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26 기뻐하며 노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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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스바냐 3:14-20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18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바냐가 살던 시대는 예배 드리는 것을 낭비로 생각했습니다.
18절입니다.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여기서 절기는 예배하는 날입니다.
에배하는 날이 근심이 되었습니다.
왜 예배를 해야 하지?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팔면 더 돈이 될텐데, 하면서 근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모아서 치우신다고 합니다.
여러분, 지금은 아니지만,
마지막 예수님이 오시는 때가 되면, 예배를 짐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전부 치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사람들 때문에 겪는 고통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은 예배 드리기 싫은 사람과도 함께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내의 대가세요.
정말 잘 참으세요.
그래서 지금도 참으십니다.
예배를 짐으로 여기고, 예배 드리는 것 때문에 근심이 되는 사람들을 참아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도 함께 예배 드려야 합니다.
예배 드리는 것을 전혀 즐거워하지 않고, 기뻐하지도 않는 친구들과도 함께 예배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시거든요.
하나님은 그런 친구들도 오래 참고 기다려주기를 바라시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는 예배 드리기 싫어하는 사람들, 에배 드리는 시간을 아까워하고, 차라리 그 시간이 더 돈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을 위해 기도해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친구들은 삶의 기쁨이 없습니다.
순간적인 쾌락은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만큼 성적으로 타락한 시대도 없을 것입니다.
10대인 여러분들도 음란물과 거리가 멀지 않을 것입니다.
평범하게 보는 웹툰이나 웹소설, 인터넷 카페, 유투브 등에서 보는 온갖 영상들에서도 찾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순간적인 기쁨은 줄 수 있지만, 우리는 행복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출생한 세대를 C 세대, 그러니까 Crisis(크라이시스), 위기의 세대라고 부르더라고요.
왜냐그러냐?
역사상 취저 경제성장률, 최대 실업률에다가,
코로나로 인해 경제적 위기는 더 심각해졌구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에 출생한 세대들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봤자 미래가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희망이 전혀 없다고 해서, ‘무망감’이라고 하는데요.
내가 처한 상황 자체가 힘들다고 보다도, 내가 노력하고 애를 써도 내 미래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좌절감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그러나 현재만 힘든 건 아니었어요?
우리가 어제 6.25 전쟁 기념일이었는데, 남북전쟁 때보다 더 힘든 건 아니잖아요?
그때는 경제가 아니라, 아예 뭐도 없던 시대 아니었나요?
그런데 그때는 무망감 이란 말 자체가 없었는데, 요즘은 너무 자신의 감정에 민감한 시대가 되어서, 조금만 불편해도 내가 뭐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하면서 좌절하기 일쑤입니다.
여러분, 이런 시대일수록 기독교 신앙이 더더욱 필요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희망이라고 말해요.
여러분의 노력도 중요하죠.
여러분의 의지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노력과 의지가 할 수 없는 절대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줄 수 있다고 하는 거에요.
그게 기독교 신앙의 희망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보실까요?
14 시온의 딸아 노래하리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기서 기뻐하라는 단어만 무려 3번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 신앙은 내가 무엇을 잘 해서, 내가 무엇을 성취해서 기뻐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건 구원이 아니에요.
구원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누군가에게 받아야 구원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스스로 수영해서 나오는 것은 구원이 아니에요. 그건 자력으로 빠져나온 거죠.
누군가가 밧줄을 던져서 그 사람을 끌어내줄 때 그게 구원이라는 거에요.
기독교 신앙은 자력으로 기뻐하라는 게 아니라, 구원 받았음으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하는 능력이에요.
기도는 구원받게 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세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이 기쁘게 부를 수 있고,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회복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돈 주고 사먹지 않으면 배부르지 않아요.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기도로 사먹지 않으면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들은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 그것을 하나님이 가장 원하십니다.
14절을 다시 읽어볼까요?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기뻐해야 하나요?
15절입니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이 죄의 대가로 받을 벌을 제거하셨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시험 성적이 안 좋아서, 부모님께 그 대가로 받을 잔소리가 얼마나 두렵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그 잔소리가 제거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기뻐요?
너의 형벌이 제거 되었다.
너를 괴롭히는 원수가 쫓겨났다.
그리고 이스라엘 왕이신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너는 더 이상 재앙을 당하지 않는다.
이 말씀 때문에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위해 일하신다.
너가 받을 벌을 제거하실 것이다.
너를 괴롭히는 원수를 쫓아내실 것이다.
그리고 너와 영원히 함께 하시며, 네가 재앙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이다.
이 말씀 때문에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표현하는데, 17절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를 못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얼마나 기쁨이 강력했던지, 그 기쁨을 이기지를 못한다고 합니다.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거죠.
이런 감정을 표현하십니다
너를 잠잠히 사랑한다.
너로 말미암아 내가 즐거운 노래가 나온다.
그러니 너도 나와 함께 기뻐하며 노래하자.
이게 오늘 말씀인 거죠.
*말씀을 맺는데요.
여러분, 이 시대는 기쁨을 상실한 시대입니다.
순간적인 쾌락은 많지만, 은은한 즐거움과 행복은 사라진 시대가 오늘날입니다.
10대인 여러분도 마찬가지죠.
저는 여러분이 휴대폰에 중독된다.
유투브에 중독된다.
이런 것도 두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기쁨이 없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유투브 필요 없어요.
기쁨이 없고, 즐거울 일이 없으니까, 당장 삶에 자극을 주는 컨텐츠를 소비하는 거 아닐까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 받고, 그 분이 여러분 안에 거하셔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셔야 합니다.
그래야 기쁨이 회복이 되요.
17절에,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이 말씀을 들었는데, 여러분의 삶에 전혀 와닿지 않는것은,
여러분 내면에 하나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도생활, 말씀생활에 태만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머리로는 알지만, 삶으로는 전혀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1990년대말부터 2000년대 사이에 태어난 C세대, 또 그 이후에 태어난 어떤 세대든지 가리지 않고,
하나님을 만나면 기뻐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제 시험기간인데요.
시험 못 치면 힘들죠.
그렇지만 시험을 못 쳐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 제대로 믿으면, 예수님만 제대로 만나면 기뻐할 수 있는 거에요.
그런 은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즐거울 일이 없는 시대
알려지고 싶은 욕구
무기력
공허감
사람에 대하여 못 믿음 : 불신
더더욱 자기자신을 숨김
그러니 삶의 기쁨이 더욱 감소함.
이런 악순환의 반복

C 세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출생한 세대로, Crisis의 첫 알파벳을 따와 위기의 세대로 불립니다.
취업 문제는 역사상 최저 경제 성장률, 최대 실업률 등에 더불어 코로나19사태로 인해 날이 갈수록 문제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 몇 년 사이 폭등한 집값으로 인해 내 집 마련의 희망이 사라진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최대 실업률, 집값 폭등, 최저 경제성장률 등 C 세대를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아무리 노력해도 미래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무망감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무망감이란 내가 처한 상황 자체에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노력과 의지에도 앞으로의 미래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좌절감에서 나오는 감정입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삶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하면서 나타나는 무망감은 우울, 불안장애와 깊은 관련이 있으며 자살로 이끄는 큰 심리적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기존에는 이런 분들께 밖에 나가서 햇볕을 쬐거나, 사람들을 만나 한바탕 웃어보며 무망감을 떨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이러한 조언들을 해드릴 수도 없는 지금, 청년들을 위한 새로운 심리 꿀팁을 전달해드리겠습니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부정적 정서는 주의를 빼앗는데 능숙하다

마치 한 곳만 딱 비추는 조명처럼 걱정과 불안은 우리로 하여금 그 원인이 되는 무엇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게 만든다. 부정적인 감정의 기능은 문제를 찾고 빨리 해결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큰일이야. 지금 네 주변에 뭔가 문제가 있어. 어서 해결해”라며 호들갑을 떠는 존재이기 때문에 문제에 집중을 하지 않을래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주의력과 자원을 집중시키는데 능숙한 부정적 정서 덕분에 문제 해결 과정이 빨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부작용이 있다. 흔히 어떤 하나에만 집중하다보면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고 그 외의 다른 것들은 별로 소중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당장의 성과에 급급해서 가족이나 친구 관계를 전혀 돌보지 못한다든가, 어떤 일 하나가 망했다고 해서 마치 인생 전체가 싸그리 망한 것처럼 느끼는 일 등이 그 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써보라고 하면 수십가지는 나올 것이다. 건강, 화목한 가족, 친한 친구, 취미 활동, 지적 호기심충족 같은 것들이다. 이렇게 인생을 잘 사는 데 있어 중요한 것들은 많고 많은데 부정적 정서는 때로 이들을 둘러보지 못하게 만든다.
사역
14 시온의 딸, 너는 기쁨으로 소리치라(명령), 이스라엘, 너는 기뻐하라(명령) 소리를 지르라(명령), 그리고 예루살렘 딸, 온 마음으로 기뻐하라(명령)
시온의 딸, 이스라엘, 예루살렘 딸
기뻐할 것을 강조한다.
15 여호와가 너의 미슈파트(결정, 판결)들을 쑤르(길에서 벗어나다, 떠나다, 거역하다, 돌이키다)하였다, 너의 오예브(적)을 파나(돌아보다, 돌이키다)하였다,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케레브(속, 몸의 내부, 장기) 가운데, 너는 다시는 라아(악한, 나쁜, 사악한)를 야레(두렵다, 놀라다 / 미완료)하지 말 것이다.
여호와가 심판을 돌이켰다.
여호와가 적들을 돌이켜 제거하였다.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그들의 속에 계시기 때문에, 그들은 다시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16 그 날에, 그가 예루살렘에게 말하기를, 너는 야레 하지 말 것이다. 시온아, 너의 손을 라파(풀리다, 저물어가다, 내던지다)하지 말 것이다.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케레브 가운데에, 용사, 그는 구원할 것이다, 그가 너로 인해 심하(즐거움, 행복, 의기양양)으로 기뻐할 것이다, 그가 그의 아하바(사랑함, 애정) 가운데에 하레쉬(귀먹다, 잠잠하다)할 것이다, 그가 너로 인해 린나(기쁨의 외침, 노래)로 환희할 것이다
하나님의 기쁨이 넘쳐나고 있다.
18 모엣(계절, 정한 때, 회중, 집회)로 인하여 야가(근심하다, 고통, 고뇌, 염려)하는 자들을, 내가 아사프(모으다, 파괴하다)할 것이다, 너에게로부터. 마스엣(음식, 공물, 예물)이 그들에게 헤르파(부끄러움, 수치, 욕)이 되었다.
마스엣?
모엣? 좀 더 연구가 필요한 단어들이다.
19 힌네! 아니(내가) 너를 오나(압박하다, 누르다, 괴롭히다)하는 모든 자들에게 행할 것이다, 그 시간에, 그리고 내가 구원할 것이다, 저는 자를, 나다흐(쫓겨나다, 버리다, 유혹하다)한 자를 내가 카바츠(모집하다, 모으다)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들을 배치할 것이다, 테힐라(찬송, 칭찬, 영광) 과 셈(이름, 명성)으로, 온 땅(에레츠)에서 보셋(수치, 낯뜨거움, 부끄러움)하는 자들을,
1인칭이 강조된다.
하나님의 행위가 강조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억누르는 모든 자들을 벌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저는 자를 구원하고, 쫓겨난 자들을 모으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온 세상에서 수치를 당하는 자들을 찬송과 명예가 되게 하실 것이다.
세상에서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높이실 것이다.
20 그 시간에, 내가 너희를 이끌고, 그 시간에, 내가 너희를 모을 것이다, 반드시 내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셈(이름, 명예)과 테힐라(찬송, 칭찬, 영광)을, 땅(에레츠)의 모든 백성들 가운데에서, 내가 너희 눈 앞에서,너희 쉐봇(포로, 사로잡힘)을, 슈브(돌아가다, 돌아오다)할 때, 여호와의 말이다.
19절의 내용을 다시 한번 반복하며, 확실한 약속의 소망을 보이신다.
하나님이 그들을 포로에서 이끌고 와서 모이시면, 그 때에 하나님은 반드시 그들이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실 것이다.
기동연 주석
종말의 시대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시온으로 회복 시키는 것을 찬양하는 내용.
14절은 남은 자들은 세 가지로 호칭하며 그들에게 찬양할 것을 요청한다.
: 시온의 딸, 이스라엘, 예루살렘 딸
: 이 찬양의 초점은 기쁘게 부르는 것.
15절에 이들이 기뻐 찬양해야 할 첫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내린 언약의 심판을 종결시켰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언약 심판에 의한 형벌을 종결시키고 원수들을 가나안 땅에서 쫓아 낸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어 남은 자들 가운데 좌정하여 계신다.
이어서 ‘너희들은 다시는 악을 두려워하지 마라’고 한다. 이것은 왕이신 하나님이 좌정해 계심으로 인한 당연한 결과이다.
16-20절에서는, 14-15절의 주제를 다시 이어 확대시킨다.
16절은 먼저 ‘그 날에’로 시작하면서 이제 선포되는 일들이 종말의 시대에 일어난다고 알린다.
예루살렘과 시온에게 15절에서 말한 것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또 실망감에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한다.
17절에, 시온과 예루살렘이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언약의 축복(레26장) : 하나님의 임재, 번성, 보호
이 축복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축복은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 가정의 번성이 있고 또한 대적들로부터 보호하고 구원하는 은혜가 따른다.
‘전능자’의 히브리어는 ‘깁보르’이며, ‘강한’ 또는 ‘힘있는’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구약에서 일반적으로 전능자는 ‘샤다이’이다. 그런데 ‘깁보르’ 즉 ‘용사’로 부른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려고 대적들에 대항한 거룩한 전쟁을 치를 것이기 때문이다.
17절에서 하나님은 시온과 예루살렘 때문에 크게 기뻐한다.
14절이 ‘기뻐하라’를 네 번 반복했떤 것과 유사하게 17절은 하나님을 세 차례 반복하고 있다.
첫 표현에서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향한 기쁨의 감정을 표현한다.
둘째 표현에서 하나님은 남은 자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기 입을 다문다. 동사 ‘잠잠하다’는 단순히 말없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깊은 감정, 즉 남은 자들에 대한 깊은 사랑의 감정에 북받혀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이 감정이 터져 나오면서 소리를 지르며 남은 자들에 대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의 웃음을 표출한다.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18-20절은 다시 주어가 “내가”로 전환되며, 하나님은 1인칭 화자로서 남은 자들을 정화하고 회복하려는 계획을 말한다.
하나님이 말하는 상대방은 2인칭 여성 단수이며, 그 대상은 예루살렘 또는 시온이다.
18절에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의 절기를 ‘짐’으로 생각하던 자들을 정화하는 작업을 기록하고 있다. 예루살렘 사람들 중에는 구약 시대의 절기들을 지키면서도 이 절기들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절기들은 안식일이었고 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장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고통을 느낄 정도로 근심하였을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기념하는 절기들을 자신의 이권 때문에 부담스러워하고 심적인 고통을 느끼는 자들을 예루살렘에서 제거하고, 이런 태도를 가진 자의 자세를 치욕으로 여기고 이를 제거하여 예루살렘 내부를 정화시키겠다고 한다.
내부적인 불신앙자들을 정화한 하나님은, 19절에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억압한 자들을 처벌하겠다고 한다. 아마 ‘이방인들’로 여겨진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억압받은 자들, 특히 저는 자를 구원하고, 쫓겨난 자를 불러 모은다고 한다. 하나님은 이들의 지체장애인이라는 불명예를 온 땅 가운데 칭찬과 명성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아마도 그들이 하나님을 향해 가진 믿음 때문일 것이다.
20절은 19절의 표현을 반복한다.
미래 사실을 완료형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이를 “예언적 완료형”이라고 하며, 강한 확신을 가지고 미래의 일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의미로 ㅅ용한다.
스바냐 개관 (바이블 클래스)
스바냐의 뜻은 ‘여호와께서 숨기시다’
이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다, 혹은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다란 뜻일 것이다.
스바냐는 유다 왕 히스기야의 4대손, 당시 왕실과 귀족사회의 타락상을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기원전 604-622년 사이로 기록 시기이다.
기록목적 :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사회를 향해 공의로운 심판을 행사하실 것을 천명하기 위함이다.
부패한 세상에 물들지 않고 자신을 깨끗하게 지킨 ‘남은 자’들이 하나님께 받게 될 상급과 영광에 대해 알려주기 위함이다.
1:1-2:3 유다 심판
2:4-3:8 열방(예루살렘 포함) 심판
3:9-20 남은 자들을 구원하심
스바냐서는 무시무시한 진노의 메시지로 시작한다.
흡사 창세기 6장에 나오는 노아 홍수 장면을 연상시킨다.
유다의 죄.
스바냐 활동 시기는 유다 역사에서 영적-사회적으로 가장 암울했던 때다.
스바냐는 ‘여호와의 날’에 대한 기존 개념을 뒤집어 그 날이 구원의 날이 아닌 심판의 날이 될 것임을 천명하며, 하나님이 유다의 죄를 결코 묵과하지 않고 철저히 심판하실 것이라고 선포한다.
스바냐는 예루살렘에서 사역했던, 도시 사역자였다.
본서는 스바냐가 유다 왕 요시야(640-609) 시대에 사역했다고 밝힌다.
요시야 8세 왕.
친아시리아파 / 반아시리아파
도처에 우상숭배, 사회 곳곳에 불의가 가득 : 이는 므낫세와 암몬 시대의 산물
아마 스바냐는 요시야가 아직 종교개혁을 시작하기 전에 사역했떤 것 같다(대략 630년경). 스바냐의 메시즌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단행하는 데 큰 동기부여가 되었을 것이다.
① 극심한 우상숭배: 가나안의 바알 숭배(1:4), 아시리아의 일월성신ㅡ 숭배(1:5), 암몬의 밀곰 숭배(1:5) ② 종교혼합주의: 입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이교 종교에 흠뻑 취해 있으며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사는 삶 (1:5-6; 1:9; 3:2)2 ③ 폭력과 속임수가 난무함(1:9) ④ 마음대로 하나님을 경멸하고 업신여김: “주께서는 복도 내리지 않고, 화도 내지 않는다! ”(1 :12)3 ⑤ 양심의 마비: 범죄하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름”(2:1) ⑥ 종교 지도자의 타락: 제사장들은 율법을 어기고 성소를 더럽히며(3:4), 예언자들은 거만함(3:4)

12 그 때에 내가 예루살렘에서 찌꺼기 같이 가라앉아서 마음속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리니

하나님은 랜턴을 켜고 곳곳을 누비며 범죄한 자들을 찾아 벌하실 것이다.
동일하게 열두 소선지서들은 회개가 있다면 사람과 땅의 변화가 따를 것이라는 소망을 품고 있다.
유다에 대한 심판 - 습 1:2-2:3 .
민족들에 대한 심판 - 습 2:4-3:8.
미래의 약속 - 습 3:9-20.
14-15절에는 기뻐하며 즐거워하라는 명령과 그 이유
16-17절에는 두려워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라는 선포와 그 이유
18-20절에는 위로와 구원의 말씀이 일곱 가지로 언급 : 6개의 1인칭 동사와 1개의 분사가 사용.
14-15절의 이유
여호와께서 ‘미쉬파트를 제거하였기 때문에
적을 쫓아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심판은 스바냐서 전체를 통해 강조되어 온 핵심 주제이다. 이것이 3장 14절에 제거된다고 선언된다.
50절 중에 40절이 여호와의 심판에 관한 말씀이다. 그런데 이 심판이 이제 제거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온의 딸들은 당연히 찬양하며 기뻐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바냐서에서 ‘여호와의 날’은, 여호와의 분노의 날, 환난과 고통의 날, 캄캄하고 어두운 날, 그 날 처럼 다양한 표현으로 묘사되고 있다. 특별히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로 묘사된다.
심판의 이유는 그들의 ‘교만’ 때문이다.
모티브
심판 - 해방
부모님께 야단 맞기 직전이었는데, 그 심판에서 해방되었다는 소식은 저절로 마음에 기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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