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놓으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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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 놓으신 하나님 ] - 히 4:14-16 -
[ 다리 놓으신 하나님 ] - 히 4:14-16 -
‘Most1’ (3분 영화 시청)
자, 전도사님이 지금껏, 한달에 걸쳐, 시리즈로 설교를 하고 있는 것을 눈치들을 챘나요? 어떤 주제로 설교했나요? 바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고 만나는가..?”에 대한 설교죠. 오늘은 그 시리즈에 대한 마지막 설교가 되겠네요.
앞에 영상을 보면서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들 모르겠어요. 저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왜 기차가 빨간불을 보지 못하고 달리지..?’ 그렇지 않나요? 기차가 빨간불을 보고 급정거라도 했으면, 저 아이가 안죽었을 것 아네요? 아 진짜..왜저래..
여러분에게 한번 물어보고싶어요. 여러분, 혹시 내가 잘못하고 싶어서 잘못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혹은 ‘실패’를 하고 싶어서 실패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실 우리 모두가 뭐든, 잘하고 싶죠? 잘 되었으면 싶죠? 그렇지 않나요? (나만 그렇구나..)
그냥 추측해서 생각해보자면, 저 기차를 모는 운전기사가 깜빡 졸았던지, 다른 생각을 했던지..뭔가 실수 인 것 같죠? 설마 고의로 저런 것을 어기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사실 우리 대부분은요, 잘 하고 싶은데, 때로 많은 ‘실수..’를 하고 살아요,
잘 해보려 했으나, 실수하고 실패하는 것이죠. 큰 실수냐 작은 실수냐 그런건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가 ‘실수’라는 것을 하고 살아가고, 때로 불가피하게 실패라는 것도 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죠. 그런 것을 “약함..연약함..이라고고도 생각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오늘 본문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의 이 약함, 연약함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시네요. 우리 오늘 본문 15절을 함께 다시 읽어봅시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자, 여기까지, 자 이 연약함이란 단어를 잘 보세요. (ppt)
연약함, weakness, 원어적 의미 = “무능”
‘무능’이 무슨 뜻인가요? 능력이 없다..라는 뜻이에요. 약하다, 힘이 없다...라는 의미죠.
오늘 말씀 본문을 보니까, ‘아 성경이 우리 인간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무능함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은성이 파이트 잘할거죠? 잘하고 싶죠? 건전하게..아무나 때리지 말고 링위에서 규칙 안에서, 아멘? 예훈이 음악잘하고 싶어요? 재환이는 뭐 잘하고 싶어요? 준이는?)
여러분 성경이 말씀하시는 ‘무능..’이란
우리가 이 땅을 삶아감에 있어 필요한 단순히 ‘어떤 능력의 무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는 ‘인간의 무능’이란 무엇일까요?
성경은 우리에가 연약함에 처해졌다라는 것은 곧 우리가 무엇인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을 모르기에 연약함에 휩싸이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에요. 그것이 히브리서 5장 2절 말씀입니다. 우리 바로 다음장 히브리서 5장 2절을 찾아서 한번 읽어볼까요?
“그는 자기도 연약함에 휘말려 있으므로, 그릇된 길을 가는 무지한 사람들을 너그러히 대할 수 있습니다..”
자 앞에보면, 개역개정 성경으로 보면, 이 본문은 (PPT)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여기 ‘무식하고 미혹된 자’라는 단어를 잘 봐요. 무식하다라는 것은 곧 원어적 의미로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하다..중요한 지식이나 정보를 알지 못하다.라는 의미고 “미혹된”이라는 것은 ‘속고 있다..거짓말이나 잘못된 정보로 인해 속고 있다..’라는 의미를 가져요.
자 종합해보자면, 우리가 성경이 말씀하시듯이, 잘못된 길, 그릇된 길을 가는 이유가 뭡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지식과 정보를 알지 못하고 거짓된 것에 속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잘못된 길을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인것이란 말입니다.
바로 그 연약함, 그 약함을 동정하시고 이해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라고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죄, 연약함 이런 것이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요? 죄가 뭘까요? 단순히 거짓말 하는 것, 남을 해하는 것, 친구를 괴롭히는 것, 등 그런 것이 죄일까요? 네 맞아요. 그러나 그것은 죄의 열매,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 그 자체로 그것이 죄다라고 정의할 수는 없어요. 죄의 본질, 우리는 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조금 기분이 나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무식해서 즉, 그릇된 정보로 인해서..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말해서 창조주, 이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의 본질이 뭔지 아세요? 바로 “하나님을 잘 모르는 것,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 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정확해서 이미 우리의 마음이 죄로 말미암아 어두워졌기 때문에, 빛을 싫어하는 것과 같아요.
아침에 더 자고 싶은데, 누군가가 창문을 확 재끼고, 쏟아지는 햇빛에 이불을 뒤집어 쓰는 것과 같이 어쩌면 우리는 우리는 더 어둠속에서 이렇게 외칠지 모르죠..
“아..짜증나..더 잘래, 커텐 다시 쳐.. 불꺼! 귀찮아 더 잘래..!”
여러분 솔직히 학교에서 공부하기도 빡센데 왜 또 믿음 생활을 하라는 거야? 아 진짜, 귀찮아, 모르겠어~~ 그렇죠? (아, 나만 그랬구나..) 아 왜 자꾸 하나님뜻대로 살아야 한다니 그러는건지 아 짜증나..! 그런 생각안들어요? (그래 나만 그랬어...)
그런데 여러분, 사실 이러한 반응이 정상인 거에요, 이러한 반응이 없다면 그것이야 말로 어쩌면 제 정신이 아닌지도 몰라요..당연한 것이에요, 어쩌면 우리의 연약함은 당연한 것입니다다. (따라합시다. “우리의 연약함은”, “당연하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로봇으로 창조하신 분이 아니세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스스로 감정을 느끼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결정적으로 우리가 스스로 무엇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의지’ 자유롭게 선택하는 ‘자유의지’라는 것을 주셨어요.
여러분 우리가 각자 각자가 조금씩 다른 개성있는 삶을 살고 있죠? 여러분 모두 각자가 삶에서 다양한 감정들을 겪고, 다양한 가정환경 속에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서로 달라요.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그 모든 것을 속속들이 훤히 다 알고 계시고 여러분의 개성들을 존중하시는 분이세요.
그런데요 놀랍게도 때로 그것이 악한 것일지라도 하나님이 그냥 인정해주세요. 때로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삿대질일지라도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 모습 그대로 이해하신다는 거에요.
그런데요,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을 통해 그럼에도 우리가 그러한 연약함 속에 빠져있어서는 안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두번 강조)
전도사님이 앞선 설교들을 떠올려봐요, 첫 시간에, ‘세계관’이라는 것을 말했죠, 우리의 삶을 끌고가는 ‘세계관’이 보이지 않는 힘으로 우리를 끌고가려한다...
“하나님을 배제한, 제껴놓은 세계관..”이 우리 삶을 끌고 갈 때, 어떤 일이 일어나죠?
바로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심겨놓으신 마지막 일말의 ‘양심’이란 장치마저 망가진다. 그게 이 세상이 고통하는 이유다, 과열된 경쟁속에 서로 전쟁하고, 죽이고, 오로지 자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이기적인 세상이 되어버린다...
“아..내가 자유롭게 창조한 이 아이들이..내가 심어둔 자유로은 선택권, 즉 의지를 가지고 제 멋대로 살면서 모든 것을 망쳐가는구나..아..저대로 가다 다 망가질텐데..”
바로 오늘 본문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무식으로 말미암아 그릇된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한 방도를 가리키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차원에서가 아닌, 하나님 차원에서의 어떤 행동, 우리를 향한 어떠한 조치가 필요함을 알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무식함,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이미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뭐지요? “다리 놓으신 하나님..”
그것은 곧 우리가 하나님께 다시 건너 가기위한 다리가 끊어졌다라는 것이에요.
우리는 그분께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무식함, 즉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돌아갈 길이 끊어졌기에 다시 새롭게 다리를 놓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일이고, 시급한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얼마나 세심하고, 온유하시며 사랑이 많으신 분인줄 아세요? 그분이요, 만약에 하늘에서 막 레이저를 쏘시면서, 너희가 나를 믿어야 산다. 안그러면 다 죽어..이렇게 폭군처럼 말씀하신게...아니죠?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우리의 인생, 삶의 고통에 대해서 세심하게 이해하길 원하셨습니다. 우리4장 15절 말씀을 찾아 읽어볼까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아멘. 자 말씀에 ‘동정..’이란 의미가요..
성경 원어적으로도 “느낌을 공유하고, 감정을 이해하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느낌을 공유하고 감정을 공유하시기 위해서,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꼭 같은 인간이 되셔야만 했다..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인간,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시라는것이에요. 아멘..!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게 되는가? 바로 이 성경에 계시된, 정확하게 명시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무식, 미혹된(거짓된 세계관)에 속고 있는 우리에게 자신을 알릴 필요를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이 성경의 내용 그대로, 시간조차 창조하신 하나님이 이 시간과 공간속으로, 즉 우리처럼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는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왜요? 무엇 때문에? 우리의 느낌과 감정을 공유하시기 위해, 공감하시기 위해, 더 친밀하게 이해하시 위해서..
먼저 그분은 우리를 이해하시길 원하셨습니다. 그가 우리 인생의 형편을 이해하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분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눈에 보일 수 있도록, ‘특정한 시간 속으로, 바로 우리 인간의 시간속으로.. 들어오셔야했습니다. 바로 우리와 똑 같은 몸을 입고 말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느냐? 바로 그 예수님을 깊이 깊이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 성경에 씌여진대로..이 성경은 이천년 전에 우리보다 앞서 예수님을 실제로 보고 그분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 즉 믿음의 증인들에 의해 씌여진 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믿음의 증인들의 증언, 말과 글을 통해 예수님이라는 분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리를 놓는 목적이 무엇이죠? 그저 다리 보면서 우와..구경하라고 다리를 놓는 건가요?
다리를 놓는 목적은 “건너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건너간다라는 것은 이 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는 것이에요, 다리위에 서 있으면 되요 안되요? (물론 안될 건 없지..)
하나님께서 다리를 놓으신 후 우리에게 뭐라 하시는 줄 아세요?
COME ! 오라,
요한복음 14장 1절에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목마니? 너희가 마치 사막에서 물을 찾듯이 목마르니? 너희 삶이 고통속에서 갈급하니?”
“다~~ 내게로 오라..”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너라, 죄의 짐, 고통의 짐 다 내게로 오라..”
“내게로 나오라..”
너희는 그저 내게 오면 된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내가 너희를 이해한다.
왜 내가 친히 먼저 너희의 삶을 경험했다. 내게로 오라. 나에게 진정한 쉼이 있고, 진정한 행복이 있고, 나에게 진정한 꿈이 있다.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 사실 내게 다 있다..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멘..!
예수님께 담대히 나가라! 그저 담대히 나아가라! 끊어졌던 길이, 예수님의 그 십자가 형벌과 죽음의 희생으로, 그 끊어졌던 다리가 마침내 연결되었다.
그래서 너희는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담대히 내게 올 수 있다. 하나님께로..아멘.
우리 오늘 본문 히브리서 4장 16절 크게 함께 읽어봅시다. (PPT)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
아멘..!!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롭게 주신 삶이 바로 이런 삶인 것이에요,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자유함으로 담대히 하나님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삶입니다.
우리 두 번째 영상 다시 한번 보고 말씀 마무리 하겠습니다.
(MOST 2영상)
마지막 아이를 잃은 아빠가, 자신의 아들의 희생으로 한 마약중독자가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고 얼마나 기뻐합니까? 하나님께서 저 아빠와 똑 같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여러분, 너무 감사하지 않나요? 영원히 죽을 뻔한 우리를,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도 부르지도 못하던 “이미 그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한 다리..를 놓으셨다라는 것..“
그래서 우리가 정말 자유롭고 행복한 삶으로의 길을 열어 두셨다는 것에 대해서..얼마나 감사해야 할까요?
여러분 예수님의 희생을 감사합시다. 자유합시다..! 그 주님을 더 알아갑시다. 그리고 사랑합시다.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이 얼마나 여러분을 기쁘게 바라보시는지 기억합시다 아멘?!
하나님께 다시 연결되어서 살아갑시다.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는 삶을 삽시다!
담대하게!, 자유롭게!, 그리고 기쁘고 행복한, “새로운 삶” 변화의 삶을 사는 여러분 청소년,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