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12 하나님은 나의 힘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32 views
Notes
Transcript
Handout
본문 : 합 3:13-19
13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바닥까지 드러내셨나이다
14 그들이 회오리바람처럼 이르러 나를 흩으려 하며 가만히 가난한 자 삼키기를 즐거워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15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세상이 부조리하죠.
약육강식이죠.
힘이 센 사람이 힘이 약한 사람을 괴롭히죠.
이게 우리가 보는 현실입니다.
하박국도, 그런 현실을 본 거에요.
하나님, 어떻게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요?
힘이 세다는 이유로 힘이 약한 사람을 이렇게 마구잡이로 괴롭혀도 되는 건가요?
그때 하박국은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모두 허락한 일이다.
내 허락없이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바벨론 제국이 쳐들어와서 유다를 괴롭히는 일은, 내 허락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지금 유다는 타락했다.
돈이 많다고, 조금 살기 좋아졌다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버렸다.
그래서 내가 바벨론 제국을 사용한 것이다.
바벨론 제국을 통해서, 유다를 징계하고, 그들의 신앙심을 새롭게 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없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다 나의 계획 속에 있는 일들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힘이 센 바벨론 제국이 마구잡이로 유다를 쳐들어와서, 그들을 포로로 끌고가고, 그들의 무과화나무와 포도나무와, 감람나무, 우리에 양떼와 소떼를 다 끌어가는 일은, 하나님 허락없이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듣고나서 하박국은 그 마음에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아, 내가 오해했구나.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을 자신의 계획 안에 두셨구나.
유다에 대한 징계가 끝나면, 하나님이 구원하시겠구나.
이런 믿음이 생겼습니다.
13절을 보세요.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바닥까지 드러내셨나이다”
아, 하나님께서 바벨론 제국도 그 기초를 바닥까지 드러내시겠구나.
완전히 멸망시키시겠구나.
그러니, 유다를 괴롭히는 바벨론을 원망하는데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자.
13절, 14절, 15절을 보시면, 하나님은 군인으로 나타납니다.
말을 타고, 바다를 밟으십니다.
칼을 가지고, 적군의 머리를 자르시고, 창으로 그들의 머리를 꿰뚫어버리십니다.
아주 강력한 군인으로 등장하시죠.
심지어 하나님은 바다도 밟아서 흩어버리십니다.
파도가 흩어지겠죠?
바다조차도 하나님을 감당하지 못해요.
그러니, 언젠가 징계가 끝나면, 하나님이 구원을 베풀어주실 것을 믿고, 바벨론 제국을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고민만 하자.
그게 하박국의 결론이었습니다.
2. 악인들은 자기 스스로 멸망합니다.
14절을 보세요.
“그들이 회오리바람처럼 이르러 나를 흩으려 하며 가만히 가난한 자 삼키기를 즐거워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이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흩어지고 멸망하게 됩니다.
14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창으로 찌르셨는데, 누구의 창으로 찌르셨습니까?
하나님의 창입니까? 아니요. 3인칭 복수, 그러니까,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다고 되어있죠?
다른 사람 괴롭히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을 망가뜨려서 이득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로, 자기 머리를 찔러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악인들은 자기 스스로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3. 하박국은 이 모든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삶의 부조리 때문에 힘들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나서는 힘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이 고백합니다.
17절과 18절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는 유다 백성들이 주식입니다.
우리가 밥을 먹듯이, 유다 백성들이 주로 먹는 음식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 열매였습니다.
그러니, 무화과나무가 잘 자라지 않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면 먹을 게 없는 상태입니다.
최악의 상태죠.
밭에도 먹을 것이 없고, 외양간에는 양떼도 없고 소떼도 없습니다.
최악의 상태죠.
그런데 하박국은 이런 상황이 자신의 기쁨을 없애지 못한다고 합니다.
18절을 다시 보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겠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하박국의 기쁨이었습니다.
14절을 다시 보시면,
악인들의 기쁨이 나옵니다.
악인들의 기쁨이 무엇입니까?
악인들은 가만히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착취하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해서, 기쁨을 즐겼습니다.
이게 악인들의 기쁨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박국의 기쁨은 무엇이었나요?
환경이 좋은 게 아닙니다.
괴롭히는 사람도 있어요.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에 열매도 없어요.
환경이 좋은 게 아닙니다.
환경 때문에 기뻐하는 게 아니에요.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알고 계신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이게 하박국의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더 이상 환경을 탓하지 않기로 합니다.
19절입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라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이스라엘의 사슴은 높은 바위 산을 뛰어다닙니다.
발목의 힘이 좋지요.
장애물 투성이이고, 환경이 좋지 않지만, 이스라엘의 사슴은 발목에 힘이 있기 때문에, 그런 장애물이 많은 산도 거뜬히 뛰어다니고 즐겁게 다닐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박국은 하나님이 자신의 발목의 힘과 같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발을 사슴처럼 만들어 주셔서, 높은 바위 산을 뛰어다닐 때에도 힘차게 뛰어다닐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고 합니다.
4. 이 힘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고요.
우리 친구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새생명축제가 대단한 건 아닙니다.
다만 한 영혼이라도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하여 치르는 행사입니다.
우리에 양떼가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하나님만 잘 믿으면 충분히 행복하고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되어주시면, 가파르고 높은 산도 거뜬히 뛰어다닐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됩시다.
1차 개요
공포에 떠는 사람을 어떻게 도울까?
거절은 언제나 아프다. 특히 사회적 동물로 태어난 인간들의 경우 실험실 상에서 약 2분만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어도 자존감이 뚝 떨어지고 행복감과 삶의 의미감 마저 떨어지는 등 사람으로부터 거절되는 경험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아픈 경험 중 하나이다. 그러서 그런지 사람 사이에서 겪는 슬픔과 좌절들에 대해 “상처 받았다”, “아프다” 같은 표현들을 흔히 쓰곤 한다.
관계를 좋아하는 사람은, 상처를 잘 받고, 성취를 좋아하는 사람은, 화가 많이 난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
2. 공포란?
성경 문화배경 사전 (환난)
환난(患難, distress, tribulation) 죄 가운데 태어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고통. 보통 육체적인 어려움이나 불행을 통틀어 말하나 이로 인한 정신적 고뇌와 구분없이 사용될 때가 많다.환난은 주로 죄(아담과 범죄와 자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온다. 따라서 세상을 살면서 환난을 겪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성도가 이와 무관하게 당하는 환난도 있다. 주님(복음)을 위해 당하는 환난이다.
Everyday 신학 사전 (정의 > 환란)
환란에 대해 성경은 두 가지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 환란은 타락한 세상에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일반적인 시련, 어려움, 고난을 의미하며, 하나님을 떠나 반역 속에서 이제 그분의 정당한 분노를 받을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의로운 심판을 뜻한다. 타락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시련과 환란을 경험하지만, 성경은 환란의 개념을 두 가지 방식으로 두 그룹과 연관 짓는다.
1.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실한 헌신 때문에 부당한 환란과 박해, 고난을 경험한다.
2. 불신자들은 죄와 하나님에 대한 반역 때문에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으로서 정당한 환란을 당한다.
발표 불안은 수행 불안(performance anxiety)의 일종입니다. 수행 불안은 시험, 발표 등의 활동을 할 때 생겨나는 긴장과 불안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타인들 앞에서의 발표를 두려워합니다. 사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가수다>나 <불후의 명곡>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수십 년 동안 무대에 선 베테랑 가수들도 무대 뒤에선 여지없이 긴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불안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사로잡히게 될 때, 우리는 발표 불안의 덫에 걸리는 셈입니다.
발표 불안을 느끼는 이의 마음에는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 있습니다. 대인관계에서 느끼는 고통의 또 다른 형태이지요. 또 발표하는 상황, 그리고 발표를 할 때 청중들의 시선 등에 대한 과한 의미 부여를 습관적으로 하게 될 때, 몸과 마음은 더욱 불안의 늪으로 빠져듭니다.
공포란,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두려운 사람은 ‘사람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사람의 평가’가 두렵다. 왜냐하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상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발표 불안 극복하기, 네 가지 꿀 팁!
1. 사람들은 사실 나를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다
발표를 막상 할 때는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을 주목하는 것 같아요. 내가 떠는 것, 실수하는 것 하나하나 다 집어 낼 것만 같은 두려움이 듭니다.
발표 불안에서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명제가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타인을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내가 발표자가 아닌 청중으로 앉아 있다 생각해 볼까요. 막상 나는 발표자를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거나, 일거수일투족을 다 관찰하지 않아요. 발표자를 보다가, 잠깐 다른 생각을 하다가,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보다가, 또 스마트폰의 메시지도 잠깐 체크하기도 하지요. 주의가 100% 발표자에게 가는 일은 없습니다. 설령 긴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해도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아요. 발표자보다 잠시 후 먹을 점심 메뉴가 더 중요하니까요. 나의 모습, 나의 행동이 관찰당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해요.
2. 80% 정도의 성공, 너무 완벽해지려 하지 말자
우리는 준비한 발표의 100%를 다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준비한 발표에 비해 80% 수준, 즉 약간은 못 미치는 발표를 할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합니다. 완벽주의는 발표자에게 맹독과 같습니다.
물론 욕심 같아서는 150%, 200%를 해내고 싶을 거예요.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선보인 그 유명한 발표처럼, 청중의 관심을 확 잡아끌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발표 상황은 그리 극적이거나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 우리 몸과 마음은 출렁이는 파도와 같아서, 항상 일관적인 컨디션을 유지할 수 없어요. 그날의 기분이나, 온갖 요소에 의해 돌발 상황은 언제든지 나타납니다. 그런 요소들을 인정하고, ‘80%만 하자.’는 생각으로 임할 때 유연한 대처와 여유가 생겨나요. 발표가 불안할 때는 힘을 좀 빼야 합니다.
3. 발표의 진짜 목표가 무엇인지 기억하기
당신이 하는 발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완벽하고, 빼어난 발표를 해서 발표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걸까요? 사실 발표의 본질은 ‘내용 전달’입니다. 발표의 진정한 목표는 내가 준비한 내용을 다 이야기하고, 프레젠테이션 화면에 나오는 내용을 빠짐없이 설명하고 오는 겁니다. 청중의 감동을 끌어내거나, 마음을 바꾸고 설득하는 효과는 그렇게 되면 좋은, 일종의 덤인 셈이지요. ‘내용 전달만 잘하고 오자.’는 마음가짐은 압박감에서 벗어나게 도와줍니다.
4. 불안을 숨기려 하지 말아요: 광고 기법
발표 시 불안을 꼭 숨겨야 할까요? 얼굴이 붉어지고, 손이 떨리는 자연스러운 생리 반응을 숨기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불안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면 우리 몸과 마음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우리 뇌는 우리가 힘들어하는 대상을 경계합니다. 생존을 위해서지요. 발표가 불안하다면, 발표 상황 내내 몸과 마음이 긴장을 유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불안을 스스로 기꺼이 드러낸다면, 역설적으로 뇌는 경계를 풀게 됩니다. 발표를 시작할 때 자신의 떨림을 먼저 밝혀 봅시다. “저는 사실 발표가 익숙지 않습니다. 좀 떨리네요.”, “많은 분을 모시고 발표하게 되니 긴장이 됩니다. 좀 떨어도 양해를 부탁드립니다.”라는 식으로 너스레를 떨어 보는 거예요. (물론 사람들은 그 말을 신경조차 쓰지 않겠지만) 스스로 ‘불안함을 보이면서 발표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그 불안에 대한 이차적 불안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를 광고 기법이라 합니다.
“불안하면 뭐 어때? 누가 이상하게 보면 좀 어때?”
여기가 제일 중요한 대목입니다. 누가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게, 발표할 때 긴장한 모습을 보이는 게 그렇게 끔찍한 일일까요? 물론 긴장하며 발표하는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는 건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입니다. 하지만 누가 나를 이상하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따지고 보면 내 삶에서 그리 큰 덩어리가 아닙니다. 설령 발표를 망친다 해도, 긴 삶을 걸어가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아주 짧은 순간의 경험일 뿐이에요. 어찌 됐든 발표는 끝납니다. 그 결과가 어떻든, 사실 그 경험은 나를 금세 스쳐 갑니다.
불안하면 뭐 어떻고, 누가 나를 이상하게 보면 좀 어때요? 이 말을 자주 되뇝시다. 우리는 모든 이에게 인정받을 수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어요. 인간이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듯, 발표도 그러합니다. 완벽한 발표는 어디에도 없다는 걸 꼭 기억해야 합니다.
3. 기독교 신앙은 공포를 이기는데 도움이 되는가?
죄 용서: 시편 130편 강해 2) 심판의 두려움을 내어쫓는 복음적 확신

복음적 확신은 당혹스러운 불확실한 것들과 하나님에 대한 힘든 생각들, 그리고 다가올 진노에 대한 두려운 인식으로 영혼을 가득 채우는 두려움, 고통을 주는 두려움을 내어쫓는다. 용서에 대한 확신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두려움과 관련해서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원리와 관련하여 두려움은 “종의 영”에서 온다. “우리는 두려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았다”(롬 8:15). 이 두려움은 마음 또는 영혼에 때때로 엄습해 오는, 가장 훌륭하고 가장 높은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간헐적으로 빠질 수 있는 어둠이나 시험에서 나오는 두려움이 아니다. 이 두려움은 영혼 속에 완벽하게 머물러 있는 원리인 종의 영에서 나오는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은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자신의 상태에 대해 두려워하게 하는 지배적인 마음의 상태다. 둘째, 두려움은 종으로 만든다. 두려움은 영혼을 속박한다. 그리스도는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고” 죽으셨다(히 2:14–15).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형벌적인 것이며 저주다. 이 두려움은 종의 영에서 나오는 두려움이며, 종의 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가진 두려움에 근심과 고통과 마음의 염려를 더하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수단을 사용하여 부적절하고 무질서하게 치료책이나 구원을 추구하게 한다. 셋째, 두려움은 고통을 수반한다. “두려움에는 고통(형벌)이 있다”(요일 4:18). 두려움은 마음에 어떤 안식도, 고요함도 주지 않는다. 그런데 용서에 대한 확신은 이 두려움을 내쫓는다. 비록 두려움이 영혼을 괴롭힐지라도, 영혼을 소유하지는 못한다. 비록 두려움이 영혼에 침투할 수는 있지만, 영혼에 머물러 거하면서 사로잡지는 못한다.

믿음은 자유를 준다.
믿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한다.
믿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고 도우실 거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 완전 분석 3.2.27. 자녀의 두려움과 종의 두려움

3.2.27 자녀의 두려움과 종의 두려움

요한은 신자의 두려움과는 아주 다른 불신앙에서 생기는 공포심도 말했다(요일 4:18). (1) 악한 자들이 갖는 ‘종의 두려움’ 혹은 ‘비굴한 두려움’은, ① 하나님을 불쾌하게 했기 때문에 갖게 되는 것이 아니고, ② 하나님께는 벌을 주시는 권능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갖는 것이니, ③ 만일 벌만 면할 수 있다면 태연할 것이다. (2) 반면, 신자들이 갖는 ‘자유롭고 자발적인 두려움’은, ① 벌에 대한 공포심을 느끼지는 않지만, ② 그럴지라도 벌 받을 일을 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한다(엡 5:6).

물론 칼빈은 신자도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신자는 사랑 가운데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두려움은 사람이 첫 범죄에서 느꼈던 첫 번째 감정이다. 아담이 느꼈던 이 감정은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상황을 위협으로 이해한 위축 반응이기도 하다.65 그러나 핵심감정–두려움은 과거에 관한 감정이 세계를 왜곡해서 바라보게 하는 감정이다. 비트겐슈타인(Ludwig J. Wittgenstein)은 “행복한 자의 세계는 불행한 자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라고 말한다. 무엇이 세계를 달리하는가? 스벤젠(Lars Fr. H. Svendsen)은 비트겐슈타인의 이 언명을 샤르트르(Jean–Paul C. A. Sartre)가 말한 “정서가 세계를 전면적으로 변화시킨다.”67는 의미로 해석한다. 두려움은 우리 현실 인식을 왜곡시켜 세계를 달라지게 하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며 이는 사회적 갈등을 부르기도 한다.

내면의 감정이 세상을 다르게 보게 한다.
두려운 감정을 가진 자의 세계는 불행하다.

핵심감정–두려움은 실제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겪는 두려움이 아니라 가짜 감정이다. 이런 가짜 감정 때문에 사람과의 사귐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물 위를 걷던 베드로는 진정한 현실인 그리스도에게서 시선이 떨어지고 눈앞의 파도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믿음이라는 인식의 수단은 우리에게 진정한 현실을 인식하게 해준다. 이 현실인식이 결여될 때 두려움이 찾아든다. 그중 대표적 두려움은 거절에 대한 것이다.

두려움은 우리의 상상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핵심감정이 상상력이 발달하는 중간대상의 생성 시기와 관련이 있다. 핵심감정–두려움은 주눅 들어 있고 타자상이 지나치게 발달함에 따라 상상이 덧입혀져 있어서 자기표현을 제대로 못하게 하며 상처로 인해 지나치게 조심하게 만든다. 이러한 두려움은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주변의 가족들의 삶까지 통제하게 만든다. 상황이 통제되지 않는 환경은 두려움을 가중시킨다. 핵심감정–두려움을 지닌 사람은 약간만 늦어도 두려움이 의식 위로 솟구쳐 오르고 짜증과 화를 자주 내게 된다.

실패나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떤 일이나 연애 등을 시작하기 어렵고 혹 시작하면 끝내기 어렵다. 어떤 일이든 두려움을 털어내고 정상 궤도에 오르려면 상당한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핵심감정–두려움과 유사계열로 공포감정에 대한 질적 분석 사례연구를 보면, 죽을 것 같은 감정적 반응을 드러낸다.

그는 일 또는 학업에 대해서는 “실패하면 끝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대인관계에서 그는 존재의 거부–자살 및 의사소통 양상과 갈등해결 양상 등에 반응한다. 그 외에도 그는 일정한 거리를 두다가 위협을 느낄 때면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는다. 겉보기에는 평온해보이지만 격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스트레스와 고투한다. 그는 의외로 이런 면 때문에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개구쟁이로 비취기도 한다. 이 역시 상상력과 관련이 있으며 그는 창의적이고 아이디어가 풍부하다. 그러나 동시에 제대로 현실적인 관계를 맺어본 적이 적기 때문에 여리고 현실감각의 떨어진다. 그에게 두려움이나 공포가 찾아오면 어린 시절 부모가 그랬던 거처럼 날카롭고 자극적인 말들로 아이들을 대한다. 이때 아이가 가졌던 어쩔 줄 모르고 당황스런 감정 역시 공포가 만들어내는 감정이다.

핵심감정–두려움의 타자상은 두려운 존재다. 핵심감정–두려움을 지닌 이는 거절과 평가를 잘 견디지 못하며 비난을 두려워하고 대부분의 일처리를 혼자서 한다. 모험적인 일이나 변화를 싫어하고 시작도 어렵지만 끝내기도 어렵기 때문에 누구보다 견디는 힘이 크다. 그는 두려움이라는 내부적 압력 때문에 어떤 핵심감정보다 오래 인내하는 힘이 발달해 있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한다. 하지만 문제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유형이다. 그는 상황을 당당하게 타개하고 도전할 필요가 있다. 더 현실적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추어두었던 여린 마음을 드러내고 현실 관계 속에서 적절한 좌절을 겪으면서, 좌절에 대한 예방주사를 맞을 필요가 있다.

핵심감정 치유: 핵심감정 치유를 위한 워크북 핵심감정–두려움의 하나님표상

핵심감정–두려움의 하나님표상은 징벌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징벌도 하시고 싸매시기도 하시지만 핵심감정–두려움의 하나님은 징벌로 특화되어 있다. 구약의 하나님은 징벌하시는 분으로 읽힌다. 핵심감정–두려움의 신앙생활은 가시밭길이다. 징벌의 두려움은 징벌 받음으로 오히려 터져야 할 것이 터졌다는 안도감을 얻는다. 예를 들어 어려서 장독을 깬 아이가 내 집밖을 배회하다가 야단을 맞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과 같다. 간절히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계속해서 징벌하시는 상황에 힘이 집중되고 징벌 받는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두려움을 가진 자는, 징벌을 받아야 오히려 그 두려움이 사라진다. 징벌을 받을 일이 생겼는데도, 징벌이 오지 않을 때가 더 힘들다. 계속해서 그 징벌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타자상은 강하다.
핵심감정 치유: 핵심감정 치유를 위한 워크북 Step 3 핵심감정–두려움 지우기

불안은 몸과 영혼의 힘이 자기에 좀 더 치우쳐 있다면 두려움은 타자에게 좀 더 치우쳐 있을 때 발생하는 감정이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지만, 두려움은 우리 안에 있는 애증의 힘 중에서 미움의 힘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발생한다.

두려움은 상대방으로부터 미움받기 싫은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미움 받을 수 있다면, 자유를 얻을 텐데, 미움받기 싫으니까, 두려움이 생기고, 부자유스러워진다.
4. 이 복음을 전하자!
새번역
13 당신이 친히 기름 부은 사람(메시야)를 구조하시려고 오십니다.
악인의 기초를 벗겨버립니다.
악인(라싸)의 집의 머리(로쉬)를 친다.
“라싸”와 “로쉬”가 비슷한 자음이다.
14 그들의 지도자의 머리(로쉬)를,
여기서도 ‘로쉬’가 강조된다.
바람이 몰아치다, 요동하다, 흉용하다 (칼 미완료)이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회오리바람이 치고 있는 것이다.
아니(가난한, 마음이 상한) :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어떤 고통, 부상 또는 위해의 희생자가 된 사람을 의미한다.
15 많은 물들의 파도를, 짓밟았다.
압도적인 파도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나 불행을 표현하기 위한 은유로 사용됩니다.
Psalm 42:7 NKRV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Psalm 88:7 NKRV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가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
16 내가 들었고, 나의 창자가 라가즈(공포로 떨다, 흥분하다, 진동하다)하였다. 나의 입술이 떨렸다.
나의 뼈(에쩸)에 라캅(썩은 물건, 뼈의 썩음)이 들어오고 있다(미완료).
내가 라가즈(공포로 떨다, 흥분하다 / 미완료)하고 있다. 내가 백성들이 굿(침략하다, 공격하다)하기 위하여 올라오는 차라(환난 날, 괴로움, 원한, 적대감)의 날을 누아흐(한숨쉬다, 쉬다)하기 때문에,
공포심
여기서 ‘라가즈’가 두 번 반복된다.
그의 창자는 공포로 떨렸고, 그는 공포로 계속해서 떨고 있었다.
그가 공포로 떠는 이유는, 괴로운 날이 다가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괴로운 날은 바벨론 백성들이 공격하기 위하여 올라오는 날을 의미한다.
17 무화가나무가 파라흐(싹나다, 돋아나다 / 미완료)하지 못하고 있다.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다.
감람나무에 결과물이 불충분하다.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닌데, 결과가 충분하지 못하다.)
그리고 밭에 오켈(음식, 양식)이 생산되지 않는다.
울타리에 양 떼가 끊어졌다.
그리고 외양간에 소가 없다.
18 나는 여호와 안에서, 알라즈(기뻐하다, 승리하다 / 미완료)할 것이다. 나는 길(기뻐하다, 환희하다, 기뻐 외치다 / 미완료) 할 것이다. 나의 예샤으(도움, 구원, 구조, 행복)의 엘로힘(하나님) 안에서,
그런데 하박국은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승리를 외치고 있다.
기뻐하다 / 환희하다가 강조된다.
그는 행복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 외칠 것이다.
19 나의 주 여호와는 나의 하일(재물, 군대, 재산, 용사 / 육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강한 특성: 힘)이다.
나의 발을 암사슴 같게 하사, 나의 바마(높은 곳, 산당, 예배 장소)로 나를 다라크(나오다, 밟다, 다니다 / 이크톨)하게 하실 것이다.
음악을 지도하는 사람을 위하여,
나의 네기나(노래, 현악, 전문 음악 용어)를 위하여,
바마는 산당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우상숭배의 장소이다.
하박국을 암사슴처럼 바마로 다니게 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신명기 32:12–13 (NKRV)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여호와께서 그가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신명기 33:29 (NKRV)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하나님은 강한 다리를 가진 사슴처럼, 높은 산을 비틀거리지 않고 바로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주신다는 말이다.
높은 곳 : 은 넘어질 곳이 많은 장소이다. 하나님은 넘어질 곳이 가득한 장소에서도 확실하게 하박국을 보호할 것이다.
감정
공포
공포(恐怖, fear) 히브리어오 ‘메히타’인데, ‘깨뜨리다’는 뜻으로 큰 두려움으로 인해 마음의 고요함과 평정이 깨뜨려진 상태를 가리킨다(삼상 14:15).
2 Timothy 1:7 NKRV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제니스는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녀의 소심한 목소리와 수줍은 태도는 그녀가 잠재적인 위험에 대해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외동딸로서 제니스는 자신이 어머니의 희생양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고 느꼈다. 그녀가 어렸을 때, 제니스는 어머니가 집에 오기를 기다리며 온몸이 긴장되는 것을 느꼈던 것을 기억할 수 있다. 그녀는 어머니가 돌아오면 어떻게 될지 전혀 알지 못했다. 어른으로서 재니스는 항상 잠재적인 해악을 경계했다. 그녀는 심지어 걱정할 것이 없을 때 긴장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딘은 외톨이로 여겨졌다. 이 겉모습이 집단에 있는 것에 대한 깊은 두려움의 가면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딘은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식당에 있을 때 공황에 휩싸일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비이성적으로 보일지라도, 그녀는 어리석은 말을 하거나, 셔츠에 음식을 쏟거나, 말을 더듬기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다.한 사람과 단둘이 있을 때는 괜찮았지만, 단체로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움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경험하지만, 두려움은 또한 긍정적 인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이 일방통행로를 거절하고 자동차가 당신을 향해 직진하는 것을 보았다면, 두려움은 잠재적으로 위험한 상황을 '도망'하라는 신호를 뇌에 보내는 자율 반응을 촉발한다.
두려움은 사람이 실제가 아닌 것을 두려워하거나 두려움의 느낌이 실제 위험에 비례하지 않을 때 문제가됩니다. 두려움은 사람을 자기 보호 모드로 끌어들이는 감정입니다.
종종 두려움은 사람이 자신의 안전과 보안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그 사람은 직장을 잃거나, 집을 도둑 맞거나, 관계에서 갈등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지 말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한다.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불안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인 알랭 드 보통은 『불안(원제: Status Anxiety)』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우리의 삶은 불안을 떨쳐내고, 새로운 불안을 맞아들이고, 또다시 그것을 떨쳐내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불안의 원인을 다섯 가지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랑의 결핍입니다. 어린아이일 때는 부모와 사회로부터 어떠한 대가도 없이 사랑을 받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다르죠. 이성으로부터 확인받는 관심과 사랑에 의해 나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세상으로부터 확인받는 관심과 사랑, 즉 능력, 성공, 명예 등이 필요합니다. 이 같은 사랑을 받지 못했을 때, 우리는 불안합니다. 연인이나 직장은 우리에게 지위를 부여합니다. 그것이 결핍된다면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는 속물근성입니다. 속물근성이란 사회적 또는 문화적 편견을 가지고 상대방이나 물건을 판단하는 사람들이나 그것을 지나치게 떠벌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속물근성이 있습니다. 큰 자동차를 타고, 비싼 가방을 메는 것은 상대방에게 내 지위를 확인시켜 주고 싶은 것입니다. 상대방은 큰 자동차와 비싼 가방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면 불안해집니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건, 내면 깊이 자리한 속물근성입니다.
세 번째는 기대입니다. 우리는 우리와 같거나 비슷하다고 느끼는 조건을 가진 사람들과 우리의 조건을 비교합니다. 그 비교를 통해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입니다. 우리의 삶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풍족해지고 향상되었지만, 우리 또한 이전에는 넘보지 못했던 것들이 내 것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통해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네 번째는 능력주의입니다. 중세시대에서 가난은 나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부자가 부도덕하게 보였죠. 그러나 과학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가난은 무능력, 게으름을 뜻하는 것이 되었고, 부와 성공은 근면과 성실 심지어 인품마저 의미하게 된 것입니다. 능력과 세속적 지위 사이에 신뢰할 만한 관련이 있다는 믿음이 늘어나면서 돈에도 새로운 도덕적 가치가 부여되었습니다. 무능력은 불안과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다섯 번째는 불확실성입니다. 불안은 현대 사회에서 욕망의 하녀입니다. 남들로부터 존중받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통사회에서처럼 성실하다고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빛을 발할지 모르는 재능, 누구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지 않는 행운과 불운, 전통사회에서 자급자족하던 것과는 달리 고용주의 이익과 관계, 세계 경제 상황, 정치적 변동 등과 같이 불확실한 요소에 의해 내일이라도 지금의 지위를 잃을 수 있기에 여전히 불안합니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한 불안의 원인을 살펴보니 불안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박상천 시인은 자신의 수많은 불안을 어떻게 견뎌내고 있을까요?
그래도 나는, 나를 불안케 하는 것들과 함께 살아간다, 잘 살아가고 있다.
불안은 불안, 두려움 또는 걱정의 느낌을 동반하는 끊임없는 두려운 상태이지만 십대는 두려움의 느낌을 만드는 것을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십대들이 소속감이 없거나 목적이 없다는 느낌을 경험합니다. 청소년기의 복잡성과 스트레스는 '실존적 불안'이나 불안의 비옥한 번식지다.
일반화 된 불안 장애의 진단은 지난 6 개월 동안 나타나지 않은 것보다 더 많은 날 동안 나타나는 다음 증상 중 3 가지 이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1) 쉽게 피로해진다. 2) 자극성 3) 근육의 긴장 4) 잠드는 것과 잠드는 것의 어려움 5) 집중의 어려움
또한, 불안의 증상은 다음을 포함 할 수 있습니다 : • 긴장을 풀 수 없는 상태 • 긴장된 감정 • 빠른 심장 박동 • 건조한 입 • 혈압 상승 • 신경과민이나 기절할 것 같은 느낌
• 과도한 땀 • 피부가 축축해지는 느낌 • 끊임없는 문제의 예측 • 끊임없는 불안감
주요 이미지
전쟁 이미지 - 치시며,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주께서 말을 타시고
회오리바람 - 흩으려
맹수 이미지 - 삼키기를 즐거워하나
바다 이미지 -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농업 이미지 -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 밭, 우리에 양, 외양간에 소
사슴 -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주석
13절 - 악인의 집의 모든 것을 파괴하실 것이다.
(완벽한 멸망)
15절 - 14절에서 대적들이 하박국과 백성드을 폭풍처럼 흩으려 했던 것처럼, 하나님은 바다와 파도로 묘사된 대적들을 폭풍으로 흩어버리신다.
16절 - 하박국은 공포에 떨고 있다. 신체의 떨림으로 자신의 공포를 묘사한다.
이 두려움은 바벨론이 유다를 공경하러 오는 대재앙을 기다림으로 인해난 공포이다.
17-19절에서 하박국은 양식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믿고 의지하겠다는 고백을 담고 있다.
19절 - 하박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고 한다.
(하박국에게는 여호와의 말씀 외에 그 어떤 것도 힘이 되지 못한다.)
하박국의 심리 (감정)
* 놀람
* 공포 - 미래에 다가올 심판 때문에 두려워함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런 공포심이 없는가?
* 기쁨
우리 아이들은 하나님 때문에 힘이 나고 기뻐하는가?
하나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하나님은 군인처럼 일하신다. 그는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신다. 그 집의 기초가 드러낼 때까지 치신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을 고통스럽게 하는 군대의 지휘관의 머리를 창으로 찌르신다.
하나님은 말을 타시고, 바다를 밟으신다.
하박국
하박국 : 껴안는 자
그는 정의로운 하나님이 통치하는 세상에 불의와 불공평이 난무한 현실에 대하여 질문을 던졌다.
하박국도 성전 찬양대 대원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박국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성전을 찾아와 여호와의 뜻을 구하는 수많은 성도들, 특히 억울한 일을 당하고 고통받는 자들의 하소연과 탄식을 들으면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통치하는 세상에서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유다의 죄악을 바벨론을 통해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선포한다.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예루살렘에서 성행하고 있는 부정과 부패, 힘없고 연약한 자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지도자들을 언제까지나 지켜보고만 계실거냐는 하박국의 탄식이 바로 여호야김 정권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간주한다.
이로써 하박국은 나훔, 스바냐, 그리고 예레미야와 동시대에 예루살렘에서 사역했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역사와 주권에 대한 확신을 백성들에게 선포했다.
반면에 하박국은 백성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그는 결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의심하여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다.
하박국서는 부조리와 부패로 찌든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교훈을 주는 책이다.
선지자는, 하나님은 뒷짐 지고 묵묵히 지켜보고만 계시는 분이 아니시며 설령 악이 걷잡을 수 없이 세상을 휘젓고 지배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해도 그분은 항상 이 세상의 일에 깊이 관여하고 계시며, 그분의 계획대로 모든 일을 진행해 나가신다고답한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자신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서 때로는 악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 계획 자체가 본질적으로 악하거나 악을 내포하고 있다는 주장은 수용하지 않는다.
그분은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인도하는 분이시지만, 또한 바빌론 사람들도 통치하는 분이신것이다.
하박국 선지자가처한 현실은 주의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불의에 의하여 위축되어 있고 악인들에 의하여 유린당하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이러한 믿음과 현실의 대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하나님이 의와 공평으로 이 세상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실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 옛적 선포가 그대로 성취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과거에 있었던 ‘ 계시 /선포’와 미래에 있을 ‘성취 /완성’의 “사이 /진행 과정”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바로 이 ‘사이 /진행 과정’에서 살고 있는 한, 믿음과 현실은 항상 대립한다는 것이 하박국 선지자의 신학적 통찰이다.
사람들은 흔히 평안, 건강, 장수. 풍요로움, 공의 등 우리가 삶에서 누릴 수 있는 ‘축복들’의 유무(有無)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지표로 삼는다 - 이것을 많이 누릴수록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인정하시는 것으로 생각하며 ,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고 계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이러한 ‘축복들’을 누리지 못했다 . 오히려 그는 고통과 궁핍함에 시달리고 있다.
하박국은 더 이상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려주시는 축복들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 존재 자체를 기뻐하며 즐길 수있는 신앙을 갖게 되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