃어버리는듯 해보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그런데 마침내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이루실 교회는 어떻습니까? 분열이 없이 하나 된 교회입니다. 문제들 없이 하나님 앞에 깨끗한 교회일 것입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의 교회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는 교회된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권적으로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무엇을 근거로 믿으십니까? 이 질문 앞에 우리는 당당히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영원하심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위치는 엉망일 수 있습니다. 문제투성이일 수 있고 분열일 수 있으며 넘어져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과정이 우리의 끝이 아님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루어져 가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그 과정 속에 우리는 넘어질 수도 있고 분열될 수도 있고 하나님 앞에 고집도 피울 수 있고 엇나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의 고집이 아무리 세다 한들 90년, 100년입니다. 우리의 문제와 이 땅에서의 싸움이 아무리 길다한들 100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고집은 영원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주라고 선포하고 그 사실을 믿었을 때에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영께서 이미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영원하신 고집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착한일을 이루실 것을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착한 일이 비록 지금은 아니나, 영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와 예정하심 아래 그리스도의 날까지 신실하게 이루어질 것 또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성도가 됨이라.

이어서 바울은 7절에서 빌립보 교회의 사람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이렇게 담아냅니다. 내가 너희 모두를 위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너희가 내 마음, 중심, 심장에 있음이라. 해석에 따라서는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마음 가운데 있음을 말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바울은 분열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자신과 빌립보 교회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묶습니다. 바울은 모두를 ‘은혜에 참여한 자'로 묶어냅니다. 빌립보 교회가 자신이 재판에서 복음을 변명하고 또 그 복음을 확정하는 데에 있어 그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은혜가 무엇입니까?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풀어진 호의입니다. 그 은혜에 참여했다는 것은 곧 우리가 그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고백하기를 모든 것이 은혜라고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깨어지고 기도할 때에 눈물을 흘리고 감정적인 요동함이 있어야만 이것이 은혜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유일한 은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죄인된 우리에게 구원을 확정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이 은혜를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 앞에 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마주해야 합니다. 그 때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십자가 앞에서 직면합니다. 이 직면은 참 아픕니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죄인이고 얼마나 연약한 자인지를 폭로당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절망 속에서 소망을 찾을 수 있고 무기력함과 완악함 속에서 기쁨과 온전함 그리고 거룩함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은혜에 참여했을 때에 우리는 비로소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도가 됩니다. 그럴만 한 자격이 있건 없건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속하셨고 끝날 까지 이루실 이임을 믿고 나아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직분 중에서 가장 소중한 직분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전도사님, 목사님일까요? 사도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라는 거룩한 무리라는 직분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하고 무거운 직분임을 믿습니다.
청소년부 예배 시간에 함께 예배드리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쟤 참 거룩해' 라고 하면 무슨 이미지가 떠올라? 친구들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유별난 거요.’, ‘네 가지가 없는 거요', ‘눈치가 없는 거요.’ 저는 이 대답을 듣고 일순간 당황했지만, 왜 이들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친구들에게 거룩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 뉘앙스를 잘못 이야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우리 친구들이 거룩의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을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거룩이 무엇입니까? 거룩해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많은 경우 우리가 오해하는 것은 거룩함이 곧 공로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거룩함은 성경을 가슴팍에 들고 다니면서 성경적인 용어들만 사용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 우리는 외식하는 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얼마나 읽고 하루에 기도는 몇 시간 하고 헌금은 얼마나 하고로 우리의 속사람이 변화될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서 사람을 거룩하다 할 때에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합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건져냄을 받았을 때에 그리스도의 공로로 우리는 거룩한 자가 되어 그 무리 안에 하나된 교회로 함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거룩하십니까?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신다면 이렇게 묻겠습니다. 여러분,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의와 생명의 자리로 건져냄을 받으셨습니까? 아멘. 그렇다면 여러분은 구별된 존재들입니다. 즉, 여러분은 거룩하십니다. 다만, 우리의 신분에 우리의 연약함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거룩해져야 마땅합니다. 이 착한 일을 시작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끝날까지 일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에게

이제 바울은 8절에서부터 빌립보교회를 향해 기도합니다. 이 기도는 1장의 마무리이지만 또한 이제부터 나눌 바울의 말들을 요약해놓은 기도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증인이 하나님이시라고 감히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누군가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바라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참 많이 사랑해서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의 심장으로 누군가를 사랑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바라기는 저희 동서울 광염교회의 존귀한 교역자들이 이 마음을 품고 성도님들을 바라보기를 소망합니다. 또 바라기를 사랑하는 동서울 광염교회의 존귀한 성도님들이 이 마음을 품고 서로를 바라보고 또 세상을 바라보기를 소망합니다.
이 넘치는 확신으로 기도하는 기도는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말씀을 정리하며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은 지금 사랑이 부족합니다. 바울은 사랑할 것을 지식과 총명으로 풍성하게 하실 것을 위해 기도합니다. 여러분 사랑은 이론과 실제가 필요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 중심대로만 하게 되면 결국 사랑은 경쟁이 되어 빌립보교회와 같이 분열하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사랑의 개념을 배우고 그 사랑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지혜도 배울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렇게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 존귀한 동서울 광염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이 사랑에는 지식과 지혜 즉,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선한데 우리의 사랑은 그렇지 못한 것을 봅니다. 내가 사랑해서 한다고 하는 행동들이 과연 선한 것인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랑해서'그렇게 했습니다. 라고 하는 많은 범죄들을 봅니다. 또 사랑이라는 틀 안에서 성경적인 가치관과는 벗어나는 모습들을 마주할 때도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세상의 법과 자신을 높이는 방법들을 가르치며 그것을 사랑이라 합니다. 서로가 각자 자신에게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사랑을 다룰 때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선한 것을 분별하여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그리스도의 날에 우리가 그렇게 여겨지기를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다시피 우리에게는 그럴만 한 힘이 없고 그런 사랑을 할 만한 힘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우리 자신으로 말미암아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우리 안에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진실하여 허물이 없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의가 가득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힘으로는 의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의를 은혜로 주십니다. 아멘. 그리고 이것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나날이 더욱 더 풍성해질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사람들이 비록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지만 이 사실,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시고 또 이루신다는 사실 안에서 서로 뜨겁게 지혜롭게 사랑할 때에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와 여러분에게 동일한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구원의 주권은 오직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그 구원을 행하셨고 행하시고 계시며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와 우리의 연약함에 개의치 않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한 걸음씩 나아가며 그리스도께 순종함으로 서로를 더욱 뜨겁게 또 더욱 지혜롭게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득한 의의 열매를 맺어서 마침내 그리스도의 날에, 하나님 앞에서 영광과 찬송이 될 것을 소망해봅니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이유, 우리가 복을 빌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그 주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빌립보교회와 저희가 다를 것이 없음을 봅니다. 사랑이 있었으나 또 문제도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완전하고싶으나 또 다양한 문제 앞에 부딪히며 서로 분열하고 싸우며 하나님의 길과는 반대로 가는 저희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주님, 우리를 하나 된 성도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안에 착한 일 곧 구원의 일을 시작하시고 또 이루실 것을 우리가 믿사오니 이를 믿음으로 그 과정 안에 있는 우리가 우리에게 있는 수 많은 문제들을 제쳐두고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또 기쁨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바라기는 동서울광염교회가 또 성도님들의 삶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지식과 지혜로 뜨겁게 사랑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스도의 날이 다가오면 다가올 수록 낮아지고 또 허물없이 하나됨으로 결국 가득한 의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삶을 살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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