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은혜

사무엘상 강해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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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새벽기도에 오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울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그 은혜 받은 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대해 교훈합니다.
1- 하나님께서 사명을 감당하는 은혜를 주신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하나님께서 사명을 감당하는 은혜를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사울의 업적과 그 가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본문의 위치가 참 쌩뚱 맞아 보입니다. 14장 46절까지 사울의 불신앙과 불순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47절부터 업적과 가문에 대해 설명하고 또 15장부터 사울의 불신앙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15장은 다 잘 아시는 것처럼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것을 모르고 하나님 말씀에 거역하고 버림받는 내용입니다. 46절에서 15장으로 바로 넘어가도 본문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 같은데 두 개의 불신앙의 이야기에 둘러싸인 오늘 본문의 내용의 위치가 참 애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제가 몇 번 설명 드린 것처럼 성경은 이유가 다 있어서 이런 구조와 배치를 가지고 본문을 기록해놓았습니다. 어떤 이유겠습니까? 사울은 불신앙의 인물이지만 어떻게든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사명을 감당한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가 적어서 사울이 불신앙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47절에 사울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 후에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들에게 가는 곳마다 이겼다고 나옵니다. 48절에는 아말렉을 치고 이스라엘을 건져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울은 많은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 승리를 주신 분은 물론 하나님이십니다. 14장에서 요나단이 활약하는 내용을 보셨기에 잘 알고 계실겁니다. 하나님께서 그 전쟁을 책임지시면 이기고 불신앙으로 대하면 집니다. 사울이 가는 곳마다 이겼다는 것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사울이 구원자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비록 14장에서의 모습은 사울의 불신앙으로 패배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하나님은 사울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또 사울에게 사람들을 붙이셨습니다. 52절에 보면 힘 센 사람, 용감한 사람을 보면 모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명을 감당하라고 사울에게 필요한 인재를 더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은 단순히 왕이 되기 위해 왕좌에 앉은 것이 아닙니다. 할 일이 있고 그 직무가 있기 때문에 왕위에 앉았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언약백성의 생명을 대적으로부터 구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는 것이 사울의 직무입니다. 그냥 왕놀음을 하기 위해 그 자리에 앉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울의 직무를 위해서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 뭐 얼마나 대단한 나라겠습니까? 노예 출신에 제대로 된 군사적인, 정치적인 체계도 없습니다. 좋은 무기나 도구를 만들지도 못하는 당시 나라들 기준으로 후진국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사명감당하라고 은혜 주셔서 가는 곳마다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의 믿는 언약백성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복음에 대적하는 원수의 나라들에 대해 싸워 이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명 감당하라고 우리에게 없는 능력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적용) 이 원리는 신약교회 성도인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에게 사명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나 혼자 구원 받고 끝내라고 예수님을 믿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 믿는 순간 우리가 이 땅을 떠나도록 하셨을 것입니다. 에녹이 하늘로 올라가고 엘리야가 승천한 것처럼 우리에게 사명이 없으면 우리는 이 땅에 남아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여전히 사명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두셨습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남편으로 아내로 부모로 혹은 자녀로 부름받았습니다. 그 가정에서 배우자를 섬기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고 자녀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며 부모님께 순종하는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겉보기엔 단순히 일상을 감당하는 일 같습니다. 불신자들에겐 단순한 일상이지만 우리에게는 사명인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가정이라는 공동체가 든든히 세워질 때 교회도 든든히 세워지고 하나님의 나라도 든든히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직장현장에서의 사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의 교회는 대적들과 전쟁을 치르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했지만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섬깁니다. 우리가 출근하는 직장에서 그곳에서 주신 복음전파의 사명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합니다. 우리가 출근하는 직장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합니다. 우리 직장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사회생활을 넘어서서 사명생활을 해야 합니다.
여기 계신 성도님들은 신앙의 경력이 있으신 분들이라 다 경험해보셨겠지만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이웃을 사랑하며 잘 섬기면 세상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렇게 좋은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때론 우리 삶의 현장에 있는 다른 신자가 좀 부실하게 섬기면 우리한테 와서 “저 사람은 교회 다니는데 왜 너처럼 안하느냐?”라는 질문을 합니다. 시대가 교회를 좋아하든 욕하든 어떻든 세상은 교회에 대한 기대, 성도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기대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사명을 감당하길 원하는 기대입니다. 이런 세상의 기대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우리 안에서 나올 수 있는 것들은 세상사람들의 것과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도 남을 이기고 올라가고 싶은 욕구가 있고 섬기는 대신에 섬김만 받고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는 세상을 놀라게 하고 영향력을 줄 어떤 것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마치 세상에 있는 교회처럼 우리를 만들어주셔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마치 교회와도 같은 우리를 통해 십자가의 그림자를 보게 됩니다. 그 그림자의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위해 우리 당평교회로 오는 일이 생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명 잘 감당하게 해달라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역사하심,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은혜로 사명을 감당할 때 교회가 든든히 선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명을 감당할 때 교회가 든든히 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명을 감당할 때 우리가 잘됐으면 좋겠는데 교회가 든든히 선다고 하면 좀 서운한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교회가 잘되는 것이 복된 일입니다. 우리의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교회를 통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음부의 권세를 이길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 삶의 모든 음부의 권세를 교회를 통해 이깁니다. 교회가 든든히 서는 것이 곧 우리의 삶이 형통한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기에 교회가 든든히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세상을 회복시키기에 교회를 세우는 일이 곧 세상을 구하는 일이 됩니다. 본문을 통해 이 교훈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내용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47절과 48절은 52절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울이 가는 곳마다 승리하고 힘센 사람들이 모이는 내용이고 49절부터 52절까지는 사울의 가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 본문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사울의 불신앙이 드러나는 본문들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47, 48절은 이 불순종하는 사울에게조차 은혜를 주셔서 사명 감당하게 하신 것을 말해주지면 49절부터 51절은 사울이 사명 감당할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지 않아서 그 집안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49절에 나오는 사울의 아들은 총 세 명입니다. 요나단, 이스위, 말기수아입니다. 본문에 나온 명단에는 아비나답이라는 아들의 이름이 빠졌습니다. 아비나답은 사무엘상 31장에 사울의 마지막 전투에서 죽은 것으로 기록합니다. 요나단과 말기수아도 사울의 마지막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본문에 나온 이스보셋은 다윗이 유다지파에서 왕으로 추대될 때 사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지만 부하에게 암살당합니다. 사울의 두 딸이 메랍과 미갈이 등장하는데 메랍의 자식들은 사무엘하 21장에서 기브아 사람들에게 죽임당합니다. 미갈은 다윗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을 멸시하게 됩니다. 고대에 여인들에게 있어서 자녀를 낳고 대를 잇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특히 구약 백성들에게는 메시아의 계보를 이어야하는 사명과 맞닿은 일입니다. 이렇게 사울의 대는 그 명맥이 끊기고 맙니다.
사울의 불신앙 사건 두 개 사이에 서술된 사울 집안의 목록은 나중에 이 집안사람들이 최후까지 남아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 목록에 있는 사람은 하나도 빠짐없이 고통당하고 여인들은 대를 잇지 못합니다. 사울의 군사령관 아브넬은 사울의 뒤를 이은 이스보셋과 갈등을 빚기도 하고 요압의 동생을 죽인 이유로 요압에게 살해당합니다.
사울이 하나님께 은혜 받은 대로 사명을 잘 감당했으면 이 명단에 있는 사람들이 대대손손 명맥을 이어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 받은 만큼 사명을 감당하지 못해서 결국 그 삶이 고통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들은 왜 받은 은혜를 사명으로 반응하지 않았습니까? 결국 교회입니다. 그들의 사명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권력을 지키는 것에 있었지 구약의 언약공동체, 구약교회를 세우는 일에 무관심 했습니다. 사울을 보시면 거의 다윗을 질투해서 쫓아다니는데 에너지를 쏟지 교회를 위해 에너지를 쏟지 않습니다. 골리앗과 전투 안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 목숨을 연명해서 자기나라에서 자기가 왕노릇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라는 언약공동체, 구약의 교회를 위해 일꾼들을 세우시고 사명 감당하라고 은혜를 주셨지만 그 일꾼들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면 그 일꾼들에게 계속 은혜를 주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이 은혜의 바통은 다윗 왕조가 이어 받게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로 그의 사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미리 보여주며 언약백성을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구약교회를 위해 성전을 세우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조를 통해 구약의 교회를 든든히 세우시고 신약의 교회를 준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차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서 음부의 권세를 이길 교회를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받은 은혜를 사명으로 감당한 다윗에게 복을 주시고 다윗을 통해 교회를 든든히 세우셨습니다. 이 원리는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으면 구원 받은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서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은혜를 공급 받으면 은혜를 받은 것에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전히 이 땅에 두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통해서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삶의 현장에서 받은 은혜대로 사명을 잘 감당할 때 결국 교회가 든든히 서게 됩니다. 이 교회를 통해서 세상에 드리운 음부의 권세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힘 있게 뻗어나갈 것입니다. 저도 당평교회 와서 강단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많이 받습니다. 특히 요한복음 4장 말씀을 통해 은혜 받고 코로나 시대지만 다시 노방전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노방전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특별히 부지런하고 열정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부어주시니까 은혜가 저를 이끄는 것을 경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 주시고 사명 감당하게 하시는 것으로 지금 이 순간도 그분의 교회를 든든히 세우십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명 감당하도록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로 사명을 잘 감당하여 교회를 든든히 세워 우리 당평교회가 복음의 영향력, 선한 영향력을 더욱 힘차게 펼치는 교회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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