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이기고 일어난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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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현실
청년들의 현실
청년. 말만 들어도 가슴뛰는 단어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신체적-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하네요. 이 시기는 한 사람이 꿈과 희망을 향해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는 시기이고, 그 꿈과 희망을 하나씩 실현해가는 때입니다. 아직 현실에 때묻지 않아 높은 뜻을 품고 거침없이 나아가는 청년들을 볼 때, 우리는 푸릇푸릇한 생기를 느끼게 되지요. 마치 봄철에 새싹들이 단단한 땅을 뚫고 올라와 쑥쑥 자라는 것 같은 그런 생기 말입니다. 기회와 가능성으로 가득한 이 청년의 때에 청년답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일 것입니다. YG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였던 양현석은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전 재산 다 내놓고 20대 초반으로 돌아가겠냐고 묻는다면 난 바꾼다.” 그만큼 모두에게 이 청년의 시절은 소중했고, 감사했고, 지금 다시 또 한 번 누리길 간절히 원할 만큼 값졌던 시기라는 말이겠지요. 여기 계신 기성 세대 성도님들은 청년의 시절을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지금 전 재산을 다 내놓고 20대 초반으로 돌아간다면 돌아가시겠습니까?
오늘날 이 시대를 청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같은 비슷한 질문을 던지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요? 이 시대의 청년들도 자신들이 지금 꿈과 희망, 열정과 도전, 기회와 가능성과 같은 말들로 자기의 삶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닐겁니다.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 열정과 도전, 기회와 가능성 같은 말들은 상당히 사치스러운 말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자신이 처한 현실이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 열정과 도전이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시대의 청년들이 살아가는 현실은 더이상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지독한 시대입니다.
이 시대의 한국 사회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이론이 하나 있습니다. 소위 수저계급론이라는 것인데요.부모의 자산과 소득 수준에 따라 여러 사회경제 계층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흔히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같은 말로 계급을 구분을 하지요. 청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생기는 경제적 불평등을 가지고 살아아왔습니다. 이 경제적 불평등은 온갖 사회적, 문화적, 교육적 불평등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불평등은 청년들의 사회적 출발선을 다르게 만들어 버렸지요. “원래 세상은 그런거야. 나때도 세상은 불공평했는데, 열심히 하니까 가정도 꾸리고 집도 살 수 있었어. 그러니까 열심히 살아”라고 하실 분들이 있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불공평했던게 맞습니다. 하지만 출발선이 다른것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더이상 노력으로는 이 격차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통계를 통해 한 번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지난해 청년들 중 상위 20%, 소위 금수저라 불리는 5분위의 평균 자산은 8억7044만원 이었습니다. 이는 전년과 비교해 7031만원 늘어난 것이지요. 그렇다면 하위 20%, 소위 흙수저라 불리는 1분위의 평균 자산은 얼마였을까요? 2743만원 이었습니다. 이는 전년 대비 고작 64만원밖에 늘지 않은 것이구요. 자산의 규모만 비교해보면 금수저의 평균 자산은 흙수저의 평균 자산의 32배 쯤 됩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차이는 더욱 현격히 벌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흙수저의 자산이 64만원이 늘 때, 금수저의 자산은 7031만원이 늘기 때문입니다. 흙수저의 자산보다 금수저의 자산이 110배 더 빨리 증가합니다. 금수저들은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자산을 불릴 수 있었을까요?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부동산 가격은 흙수저의 상황과 형편을 기다려주지 않고, 금수저의 늘어난 자산의 규모에 맞춰 폭등을 하였기 때문에 여기있는 대부분의 일반적인 청년들이 정직하게 근로하여 얻는 소득으로 집을 장만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과연 청년들이 포기한 것이 내 집 장만의 꿈 뿐일까요?
이 시대의 청년들을 설명하는 말로 N포 세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네이버의 지식사전에 따르면 N포세대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사회,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연애, 결혼, 주택 구입 등 많은 것을 포기한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로 포기한 게 너무 많아 셀 수도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기존 3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 5포세대(3포세대+내 집 마련, 인간관계), 7포세대(5포세대+꿈, 희망)에서 더 나아가 포기해야 할 특정 숫자가 정해지지 않고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세대라는 뜻에서 나온 말인데요, N포세대 중 남성들은 결혼을, 여성들은 출산을 가장 먼저 포기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청년들의 현실이 어려워진 탓일까요? 갈수록 교회를 이탈하는 청년들의 숫자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전국 크리스천 청년(19~39세)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코로나 시대, 기독 청년들의 신앙생활 탐구’(2020년 1월)에 따르면 10명 중 7명(69%)이 고등학교 졸업 후 ‘가나안 성도(기독 신앙이 있지만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성도)’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신앙생활을 지속해 온 성도들이 성인이 되고 청년이 되면 급격하게 교회 밖으로 이탈하게 된다는 뜻이지요. 우리 신성교회만 해도 성인이 되어 교회를 떠난 청년들의 숫자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2016년 이만식 교수(장신대)가 크리스천 청년 2,200명 대상으로 ‘친구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에 대해 조사했다. 이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크게 ‘교회, 지도자에 대한 실망’과 ‘관계, 공동체로부터 받은 상처’였다. 교회, 지도자 부분에서는 ‘교회 운영에 대한 실망’이 27.3%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은 ‘교역자에 대한 실망’(20.3%), ‘과다한 헌신 요구’(19.6%) 순이었다. 관계, 공동체 부분에서는 ‘교회의 배타적 분위기’(25.8%), ‘교인에게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24.7%), ‘친한 사람이 없어서’(19.1%)라는 응답이 나왔다. 이 설문조사가 시사하고 있는 바는 바로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었기 때문에 청년들이 신앙을 잃고 점차 교회를 떠나간다는 것입니다. 의지할 것이라고는 하나님밖에 없던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조차 신앙의 의미를 찾지 못하니 회의를 느끼고 떠나갈 수 밖에요.
청년들의 존재
청년들의 존재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어간다는 것은 이 시대가 정말 어둡다는 것을 알리는 경고의 싸인과 같습니다. 지난 수백년간의 교회들의 성장 그래프를 보면 교회는 성장과 쇠퇴를 거듭하였습니다. 그리고 쇠퇴의 시기마다 항상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어버리게 하는 사건들이 있었구요. 여기서 다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몇가지만 예를 들어봅시다. 18세기의 합리주의와 19세기의 자유주의가 그 위세를 떨칠 때 기독교가 쇠퇴를 하였고, 제 1-2차 세계대전이 있었을 때에도 기독교가 쇠퇴를 하였습니다. 또한 세상의 부와 윤택함이 주어졌을 때 기독교는 자주 쇠퇴했었구요. 그야말로 어둠의 권세가 아주 크게 역사하는 때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물론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에도 신앙의 근간을 뒤흔들려 하는 사상이 위세를 떨치고 있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심케하는 무력 충돌과 전쟁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으며, 교회를 타락케하는 부와 윤택함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쇠퇴를 하는 시대일 수록 다시 한번 교회가 능력을 회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하심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흔히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부흥이라고 부릅니다.
시 110: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 부흥에 대한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본문에는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는 한 날,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아오는 한 날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데요, 바로 주의 권능의 날이라 부르는 그 날입니다. 여기서 주의 권능의 날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일어나 싸우시는 말을 뜻합니다. 새번역성경으로 보면 그 뜻이 명확히 보입니다. “임금님께서 거룩한 산에서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로 나가시는 날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억누르는 대적들을 향해 일어나 싸우시는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진리가 가려지게 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심케하며, 교회를 타락케하는 악한 권세를 향해 하나님은 일어나 싸우시는 날,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당신의 백성을 위해 일어나 싸우시는 날, 그 날이 바로 주의 권능의 날입니다.
그 날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제가 새번역으로 한 번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임금님의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고, 아침 동이 틀 때에 새벽 이슬이 맺히듯이, 젊은이들이 임금님께로 모여들 것입니다.” 그 날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즐거이 하나님께 헌신합니다. 청년들이 하나님께로 모여듭니다. 부흥의 날에는 바로 이런 일들 즉, 사람들이 하나님께 모여들고 헌신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흥의 날에 하나님 앞에 헌신하며 모여드는 이들은 누구일까요? 그동안 어둠의 권세에 억눌려 고통을 당하였던 자들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믿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믿음과 소망을 좇아 자신을 거룩케 하기에 힘쓰는 자들입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대한 약속이 그들의 귀에 생생하게 선포하고, 하나님께서 새롭게 일하실 일들에 대한 징조가 보이기 시작하니, 고통과 슬픔을 떨치고 즐겁게 헌신하며 하나님 앞에 모여드는 것이지요. 예로부터 부흥의 역사를 살펴보면 부흥이 일어나기 전에는 항상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깨어나 그 말씀을 굳게 붙드는 사람들이 조그마한 규모로 기도회를 갖고, 그 기도회에 성령의 충만함이 부어지는 그런 일들 말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구절을 다시 한 번 들여다봅시다.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는데요. 사실 이 구절의 뒷부분은 크게 필요가 없어보인다는 것입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까지만 있어도 얼마든지 읽고 이해하기에 무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에 무엇인가 큰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주의 청년들이 누구인지 눈여겨보아야 한다는 뜻이구요.
시편 본문의 기자는 주의 청년들을 향해 새벽 이슬 같다고 말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새벽 이슬의 존재는 너무너무 중요했습니다. 3월에서 10월까지 이어지는 건기에는 비 한 방울 구경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요단간 동편에서 불어오는 사막의 열풍이 온땅을 메마르게 하였습니다. 이때 맺히는 이슬의 가치는 우기에 내리는 많은 비보다 귀했는데요, 사람과 동물, 식물까지 모든 생명이 이슬로 생명을 유지했습니다.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 있는 식물들과 동물들은 푹 처져 있다가도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생생하게 고개를 들 수 있었습니다. 이슬을 먹었기 때문이지요. 이와 같이 이슬은 기운을 잃어가는 것에 기운을 불어 넣어주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청년들이 바로 이런 새벽 이슬과 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주의 청년들은 기운을 잃어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에 힘과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청년들이 교회를 향해 어떻게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이들은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고통과 어려움을 겪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며 하나님이 자신의 소망임을 굳게 붙들고 있는 청년들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진정으로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살겠다 자신의 뜻을 정한 청년들입니다. 이런 청년들은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깃발을 세우실 날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군사를 소집하는 깃발을 세우시면 가장 앞서 자신의 삶을 드려 하나님께 달려 나아올 자들이 바로 이러한 청년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청년들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높아져 진리를 가리우고 있는 모든 사상들을 격파하시고,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시고 역사하심이 분명히 드러나게 하시며, 이들을 통해 교회마다 거룩하고 정결한 모습을 회복해가게 하십니다.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달려 나아가는 청년들, 그리고 그러한 청년들을 통해 거침없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교회는 다시 한 번 힘과 기운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청년들을 통해 다시 한 번 온 교회가 즐거이 하나님 앞에 헌신하며, 교회다운 교회의 모습을 회복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편 기자가 주의 청년들을 향해 새벽 이슬 같다고 한 것의 의미입니다.
그러니 교회에 이런 청년들이 남아 있다면 그 교회는 얼마든지 다시 한 번 일어날 잠재력이 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며 소망임을 굳게 붙드는 청년들 말입니다. 우리 교회에 이러한 청년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감사한지요! 너무나도 귀한 복이며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청년들이야말로 이 교회의 미래입니다. 이 청년들은 이미 이 시대의 어둠을 이기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귀하고 소중함을 알아주셔서 더이상 이들이 상처입고, 세상에 때묻어 그들의 자리를 떠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우리 청년들은 신앙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다 바칠만큼 진정으로 가치있고 소중한 것이라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말 깃발이 세워지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달려나아갈 자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교회 안에서 교회다운 모습을 찾지 못하고 신앙이 별 의미와 가치가 없다고 여기게 되면 한없이 방황하며 하나님 앞을 떠나게 되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이 청년들에게 신앙이야말로 진정으로 가치있고 소중한 것임을 성도님들의 삶으로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십시오. 먼저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셔서 그들의 마음에 뜻이 세워진다면 굳이 열정을 강요하지 않아도, 헌신을 강요하지 않아도 청년들은 알아서 하나님 앞에 달려나아옵니다. 그것이 청년이니까요. 그러니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열정과 현신 이전에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뜻을 세우게 하는 훌륭한 본보기가 되어 주십시오. 그래야 교회가 부흥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들에게도 부탁합니다.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소망을 잃지 마십시오.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여러분들을 좌절케하는 어둠을 이기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이 땅의 교회들을 새롭게 하시려 여러분들을 불러 모으실 때에 하나님 앞으로 달려 나아오십시오. 주의 권능의 날에 하나님의 진군의 깃발이 높이 들려 올려진 것을 본다면 주저하지 말고 삶을 다해 하나님 앞에 나아오십시오. 그렇게 하나님의 군사가 되어 대적을 향해 나아가는 청년들의 삶을 통해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응답하는 청년들을 통해 교회가 다시 한 번 교회답게 세워지게 됩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하나님 앞에 삶을 드리는 것에 주저하거나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믿음과 소망의 분량대로 하나님 앞에 삶을 쏟으며 살아가십시오.
이 말씀을 준비하며 청년들이 각자 자신의 고백을 담은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잠시 영상을 보고 청년들이 준비한 특송 순서를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