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09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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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278 여러 해 동안 주 떠나
본문 삿 2:1-10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새벽의 시간에 우리를 이 자리로 인도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루가 시작하는 이 시간 말씀으로 우리를 깨우쳐주시고, 그 말씀 붙들고 오늘 하루를 살아낼 수 있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특별히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여러 유혹들이 있겠지만 모든 성도들의 마음을 붙들어 주시어 마음이 요동치 않게 하시고, 견실히 삼위하나님만 붙들고 더욱 하나님만 사랑하는 주의 모든 권속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본문의 말씀은 시작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1절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경고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갑자기 등장한 “여호와의 사자” 라는 존재가 참 신비하게 보인다. 일반적인 천사와는 구별되면서 때로는 자기가 하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하고, 심지어 여호와께서 친히 임재하셔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늘 본문 외에도 구약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하나님의 권위와 동일시 되어 등장하는 부분들이 더러 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이 사자를 두고 성육신 하기 이전의 성자 하나님께서 현현하신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본문 1절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엿볼 수 있다.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온 여호와의 사자가 어떻게 말하는가? 삿 2:1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이 짧은 구절에서 “내가” 라는 말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놀랍게도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낸 존재가 바로 “여호와의 사자" 라고 말씀한다.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고 그들에게 언약을 맺으신 분도 “여호와의 사자" 라고 말씀한다. 삼위하나님 중에서 사람의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현현하시는 분은 성자 하나님이시므로, 본문에 등장한 신적 존재는 성육신 하기 이전의 그리스도라는 신학자들의 해석은 타당하다.
여튼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셔서 경고의 말씀을 들려주신다. 본문 2-3절을 보라. 삿2:2-3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주민들과 언약을 절대 맺지 말고 그들의 우상 제단을 완전히 허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언약의 당사자는 가나안 주민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저버리고 그 땅의 주민들과 언약을 맺어버렸다. 심지어 그들의 우상들까지 용납하면서 같이 우상숭배를 저지르는 죄에 빠지고야 만 것이다.
이런 모습들은 “1대1” 이라는 언약 체결의 속성을 고려한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쉽게 말해서 결혼한 부부가 어느날 어느 한쪽이, 나의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성에게 정신이 팔려 그와 또 다른 부부언약을 맺고 부부와 같은 친밀한 관계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 행위가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았다 할지라도 이는 분명 명백한 불륜행위이고, 부부간의 하나됨의 언약을 파기하는 죄이다. 도무지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인지 주님께서도 아주 참담한 심정으로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사 그들과 맺으셨던 언약을 먼저 상기시켜 주신다. 1절 후반부에 뭐라고 하시는가?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그들과 맺으신 언약을 주님께서 영원히 어기지 않겠다고 말씀하신다. 지금 이스라엘은 언약을 파기하고 다른 대상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데, 그들의 남편이신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맺으신 언약을 끝까지 지키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언약을 어긴 댓가가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알기 원하셨다. 그래서 주님이 취하신 조치가 무엇이었는가? 3절을 보면, 주께서 ‘당분간 가나안 주민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지 않겠다’고 말씀하신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완전히 쫓아내지 않은 그들을 그대로 남겨두시어, 그들이 이스라엘 가운데 큰 올무와 가시로 그들을 괴롭히도록 그냥 내버려두시겠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이 모든 말씀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들려주시자 그들은 소리 높여 울기 시작한다. 그간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신실하지 못했는가를 명백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던 우상숭배의 씨앗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추악한 죄인지를 적나라하게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여호와 앞에서 간절히 회개한다. 그들이 그 때 얼마나 통곡하며 울었던지, 그 장소의 이름을 보김(우는 자들) 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리고 회개의 징표로 그들은 여호와께 제사를 올려드린다.
여기서 이야기가 잘 마무리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그들의 회개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 본문인 11절부터 그들의 우상숭배가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 가운데 남아있던 가나안 주민들과 그들의 이방종교가 이스라엘 가운데 얼마나 강력하게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잘 나타낸다. 회개는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던 우상의 요소들을 여전히 내버려 두었다는 반증이다. 아니 어쩌면 나름대로 노력은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대로 그들에게 쫓아낼 수 있는 은혜를 베푸지 않고 내버려 두셨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그들의 대성 통곡의 회개는 오늘 본문 이후로 이스라엘 가운데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들려주신 경고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영적 이스라엘이다. 새 이스라엘인 교회는, 저와 여러분은, 우리에게도 우상숭배의 씨앗이 있는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수님을 믿고 영적 출애굽을 경험했는데도 여전히 내 삶 가운데 세상의 가치와 탐욕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세상의 헛된 추구를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며 살아간다면 우리도 그들과 다를 바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정도의 문제들은 융통성 있게 넘어가도 돼" 라고 하는 것들이 우리 신앙의 순결에 올무로 작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만일 이러한 요소들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적당히 타협하며 넘어가려 한다면 여호와의 사자께서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에게 동일하게 경고하실 것이다. 아니 어쩌면 여러 말씀 봉사자들을 통해 그 경고의 말씀을 들어오셨는지도 모르겠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맺으신 언약을 단 한번도 어기신 적이 없는데, 그분의 몸이요 신부된 우리가 언약을 수시로 배반하며 아무도 몰래 돈과 권력과 쾌락에 정신이 팔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오늘 한국교회 가운데 사사시대와 같은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가 불신자와 결혼하는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특히 청년들은 왜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물론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비신자와 결혼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게 있지만 이것이 일반화 될 수는 없다. 심지어 교회 안에도 세상의 경영 마인드가 들어와서 주일학교에 얼마를 투자하면 몇명 이상의 전도 효과가 나와야 한다며 질적 성장이 아닌 양적 성장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저와 같은 사역자들의 영적 타락과 삶의 나태함이 드러나고 있고, 교인들도 갈수록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나 혼자 신앙생활하려 하는 교만함을 보이고 있다. 이 정도의 죄는 누구나 짓는 것이라며 교회가 죄를 용인하기 시작한다.
이런 현상들이 계속된다면 한국교회와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본문 10절이 그 대답을 들려주고 있다. 삿2: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참으로 끔찍하게도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등장한다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긍휼히 여기셔서 베풀어주신 모든 축복과 은혜를, 이제는 전혀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들어본 적도 없는 새로운 다른 세대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 여호수아가 살아있는 동안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긴 것처럼, 한국교회의 큰 부흥을 경험한 성도들이 살아있는한 그나마 우리의 신앙은 잘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세대가 언젠가는 죽어 사라지게 될 것인데 그 이후는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에게 맡기신 복음의 신앙을 우리가 다음 세대에 제대로 전수하지 못한다면 우리도 역시 사사시대의 또 다른 세대처럼 전락하고야 말 것이다. 여호와를 알지도 못하고, 나의 구속자를 알지도 못한채로, 오만방자하게 자기 방식대로 인생을 주관하려 하는 악한 자들이 교회 안에도 가득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이라도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스라엘에 경고하신 그 말씀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금까지 옳다고 여겨왔던 신앙의 방식들을 다시금 말씀에 비추어 점검해야 한다. 돌이킬 부분들을 돌이켜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으로 회복해야 한다. 돌아서야 한다. 우리 교회에도 훌륭한 신앙의 선배들이 얼마나 많이 계신가. 하나님께서 우리 양문교회에 축복하셔서 많은 믿음의 선배들을 세우셨고, 그들에게 한량없는 은혜 주셔서 지금까지 교회를 섬기게 하셨다. 그런데 이러한 1세대의 은혜가 그분들만의 은혜로 끝나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우리 양문교회 대대로 이 믿음의 유산들이 잘 전달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순결한 신부로써 우리의 신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주님과 더불어 다른 어떤 것들도 사랑하고 있는건 아닌가? 오직 그분만을 갈급해하고, 그분만을 구하며, 그분만 의지하며 살아가는가? 다시 오마 약속하신 그 약속 붙든 채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 이 땅이 영원할 것 처럼 사는 게 아니라, 나그네와 같이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최우선으로 두어 그 계명을 기쁨으로 준행하고 있는가?
이 말씀 앞에 누구나 부끄러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앞에서 말씀을 전하는 저 역시 부끄러움 뿐이다. 그러나 부끄러움으로만 끝난다면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다.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주님의 경고하심을 마음 가운데 받아들여 우리의 모습을 회개하고 돌이켜야만 한다. 이스라엘처럼 회개의 모양만 갖춘, 껍데기만 회개할 것이 아니라 죄를 애통해하고 전심으로 돌이키는 회개가 필요하다. 우리가 마음을 찢고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 교회의 거룩함은 회복될 것이요, 신앙의 선배님들의 위대한 신앙의 유산이 다음세대에까지 대대로 전수될 것이다. 이러한 은혜가 임하도록 더욱 정결한 신부로 세워져가는 이 자리의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길 축원한다.
기도하자.
주여, 주님의 거룩한 신부, 정결한 신부로 세워져가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이스라엘을 반면교사 삼아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게 하시고, 그 말씀 붙들고 날마다 우리의 행실을 돌이키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 양문교회 가운데, 그리고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의 가정 가운데 이러한 믿음의 유산들이 다음 세대에 잘 전수되는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