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에 앉으셔야 하는 분은?
사무엘상 강해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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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새벽기도에 오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분위기는 약간 무겁습니다. 지난 번 본문까지 새로운 왕이 암몬 족속에 대해 대승을 거두고 축제와 같은 분위기인데 갑자기 분위기가 가라앉습니다. 이렇게 왕이 뽑히고 왕이 구원을 가져다주면 이후에 본문의 분위기가 좋아야 할 것 같은데 갑자기 사무엘이 등장하며 말 그대로 산통을 깨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인간 왕 때문에 행복하지만 사실 이스라엘은 굉장히 중요한 것을 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참된 기쁨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인간 왕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진정 누구를 왕으로 섬겨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합니다.
1- 죄인의 왕은 계속해서 바뀐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죄인의 왕은 계속해서 바뀐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무엘의 고별설교로 많이 알려진 본문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읽어보시면 이게 고별설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3절에 보시면 사무엘이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가르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은퇴하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12장 전체를 보시면 내용의 대다수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구한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것이 주를 이룹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사무엘의 고별설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을 향한 선지자의 설교와 질책이라는 것을 염두하고 읽는 것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1절을 보시면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불러 설교를 합니다. 이스라엘의 말을 듣고 왕을 세워줬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2절 초반부에 “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였느니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끝 부분에 “어려서부터 오늘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출입한다는 말의 맥락을 살펴보면 다스렸다는 말로 대체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엘리를 이은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왕이 없던 시대에 하나님의 통치가 어떤 것인지 전달하고 적군과 전쟁에서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을 구현하기도 했습니다. 사무엘은 사사직분을 통해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와 능력을 전달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통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의 표현대로는 이제 이스라엘 앞에 출입하지 않습니다. 이제 사울이 이스라엘에 출입하고 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지난번에 설교한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나라가 다른 나라처럼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처럼 전쟁을 하고 싸우고 점령하는 그런 통치자가 좋기 왕을 구했고 그렇게 세워진 왕이 사울 왕입니다.
사무엘이 뭘 잘못해서 그렇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3절부터 보시면 사무엘이 직무를 행하면서 누구의 소나 나귀를 빼앗은 적도 없고 속이거나 빼앗거나 권력을 부당하게 사용한 적도 없습니다. 뇌물을 받고 차별대우를 한 적도 없습니다. 이건 이스라엘 백성도 아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직무를 잘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 왕을 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새로 세운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운 직분자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을 통한 하나님의 통치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의 특징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받고 싶은 통치를 추구합니다. 자신의 입장과 상황에 알맞게 통치자를 정하고 그 통치자를 따르려고 합니다. 이런 생각의 근본에는 우상숭배의 죄악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고질병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것을 의지하려는데에 있습니다. 10절에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나옵니다.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것과 사울 왕을 구하는 모습은 그 본질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 말고 자꾸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을 믿고 따르려고 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은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자꾸 왕을 바꿔서 섬깁니다.
(적용)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만 여전히 죄인의 본성을 따라 살기 때문에 우리의 통치자가 누구인지 잊어버리면 우리도 모르게 자꾸 왕을 바꾸는 사람이 됩니다. 킹메이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적인 은어인데, 다른 사람을 권력의 자리에 올릴 수 있는 사람을 킹메이커라고 합니다.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왕으로 만들어서 자신이 원하는 권력 구조를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내가 왕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사람을 왕으로 만들어서 내가 원하는 환경과 지형에서 살아가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킹메이커인지도 모릅니다. 물질을 왕으로 만들고 명예를 왕으로 만들고 특정한 인간관계를 왕으로 만들어서 그것들이 나의 삶을 다스리면 내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지고 좀 더 편안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물질이 왕이 되어봤자 행복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명예를 왕으로 삼습니다. 명예를 왕으로 삼다가 또 이 왕이 별로면 다른 어떤 것을 왕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든 보좌에 수 없는 왕이 왔다 갔다 합니다. 결국은 시시각각 변하는 나의 욕구와 욕망이 왕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불완전한 왕을 모시면 우리 삶이 행복해질 수 있겠습니까? 나의 삶을 다스리는 것이 매번 바뀌고 매번 다른 부작용을 경험하는데 어떻게 삶의 무게중심이 안정화되겠습니까? 거기에는 욕구의 해소는 있을 수 있겠지만 참된 행복은 없습니다. 우리의 왕좌에 여러 왕들이 올라갔다 내려갔다가 하는 일이 빈번해질수록 우리 삶의 에너지는 점점 소모되고 우리 삶은 점점 피폐해집니다.
2- 우리의 참된 왕은 구원의 왕이신 하나님이다.
(설명) 그렇다면 우리의 왕좌에는 누가 앉으셔야 되겠습니까? 거짓 왕들이 오르내리는 삶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참된 왕을 왕좌에 앉혀야 합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우리의 참된 왕은 구원의 왕이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1절부터 5절까지 사무엘이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면서 한 번도 불의하게 행한 적이 없다는 것을 증언하고 나서 6절부터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독립된 공동체가 될 수 있던 이유가 무엇인지 이야기합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의 노예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독자적인 공동체로 독립될 수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처음으로 독립하고 자신의 영토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구원 사역 덕분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스라엘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9절에 보시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하나님이 하신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린 것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을 잊고 이방 왕들에게 이스라엘을 넘깁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이방 왕들을 통해 심판하실 때가 돼서야 우상숭배한 것을 회개하고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압제당할 때 사사들을 보내셔서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12장 12절에 이 본문의 핵심적인 내용이 나옵니다. 아까 언급한 역사적인 사실들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신데 이스라엘이 다른 왕을 요구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처구니 없는 요구지만 하나님은 그 요구를 들어주십니다. 왕을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런 말도 안되는 요구를 들어주신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한가지 짐이 주어집니다. 14절 하반절에 말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도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이스라엘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왕도 하나님 명령에 잘 순종해야 합니다. 이제 왕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거기에 따른 처벌도 생길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하나님께 징계 받았던 것처럼 그들도 징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의 요구 때문에 인간 왕을 세우긴 하셨지만 궁극적인 이스라엘의 왕은 인간 왕을 세우신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참된 왕께 복종하지 않으면 그 한 사람 때문에 나라가 어렵게 될 것입니다.
사무엘은 그리고 하나의 이적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는데 다른 왕을 구한 이스라엘의 죄가 얼마나 큰지 보여줍니다. 17절에 보면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비와 우레가 내릴 것이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왕을 구한 죄가 크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원래 밀을 베는 시기는 건기이기 때문에 비가 내리지 않고 천둥이 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말한 대로 건기임에도 불구하고 비가 불고 천둥이 쳤습니다.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이 초자연적인 현상은 이스라엘 백성이 참된 왕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 왕을 구한 것이 큰 죄악이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참된 왕은 하나님이신데 인간 왕을 구한 하나님의 진노를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징표를 보고 두려워 떱니다. 그리고 사무엘에게 기도해달라고 합니다. 왕을 구한 것이 죄를 더한 것이라 그렇게 고백합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말합니다. 20절에 보시면 비록 왕을 구하는 악을 저질렀지만 이제부터는 여호와를 따르는데서 돌아서지 말고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고 말합니다. 21절에 유익하게도 못하게 하고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이 왕은 유익하지도 않고 헛된 것입니다. 겉보기엔 의지할 만하고 유익해보이지만 실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왕으로 섬겨서 신뢰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외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참된 왕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데 바로 구원입니다. 백성을 구하는 왕이 진짜 왕이고 나머지는 가짜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노예생활할 때 누가 구원했습니까? 이방 나라에게 압제 받을 때 누가 구원했습니까? 다른 이방신도 아니고 바알도 아니고 아세라도 아닙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의 복음을 들려주실 수 있는 분만 우리의 왕입니다. 그 어떤 풍요로움도 빛나는 명예도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줄 수 없습니다. 더 큰 풍요로움이 생기면 그게 왕이 되고 더욱 빛나는 명예가 보이면 그게 왕이 됩니다. 절대적인 왕, 우리가 따르고 섬길 왕은 오직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왕이어야 합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적용) 세상의 많은 것들이 우리 삶의 왕좌를 차지하려 하고 왕관을 뒤집어쓰려 합니다. 우리가 수 많은 것들에게 왕위를 허락하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하지만 구원하지 못하는 왕은 금새 다른 왕에게 대체됩니다. 왕이 계속 대체되는 삶 가운데 우리 삶은 금방 피폐해지고 지칩니다. 우리의 왕좌를 지속적으로 지키실 수 있는 분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왕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완전한 자기 백성 삼으시고 우리의 완전한 왕이 되시기 위해 하나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진정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실 왕이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그 어떤 것을 왕으로 모시며 살겠습니까? 어느 것을 왕으로 삼아도 우리 삶은 불안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전부를 내어줄 수 있는 왕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내어주는 왕이라면 우리의 왕좌에 모실 이유가 충분히 되고도 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신 그 복음을 믿을 때 하나님을 우리의 왕좌에 모시고 오직 하나님만을 우리 왕으로 섬기게 됩니다. 그분의 통치가 아들을 내어주신 것만큼 선하고, 사랑으로 충만하다는 것을 알기에 왕좌에 모시고 그 통치를 따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참된 왕이 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결론
설교를 맺겠습니다. 우리는 변화되는 욕망에 따라 수많은 왕을 우리의 왕좌에 오르내리도록 합니다. 우리의 욕망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변화무쌍합니까? 욕망의 기준에 우리 왕이 결정되면 우리 삶은 늘 어렵고 피폐하게 됩니다. 우리가 왕을 세우는 기준은 구원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참된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우리 왕으로 모실 때 우리는 지극히 선하고 사랑이 충만한 통치 안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이 놀라운 기쁨 안에 거하는 저와 성도님들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