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찾아오시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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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여러분. 질문 하나 할게요. 누가 우리 집 초인종을 띵동 하고 눌렀어요. 그래서 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을 때!!! 뭐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손 들고 말하는 친구에게 피카츄 딱지를 드리겠습니다. 택배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주문한 신발, 옷, 화장품. 반가워요? 안 반가워요? 반갑죠. 그런 택배는 끊임없이 찾아와도 질리지가 않죠.
저희 아내 생일에 집에 택배가 엄청 많이 오더라구요. 근데 종류가 진짜 다양했어요. 와.. 이런 것도 선물로 보내? 싶은 것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선물 보낸 사람들이 다 여자 분들이더라구요. 남자들은 그런거 안 보내요. 남자들은 단순해요. 무조건 치킨 보내요. 치킨 아니면 베라 보내요. 이게 다예요. 이거 보내면서 기프티콘 메세지에 생축. 오래 살아라. 이렇게 적고 끝이에요. 아니면 그냥 생일선물은 쌩까요. 뭐 남자들끼리 생일 챙기노. 이러면서 그냥 지나간다구요. 여자 분들은 생일이 아닐 때도 선물하고 싶으면 막 택배 보내서 선물하고 그러시더라구요. 선물을 고를 때에도 어떻게 그렇게 예쁘면서도 실용적인 걸 잘 골라서 보내주시는지. 립스틱, 마스카라. 이런 건 제가 못 써도 다른 건 막 뺏어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여러분. 만약 선물 받은 사람이 그 받은 선물을 쓰지도 않고 갈기 갈기 찢어서 다 부셔버리고 갖다버렸다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그걸 선물한 사람이 알아버렸어요. 그럼 다시 선물 주고 싶겠습니까? 선물만 안 주겠어요? 그냥 손절이에요. 바로.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이미 그 행동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우리 택배 기사님들은 우리 통장에서 돈이 나가야만 오시는 분들인데, 예수님은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끊임없이 찾아오셔서 선물을 주세요. 가장 먼저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무엇인가요?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셨어요. 여러분은 그 선물의 포장지를 뜯어보셨나요? 구원이 무엇인지 그 선물 박스를 들여다 보지 않고 내 마음 구석에 내팽겨쳐 놓진 않으셨습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구원이라는 선물을 제대로 누리지 않는다는 걸 아십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우릴 찾아오세요. 끊임없이 우리 마음의 초인종을 누르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은 날도 어김없이 우릴 찾아오세요. 그리고 ‘용서.’라는 선물을 건네시죠. 우린 그 선물을 받고 처음엔 잘 누리지만 또 죄를 지어요. 그와중에 우리에게 찾아오는 힘든 일을 마주해서 좌절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또 우릴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능력.’이라는 선물을 건네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능력을 잘 누리다가 또 방구석에 박아둡니다. 그리고 내 힘만 의지하며 또 살아가죠. 예수님은 그 사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우릴 또 찾아오세요. 여러분. 그게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본론

오늘 본문에서 그 사랑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 나옵니다. 바로 호세아라는 인물이에요. 그는 북이스라엘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임무들을 맡기시죠. 호세아에게 맡기신 중요한 임무는 무엇이었는지 한 번 살펴볼까요? 2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Hosea 1:2 NKRV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여기서 음란한 여자라는 건 창녀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선지자였어요. 지금 이 시대로 말하자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존경할만한 목사님이었던 거죠. 여러분. 그 존경받는 목사님이 창녀를 아내로 맞이하면 성도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창녀였던 ‘고멜.’과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고 하십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말도 안 되는 임무를 주신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이 왜 이런 임무를 호세아에게 주신 걸까요? 하나님의 영적 상태가 ‘고멜.’과 같이 음란했다는 걸 보여주시기 위함이셨어요. 여러분. ‘고멜.’이라는 이름은 ‘끝장.’이라는 뜻을 가졌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가 ‘고멜.’과 같이 ‘끝장.’이었던 거죠.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호세아가 그 가망 없는 고멜과 결혼해서 낳은 자녀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아들, 딸, 아들. 삼남매를 낳는데요. 첫째 이름이 이스르엘이에요. 여러분. 이거 하나는 꼬옥 기억하면 좋습니다. 히브리어로 ‘엘.’은 ‘하나님.’이라는 뜻이에요. ‘이스르.’는 심는다. 라는 뜻이에요. 이스르엘은 하나님이 심으셨다는 뜻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심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다른 우상들을 숭배했습니다. 우리의 영적 상태와 비슷하죠. 우리도 하나님이 아닌 내 공부, 내 친구, 내 쾌락을 우상으로 숭배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뭐라고 하실까요?
호세아가 낳은 둘째 딸의 이름은 로루하마.입니다. ‘로.’는 부정형입니다. 아니라는 뜻이죠. ‘루하마.’는 사랑하다. 라는 뜻인데요. 하나님께서 이제 사랑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비유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신랑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신부로 비유하십니다. 그런데 그 신부가 신랑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라는 우상과 바람이 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더 이상, 신부 이스라엘을 사랑하지 않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셋째 아들을 낳았는데, 그의 이름은 로암미입니다. ‘로.’는 부정형이라고 했죠. ‘암미.’는 ‘내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여기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의 6장 7절에서 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함께 읽어볼까요? 시작.
Exodus 6:7 NKRV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 백성으로 삼겠다고 하셨어요. 하나님은 약속을 변함 없이 지키시는 분인데, 로암미의 이름을 통해 이제 더 이상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시죠. 진심이셨을까요?
드센 부모님들 중에 자녀들이 속을 썩이면, ‘호적에서 파뿔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 계시죠. 그게 진심일까요? 아니죠. 오늘 본문 10절 함께 읽어봅시다. 시작.
Hosea 1:10 NKRV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10절을 보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요. 백성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곳에서 그들을 이제 백성을 넘어 아들이라고 부르겠다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짓고 하나님을 배반해도 계속 우릴 찾아오시고 사랑해 주시는 분이세요.
효진이에게 질문 하나 할게요(남자친구가 이번 생일은 직접 만들어 보겠다고 쿠킹 클래스 등록해서 열심히 생일 케익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여자친구 갖다 줬는데, 다른 사람 갖다 주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그런데 여러분. 호세아는 그 일을 실제로 겪었습니다. 여러분. 고멜은 호세아 사이에 3명의 자녀를 낳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어요. 얼마나 화가 나고 절망스럽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고멜을 데리고 와라. 너의 아내를 끝까지 사랑해라.” “주님 도대체 왜 그래야 하죠?” 이렇게 질문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실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랑인 나를 버리고 바알과 외도를 했지만,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 내 신부인 이스라엘을 끝까지 사랑할 거라는 걸 보여줄거야. 그런데 호세아 너의 그 사랑을 통해 보여줄 거란다. 그러니 고멜을 끝까지 사랑해라.”
너무 하기 싫고 절망적이었던 호세아도 하나님의 그 절절한 사랑을 알게 되니 고멜에게 가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호세아는 정말 고멜을 찾아갑니다.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된 고멜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내 아내를 데려오는 건데도 돈을 주고 사 와야 했습니다. 이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우리 호세아서 3장 2절을 읽어볼까요? 시작.
Hosea 3:2 NKRV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
여러분. 보리 한 호멜이 약 220l입니다. 한 호멜 반은 330l겠죠. 이 양은 은 열 다섯 정도의 값을 했습니다. 즉 호세아는 은 30을 주고 고멜을 사 온 셈이죠.
여러분. 은 삼십. 어디서 본 것 같은 값이죠. 예수님께서 은 삼십에 팔리셨습니다. 우릴 구원하시기 위해서 말이죠.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릴 구원하셨죠.
호세아는 예수님을 예표하는 인물입니다. 호세아가 은 삼십으로 고멜을 다시 사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사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뜻이에요.
여러분. 예수님도 늘 방황하는 우리를 핏값으로 다시 사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 꺼죠.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죄를 짓고, 공부와 쾌락과 관계의 우상을 숭배해도 계속 찾아오시는 겁니다. 우린 누가 뭐라 해도 주님 꺼니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호세아는 고멜을 다른 남자로부터 사 왔습니다. 그리고 그 고멜을 향해 내뱉은 첫마디가 무엇이었을까요? “니 제정신이가?” 이렇게 말했을까요? 아닙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3장 3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Hosea 3:3 NKRV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결론

여러분. 여기서 음행은 실제 음란한 행동도 뜻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다른 우상을 숭배할 때도 ‘음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음행하지 말라는 호세아의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우상을 네게 두지 말라는 하나님의 메세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주목해볼까요?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여러분. 사실 호세아는 이미 고멜을 그렇게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고멜과 함께 있으려 했고, 음행하지 않았고, 다른 여자에게 한눈 팔지 않았어요. 고멜만 그렇게 했죠.
이 모습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눈을 떼신 적이 없습니다. 늘 이스라엘이 한 눈을 팔았죠. 다른 우상들과 늘 바람이 났습니다. 그런데 늘 끊임없이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앞으론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한 눈 팔지 마라.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여러분, 하나님은 이미 이렇게 하고 계셨습니다. 아담과 하와 때부터 늘 그리하셨어요.
여러분. 호세아와 고멜의 모습은 예수님과 우리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신랑이시죠. 신랑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늘 사랑을 쏟아 주셨어요. 꽃다발을 사 주시고, 맛있는 요리도 해 주시고, 좋은 선물도 주셨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싸그리 다 모아서 바람 난 그 사람에게 다 가져다 줬죠. 그런데 사실 예수님은 다 알고 계셨어요. 우리는 그걸로 그치지 않고, 이젠 예수님과 함께 있는 집에서 뛰쳐나와 그 자의 집에 살림을 차렸어요.
여기서 살림을 차렸다는 말은 그 곳에 내 마음이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 마음을 드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곳에 마음을 두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마음이 공허할 때 무엇으로 채우십니까? 공부하다가 막히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을 때 무엇을 의지하십니까?
여러분. 이스라엘은 농경사회였어요. 그 한 해 농사가 잘 안 되면, 백성들의 인생은 죽음에 가까워졌어요. 그래서 그들은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을 찾아갔던 거예요. 바알 신은 하늘과 풍요와 비의 신으로 알려져 있었어요. 아세라 신은 땅의 신으로 알려져 있었구요. 그래서 가나안 이방 민족들은 바알과 아세라 신전을 만들어서 거기서 음란한 여사제들과 음란한 남자 사제들을 모아 두고 성 행위를 하게 했어요.
하늘과 비의 신인 바알이 하늘에서 비를 내리면 그 비가 땅에 떨어져 곡식을 내겠죠. 아까 땅의 신은 아세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방인들은 빗방울을 남자의 정자라고 생각하고, 땅을 여자의 자궁이라고 생각했어요. 진짜 말도 안 되는 발상이죠.
우리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발상을 한 적이 없을까요? 내 인생을 인도해 주실 수 있는 분은 나를 죄에서 구원하신 주님 뿐이신데,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취업하면, 내 인생은 필 거다. 공부가 나한테 다다. 이런 생각 말이죠.
또 이런 친구들은 없습니까? 남는 건 사람이다. 내 아무리 사는 게 힘들어도 내 옆에 사람만 잘 두면, 인생 나락으로 떨어질 일은 없을 거다. 사람이 다다.
이런 친구들은 또 없습니까? 자리가 다다. 나라는 사람을 그럴 듯하게 보이게 하는 건 자리다. 명예다. 그 자리만 바라보고 죽어라 일하자. 그럼 내 인생은 행복할 거다.
그렇게 생각하는 마음 가운데 예수님이 계십니까 여러분? 예수님이 없으십니까? 예수님이 없다면, 그러한 생각들은 다 우상입니다. 예수님이 먼저 되고 그러한 것들을 도구로 사용할 때 그것들은 우리에게 우상이 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는 길이 되어주죠.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못할 때가 너무 많아요. 거의 매 순간 우상만 쫓으며 살아가요. 예수님을 배신하고 또 배신해요.
그런데요 여러분. 예수님은 또 우릴 찾아오세요. 호세아가 끊임없이 고멜을 찾아갔듯이,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가셨듯이, 예수님은 끊임없이 우릴 찾아오십니다. 그럼 우리는 우리를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약하고 죄가 많은데 우릴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늘 주님을 사랑하는데에 실패하는데 우릴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우릴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사랑 뿐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실패를 덮어주시고, 예수님의 강하심으로 우리의 약함을 붙들어 주십니다. 이 시간 그 예수님의 사랑을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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