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하시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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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15:22-27 -
22. 모세는 이스라엘을 홍해에서 인도하여 내어, 수르 광야로 들어갔다. 그들은 사흘 동안 걸어서 광야로 들어갔으나, 물을 찾지 못하였다.
23. 마침내 그들이 마라에 이르렀는데, 그 곳의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으므로, 그곳의 이름을 마라라고 하였다.
24.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우리가 무엇을 마신단 말입니까? 하고 불평하였다.
15.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그에게 나무 한 그루를 보여주셨다. 그가 나뭇가지를 꺾어서 물에 던지니, 그 물이 단물로 변하였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법도와 율례를 정하여 주시고, 그들을 시험하신 곳이 바로 이곳이다.
16.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인 나의 말을 잘 듣고,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을 하며, 나의 명령에 순종하고, 나의 규례를 모두 지키면,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내린 어떤 질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주 곧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다.”
17. 그들이 엘림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샘이 열두 곳이나 있고, 종려나무 일흔 그루나 있었다. 그들은 그 곳 물가에 진을 쳤다.
행복합시다. 아멘!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 바로 전에,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기적과 같이 건너며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역사를 체험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찬양으로 놀라운 능력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디 모세 뿐이였겠습니까? 같은 장 20절에 모든 여인이 소고를 잡고 기뻐 뛰며 춤을 추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언제나 성경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어쩌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그 변덕스러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은 바로 직전의 하나님의 영광이 마치 오랜된 일이 된 것 마냥, 사흘만에,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럴만도 한 것이, 3일이나 물을 먹지 못했으니, 사실은 괴로울만 한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가끔은 좀 의문이 들곤 합니다. 왜 하나님게서는 굳이 우리에게 곤경을 허락하시는가입니다. 물을 마시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사치가 아닌, 생사가 달려있는 너무나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려움을 허락하시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곤 합니다. 그냥 필요한 그 때 그 시기에 맞게 필요한 것을 주시면 되지 않은가..? 자녀에게 아버지되시는 하나님, 주님이 되시는 그분께서 왜 그렇게 인색하게 구시는가..?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쓴물을 먹을만한 단 물로 바꾸십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이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신 곳이라 명하십니다. 우리 25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그에게 나무 한 그루를 보여 주셨다. 그가 그 나뭇가지를 꺾어서 물에 던지니, 그 물이 단물로 변하였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법도와 율례를 정하여 주시고, 그들을 시험하신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기 위해 그들을 마라라는 곳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시험이란 단어, 즉 test라는 단어의 의미는 불안전함, 결함 또는 기타 특성을 포함해서, 무언가의 ‘본질’을 확인하고자 거치는 것이란 의미를 지닙니다.
“본질을 확인하고자 거치는 단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8장에 홍수로 노아의 가족을 제외한 인류를 쓸어버리시며, 이렇게 다짐하셨습니다. “다시는 악하다고 하여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 라고 말입니다.
사실은 하나님은 우리의 본질을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들 이스라엘은 사실 너무나 유악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3:17절에서도 나오듯,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하셨으므로, 그래서 그들을 광야길로 인도할 수 밖에 없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우리는, 믿음이 없이는 고통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은혜가 없이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이것은 부담스럽고 어려운 주제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를 성령께서 이해하고 믿게 하시는 것임을 믿습니다. 인간적인 관점과 사고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조금 가혹하게 생각될지 모르나, 어쩌면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실 때 우리가 꼭 필요한 것,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사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것이 물이었습니다.
과연 우리 모든 인간이 과연 절박한 순간, 고난 앞에서 하나님을 찾는가..?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을 가진 자들만이 하나님을 찾는 것 같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그 본질적인 은혜를 경험해본 자만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바 결론적으로 그들은 유약하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연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정말 인도자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 그런 인물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들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원망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 상달된 것입니다.
우리의 본질을 이미 훤히 아시는 분이 왜 굳이 또 다시 test, 시험 가운데 두시는 것입니까? 바로 우리 사람의 본질적인 고통을 해결하실 분이 바로 하나님 자신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키기 위함입니다. 우리 26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인 나의 말을 잘 듣고,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을 하며, 나의 명령에 순종하고, 나의 규례를 모두 지키면,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내린 어떤 질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주 곧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는 26절 말미에 자신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라 소개하고 계십니다.
이 단어는 “의사”를 뜻합니다. 즉 질병의 증상을 완화시키고 예방하고 치료하는 사람이란 의미를 지닙니다.
마가복음 9장 12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가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 본문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 단어입니다.
주님은 바로, 우리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나는 너희를 도저히 버릴 수 없다. 그래서 내가 고쳐서라도 너희와 함께 하고 싶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에겐 내가 필요하다. 내게로 와서 진단을 받고, 나의 말씀과 율례를 지킴으로서 예방을 하며, 병든 자라도 내게 오너라, 내가 너희를 치료하겠다..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유약하기 짝이 없는 병든 영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존중하고 그분을 찾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분께 내 영혼의 상한 마음을 토로하고 그분께 치유를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의 존재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바, 우리는 곧 의사를 필요하는 환자와도 같다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시는 것입니다. 아 우리에게 영혼의 의사되시는, 치료하시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구나..라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26절에 너희가 내 계명으로 돌아와야만, 이집트 사람들이 겪었던 무서운 질병에서 놓임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경각시주고 계십니다. 너희도 다를 바가 없다. 너희가 나의 말에 순종치 않는다면, 너희도 그들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회복중인 사람들이다, 애굽의 종느릇하며 죄의 종노릇 하던 그 사람들의 무리에서 이제 막 빠져나온, 회복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여전히 애굽의 노예근성, 죄의 노예근성의 찌들은 때가, 즉 하나님의 은혜로 본질적인 죄는 파괴되었으나,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잔존하는 죄를 죽이는 것, 바로 죄죽임을 실천하는 것은 우리 신앙을 더욱 윤택하게 하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힘만으로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성령의 민감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여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들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갈 때, 우리 삶의 모든 부분들이 때에 따라 돕는 은혜를 입고 회복되며, 온전케 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27절에서와 같이 그들을 좋은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열두 곳의 샘, 일흔 그루의 종려나무가 있는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순종적인 태도로 그분을 따라갈 때, 그분은 결국 좋은 곳으로,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삶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살아가는 오늘 하루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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