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창25:19-28)

야곱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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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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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면 두 가지 장비가 필요합니다.
첫 번째, 망원경이고 두 번째, 현미경입니다. 그렇다면 너무 멀어서 볼 수 없거나 또는 너무 가까워서 볼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하지만 이런 장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이 우리 삶에 대부분입니다.
- 아이가 방에서 뭘하는지 / - 학교에서 뭘하는지 / - 남편이 아내가 뭘하는지
뭘 하는지에 집중하면 의심 /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믿는 수 밖에요’
그래서 많이 의심하는 것 같아도 실제는 꽤 많이 믿음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녀가 안전하게 학교와 외출을 한다고 믿기 때문에 허락을 하고 적당한 법규와 통제에 의해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 하에 움직입니다. 파란 신호등이 들어오면 저기서 달려오는 차가 빨간불에 멈출 것이라는 것도 믿음입니다. 요즘은 얼마나 믿음이 강한지 스마트 폰을 계속해서 쳐다보면서 신호등을 건너니 이 얼마나 엄청난 믿음입니까? 극단적인 예이지만 우리는 눈을 뜨면서부터 믿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러한 과정에서 어떻게 믿음이 작동하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보이는 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저와 여러분이 보는 것은 무엇입니까? 정말로 잘 보입니다.
19절에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를 소개하고 있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이삭이 40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다. 그렇죠 그리고 리브가가 밧단 아름의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고 라반의 누이라고 소개합니다. – 본문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조금 높이 올라서 보면 앞서 아브라함에 대해서 충분한 소개가 있었고 역시 아들 이삭에 대한 이야기도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특히 앞선 24장에서는 60절이 넘는 긴 절을 사용하여 리브가를 데려오는 아주 멋진 모습도 소개되고 있기 때문에 어떠면 이것 역시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에서는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히브리어에서는 20절 뒷부분과 21절을 이어서 번역하면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그리고 기도했다 이삭이 하나님께 임신하지 못하는 그의 아내를 위해서’
그러니 기도했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죠.(와우 연속 미완료)
눈에 보이는 것으로 우리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지만 오늘 참석하신 성도님의 연륜으로 볼 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저는 알 수 있습니다. 자 예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여성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68-69년 즘에 19-20세의 나이로 이른 결혼을 했습니다. 벌써 여러분은 음 나와 비슷하네, 그땐 그랬지 하면서 생각이 막 떠오릅니다. 그렇죠. 그렇게 결혼을 하고 자녀들이 태어났습니다. 첫째가 아들이고 둘째 셋째가 여자 쌍둥이입니다. 그러더니 넷째 여자 아이와 다섯 째 아들까지 자녀를 낳았습니다. 여러분들의 표정을 보니 벌써 딱 상황과 이해의 작용이 막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에 좀 충격적인 갈등을 하나 던져보겠습니다. 첫째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 될 때 13-14세 정도가 되었겠죠 이 여성의 나이가 34세즘 되겠죠. 그때 남편이 불의에 사고로 사망하게 됩니다. 어떻습니까? 표정을 보아하니 ‘아이고 어떻게 애 다섯을 키워’ , ‘애들 때문에 시집도 못갈 테고 ’, ‘젊은 나이에 안됐네’
다시 본문 26절을 읽겠습니다.
자 갑자기 머리가 쭈뼜하신 분 – 두 가지 반응이겠죠. ‘이삭이 육셉세였더라’
먼저의 예를 잘 들으신 분들이 공감 적으로 경험을 통해 아이 다섯을 키우는 모습이 그려졌다면 26절을 잘 읽은 분들은 리브가의 고통도 느껴졌어야 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보이지 않는 부분이 되는 것이죠. –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삭의 기도’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임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개입을 하셨으니 해결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이렇게 보이는 결과 때문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오랜 문제를 놓고 기도해보시거나 기도중인 분들에게 가장 실망스러운 말은 무엇일까요? 이제 오래 기도했으니 그만해도 된다는 것일까요? 지금까지 기도했으니까 조금만 더 참고 기도하라는 독려일까요? 어쩌면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실 겁니다는 가장 보편적인 멘트가 기도하시는 분들에게 오히려 마음에 상처를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 땐 바로 이삭처럼 그리고 기도했다. 하나님께 00하지 못한 00를 위해’ 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어떤 믿음이 작용했나요?
이삭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작용했습니다.
이삭은 –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에 따라 어린 시절 자신이 재물이 되었던 사건과 자기 아내를 그 언약 안에서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경험을 통해서 알았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 경험이 하나님께 기도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좋은 표현 뒤에 숨어있는 것이 있습니다.
경험은 때론 보이는 것이라 보지 못하는 것을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을 막을 때가 있습니다. 리브가를 사랑했습니다. 그런 그녀의 고통과 자신이 아는 하나님의 응답을 위해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주실 것이다는 아브라함의 신앙교육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을 어떻게 얻었는지 이야기를 들으며 아멘했을지는 계속해서 기도했다고만 말합니다. 그런데 아이에 대한 축복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언약한 내용으로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비록 그가 잉태의 기쁨을 누렸지만 이는 아내를 위한 제1목적이었지 하나님의 언약을 위한 제1목적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본문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를 위하여’ /(계속)기도했다.
에이빗 윌커슨 = 기도의 삶을 지속할 수 없는 것은 기도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 계속해서 ‘성경이 기도해야 한다고 했으니까 기도해야죠’라고 말하거나 의무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의 문제의 해결과 주님의 기쁨을 위한 것 두가지가 함께 가야 한다.
조지 맥도널드 ‘늘 기도하며 힘을 잃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든 기도가 원하는 대로 응답 받는 것보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데 훨씬 더 많은 가치를 둘 것이다. 기도의 궁극적인 목표가 그것이다’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의 말은 외부에서 우리 내면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고 그래서 마치 우리 안에서 뭔가를 조정해서 하나님의 뜻과 일치해 보려는 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외부에서 우리 마음으로 들어와 우리를 변화시키는 외적인 은혜’라고 기도를 말합니다. ‘우리의 소망을 그분게 의존해야 한다’
그런데 기도의 응답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햐는 듯 보입니다.
22절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잉태의 기쁨도 잠시 리브가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 형국이 어머니가 되려는 리브가에게 분명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이 본문에는 ‘가서’라는 의미가 해결되지 못한 상태로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이 두 사람은 어떤 것을 보지 못했을까요?
이삭은 아브라함을 통해 ‘네 씨로 창대케 되는’ 놀라운 하나님의 언약을 분명하게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후 26장에서야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다시 한 번 언약을 확인해주고서야 알았습니다. 또한 기도의 응답은 잉태의 목적에서 끝났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볼 수 없던 것입니다.
요8:56절 –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대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창27:1절 – 이삭이 나이가 많이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히브리서 11:9 믿음으로 그가(아브라함)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하나님께서는 친절하게 답을 주십니다. 두 국민이 태중에 있다. 네 북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여기에 특이한 것은 ‘나누이리라’는 말씀이 완료형이 아닌 미완료 형태라는 것입니다. 아직은 안 나누인 상태 그럼에도 태중에서부터 나누어지기 위해서 움직이는 상태 말입니다. 마치 아이가 심하게 잘못을 할 때 ‘너 그러다 혼난다’ 하면 그 행동이 계속되면 결국은 징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아주 독특한 표현입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세기4:7) / 가인의 드린 제물을 받지 않으신 여호와를 향하여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냐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 그렇게 계속하면 지금 죄가 문 앞에서 너를 만난다. //
특히 이 족속과 저 족속으로 나누인 상태에서 한 족속이 강하다는 것이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는 것은 어느 족속을 가리키는지 불분명합니다. 큰 자가 강한 족속을 의미하는 것이 문맥상 합당하지만 먼저 태어난 자를 큰 자로 보는 의견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게 쌍둥이가 태어났고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 26 후에 나온 아우는 특이하게도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와서 말 그대로 ‘야곱’ 이라고 지었습니다.
시간을 다시 훅 지나가면서 이들이 성성해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요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
이삭은 에서를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을가요?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축복하시면서 아브람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고 말합니다. (26:5)
무엇이 사랑했던 아내와 서로가 사랑하는 바 각자의 아들을 붙잡고 그래서 결국은 우리가 잘 아는 에서와 야곱의 사건에 리브가가는 주동자가 되고 결국 떠나고 에서는 끈임없이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여 아내를 바꾸는 깨어지는 과정이 되었을까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이런 가정을 만드시고서 언약을 성취하시는 분이신가요? 그럼에도 이렇게 했다라면 하는 아쉬움 때문에 성경의 말씀을 다른 곳으로 가져가자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산에 오르는 것이 힘든 것은 산이라는 한 글자에 담긴 전부가 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산을 찾아가는 준비, 넓은 땅을 밝아야 하고 결국 마지막 정상이라는 곳을 육체의 모든 힘을 소진하게 만들고 그렇게 힘들게 올라온 산을 다시 내려가야 하는 모든 것 자체가 우리를 어렵게 합니다. 믿음이 그렇습니다. 바로 그렇게 때문에 어렵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값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자신을 보여주시면서 믿음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도마의 다음 사람은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을 위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믿음은 빛과 같아서 숨길 수가 없습니다. 열과 같아서 손으로 움켜 잡을 수만은 없습니다. 믿음은 겨자씨만한 크기에도 산을 옮깁니다.
비록 이삭이요 리브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식이라도 그들에게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담을 그릇이 못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잠시 담을 수 있는 경험을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것을 바라게 하는(소망하게하는) 놀라운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잠시 하나님의 말씀을 담았다는 이유 때문이요 인류가 잠시 그리스도를 33년간 담았다는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는 사그라들고 여전히 험한 세상에서 말씀을 담고 기도하고 살 수 있도록 하시는 매일의 새창조가 진행된다는 사실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은 마치 어느 영화의 해적이 보물지도를 찾아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는 것 같이 보일 수 있습니다.

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SENTENCE [T 주의 성실하심이 T] 크시도소이다

SENTENCE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 [T 여호와는 T] 나의 기업이시니 ″

SENTENCE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SENTENCE 25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ELABORATION 구하는 영혼들에게 [T 여호와는 T] 선하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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