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30 새벽]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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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282 큰 죄에 빠진 날 위해
본문 미 7:14-20
사랑이 충만하신 주님,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알면서도 늘 죄를 선택하는 우리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무한하심을 알면서도 늘 하나님을 의심하며 세상의 법칙과 세상의 가치관에 현혹되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하나님의 영광을 알면서도 늘 나 자신을 죄로 더럽히며, 죄로 가득 채우려는 나의 악함을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상태를 점검하게 하시고, 죄로 기울어진 우리의 마음을 다시금 인애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선지자 미가는 미1:1 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유다 왕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이다. 연대적으로 추측하자면 선지자 미가는 주전 750년경~주전 687년경 사이에 활동한 선지자인 것이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주전 722년에 멸망하였으니 미가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목도하였고,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주전 586년에 멸망하였으니 선지자 미가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남유다의 멸망을 내다보며 예언하였다고 할 수 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경험한 선지자 미가가 남유다의 멸망을 내다보며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으니 그 심정이 얼마나 애가 타겠는가? 간절하게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동포의 마음에 새겨져 회개가 일어나기를 얼마나 사모했겠는가? 다가오는 심판을 바라보며 하나라도 더 돌이키도록 부르짖고 외쳤던 선지자의 마음을 상상해보라.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은 마음으로 선지자 미가가 동족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간구이다. 14절을 보라. “원하건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주하는 주의 기업의 양떼를 먹이시되 그들을 옛날 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 미가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목자와 양으로 비유하여 간구한다.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셔서 양떼인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보호해 달라고 말이다. ‘그들을 옛날 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라고 하는데, 바산과 길르앗은 요단 동편의 비옥한 지역으로 이스라엘이 최초로 얻은 땅이다. 따라서 이것의 의미는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양떼인 이스라엘을 위해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기적을 행하시고 섬세히 인도하시고 돌보셔서 결국 그 백성들을 자유와 안식의 땅으로 인도하시고 평화롭고 풍족하게 하셨던 것처럼, 그 옛날처럼, 다시금 그분의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해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지금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 대신 이방의 온갖 음행과 우상숭배들을 받아들인 결과로, 하나님을 버린 결과로, 나라가 망했다. 이방민족에게 처절하게 짓밟혔다. 온갖 참담함과 비참함의 결과를 맞았다. 남유다는 뭔가 달랐는가? 그렇지 않다. 북이스라엘과 다를 바 없이 온갖 음행과 우상숭배의 죄를 저지르고 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하나님의 긍휼이 한계에 도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여러분을 떠난, 배반한, 등저버린 남유다를 미가의 기도처럼 계속해서 먹이시겠는가? 당장이라도 원수의 손에 넘기시지 않겠는가? 그런데 어떻게 미가는, “그들을 옛날 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 라고 기도하는가?
미가는 이러한 간구를 하나님께 드림에 있어 당위성을 주장한다. 즉,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양떼인 이스라엘을 마땅히 인도하시고 보호하셔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표현이 바로 14절의 ‘주의 기업의 양떼’이다. ‘주의 기업’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기업’은 특별한 용어로 구약에 사용되었다. 이 용어는 애초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각 지파들에게 나누어 준 땅’을 지칭하였고, 나중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서의 이스라엘의 가치를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양떼인 이스라엘을 ‘주의 기업’이라고 표현한 것은 무슨 의미인가? 지금 비록 패역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택하며, 온갖 부정함과 더러움가운데 자신을 더럽히고 있지만, 그럴지라도 이스라엘은 하나님만의 특별한 소유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그분의 거룩하고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으니, 비록 악하고 패역한 백성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베푸사 회복시키시고 구원해 주셔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 지금 선지자 미가는 무엇을 붙잡고, 무엇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고 있는가? 하나는, 하나님께서 먼 과거에 그들의 조상 이스라엘을 출애굽하게 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안식하게 하셨던 구원의 경험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의 이스라엘의 정체성이다. 지금 미가는 다른 어떤 것에 기초하여 이러한 기도를 하는게 아니다. 자신이 소원대로, 자신의 뜻대로, 자신의 욕망대로 기도하는게 아니다. 지금 미가는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구원의 역사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신 그들의 정체성을 붙들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미가뿐 아니라 성경속 많은 인물들아 이 두 가지를 붙잡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했다. 과거의 베푸신 은혜를 붙잡고 믿음으로 오늘 역시도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기대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하나님께서 언약 가운데 자신을, 그리고 민족을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으니 그것을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이처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의 경험과 하나님 앞에서의 정체성은 오늘, 지금,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기도의 원동력이 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의 경험과 하나님 앞에서의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붙잡고 선지자 미가가 동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 미7:7 에 ‘...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라는 고백처럼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다. 그 내용이 바로 15-17절의 말씀이다. 함께 읽어보자. "이르시되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내가 그들에게 이적을 보이리라 하셨느니라 이르되 여러 나라가 보고 자기의 세력을 부끄러워하여 손으로 그 입을 막을 것이요 귀는 막힐 것이며 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리이다" 하나님은 출애굽 때에 베푸신 이적을 상기시키며 이스라엘의 구원을 약속하신다. 하나님께서 과거 조상들에게 이적을 보이실 때처럼,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때에, 온 민족이 하나님 앞에 굴복하며 압도당하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기도의 응답을 받은 선지자 미가는 18절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한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하며 하나님을 높인다. 여기서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라는 말은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하나님처럼 죄를 용서해 주시는, 인애가 풍성한 신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애’라는 단어는 ‘은총, 자비’라는 뜻을 가지는데, 특별히 자기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즉, 하나님께서 특별한 소유로 삼은 자기 소유에 대해 특별한 사랑을 베푸시는데, 그 사랑이 바로 ‘인애’라는 것이다.
그 특별한 사랑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하나님께서 자기 소유에 대해 특별히 베푸신 인애가 무엇인가? 19절의 말씀이다.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인애의 사랑이 무엇인가? 죄용서이다. 사랑하는 백성들이 죄와 사망에 매여 종노릇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친히 발로 밟으시고, 깊은 바다로 던져서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치우시겠다고 하신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우리는 죄와 사망으로 인하여 죽었던 자들인데, 우리를 하나님의 긍휼과 인애로 다시 살리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와 사망의 매임을 끊으셔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니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그렇기에 선지자 미가 역시도 자기의 기도를 듣고 응답해주신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언약하신 대로, 변함없이 성실과 인애를 베푸셔서 자기 백성을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실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예언서를 마무리하고 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 ‘이 세상이 창조된 이후로 우리 주님과 같은 분은 없다’라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여 주시고, 응답해 주시고, 인애로 죄를 용서해 주시고, 허물을 덮어주시고, 모든 불의와 악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그런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상은 받은 만큼 돌려주라고 말한다. 어떤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다는 인과응보의 법칙을 따른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질서와 법칙을 초월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악하고 패역하나, 하나님은 단 한번도 우리를 향한 그분의 인애를 거두신 적이 없고, 우리는 가증스럽고 불결하며 더러우나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존귀하시며 영광으로 충만하시며, 우리는 늘 하나님을 실망시키고 하나님보다 죄를 선택하지만 하나님은 단 한순간도 우리를 포기하거나 외면하거나 버리신 적이 없다.
세상에 많은 힘과 권세들이 있고, 강한 자들이 있고, 용사들이 있으며, 지혜자들이 있고, 부한 자들이 있어도, 그들은 우리의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오직 주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교훈을 평생에 붙잡고 살아가시기 바란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괴롭더라도, 아무리 칠흑같이 어두운 환경 속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래도... 우리 주님과 같은 분이 없다. 어느 찬양의 가사와 같이, 주님의 자비는 강같이 흐르고, 주님의 손길은 우리를 인도하시며, 고통받는 자녀를 품으시고, 우리의 상한 마음 만지시는 이, 오직 주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교훈의 말씀을 붙잡고 오직 우리의 유일한 위로자요,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 신실히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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