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29 참된 기쁨(무망감을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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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ㅏ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 293장. 주의 사랑 비칠 때
본문 : 스바냐 3:14-18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18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오늘 본문은 사람의 기쁨과 하나님의 기쁨이 동조하고 있습니다.
14절입니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지금 두려워하는 이스라엘을, 세 가지 호칭으로 부르고 있는데, 첫째, 시온의 딸아, 둘째, 이스라엘아, 셋째, 예루살렘 딸아. 총 3가지 호칭으로 부르면서, 하나님께서 명령을 하시는데, 노래를 부르라고 하십니다.
노래할지어다, 기쁘게 부를지어다,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왜 기뻐하라는 건지 모르겠는데, 기뻐하라고 합니다.
그리고서 17절에서는 하나님의 기쁨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17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고, 동시에 시온의 딸, 예루살렘 딸에게도 기뻐하라는 명령을 하고 계시죠.
*오늘날은 기쁨의 사라진 시대입니다.
순간적인 쾌락은 많은데, 지속적인 기쁨은 흔치 않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고물가 시대, 사교육비도 많이 들고, 다양한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비용 지출이 만만치 않은 시대라서, 언제 기쁨을 상실할까 두려운 시대입니다.
물질주의라고 하죠.
물질을 통해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고, 그것이 어쩌면 유일한 행복의 길이라고 믿는 것이 물질주의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사람이 그 물질을 누리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아무리 좋은 음식도 3-4번만 먹으면 그렇게 기분 좋지 않아요.
아무리 좋은 휴대폰, 스마트폰도, 한두 개 정도 있으면 기분 좋지만, 30개, 100개가 된다고 기쁨도 같이 증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물질을 통해 행복이 계속 증가할 수 있다는 믿음은 가짜라는 것이죠.
성경은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나요?
성경은 무엇을 기뻐하라고 하나요?
성경은 자족하라고 합니다. 물질 때문에도 기뻐하라고 합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사랑하는 가족 때문에도 기뻐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해 아래에서의 기쁨이지, 궁극적인 기쁨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무엇이 궁극적인 기쁨이라고 하나요?
성경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이 힘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8장 10절에,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21편 1절에도,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힘이,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이 우리의 기쁨이라고 노래하고 있지요.
*오늘날 우리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우리 아이들은 궁극적인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까?
가정에서의 기쁨,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주는 사소한 감사와 기쁨도 누리고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일상에서의 기쁨을 누린다면, 삶이 훨씬 행복할텐데, 그렇지 않은 거죠.
스마트폰을 끼고 살고, 스마트폰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아이들 아닌가요?
우리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붙들고 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만큼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독 이라는 말은, 사용이나 행위를 중지할 경우 금단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특정한 습관이나 행위나 물질에 사로잡히는 행위라는 의미입니다.
안 하면 죽을 것 같은 거, 없으면 미칠 것 같은 불안감을 주는 것, 그런 상태가 바로 중독 상태 입니다.
서울의대 민경복 교수와 연구진이 대학생 608명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과다 사용과 우울, 불안, 자살생각 및 주관적 건강인식을 설문조사했는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마트폰을 과도하게 사용할 위험은 스트레스 수준이 높은 사람이 2.19배나 높다고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스트레스와 같은 불편한 증상이 자기통제력, 충동조절능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거죠.
행복하지 않은 사람, 일상의 기쁨보다는 스트레스가 더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을 끼고 다닐 가능성이 더 높고, 중독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입니다.
*C 세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출생한 세대를 일컫는데, Crisis의 첫 알파벳 C를 따와서, C세대라고 부르는데, 위기의 세대라는 의미입니다.
이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아주 극심한 취업 문제를 겪고 있다는 거죠.
역사상 최저 경제 성장률, 최대 실업률 등에다가, 더불어 코로나 19사태로 경제적 침체가 더 심화되었고,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에 때한 러시아의 침략전쟁 때문에 물가마저 고속으로 상승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위기의 세대라고 불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C세대가 느끼는 감정이 뭐냐?
나의 노력과 의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미래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좌절감,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무망감이 이들이 느끼는 감정입니다.
희망이 없다는 거죠.
어느 정도 절망감 수준이 아니라, 내 세대에서는 절대 희망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없을 무’의 무망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내가 공부를 잘 해도, 잘 해도 좋은 대학을 가도, 내 인생이 더 나아질 것이 없다. 지금보다 더 큰 기쁨과 행복감을 누릴 가능성이 없다.
그것보다는 당장 게임이나 인터넷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더 행복하다.
이런 계산이 바로 나오니까, 장기적인 노력이나 투자를 하기보다는 단기적인 쾌락을 추구하게 되는 거죠.
그러므로 이 C세대가 선택하는 것은, 현실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실현할 수 있는 가상세계, 스마트폰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이 그들이 하는 유일한 선택이 아니겠습니까?
현실세계에서는 희망이 없으니, 당연히 희망을 되찾기 위해서 가상세계나 스마트폰을 통해서 대리만족이나 가상적 희망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현실이 행복하지 않은 것입니다. 차라리 현실을 떠나 인터넷 속 세상이 더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빠져드는 것에 대해 야단을 친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행복을 회복해야 합니다.
참 기쁨을 회복해야 합니다.
스마트폰 중독을 무조건 정죄하거나 야단만 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더 음지로 빠져들어가요.
중독은 관계파괴적입니다. 중독된 사람은 인간관계보다, 중독 자체에 몰입합니다. 그러므로 야단 치고 정죄하면, 더 관계를 멀리하게 되고, 중독은 더 심해집니다.
그러니, 야단만 쳐서는 안 됩니다.
먼저, 정서적인 이해와 공감이 필요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현실세계에서 기쁘지 않고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른 세대들보다 정보습득 속도가 빨라요.
좋은 이야기도 빨리 듣지만, 나쁜 이야기도 빨리 압니다. 우리 아이들은 예전처럼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신문을 사서보거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거나, 집에 가서 텔레비전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스마트폰만 켜면, 네이버나 구글에서 얼마든지 뉴스기사나, 정보를 검색하여 읽어볼 수도 있고, 다양한 정치/경제 뉴스지에 나오는 경기불황 소식이나, 실업률 증가에 대한 소식을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은 정서적으로나 이성적으로 성숙해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감당하지 못할 불행한 뉴스를 너무 많이 접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아이들이 그런 불행한 뉴스를 보고서는, 은연중에 자신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무망감, 좌절감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 많이 아는 것이 독이죠.
아는 만큼 지혜가 있어야 하는데, 아는 것에 비해 해결능력이 없으니, 두려움과 무망감만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아이들은 기적이라는 말 자체를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시간보다는, 그 시간에 차라리 공부 한 시간을 더 하는 것이 낫다는, 완전 기계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예배는 낭비입니다. 예배는 뭐에요?
예배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을 만나는 일 아닙니까?
예배를 통하여, 내가 인식하는 인과율을 초월해서 역사하실 하나님을 만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철저히 과학적인 인과율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교회 안에서 어른들과 몇몇 소수들이 믿는 하나님이지, 세상 밖에서는 전혀 역사하지 않은 죽은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 거죠.
교회는 단지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필요한 기관이고, 내 인생의 취업과 진로를 위해서는 학교 공부와 학원에 최대한 의존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것이 우리 아이들의 생각 아니겠습니까?
이런 사고방식을 기계론적 세계관, 혹은 이신론적 세계관이라고 하는데요.
이게 바로 서구의 과학주의 세계관이 낳은 결과인데,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그 세상이 정해진 법칙대로 돌아가게 하셨지, 그 세계에 개입하시지는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시계를 만드는 시계공이, 시계가 알아서 돌아가도록 만들고 나서는, 더 이상 시계가 돌아가는 일에 개입하지 않듯이 말이죠.
이렇게 생각하니, 예배만큼 낭비되는 시간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저 멀리 떠나고 없는데, 예배를 드릴 이유가 없죠.
하나님이 떠났고, 세상은 나에게 남겨졌으니, 이제부터는 오로지 내 의지로 내가 노력한만큼 성적도 오르고, 돈도 버는 것인데, 굳이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이게 바로 이신론적 사고방식입니다.
*이런 이신론적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문제가 무엇입니까?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야겠다. 하나님은 내가 할 수 없는 일도 행하실 수 있다. 기적이 있다. 하나님은 세상의 역사에 개입하신다. 이런 믿음이 없으니까, 예배를 사모하지 않습니다.
또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끈끈한 관계를 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영적 기쁨을 상실한 오늘의 세대는, 온갖 물질적 중독에 노출되어, 다양한 중독현상을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내면에서 역사하지 않는 아이들은, 영적인 기쁨이 없으니까, 정작 공부해야 되는 그 시간에, 스마트폰과 다양한 쾌락적 요소들로 마음의 허기를 채우려고 하고, 그러니 더 시간을 아끼지 못하고, 낭비하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인데, 그런 영적인 힘이 우리 아이들에게 잘 전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에배를 짐으로 여기고, 예배 드리는 것 때문에 근심하는 자들을 제거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8절 말씀을 잘 보십시오.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하나님은 예배 드리는 것 때문에 근심하는 자들을 끌어 모으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예배 드리는 것을 짐으로 여기고, 예배 드리는 그 시간에 차라리 물건을 팔고 장사를 하면 더 이익이 될텐데, 하면서 예배 드리는 것을 손해라고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끌어 모아서, 예루살렘 성 바깥으로 내보내서, 치욕을 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배보다 물질로 더 채우고, 그 물질을 통해 기쁨을 누리려는 사람들을 여호와의 성 밖으로 내보내겠다는 것입니다.
예배가 짐인가요?
예배는 하나님의 기쁨을 누리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어가는 시간입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힘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는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온갖 중독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치료시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사랑해야 합니다.
예배를 사모해야 하고, 예배 때 말씀을 통해 주시는 그 은혜로 기뻐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고 계십니다.
예배를 통하여 기쁨을 우리에게 충만히 부어주고 싶으신 거에요.
17절을 다시한번 보십시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지, 솟아오르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겠다고 하십니다.
너가 나의 노래다. 너가 나의 음악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너 때문에 내가 노래가 나온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기뻐하고 사랑하시는지를 계속해서 표현하고 계시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우리 아이들이 이 기쁨을 느껴야 합니다.
예배의 기쁨을 느껴야 합니다. 물질주의 시대에, 물질이 인간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적인 기쁨이 우리를 얼마나 잘 되게 하는지를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기쁨이 있는 아이들은, 가상세계에 매몰되지 않아요.
영적인 기쁨이 있는 아이들은, 헛된 기쁨을 추구하며 중독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해야 되요.
완벽하게 기쁨을 누리는 것은, 천국가야 됩니다.
이 세상에서 어느 정도는 불완전하고,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과도하게 집중력이 저하되거나,
과도하게 스마트폰이나 다른 것들에 중독되는 것이라면, 반드시 우리 아이들이 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 영적인 기쁨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지요.
*말씀을 맺습니다.
물질주의 시대에,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하나님으로 힘과 능력을 삼는 인재가 더욱 더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 아이들이 말씀으로 기뻐하는 인생, 말씀으로 즐거워하는 인생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헛된 것들에 중독된 우리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 아이들이 참된 기쁨을 얻어서, 맡겨진 학업과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세상에서 귀하게 쓰임받는 인물들 다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때문에 노래가 절로 나오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만나서, 평생 복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주님 주시는 기쁨으로 가득가득 채워 주시옵소서. 우리 아이들이 헛된 것에 빠지지 않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복된 다음세대가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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