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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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우리는 2교구 새벽예배 시간을 통해서 십자가의 복음을 함께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신앙의 본질이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행하심에 온 삶으로 동참하는 것이라고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이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하나님의 행하심에 온 삶으로 동참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신앙의 본질의 삶의 성경적 의미를 바르게 알지 못한다면, 아무리 신앙의 본질의 정의를 말할 수 있다고 해도 결국 그렇게 살지는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번주에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며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에 관한 성경적인 지식을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신앙의 모든 면에서 필수적인 것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 신앙 모든 면에서의 기초이자 시작점인 것입니다.
오늘부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함께 살펴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들은 사랑과 관련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등’
그도 그럴 것이 구약에서부터 이스라엘에게 있어 최고의 계명은 사랑이었으며, 예수님께서 가장 크고 첫째되는 계명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구약의 이스라엘 시대에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고, 예수님 시대의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현대의 교회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 유대인들은 방금 읽은 신명기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쉐마'말씀을 외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손목에 매고, 미간에도 붙여 넣습니다.
바리새인들도 가장 큰 게명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 사랑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 사랑이라면, 즉 하나님의 다림줄에 맞지 않는 사랑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이나 호세아, 예레미야,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자부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모세오경을 달달 외울정도였고, 호세아, 이사야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진 짐승과 값진 향품들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선 내용에서 살펴보았듯이 그 모든 것들을 바친 그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하나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의미는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우리의 온존재로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온 존재로 사랑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의 전부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이시기에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오직 예수 뿐인 것입니다.
다른 것에서 소망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유일한 주인이시기에, 우리의 주인이신 주님께만 엎드리며 주인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유일한 생명이시기에, 생명을 얻기 위해 다른 웅덩이를 파지 않습니다.
우리의 전부이신 하나님만으로 충분히 넘치며, 기뻐하고 만족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이시요, 주인이시요, 생명이신 자리에 계시지 못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전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레미야 시대 유다 백성들이 그러했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그러나 하나님 마음에 합했던 사람, 하나님을 온 존재로 사랑했던 다윗은 달랐습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유일한 힘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진실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하나님을 정말로 온 힘을 다해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유일한 힘의 근원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아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복음 책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먼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해주십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감격이고 감사인지 모릅니다. 죄로 인해 얼룩져, 먼지보다도 못한 우리를 회복시키셔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사랑하기를 열망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온 존재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열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고, 죄로 얼룩진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택하시며, 구원하시며,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십니다. 계시하십니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보여지고 우리가 그 사랑을 온존재로 깨닫게 될 때,
우리 속에 넘치는 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그 사랑의 깊이를 더 인식하게 되는 경험, 즉 그 사랑을 더 깊이 알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진실로 감격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그 충만하신 사랑을 경험할 때면, 우리는 우리가 노력하지도 않아도 저절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을 터뜨리게 됩니다.
-카자흐스탄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경험했던 일
단기선교훈련으로 카자흐스탄을 가게 됐었는데, 그 떄 비행시간이 6시간 정도였다.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비행기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비행기가 구름보다도 위를 날게 될 때, 밖을 쳐다보게 되었다.
밖을 보니 정말 하늘과 구름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감탄하고 있을 떄,
갑자기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신 것에 대해서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하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창조주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 아닌데,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주님을 인식하게 되고 주님의 광대하심을 선명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분이 이 작디 작은 나를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아들을 아끼지 않으신 것,
나를 살리시고 나와 영원히 사랑하시려 내 죄를 대신 짊어지신 그 사랑의 깊이가 온 몸이 저릿저릿할 정도로 느껴지게 되었다.
그분의 끝없는 사랑에 계속해서 감격할 수밖에 없었고, 사실 ‘감격'이라는 표현도 부족하다.
그리고 이 광대하신 주님을 더 알고 싶다는 열망, 주님을 더 사랑하고 싶다는 열망,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살고 싶다는 열망이 불타올랐다.
이렇게 우리 속에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이 부어지면, 그 사랑은 자연스럽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하나님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나를 사랑하게 합니다.
여기서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이기적인 사랑, 자기 중심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잘 세워지도록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나의 연약함과 나의 죄악됨을 볼 때, 죄책감에 빠져 내 스스로를 포기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나를 이끌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엎드려 애통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기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리에 나를 두고,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머물게 합니다.
이것이 진실로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를 사랑하는 자, 즉 나 스스로를 하나님 앞에서 사랑받는 자로 인식하여, 그 하나님 뜻 가운데 나를 두는 자는
자기 중심적인 이기적인 사랑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기 중심적인 삶이 스스로를 파괴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며, 용납하며, 예수님을 닮도록 진취적으로 변화하는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을 사랑하는 자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하나님을 사랑하며 또한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나를 소중히 여기듯이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그가 하나님께 온전히 서있을 수 있도록 섬기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을 용납할 수 있습니다. 나의 연약함과 나약함을 하나님 안에서 품고, 애통함으로 나아갔던 것처럼
다른 지체들의 연약함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품을 수 있는 사랑이 생깁니다. 그리고 잘 자라날 수 있도록 포기하지 않고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함이 없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전존재로 사랑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이웃을 향한 사랑이 없이 부정적인 감정과 판단이 앞서고 있다면, 내가 지금 하나님 만을 나의 유일한 구세주요, 주인이요, 생명인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며 의도하신 네 가지 관계에 대해 살펴본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 내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
하나님은 이 모든 관계를 온전히 회복하기 원하시는데, 이 모든 것이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온전히 서는 것, 즉 하나님이 나의 유일한 구세주요, 주인이요, 생명이신 관계, 진정한 사랑의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랑을 가능케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