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03 왕이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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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말 3:1-5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2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4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5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죄를 지었습니다.
무슨 죄를 지었냐면,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 당시 백성들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종교지도자들이 헌금 설교를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형편대로 드리면 된다.
적당히 드려라.
눈 먼 것을 드려도 하나님이 이해하신다.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말라기 1장 8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종교지도자들은 헌금 설교를 제대로 하면, 백성들이 실족할까봐 제대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눈 먼 제물 드려도 된다.
그래도 하나님이 받으신다.
하나님이 니 형편 다 아시는데, 그런 하나님이 헌금을 과하게 요구하시겠느냐?
라고 하면서 인정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보기에는 착하죠.
보기에는 인정 많아보이지만, 이게 하나님 보시기에는 악하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절에서 하나님은 레위 자손을 정결하게 하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종교지도자들을 제거하시겠다고 합니다.
불순물을 제거하듯이, 제거해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그래서 헌금을 제대로 드리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십일조를 떼어서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하나님께 물질을 구별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우리가 용돈을 받으면, 그 용돈 중에서 먼저 하나님께 드릴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2. 말라기 성경책 전체 이슈가 뭘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는데,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별볼일 없느냐? 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데,
왜 내 인생은 이렇게 문제가 많으냐?
우리는 꼬박꼬박 예배를 드리고,
우리 형편에서 나름대로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서 헌금도 드리는데,
왜 우리 형편은 더 나아지지 않고, 이러합니까?
이런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라기 성경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리고 있었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데, 그 형편에서 할만큼 했다는 거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를 않습니다.
너희가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않았다.
너희가 드리는 제물을 페르시아 총독에게 갖다 드려봐라. 그 총독이 그 제물을 보고 기뻐하면서 너희를 받아주겠느냐?
총독에게도 갖다주지 못할 제물을 나한테 드렸느냐?
3. 제사장들은 두려웠습니다.
이렇게 백성들에게 말씀을 선언하게 되면,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성전 금고가 비어버릴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타협해서 설교했던 거죠.
적당히 드려도 된다.
적당히 드려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그렇게 보시지 않습니다.
말하기 1장 6절을 보면, 너희가 나를 공경하는 모습이 어디있느냐?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는 모습이 어디있느냐? 라고 하시고,
1장 14절에도 너희가 흠 있는 짐승을 제물로 드리면서 복을 바라느냐? 오히려 저주를 받을 것이다. 나는 페르시아 총독보다 더 위대한 주님이시다. 라고 하시면서, 예배가 변질되었다고 평가하시는 거죠.
여러분, 이처럼 백성들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가 다르죠?
이것을 심리학 용어로 ‘인지왜곡’이라고 합니다.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학교에서 발표를 했는데, 대부분이 자신의 발표에 대해서 칭찬했는데, 한두 사람이 자기의 발표에 대해서 비판하고 부정적으로 평가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친구는 대부분의 칭찬이 아니라, 한두 사람의 부정적인 평가 때문에 더 이상 앞에 나서서 발표할 용기를 잃어버리는 거죠.
이런 것들이 인지왜곡입니다.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땠나요?
자신들이 예배를 잘 드리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지 왜곡이죠.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예배를 잘 드리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4.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대통령보다 위대하시고, 총독보다 위대하시고, 어떤 지도자들보다 위대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헌금입니다.
그러므로 헌금은 가장 좋은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헌금 드리는 것은 예배의 한 부분입니다.
헌금을 드리지 않는 것은 예배에 실패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교회를 중학교 때부터 다닌 친구도 있고, 초등학교 때부터 다닌 친구도 있고, 또 부모님이 제대로 헌금 교육을 해주지 않아서 일수도 있고, 다양한 이유로 제대로 된 헌금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선 설교자들도 그냥 형편에 맞게 헌금 드리면 되지. 꼭 최선을 다해서 최상의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만 하나님께서 받으시겠나.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신데, 라고 생각하면서, 명확하게 헌금 설교를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제대로 된 제물을 바칠 수 있도록 레위 자손들을 연단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이 제대로 된 봉헌물을 드려서 하나님께 기쁨이 되도록 하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의 헌금생활을 되돌아보고, 성경 말씀대로 하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심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까?
그런데 정작 그들의 예배 자세는 되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었고, 그 자세가 헌금을 드리는 모습에서 나타났습니다.
오늘 말씀을 받으시고, 여러분이 하나님을 제대로 예배하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하나님은 그의 사자를 보내신다.
그의 사자는 하나님이 오실 것을 예고한다.
갑자기 오셨을 때 당황하지 않도록 준비할 기회를 주신다.
2. 하나님은 성전을 정화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노끈을 채찍으로 만들어,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장사꾼들의 상을 뒤엎으셨다.
하나님은 깨끗한 성전을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올바른 제물을 기뻐하신다.
3. 하나님은 심판하기 위해 백성을 찾아오신다.
하나님은 점치는 죄, 간통 죄, 거짓 맹세 죄, 임금 노동자를 착취하는 죄,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는 죄를 싫어하신다.
주석
1 말라기는 믿음이 없고 절망적인 질문자들의 관심을 미래로 향하게 하였다.
3장 1절은 2장 17절에서 “도대체 정의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에 대한 답변이다.
2 누가 왕이 찾아왔을 때,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이들은 모두 “예배 중”에 쓰러지므로, “누가 그가 왔을 때, 쓰러지지 않고 예배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불신자 :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정의로우신가?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가?
3 여기서 연단의 대상은 레위인이다. 5절에서는 모든 사람이 그 대상이 된다. 확장된다.
5 3장 5절은 2장 17절에서 주님이 악을 행하는 자를 기뻐하신다는 말에 대한 답변이다.
점치는 죄 :
간통죄 :
거짓 맹세의 죄 :
임금 노동자를 착취하는 죄:
과부, 고아, 나그네의 권리를 박탈하는 죄: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죄 : 위의 모든 죄를 일으킨 근본적인 태도이다.
이미지
왕이 찾아오는 이미지
금속을 제련하는 모습
한눈에 보는 말라기
첫 번째 논쟁(1:2-5) : 이스라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두번째 논쟁(1:6-2:9) : 하나님 “왜 나를 멸시하느냐”
세 번째 논쟁(2:10-16) : 하나님 “왜 율법을 어기느냐”
네 번째 논쟁(2:17-3:6) : 이스라엘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괴롭게 했습니까”
다섯 번째 논쟁(3:7-12) : 이스라엘 “어떻게 해야 돌아가는 것입니까?”, “우리가 언제 도적질하였습니까?”
여섯 번째 논쟁(3:13-4:3) : 이스라엘 “우리가 무슨 말을 했습니까?”
장소 : 예루살렘
기간 : 대략 주전 432-425년
기록목적 : 유대인들은 성전을 재건하기만 하면 다윗 시대의 영광을 회복할 것이라 믿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다윗과 같은 왕은 나타나지 않았다. 기대했던 물질적 축복도 없었다. 그러자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사랑하시는가?”라는 의문이 확산되었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 본서를 기록했다.
기록방식 : 당시 널리 퍼져 있던 백성들의 말을 인용한 후, 그것을 반박하는 순서로 논지를 전개한다. 이것이 여섯 번 반복된다.
네 번째 논쟁(2:17-3:6)의 주제는 “과연 하나님은 정의로우신가?”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페르시아 제국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신 분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여겼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내 사자’와 ‘언약의 사자’를 보내시겠다고 하십니다. 언약의 사자는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내 사자’는 그리스도를 예비한 ‘세례 요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에게 우리의 모든 죄를 전가하신 후,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대신 죽이실 만큼 죄를 미워하시는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사역
1 보라! 내가 보낸다. 나의 사자를, 그리고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돌아볼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그가 올 것이다, 그의 헤칼(왕궁, 성전)에, 너희가 바카쉬(찾다, 갈망하다)하는 아돈(주, 주인, 하나님)이, 그리고 너희가 하페쯔(사랑하다, 기뻐하다, 좋아하다)하는 언약의 사자가, 보라! 올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다.
*보라! 가 두 번 반복된다.
*하나님이 강조된다. 하나님이 보내신다.
*이스라엘이 갈망하는 아돈은 누구인가? 메시아인가? 하나님이신가?
*그리고 언약의 사자가 오는데, 이것은 앞에 아돈과 일치하는 존재인가? 또 다른 존재인가?
*보라, 내가 보낸다. : 불길한 임박성을 암시
이사야는 고대세계에서 왕의 행렬을 위하여 평평한 표면을 얻으려고 장애물을 제거하고 굽은 곳을 펴고 경사를 완만하게 하는 관습을 언급한다(사 40:3; 57:14; 62:10). 여호와의 메신저의 역할은 포로 후기 유다의 백성들의 특징인 자기 이익, 영적인 무감각, 불의한 행위의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써 여호와의 현현에 앞서 길을 정리하는 것이다.
회의주의자들은 포로 후기 예루살렘의 영적인 분위기에 하나님께서 관심이 없으시고 개입하지 않으신다고 가정했다.
두 ‘메신저’가 구별되는 신적인 존재인지 ‘여호와의 천사’의 일종의 이중적인 묘사인지에 대하여는 의문이 남아 있다.
전통적인 기독교 해석은 예수 자신에 의하여 해석된 것처럼, 신약의 성취에 근거하여 첫 번째 메신저를 세례요한과 동일시하여왔다(마 11:3, 10, 14 참조). 언약의 메신저(혹은 천사)는 교부시대 이래로 예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기독론적으로 이해되어왔다.
2 그리고 누가 쿨(담아보다, 견디다, 참다)하겠는가?, 그가 오시는 날에, 그리고 누가 아마드(서다)하겠는가?, 그가 나타날 때에, 그는 제련하는 불과 같고, 옷을 세척하는 비누와 같을 것이다.
*그가 오시는 날을 누가 견딜 수 있을까? / 그가 나타나는 날에 누가 설 수 있을까? (평행법)
*제련하는 불 / 세척하는 비누
두 개의 생생한 은유는 여호와가 나타나실 때 그 누구도 그 앞에 설 수 없다는 근본적인 이유를 제공한다. 그는 정련업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비누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식물로부터 축출된 염기성 소금 혹은 소다가루를 묘사한다. 단어 비누(보리트, bōrît)는 말라기의 주제어 가운데 하나인 언약(베리트, berît)을 나타내는 단어의 언어유희의 형태이다.
3 그리고 그가 계속해서 야사브(머물다, 거주하다, 앉다)하면서, 제련하여 은을 깨끗하게 하는 사람처럼,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제련할 것이다, 금과 은처럼, 그리고 여호와께 체다카(올바른, 곧음, 의)의 민하(제물, 예물, 소제)로 드릴 것이다.
*그는 은을 제련하는 사람처럼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레위자손?) 여호와께 의의 제물을 드릴 것이다.
말라기는 앞서 두 번째 논쟁에서 성전 종교의식을 집전하는 성직자로 그리고 모세 율법의 선생으로서 자신들의 의무를 행함에 실패한 제사장들을 책망했었다(1:8, 10, 13; 2:6–8).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순화하는 과정을 위하여 뽑혀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중재자들이고 그러므로 그들은 백성들의 종교적인 타락에 책임이 있었다. 그리하여 백성들의 정화는 그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일단 정화가 되면 ‘그들은 여호와께 제물을 가져오기에 합당하게 될 것이다’(NEB; ‘그래서 그들은 다시 한 번 여호와께 받아들임직한 희생제사를 드릴 것이다’ NLT).
말라기의 네 번째 설교는 행악자들을 심판하기 위하여(5절) 하나님께서 방문하시는 임박한 날(1–4절)을 예언한다. 말라기는 세 명의 구별된 인물을 다가오는 여호와의 날을 말하면서 언급한다. 내 메신저, 주, 언약의 메신저(3:1). 정확한 수와 이 현현에서 역할을 하는 이 종말론적인 인물이 누구인지를 둘러싼 불분명함은 계속해서 학자들을 토론하게 만든다. 구체적인 신원확인을 넘어서 신적인 메신저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완전히 정화하는 일을 수행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종말은 태우고 씻기고 깨끗하게 하는 영에 의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한 공동체로 변형되는 것을 목격할 것이다(3:2–3; 사 4:3–4; 습 3:11–13, 17 참조). 이 어렵고 고통스러운 ‘정련’의 과정의 바람직한 결과는 그들이 신실한 백성이 되어 곧 이제 영적으로 새롭게 되어 여호와께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4 그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의 민하(제물)이 여호와께 아랍(즐거워하다, 기뻐하다)이 될 것이다. 올람(영원히, 오랫동안, 고대에)의 날 처럼, 그리고 캇모니(옛, 동방의, 동쪽의)의 해와 같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던 제물이, 다시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제물이 될 것이다. 옛날과 고대의 때와 같이 말이다.
5 그리고 내가 올 것이다, 너희에게, 미쉬파트(판결, 결정)을 위하여, 그리고 내가 서둘러 증거할 것이다. 박수 무당과 간음하는 자와 거짓말로 맹세하는 자와 품꾼(종)의 삯을 억압하는 자들과 과부와 고아, 체류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들과 나를 경외하지 않는 자들에게,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다.
*여호와가 심판을 위하여 오실 것이다.
*죄를 범한 자들에게 증거를 제시하실 것이다.
말라기의 네 번째 설교의 마지막 절은 악을 행하는 것을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것과 연결한다. 행악자들에게 돌려진 행위들의 목록은 하나의 공통분모에 의하여 분류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존경’(NJB)하고 경외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주석
1-2절
하나님께 대한 심각한 기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선언한다.
하나님의 계획은 메시아와 그의 길을 예비하는 자를 보내는 것이다.
1절의 화자는 하나님 자신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사자를 보내신다. 이 사자는 하나님 앞에서 길을 예비한다.
이사야 40:3에서 주의 길을 예비한 결과로 하나님의 구원의 좋은 소식이 예고 되지만, 말라기 3:1에서는 포로후기 백성들에 대한 정화와 심판이 뒤 따른다.
말라기 3:1-6에서 말라키의 역할 대상은 레위인들이다.
2절에서 “하나님 강림”
1절에 이어, 하나님의 강림 예언으로 볼 수 있는 이유는 ‘주’와 ‘그의 성전’ 때문이다.
1:5에서 하나님은 이미 자신을 ‘주’와 ‘아버지’라고 하였고, 1:14에서는 ‘큰 왕’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3:1의 ‘주’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둘째 문장은 제사장들이 ‘불의한 예배’를 집전하고 있는 그 성전에 하나님이 강림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의 성전에 강림하는 ‘주’는 성부 하나님이라기보다는 메시아일 가능성이 더 높다.
‘너희들이 찾는 바’ 이 말은 2:17의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를 아이러니컬하게 활용하였다.
주와 언약의 사자가 동일한 분임을 보여준다.
주와 언약의 사자가 임하는 날을 아무도 당할 수 없다.
말 3:1이 언약의 사자를 언급한 이유는 레위인들과 포로후기 백성들이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금과 은을 녹이는 불은 소멸이 목적이 아니고, 정화와 연단을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연단된 금은 순금으로서 가장 가치가 높은 금이 된다.
이런 차원에서 레위인들을 정화시켜 그들 중에서 찌꺼기에 해당되는 자들을 걸러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레위인들을 남겨 그들을 통해 바른 제의를 수행하게 한다.
레위인들을 연단하여 그들이 여호와께 공의로운 제물을 가져오는 자로 만들겠다고 한다.
연단의 목적은 그들이 변질시킨 제의적 봉사를 바로 잡아 율법의 원래의 규정대로 정결하고 흠 없는 제물을 바치게 하는 것이다.
옛날과 고대 : 즉 하나님께 최상의 제의를 드리던 출애굽과 광야 시대처럼 하나님께 기쁨의 예물이 된다.
5절은 2:17의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반응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너희들에게 가까이 갈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포로후기 백성들의 일곱 가지 죄악에 대한 증인 역할을 하겠다고 한다.
하나님이 심판자가 아니라 증인 역할을 하는 이유는 3절에서 주와 언약의 사자로 표현된 메시야가 심판자와 통치자로 앉아 있기 때문에, 그가 진행하는 심판에서 하나님은 증인의 역할을 하신다.
7가지 죄는 말라기 시대에 심각하게 유행한 죄악들인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