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12 하나님은 나의 힘
복음적 확신은 당혹스러운 불확실한 것들과 하나님에 대한 힘든 생각들, 그리고 다가올 진노에 대한 두려운 인식으로 영혼을 가득 채우는 두려움, 고통을 주는 두려움을 내어쫓는다. 용서에 대한 확신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두려움과 관련해서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원리와 관련하여 두려움은 “종의 영”에서 온다. “우리는 두려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았다”(롬 8:15). 이 두려움은 마음 또는 영혼에 때때로 엄습해 오는, 가장 훌륭하고 가장 높은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간헐적으로 빠질 수 있는 어둠이나 시험에서 나오는 두려움이 아니다. 이 두려움은 영혼 속에 완벽하게 머물러 있는 원리인 종의 영에서 나오는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은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자신의 상태에 대해 두려워하게 하는 지배적인 마음의 상태다. 둘째, 두려움은 종으로 만든다. 두려움은 영혼을 속박한다. 그리스도는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고” 죽으셨다(히 2:14–15).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형벌적인 것이며 저주다. 이 두려움은 종의 영에서 나오는 두려움이며, 종의 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가진 두려움에 근심과 고통과 마음의 염려를 더하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수단을 사용하여 부적절하고 무질서하게 치료책이나 구원을 추구하게 한다. 셋째, 두려움은 고통을 수반한다. “두려움에는 고통(형벌)이 있다”(요일 4:18). 두려움은 마음에 어떤 안식도, 고요함도 주지 않는다. 그런데 용서에 대한 확신은 이 두려움을 내쫓는다. 비록 두려움이 영혼을 괴롭힐지라도, 영혼을 소유하지는 못한다. 비록 두려움이 영혼에 침투할 수는 있지만, 영혼에 머물러 거하면서 사로잡지는 못한다.
3.2.27 자녀의 두려움과 종의 두려움
요한은 신자의 두려움과는 아주 다른 불신앙에서 생기는 공포심도 말했다(요일 4:18). (1) 악한 자들이 갖는 ‘종의 두려움’ 혹은 ‘비굴한 두려움’은, ① 하나님을 불쾌하게 했기 때문에 갖게 되는 것이 아니고, ② 하나님께는 벌을 주시는 권능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갖는 것이니, ③ 만일 벌만 면할 수 있다면 태연할 것이다. (2) 반면, 신자들이 갖는 ‘자유롭고 자발적인 두려움’은, ① 벌에 대한 공포심을 느끼지는 않지만, ② 그럴지라도 벌 받을 일을 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한다(엡 5:6).
두려움은 사람이 첫 범죄에서 느꼈던 첫 번째 감정이다. 아담이 느꼈던 이 감정은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상황을 위협으로 이해한 위축 반응이기도 하다.65 그러나 핵심감정–두려움은 과거에 관한 감정이 세계를 왜곡해서 바라보게 하는 감정이다. 비트겐슈타인(Ludwig J. Wittgenstein)은 “행복한 자의 세계는 불행한 자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라고 말한다. 무엇이 세계를 달리하는가? 스벤젠(Lars Fr. H. Svendsen)은 비트겐슈타인의 이 언명을 샤르트르(Jean–Paul C. A. Sartre)가 말한 “정서가 세계를 전면적으로 변화시킨다.”67는 의미로 해석한다. 두려움은 우리 현실 인식을 왜곡시켜 세계를 달라지게 하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며 이는 사회적 갈등을 부르기도 한다.
핵심감정–두려움은 실제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겪는 두려움이 아니라 가짜 감정이다. 이런 가짜 감정 때문에 사람과의 사귐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물 위를 걷던 베드로는 진정한 현실인 그리스도에게서 시선이 떨어지고 눈앞의 파도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믿음이라는 인식의 수단은 우리에게 진정한 현실을 인식하게 해준다. 이 현실인식이 결여될 때 두려움이 찾아든다. 그중 대표적 두려움은 거절에 대한 것이다.
두려움은 우리의 상상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핵심감정이 상상력이 발달하는 중간대상의 생성 시기와 관련이 있다. 핵심감정–두려움은 주눅 들어 있고 타자상이 지나치게 발달함에 따라 상상이 덧입혀져 있어서 자기표현을 제대로 못하게 하며 상처로 인해 지나치게 조심하게 만든다. 이러한 두려움은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주변의 가족들의 삶까지 통제하게 만든다. 상황이 통제되지 않는 환경은 두려움을 가중시킨다. 핵심감정–두려움을 지닌 사람은 약간만 늦어도 두려움이 의식 위로 솟구쳐 오르고 짜증과 화를 자주 내게 된다.
실패나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떤 일이나 연애 등을 시작하기 어렵고 혹 시작하면 끝내기 어렵다. 어떤 일이든 두려움을 털어내고 정상 궤도에 오르려면 상당한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핵심감정–두려움과 유사계열로 공포감정에 대한 질적 분석 사례연구를 보면, 죽을 것 같은 감정적 반응을 드러낸다.
그는 일 또는 학업에 대해서는 “실패하면 끝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대인관계에서 그는 존재의 거부–자살 및 의사소통 양상과 갈등해결 양상 등에 반응한다. 그 외에도 그는 일정한 거리를 두다가 위협을 느낄 때면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는다. 겉보기에는 평온해보이지만 격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스트레스와 고투한다. 그는 의외로 이런 면 때문에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개구쟁이로 비취기도 한다. 이 역시 상상력과 관련이 있으며 그는 창의적이고 아이디어가 풍부하다. 그러나 동시에 제대로 현실적인 관계를 맺어본 적이 적기 때문에 여리고 현실감각의 떨어진다. 그에게 두려움이나 공포가 찾아오면 어린 시절 부모가 그랬던 거처럼 날카롭고 자극적인 말들로 아이들을 대한다. 이때 아이가 가졌던 어쩔 줄 모르고 당황스런 감정 역시 공포가 만들어내는 감정이다.
핵심감정–두려움의 타자상은 두려운 존재다. 핵심감정–두려움을 지닌 이는 거절과 평가를 잘 견디지 못하며 비난을 두려워하고 대부분의 일처리를 혼자서 한다. 모험적인 일이나 변화를 싫어하고 시작도 어렵지만 끝내기도 어렵기 때문에 누구보다 견디는 힘이 크다. 그는 두려움이라는 내부적 압력 때문에 어떤 핵심감정보다 오래 인내하는 힘이 발달해 있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한다. 하지만 문제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유형이다. 그는 상황을 당당하게 타개하고 도전할 필요가 있다. 더 현실적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추어두었던 여린 마음을 드러내고 현실 관계 속에서 적절한 좌절을 겪으면서, 좌절에 대한 예방주사를 맞을 필요가 있다.
핵심감정–두려움의 하나님표상은 징벌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징벌도 하시고 싸매시기도 하시지만 핵심감정–두려움의 하나님은 징벌로 특화되어 있다. 구약의 하나님은 징벌하시는 분으로 읽힌다. 핵심감정–두려움의 신앙생활은 가시밭길이다. 징벌의 두려움은 징벌 받음으로 오히려 터져야 할 것이 터졌다는 안도감을 얻는다. 예를 들어 어려서 장독을 깬 아이가 내 집밖을 배회하다가 야단을 맞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과 같다. 간절히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계속해서 징벌하시는 상황에 힘이 집중되고 징벌 받는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불안은 몸과 영혼의 힘이 자기에 좀 더 치우쳐 있다면 두려움은 타자에게 좀 더 치우쳐 있을 때 발생하는 감정이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지만, 두려움은 우리 안에 있는 애증의 힘 중에서 미움의 힘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발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