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스토리 해설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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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오늘은 하나님 나라와 복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에겐 복이 필수적입니다. 복이란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들을 말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번째 교훈은 하나님 나라의 복은 스스로의 힘으로 얻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은 야곱이라는 인물에 대해 소개를 합니다. 야곱은 형의 그늘에 가려져 어릴 적부터 주목받지 못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인 리브가와 함께 꾀를 내어서 형이 받아야 할 아버지의 복을 대신 받았습니다. 그리고 형으로부터 보복을 당할까봐 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머물며 일을 합니다. 그리고 일을 한 댓가로 두 명의 아내와 두 명의 첩을 얻습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그동안 일을 한 품삯을 얻는 과정에서 미움을 받게 되어 다시 고향으로가게 됩니다. 그런데 고향을 가는 도중에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제 400명의 군대를 거느릴 정도로뛰어난 군사지도자가 된 에서가 그의 군대를 거느리고 야곱에게 딸린 가족들과 식솔들을 향해 오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너무나도 두려웠습니다. 이럴 까봐 사전에 많은 가축들을 선물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에서가 군사를 이끌고 야곱을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야곱의 삶은 복 받기 위해 스스로 투쟁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사고 에서로 위장을 해서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기도 하고 라반과 일하면서 물질적인 부분에서 갈등을 빚기도했습니다. 복 받고자 하는 욕심이 많았고 복 받기 위해 열심히 살았습니다. 문제는 야곱에게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약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가 해서 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통해 믿음의 계보를 세우려는 계획을 가지셨습니다. 야곱이 뱃속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임신한 리브가에게 큰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9장에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는 것이 불의한 것이냐고그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선택하셨고 야곱은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받으며 언약의 계보를 잇는 사명을 감당하면 됩니다. 그런데 계속 자기 힘으로 자기 꾀로 사니까 뭔가가 꼬이기 시작합니다.
다시 창세기 본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야곱은 형이 쳐들어온다고 하니까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전에 야곱에게 보여주신 것이 있습니다. 창세기 32장에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났습니다. 야곱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의 군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고 지었습니다. 마하나임의 뜻은 하나님의 군대가 아닙니다. 2절을 자세히 읽어보시면 하나님의 사자들을 하나님의 군대라고 하고 그 이름을 마하나임으로 지었다고 되어 있지 마하나님이 하나님의 군대라는 뜻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마하네’라는 히브리어는 군대라는 뜻입니다. 진을 치고 있는 군대의 모습을 상상하시면됩니다. 히브리어 명사 끝에 ‘아임’이라는 말이 붙으면 쌍수가 됩니다. 양팔, 양발, 양눈 할 때 그 양이 됩니다. 영어로 치면 더블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마하나임은 두 군대, 두 진영을 뜻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야곱이 에서로 인해 두려움에 떨 때 자신에게 딸린 식솔을 두 때로 나눕니다. 그래서 한 때가 공격당하면 한 때가 살도록 작전을 짭니다. 여기 나오는 한 떼라는 단어도 아까 위의 천사군대를 지칭하는 단어와 같은 마하네라는 단어를 씁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지킬 천사 군대를 두 진영, 두 마하네를 준비하셨는데 오히려 야곱은 자신의 식솔을 두 마하네로 나뉘어서 도망가려고 합니다. 야곱이 얼마나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의 생각대로 살아가려고 하는지 이런 문학적인 요소를 통해 드러내고 있습니다.
야곱이 이런 저런 걱정을 하며 두려워 떨며 밤새 얍복 강가에 있었습니다. 얍복 강가에 있을 때 갑자기누군가가 싸움을 걸어 왔습니다. 우리는 싸움을 걸어온 이 누군가가 하나님이 보낸 천사라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누군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이 천사와 씨름을 했습니다. 천사가 야곱과 씨름을하다가 이기지 못할 것 같으니까 허벅지 관절을 칩니다.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서 부상을 입게 됩니다. 더 이상 씨름을 할 수 없습니다. 이 씨름을 하는 장면은 마치 야곱의 삶을 요약하는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밤에 이런 저런 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기습을 하면 꼼짝 없이 당할 것입니다. 하지만야곱은 자신의 힘으로 사는 사람이라서 이런 순간조차 긴장하고 있었고 심지어 거의 천사를 이길뻔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투쟁하는 삶에 특화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벅지 관절을 다치는 모습을 보며 치열하게 투쟁함에도 불구하고 한계에 부딪히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자신의 힘으로 복을 쟁취하려는 사람의 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가 복을 받는 것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뱃속에서 야곱을 선택하신 것처럼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이 사실을 의심하고 자기 힘으로 복 받기를 추구하면 끊임없이 투쟁하는 피곤한 삶을 살아야 하고 한계에 부딪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조차 믿지 못해서 불안에 떠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열심히 씨름해도 허벅지관절이 어긋나게 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복주시는 분임을 의심합니까? 우리가왜 복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을 받는 이유, 우리가 복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입니다. 야곱이 언약을 잇는 믿음의 조상이 될 사명을 잘 깨닫고 이에 충실했으면 복된 삶을 더 빨리 맞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사명에 대한 인식이약하니까 복을 왜 받아야 하는지 모르고 혹시 복을 못 받을까봐 스스로의 힘으로 자꾸 복 받으려는 헛된시도를 하게 됩니다. 자기가 원하는 방식 뜻하는 방식의 복을 생각하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복의 실체는이해하지 못하고 자꾸 자기가 생각하는 복을 받기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얼마나 어렵고 피곤한 삶인지모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복있는 사람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이 복의 형태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긴 사명의 형태에 따라 결정해주시고 적당한 때에 이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만큼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복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자꾸 내 힘으로 복 받으려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으로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사명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거기에 걸맞는 복을 주십니다.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께 복 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의 모습을인정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을 하다가 허벅지 관절을 다칩니다. 천사는 이제 그대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이 때 야곱이 천사를 붙들고 복을 달라고 합니다. 야곱이 복 받는 사람이라면결코 에서에게 허무하게 목숨과 재산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쌓아온 것을 지키기위해 필사적으로 천사에게 복을 구합니다. 야곱이 천사에게 복을 구하지만 사실 천사를 통해 일하시는하나님께 복을 구한 것입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날이 밝아오기도 했고 씨름을 해보면서 자신과 씨름을 한 존재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시거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어떤 천사와 같은 존재라고 인식한 것 같습니다.
천사는 복을 요청하는 야곱에게 이름을 물어봅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천사가 왜 이름을 물어봅니까? 학자들에 따라서 이 천사를 이 땅에 성육신하신 예수님이라고 하기도 하고 하나님이 보낸 천사라고 하기도 하는데 어쨌건 누가 됐든 이름을 물어보는 것이 이상합니다. 천상의 존재가 야곱을 잘 알고어떤 의도가 있어서 야곱에게 가서 밤새도록 씨름을 했을텐데 야곱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이 이상합니다. 그리고 복을 요청하면 내가 너에게 복을 주노라 하면서 축복문구를 이야기하면 될텐데 이름을 물어보는 것이 이상합니다. 야곱은 자신의 이름을 야곱이라고 대답합니다. 이 야곱이라는 이름은 태어날 때쌍둥이 형인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입니다. 야곱은 사기꾼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야곱은 계속해서 꾀를 쓰고 어쩔 때 위장도 하면서 계속해서 복을 받기 위해 투쟁하며살지 않았습니까? 이런 투쟁 끝에는 항상 문제가 생겼습니다. 자기 집에서 장자의 복을 가로채서 라반의 집에 가고 라반의집에서도 꾀를 쓰다가 갈등을 빚어서 나오고 거기서 나왔는데 또 에서를 만났고 에서를 만나기 전에 꾀를 써서 뇌물작전을 펼쳤는데 반응이 없고 야곱의 인생은 꾀를 쓰고 해결하고 그 꾀때문에 또 뭔가 막혀서 다른 꾀를 쓰고 이런 것들이 계속 반복됩니다. 자신의 이름처럼 사기꾼과 같은계략을 계속 쓰지만 잘 먹허들지 않는 자신의 힘이 깔끔하게 모든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을자주 맞이합니다. 이 야곱이라는 이름안에는 하나님을 불신하고 자신의 꾀로 복 받으려는 야곱의 삶이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야곱에게 이름을 물어본 것입니다. 이름을 물었지만 이름을 묻는 것을 통해서 야곱의 인생을 물어본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대답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야곱은 자신의 이름을 대답했지만 실은 인간적인 꾀를 의지하며 복을 쟁취하려 했던 그의 삶을 대답한 것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물어보십니다. 우리의 삶을 물어보십니다. 하나님 없이 복 받으며 살고자 했던 우리의 삶을 물어보십니다. 그렇게 살았더니 네가 원하던 대로되더냐? 세상 속에서 너의 힘으로 네가 원하는 복을 구해서 네가 원하는 복을 받았느냐? 하고 물어보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질문이 우리 인생을 관통할 때 우리는 나의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없이 돈도 벌어보고 학력도 쌓아보고 명예를 얻어봐도 거기에 하나님이 없으면 또 다른 한계를 맞이하게 됩니다 또 다른 무언가를 쌓아야 하는 선택지를 만나게 됩니다. 나중에는 내가 쌓아온 것들이 하나님 앞에서 과연 복인지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20년 넘게 야곱이 쌓아온 모든 것들이 지금 에서 군대의 군홧발에 다 짓밟힐 위기에 처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없이 우리가 쌓아온 것들은 온전한 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참된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옵니다. 하나님의 언약에서 옵니다. 이 언약관계 가운데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나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복을 받습니다. 우리는 여태 우리가 무엇을 위해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받으려 애썼는지 우리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발꿈치를 잡는 야곱이 아닌지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세번째 교훈은 하나님 나라 백성은 하나님을 대면할 때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자신의 이름을 말한 후에 천사가 대답을 합니다. 이제부터 너의 이름을 야곱이라고 하지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하고 대답을 합니다. 이스라엘은 샤라라는 싸우다는 동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샤라 하면 싸운다는 말이고 이스라라고 하면그가 계속 싸운다는 뜻입니다. 여기 하나님이라는 뜻의 단어 엘이 붙어서 이스라엘은 그가 계속해서 하나님과 싸울 것이다.가 됩니다. 이제 야곱은 무슨 일이 있든지 하나님과 더불어 씨름하며 결판을 내서고난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리고 천사는 이 이름에다가 추가적인 의미를 더해줍니다. 하나님 및 사람과겨루어 이긴다라는 의미가 더해졌습니다. 야곱이 어떤 일을 두고 하나님과 씨름하고 하나님과 결판낼때 야곱은 하나님에게도 이기고 사람에게도 이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복을 주실 수 밖에없고 야곱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세상사람들을 이기게 될 것입니다. 아까 전에 살핀 본문에서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다가 허벅지 관절을 다치지 않았습니까? 천사가 허벅지 관절을 친 것자체가 천사가 야곱을 이길 수 없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길 수 있으면 온전히 힘으로 야곱을 눌렀을텐데 그렇게 못하니까 관절을 친 것입니다. 야곱은 허벅지 관절을 다쳐서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얻었지만 동시에 그 상처는 야곱이 하나님에 대해 이겼다는 증거가 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복주시기 위해 져주셨기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야곱은 이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께 복을 약속받았습니다. 그의 형이 목숨을 위협할 때 또는 그 이상의어려움이 있어도 이제는 자신의 꾀로 위기를 벗어나고 복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위기 가운데 복 주실 하나님과 싸우고 하나님과 결판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 천사가 떠나려고 할 때 야곱이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봅니다. 천사는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야곱에게 축복합니다. 아마도 야곱에게 새 이름을 주고 복을 내린 존재가 어떤 존재냐에 따라서 복의 크기가 결정되기 때문에야곱이 그런 질문을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천사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스습니다. 그리고 야곱은그 씨름이 있던 장소의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짓습니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천사와의 씨름, 천사가 축복한 사건을 하나님과 대면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대면했습니다. 출애굽기 33장 2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살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야곱과 대면하시고 야곱은 하나님과 대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 누가 이렇게 하나님과 대면하고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경험을 야곱에게 제공하시고 야곱이 참되게 복받은 자이며 그 어느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이런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이제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삽니다. 하나님과 투쟁하며 삽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것이 야곱에게 싸움을 걸어도 세상에 하나님보다 큰 것이 없기 때문에 모든 역경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런 복을 근거로 야곱은 언약의 계보를 잇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대면할 때 복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대면하여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모습을 봐서는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에 직격으로 노출되면 피조물인 우리는, 죄인인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대면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을 믿을 때 영적으로 그리스도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예수님의 몸인 교회에 속하게 됩니다. 우리는 교회에 속할 때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대면하여 복 받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대면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듯이 우리는 교회안에서 하나님을 대면하여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는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처음 믿었을때 불린 호칭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 안에서하나님의 복을 받게 됩니다. 우선 죄 문제를 해결받아 구원 받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사명을 받게 됩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각자 형편에 따라 놀라운 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죄인이라서 자꾸 이런 영적인 원리를 잊게 됩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대면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예배를 통해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대면하여 우리가 어떤 복을 받았는지 살피고 끊임없이 우리의 사명을 위해 복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하나님께 복 받는 백성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는 우리 힘으로 복을 구해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 오직 하나님과 대면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믿음으로 복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 그 나라를 확장할 사명을 받은 것이고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복이 반드시 우리에게 내려집니다. 하나님 나라는 복받는 백성들이 확장해 나가는 그런 나라입니다. 남은 한주도 우리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복을 구하고 받는 한주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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