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의 본이 되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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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 인사/주제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은혜 충만하세요’ 하고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오늘은 6월의 마지막 주일로써 성찬을 겸해서 드리는 날입니다. 성찬 안에서 큰 은혜를 누리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어제는 6.25 72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이념과 사상으로 나라가 분리되고 한 민족에게 전쟁의 총부리를 겨눠야 했던 안타까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교회는 민족을 위해 중보하면서 진정한 사랑으로 남북이 연합하고 하나 되도록 기도하는 일에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국가와 사회를 위해 참된 중보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을 통해 참된 중보자로서 성도를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로마서 8장 34절입니다.
로마서 8장 34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중보를 통해 성도를 위해 지금도 간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M2. 본문의 문제

하나님은 친구로 삼으신 아브라함에게 소돔을 향한 심판의 계획을 알려 주셨습니다. 본문 20, 21절의 말씀을 봅시다.
창세기 18장 20, 21절
20.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죄가 이미 아구까지 다 차올라 그들을 심판하려고 작정하셨고, 지금 그 일을 행할 것을 아브라함에게 알려주고 계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직접 보지 않으셔도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시지만, 인간의 관점에서 공정하고 온전한 심판주 되심을 보이시고자 직접 소돔을 찾으신 것입니다.
삼위일체이신 우리 하나님은 은혜로 죄를 용서하시는 구원주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악에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는 심판의 벌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후 19장에서 소돔과 고모라의 악을 낱낱이 보게 됩니다. 소돔인들은 지나가는 나그네를 환대하기는 커녕 도리어 이들을 박해하고 나아가 환대를 행하는 자에게 악을 행했습니다. 당시 소돔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도시로 찾아온 이방인들에게 안식처와 쉼터를 제공한 롯의 집을 쳐들어와 의를 행한 롯까지도 해를 가합니다. 특히 이들은 찾아온 그 외국인 손님들, 곧 천사들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유희의 대상을 삼으려고 했습니다. 창세기 19장 5절 말씀을 봅시다.
창세기 19장 5절
5.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여기에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고 하는 말은 원어로보면 우리가 ‘그들을 알리라’는 말입니다. 이때 사용된 알다라는 뜻의 ‘야다’라는 말은 남녀가 결혼하여 성적인 결합을 통해 서로를 아는 성적 연합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소돔 사람들은 떼로 몰려와서 지나가는 손님을 대접하는 롯을 대적하며 이방인 손님들을 자신들에게 내주어 성적인 관계, 즉 동성애적 성적 행위를 하게 하라고 요구하고 공개적으로 소리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러한 소돔과 고모라의 부르짖는 소리가 크고 그 죄악이 무겁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의 이 무도한 행동으로 인해 여성들만이 아니라 남성들도 불의한 성적 착취의 대상이 되었으니 그 도시의 여성들은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악의와 불의가 관영한 도시, 그들을 향해 구원주 되신 예수님은 심판주로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심판주 되신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선포합니다.
디모데 후서 4장 1절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M3. 본문의 문제 해결

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중보의 기도를 행합니다.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과 그 이유를 분명하게 알고 있는 아브라함으로서는 그 도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여호와께 간구하는 것 외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라도 먼저 아브라함의 중보는 하나님의 심판을 없애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이 없다면 세상의 악과 죄가 허용될 뿐만 아니라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비난하는 것이 됩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아브라함의 중보가 심판을 없애 달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중보가 10명의 의인을 구하는 것에서 멈추고 있는 것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본문 창세기 18장 32, 33절을 봅시다.
창세기 18장 32, 33절
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3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아브라함도 열 명보다 더 적은 수를 구하지는 않습니다. 열 명의 의인이 없는 도시라면 그런 도시는 분명 하나님께서 심판해 주셔야 하는 도시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심판에 대한 자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아브라함의 중보의 태도를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그는 중보할 때 하나님의 공의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먼저 의인도 함께 멸하실 것입니까? 하고 질문합니다. 23절입니다.
창세기 18장 23, 24절
23.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24.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이 질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심판을 부정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는 것의 정의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만약 심판주가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게 되면 심판주의 정의가 왜곡될 것이기에 그것을 염려하여 말씀드린 것입니다. 25절입니다.
창세기 18장 25절
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요청을 하나님께서 들으시자 그는 계속해서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으로까지 의인의 수를 줄여갔습니다. 그리고 열명까지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관심은 먼저 여호와의 공의로우심을 염려한 간구입니다.
그런데 이때 아브라함이 중보하는 자세는 지극히 겸손하고 낮은 모습의 중보임을 알 수 있습니다. 27절입니다.
창세기 18장 27절
27.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티끌과 재와 같은 낮은 존재임을 인식하고 고백합니다. 중립적으로 하나님을 판단하는 자리에서 중보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하여 삼십 명을 구할 때는 주의 노를 염려하며 간구합니다. 30절 상반절을 봅시다.
창세기 18장 30절 상)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
우리는 여기에서 아브라함이 당당하고 정당한 자로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볼 수 있습니다. 중보자로서 아브라함은 자신을 낮추고 아버지의 공의를 구하며 그 뜻에 자신의 뜻을 견주어 보며 오직 아버지의 영광과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낮고 겸비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M4. 예수님의 중보의 간구

우리 예수님의 중보의 간구도 이러한 낮음의 간구입니다. 보좌 우편에서 간구하신 주님은 자신을 주장하시거나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하십니다. 우리 로마서 8장 34절을 한 번 더 봅시다.
로마서 8장 34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보좌 우편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은 자신이 바로 명령하거나 주장하지 않으시고 아버지께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간구는 낮음과 겸비한 중보자로서의 모습을 말씀이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M5. 성도의 기도의 자세

우리는 이러한 말씀의 가르침을 통해 참된 기도의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진정한 중보자이신 예수님은 기도하시면서 자신을 주장하지 않고 아버지 앞에서 자신을 겸비하여 낮추시며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간구를 올리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지시만 성도를 위해 기도할 때 아버지의 뜻을 먼저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른 우리들의 기도의 자세 역시도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 겸비의 자세여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기도는 요구가 아닙니다. 내 필요를 채워달라고 주장하는 것이 기도가 아닙니다. 물론 주님은 이미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그것을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오직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구하는 겸비함, 그것이 진정한 기도의 자세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티끌과 재와 같이 여기고, 아버지의 노를 두려워하며 기도드림으로 아버지의 마음에 합당한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기도야말로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진정한 기도자의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도 기도하기 전에 먼저 겸손함과 겸비함을 배워 참된 기도의 삶을 사시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간구하는 참된 중보자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찬송 9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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