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파야할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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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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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 우리는 이미 한 번 부흥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잠시 한 번 지난번의 설교를 리마인드 해볼까요? 역사적으로 교회는 성장과 쇠퇴를 반복해왔으며, 교회가 일정 기간 쇠퇴를 거듭하다 어느 정점을 찍고 급격한 반등을 이뤄내는 패턴이 반복해서 나타났다고 하였습니다. 각기 다른 시대에, 각기 다른 지역에서 이런 급격한 반등의 패턴은 어김없이 나타났고, 교회는 이것을 부흥이라고 부른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힘과 지혜와 능력을 다한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도 교회가 회복되고 새로워지는 일을 보기 어려운 암울한 시대에, 말그대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일, 성령의 역사하심이 강력하게 나타나 교회가 생명력을 되찾는 일을 더욱 기대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교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부흥은 교회가 지금 자신이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어떻게 하면 여러분에게 이 시대의 교회가 영광스러운 교회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더욱 깊이 깨닫게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부흥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이라 고백하며 한 마음으로 부르짖게 될 수 있을까요? 성령님께서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 빠진 이삭
절체절명의 상황에 빠진 이삭
오늘은 우리가 부흥을 기대하며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등장하는 이삭의 이야기를 잠깐 나누어 보죠. 다들 잘 아는 것처럼 이삭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아 아버지가 거하던 지역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 지역이 브엘라해로이 곧, 하갈이 하나님을 만났던 근처에서 거주하였다고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러다가 이삭의 삶에 고난이 찾아옵니다. 창 26: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아브라함 때에 있었던 큰 흉년이 다시 한 번 이삭의 때에 찾아왔습니다. 이삭은 그 땅에 흉년이 들자 그랄의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갔습니다만, 원래는 그랄을 지나 이집트까지 내려가려던 계획이었던 걸로 보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대로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심으로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복을 약속하시면서 그 이유를 아브라함이 그의 명령과 계명과 법도를 지켰기 때문이라고 일러주십니다. 창 26: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중요한 구절이니 밑줄을 쳐두거나 기억해두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삭은 그랄 땅에서 지내며 복을 받아 거부가 되었습니다. 농사의 소출이 백배의 결실을 맺고, 양과 소가 떼를 이루게 되고, 종도 아주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이삭의 소유가 너무 많아지자 질투를 느낀 주변의 블레셋 사람들은 억지로 그를 이주시켜버렸습니다. 창 26: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이삭은 할 수 없이 자신의 모든 소유를 가지고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도착을 했는데요, 새로운 땅에 정착하려는 이삭에게 가장 긴급하게 해결해야 할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물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대의 가나안 지역에서 이 우물의 가치는 어마어마했습니다. 항상 물을 공급해주는 우물을 확보하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지요. 지도를 보면 우물을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가 한 눈에 파악이 됩니다. 저기 보이는 브엘세바라는 지역 아래로 20km 쯤 내려가면 네게브 광야라고 부르는 지역이 나오는데요, 이곳은 연 강수량 100mm 미만의 사막 중에서도 아주 건조한 사막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브엘세바와 그랄지역은 연 강수량이 400mm 정도 되는데, 연 강수량이 300mm 이하로 떨어지면 농사가 불가능하다고 하니 이삭이 그랄 지역에서 농사를 해서 백배의 결실을 얻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었는지 좀 이해가 되시죠? 아무튼 이 지역은 기본적으로 간신히 농사를 지을 수 있을 만큼 아주 건조한 땅이며, 주변에 조그마한 시냇물조차 구경할 수 없는 지역이기에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은 우물에서밖에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15절을 한 번 봅시다. 이삭을 질투한 블레셋 사람들은 그저 이삭을 쫓아낸 것 뿐만이 아니라, 이삭이 그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우물을 모조리 메워버렸습니다. 조금의 물도 구할 수 없게 말이지요.
이삭은 지금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땅으로 쫓겨나 생존에 직결이 되는 아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교회 역시 같은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그런 자그마한 문제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교회의 생존에 직결이 되는 아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삭에게 우물이 필요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우물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언제든 먹고 마시며 생명을 얻게 하는 생명수가 가득한 그 우물 말입니다.
계속해서 본문을 살펴봅시다. 창 26:18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여기서 이삭이 한 행동을 주목해봅시다. 이삭은 가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팝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 우물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파놓은 우물이야말로 확실한 생명수의 공급처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사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따져보면 이삭의 행동은 도박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우물을 판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기 때문입니다. 그간 그 우물에서 많은 물을 길어서 사용했고, 블레셋 사람들이 철저하게 메워놓은 우물인데 거기에 물이 여전히 흐르고 있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이삭에게는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볼 만한 충분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습니다. 곧장 우물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그의 가축들은 물론이고 그의 가족들 또한 모두 말라 죽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이삭에게는 아버지가 파놓은 우물을 다시 파는 것 대신 선택할 수 있던 아주 그럴듯한 옵션이 하나 있었습니다. 전 재산을 다 써서라도 우물을 찾는 전문가를 섭외해서 새로운 우물을 파는 것입니다. 이 방법이 더욱 생존할 가능성이 높은 방법으로 여겨질 수 있었지만 이삭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믿음으로 하나님과 걸었던 길을 따라 걸으며 아버지가 파놓은 우물을 다시 파기로 결정을 했지요. 여기에 중요한 영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지혜와 방법은 과거의 것일 뿐이고,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지혜와 방법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이 시대의 교회들이 딱 이런 식으로 우리가 처한 문제를 대하고 있습니다. 자꾸만 쇠퇴해가는 교회의 문제를 해결해보기 위해서 새로운 스타일, 새로운 음악, 새로운 프로그램 등등, 온갖 새로운 것들을 다 가져와서 문제를 해결해보려 하는데요, 지금까지 우리가 시도한 이 새로운 지혜와 방법들 중에 하나라도 제대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생각이 되십니까? 아닙니다. 렘 6:1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옛적 길을 돌아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새로운 지혜와 방법이 아니라 과거의 지혜와 방법들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야말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나온 지혜와 방법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옛 믿음의 조상들과 선배들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살펴보고 우리도 그들의 지혜와 방법대로 행해야 합니다. 마치 이삭이 아버지의 우물을 다시 판 것 처럼 말이지요.
교회의 역사
교회의 역사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부흥을 간절히 기대하는 자로서 마땅히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과거의 교회의 역사를 돌아보면 분명히 교회가 오르막길로 오르던 시기와 내리막길로 내려가던 시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오르막길로 오르던 시기에는 항상 똑같은 일이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쇠퇴를 거듭하다가 갑자기 다시 한 번 급격하게 회복되고 새로워지는 때에는 생명수가 솟아나는 생수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마치 블레셋 사람들이 막아둔 온갖 장애물들을 다 걷어내고 다시 한 번 아버지의 우물을 팠던 이삭과 같이 그러한 일을 수행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먼저 가장 처음의 부흥이라고 할 수 있는 오순절 사건이 일어났을 즈음을 살펴봅시다.
사도행전에는 오순절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임하시는 놀라운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순절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제자들을 주목하였고, 베드로가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 예루살렘에 모인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행 2: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교회는 처음 이 땅에 세워지던 순간부터 아주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통해 세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성령의 충만한 가운데 곳곳마다 복음을 증거하는 제자들을 통해서 이후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는 내용이 사도행전 내내 기록되어 있지요. 이런 놀라운 부흥은 성령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놀라운 역사의 결과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그냥 일어난 것일까요? 아닙니다. 행 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한 마음으로 힘써 드린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성령을 보내주어주셨고, 그렇게 제자들에게 임한 성령님께서 제자들을 통해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가게 하셨습니다. 교회의 역사에 처음으로 나타난 부흥의 역사의 밑바탕에는 바로 이것, 한 마음으로 힘써 드린 기도가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부흥의 역사를 살펴봅시다. 교회에서 종교개혁기라고 부르는 시기가 있습니다. 루터, 칼빈, 쯔빙글리, 멜랑히톤 등과 같은 인물들을 통해서 그야말로 교회가 다시 한 번 새롭게 태어났다고 할 수 있을만큼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던 시기입니다. 당시 교회는 막대한 부와 권력을 누리며 온 천하를 호령하고 있었는데요, 그러한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당시 교회의 지도자들은 진리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바꾸는 일도 서슴치 않고 행했습니다. 교회에서 바른 기독교의 진리가 전해지고 가르쳐진 것이 아니라 사제들의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변개된 진리가 전해지고 가르쳐졌던 것이지요. 1517년 성 베드로 대성당의 신축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교황이 면죄부 발행을 남발하자, 이에 항의하며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의 정문에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내건 사건은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마틴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고 있지 않은 회개,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고 있지 않은 은혜,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고 있지 않은 용서,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고 있지 않은 교회의 전통 등에 대해 하나하나 반박하며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었죠. 당시 종교개혁자들이 외쳤던 대표적인 구호를 5개의 솔라라고 부르는데, 우리말로 번역해서 나열해보면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말씀,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이처럼 헛되고 변개된 교회의 가르침을 걷어내고 참된 기독교의 진리를 붙들자 교회는 중세라는 짙은 어둠의 그림자를 이겨내고 다시 한 번 교회다운 모습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교회 역사가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시대를 제외하고 종교개혁 만큼 인류사에 깊고 광범한 영향을 끼친 신앙운동은 드물 것이다”라고 평가할 만큼 이 종교개혁 시기에 일어난 부흥은 실로 엄청난 역사였고, 그 영향은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종교개혁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도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아까 언급했던 루터, 칼빈, 쯔빙글리, 멜랑히톤과 같은 기독교의 바른 진리를 회복하도록 힘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수고와 노력을 사용하셔서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가게 하셨습니다. 교회의 역사에 다시 한 번 나타난 부흥의 역사의 밑바탕에는 바로 이것, 바른 진리를 회복하려는 수고와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교회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들이 아직 몇가지 남았습니다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시대의 교회의 절체절명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이삭과 같이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지혜와 방법을 그저 과거의 것으로 치부하며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지혜와 방법들을 찾으려는 헛된 수고를 그치고, 믿음의 조상들과 선배들이 걸었던 길을 다시 기억해보며 그들이 물을 길었던 그 우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렘 6:1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시대는 변했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학문이 발달하였어도 우리의 근본은 여전히 죄인입니다. 우리의 기술과 학문이 결코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죄인들이 모여 이룬 교회이기에 예나 지금이나 교회의 문제는 똑같습니다. 이전에도 생명수가 솟아나는 우물을 잃은 교회는 쇠퇴를 거듭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나 지금이느 교회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똑같습니다. 생명수가 솟아나는 우물을 되찾은 교회는 언제나 극적으로 회복하고 새로워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영적인 원리에 대해 예레미아를 통해서도 동일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렘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하지만 이 시대의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스타일, 새로운 음악, 새로운 프로그램과 같은 온갖 새로운 것들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생수의 근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생명수가 솟아나는 그 우물을 다시 팔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같이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에 힘써야 합니다. 종교개혁가들과 같이 바른 진리를 회복하는 것에 힘써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입니다. 너무나도 기본적인 것들이라서 별 감흥이 없으십니까? 사탄은 지극히 기본적인 것들에 집중하고 힘쓰지 못하게 해서 우리로 생수의 근원에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삶이 여러가지 이유로 얼마나 기도와 말씀으로부터 멀어져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언제나 기본이 무너진 교회는 쇠퇴했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인 것을 다시 한 번 회복하려 애쓰는 자들을 통해 교회는 부흥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귀기울여 들으십시오. 우리는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야 합니다. 이삭이 아버지가 판 우물을 다시 팠듯 새로운 우물이 아니라 믿음의 조상이 물을 길었던 그 우물로 돌아가야 합니다. Ad Fontes! 생수의 근원으로 돌아가기에 힘쓰는 청년 여러분들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