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의 위기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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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오늘 이 시간, ‘믿는 자의 위기 대처법’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언제 가장 큰 위기를 경험해 보셨나요? 요즘 이 시기가 가장 큰 위기인 분들이 계시나요? 기도하러 잘 나오셨습니다. 기도는 위기를 이기게 하는 성령의 검입니다. 기도를 통해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오늘 하루도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저는 어릴 때 큰 위기들을 경험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그 위기들을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어린 아이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새벽기도 드리러 나가시는 어머니 등짝을 보는 게 유일한 대처방안이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도 꼭두새벽부터 제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나가시는 어머니 모습을 보고, 우리 가정이 살 수 있겠구나. 느꼈습니다. 그리고 정말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을 살리시고 지키시고 이끌어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배우자와 자녀들도 모르는 것 같지만 기도하러 나서는 여러분의 뒷모습을 보고 다 느낄 겁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요. 앞으로도 기도의 불씨를 꺼트리지 마시고 위기 때나, 평안할 때나 항상 기도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다윗을 통해 믿음의 사람은 어떻게 위기를 대처하는지 2가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대지
1대지
첫 번째, 믿음의 사람은 위기를 마주할 때 가장 먼저 기도합니다. 다윗은 어떤 위기를 마주했나요? 다윗과 무리들이 머물던 곳을 아말렉이 침노하여 성을 불태우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 끌고 갔습니다. 다윗의 두 아내 아히노암과 아비가일도 끌려 갔죠. 다윗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본문에선 아말렉 족속이 그들을 끌고 갔다고 나오지만, 다윗 입장에서는 자신의 아내와 백성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너무 두렵고 화나고 절망적이었을 겁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백성들이 잃은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람은 죄인이라서 남 탓을 참 잘 합니다. 인류의 시작, 아담도 본인이 선악과를 먹었는데, 하나님이 물으시니 뭐라고 답하나요? 처음에는 하와에게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부르던 자가 이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여자가 열매를 줘서 내가 먹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다정했던 사람이 제일 비굴하고 냉정해지고 말았죠. 이게 죄의 특성입니다. 아담은 이 여자가 내게 선악과를 줘서 먹었다고 하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탓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여자라고 했죠. ‘하나님이 굳이 내게 하와를 허락하셔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잖아요. 말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도 이렇게 반응할 때가 얼마나 많나요? 그런데 다윗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사실 남 탓을 해야 하는 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죄 된 모습인데,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다윗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우리 함께 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다윗은 가장 먼저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도라고 다 같은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에도 얼마나 다양한 뉘앙스가 있고, 의도가 있고, 언어가 있는지 모릅니다. 보통 위기에 처한 사람이 기도를 해도 “대체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이렇게 기도하는 게 정상 아닌가요? 그런데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사람의 기도하는 언어는 격이 다릅니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하죠.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이 기도는 앞에 무언가를 전제해야 나올 수 있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이 군대를 내 손에 넘기시고, 아내와 백성들을 찾게 해 주실 것을 믿는 믿음! 그 믿음이 전제돼야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과연 제가 저들을 물리치고 백성들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이렇게 묻지 않고, “따라잡겠나이까?” 이렇게 묻죠. 굳건한 믿음의 사람은 기도의 언어도 참 단단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믿음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이미 허락하셨고, 그 완전한 구원에 이르기까지 지켜주실 것을 믿으시나요? 그렇다면 위기를 마주했을 때 우리의 기도의 언어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하나님, 주님은 과연 이 위기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까?” 이게 아니라, “주님, 감사부터 할까요? 찬양부터 할까요? 이번 기회를 통해 저를 또 예수님 닮아가게 하시겠네요.” 이렇게 달라져야겠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위기를 통해 우리가 예수님 닮아갈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셨던 예수님. 기도로 두려움을 이기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도 져야 할 십자가가 앞으로 얼마나 많이 남아있습니까? 성도 여러분이 기도로 두려움을 이기시고 담대히 십자가 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십자가 후에 영광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부활하셔서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 우리에게 영광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기도하셔서 위기를 극복해 내시고, 그것으로 임하는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믿음의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2대지
2대지
두 번째, 믿음의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서도 소명을 감당합니다. ‘다윗은 어떤 소명을 하나님께 받았나요?’ 조금 다른 말로 하면, ‘다윗은 하나님께 어떤 부르심을 받았나요?’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왕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께 어떤 부르심을 받으셨나요? 어떤 소명을 받으셨나요? 소명에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감당하는 모양만 다를 뿐입니다.
다윗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처했는데도 왕이라는 소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왕은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백성들에게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고 백성들을 잘 돌봐야겠죠. 다윗은 왕으로 정식 임명식을 하기 전이지만, 이미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았기 때문에 왕이었고, 정말 왕 다웠습니다. 우리 10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곧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 명을 머물게 했고 다윗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
다윗과 무리는 브솔 시내에 이르렀습니다.
어디서부터 출발해서 온거죠? 29장 1절부터 언급된 ‘아벡’이라는 곳에서부터 브솔 시내까지 행군해서 온 겁니다. 그 거리는 자그마치 100km에 육박합니다. 백성들은 피곤한 정도가 아니라 죽을 지경이었을 겁니다. 다윗은 백성들을 먼저 돌아봤습니다. 피곤한 200명은 쉬게 하고 400명을 데리고 아말렉을 치러 갑니다. 왕의 사명은 자신보다 백성을 돌아보고 돌보는 것입니다.
다윗은 600명을 다 끌고 가야 아말렉을 확실히 처리하고 잃은 자들과 아내를 되찾고 자신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게 맡겨주신 이 지친 200명도 자신이 왕으로서 돌아보고 돌봐야 할 자들이라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위기에 처하면, 속이 좁아집니다. 조급해집니다. 자기밖에 안 보입니다. 세상 사람이나 교회 다니는 사람이나 위기에 처하면 비슷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 인생을 이미 승리한 인생으로 내게 허락하셨는데! 하나님이 내 인생을 다 책임지신다고 약속하신 걸 믿는데!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시고 나를 구원해 주셨는데! 이 굳건한 믿음이 있는 자들은 위기의 순간에도 침착합니다. 남도 돌아볼 줄 압니다. 마음이 넓어집니다. 마음이 좁은 자보다 넓은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담아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소명은 무엇입니까? 내 부모님의 자녀로 부름 받으셨죠. 내 자녀의 부모로 부름 받으셨죠. 성덕교회의 성도로 부름 받으셨죠. 여러분 목장의 목자, 목원으로 부름 받으셨죠. 부름은 받았는데, 어떻게 감당하고 계십니까? 하실까? 안 하실까? 재 보실 때는 없으십니까? “주님, 제가 따라잡겠나이까?” 이렇게 담대히 기도하시러 이 자리 나아오신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빼앗긴 백성들을 되찾게 하셨습니다. 아말렉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이 승리를 지금 얻었지만, 이미 얻었습니다. “주님 제가 저들을 따라잡겠나이까?” 이렇게 기도할 때부터 말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이미 승리를 얻은 자처럼 기도합시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소명의 자리에서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시고, 모든 위기와 문제들을 이기게 하시며 은혜와 평강을 주실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