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04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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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520 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
본문 엡2:4-7
사랑이 충만하신 주님, 주님의 은혜 가운데 2022년도 절반이 지나가고 벌서 7월이 되었습니다. 한해의 절반을 지나보내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신앙의 결실들을 맺어왔는지 돌아봅니다. 얼마나 주님께 감사의 열매를 드렸으며, 얼마나 성숙의 열매를 드렸는지 돌아봅니다. 늘 부족한 것 투성이이지만 그럴지라도 우리에 대해 오래 인내하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시어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늘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시고, 내가 받은 은혜들을 이제는 다른 이웃들을 향해 흘려줄 수 있는 우리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저와 여러분은 죄로 인하여 죽을 뻔 하였던 자들이 아니다. 이미 죽은 자들이다. 숨이 끊어진지 오래 되지 않은 시신은 그래도 잠든 것 같이 보인다. 비록 숨은 끊어졌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죽은 지 몇 달 혹은 몇 년이 지난 시신은 어떠할까? 시신은 부패함으로 인해 이리저리 뒤틀어져 있고, 온 몸의 살들은 다 썩어 문드러지고, 셀 수 없이 많은 구더기들이 기어다니며 그 부패함으로 인한 악취를 풍겨댈 것이다. 우리가 함께 읽진 않았지만, 1절에서 저와 여러분의 상태가 바로 이러했다고 말한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의 우리의 상태를 가리켜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정의한다. 이미 죽은 자들이다.
죽어가는 자라고 한다면, 내가 나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응급조치들이 있겠다. 그렇게 응급조치를 잘 하면 죽어가던 생명을 다시 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밖에 있던 자들을 가리켜 “죽어가던 자" 라고 말하지 않는다. “죽을 수 밖에 없던 자" 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이미 죽은 자이다. 죽어서 부패한 자이다. 죽은 자가 나의 생명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자신의 생명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나 자신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
더 비참한 것은, 바울은 우리의 심각한 상태를 지적하기 위해 2절에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 라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가 합당한 진노의 자녀라는 사실이 우리의 본성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본래 아름답게 창조되었던 인간의 본성에 문제가 생긴 것은 하나님을 거역한 인류 최초의 불순종 때문이었다. 불순종의 죄는 단순히 나라가 정한 법규를 어긴 정도의 차원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이요 본성의 원천이신 하나님께 저질러진 일이기 때문에, 그 사건이 인간에게 존재와 본성 차원의 근원적인 문제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 결과 진노의 자녀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도 기억하지 못하고,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깨닫지 못하며, 만에 하나 깨달았다 하더라도 인정하지 않고, 혹 인정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스스로 돌이킬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잠4:19 에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말씀한다. 죄가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우고, 죄가 우리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듦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더럽혀졌는지, 얼마나 추락하게 되었는지도 알지 못하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죄에 대한 무감각, 무지함은 우리가 바른 생각을 하거나 경건한 말을 하거나 선한 행위를 한다 해서 회복될 수 없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그 진노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면 인간의 본성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 일은 피조물의 몫이 아니라 창조주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원에 대하여 우리는 한계를 가진 자들이었다. 우리 안에는 어떠한 소망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본질적인 구원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다. 4-5절을 보라. ‘긍휼히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큰 사랑을 베푸셔서 우리의 본질을 바꾸시고 구원하셨다. 철저하게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뼛속까지 죄로 부패하여 내 안에 어떠한 소망도 없던 우리를, 눈과 귀가 가려지고 마음조차 강퍅해져서 의와 생명을 알지도 못하고 찾지도 않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로 회복시키셨다.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우리를 살리신 그 구원의 이유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있다고 말한다. 이는 우리에게 어떤 자격이나 능력이나 공로나 원인이 될만한 것이 없는 구원을 베푸셨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바울은 구원의 유일하고 근원적 공로를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 돌리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은 단지 말세에 일어날 사건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분명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말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6절을 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우리를 예수님과 함께 살리신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사 하늘에 앉히셨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씀의 시제를 잘 보아야 한다. 본래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다. 과거 완료형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이 역시도 과거 완료형이다. 이 말씀에 따라 지금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생을 지금 누리고 있는 자들이다. 또한 본문은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말씀한다. 이 역시도 머나먼 미래에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과거 완료형으로 기록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천상에 앉히신 것이 먼 미래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사실이라는 점이다. 지금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지만, 우리의 영혼은 거룩하신 하늘보좌 우편에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있다는 것이다.
여러분, 지금 이 자리의 여러분들은 이 땅에서 살아감과 동시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상의 자리에 앉아 있는 존재들이다. 바울은 우리가 지금 하늘의 주님과 함께 영광스러운 하늘보좌 우편에 앉아있는 상태라고 말한다. 이는 최면이나 환상이나 장래에 이루어질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이루어진 현실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독교에는 넉넉한 여유가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보다 높은 지위를 얻고, 고상한 신분을 취득하며, 보다 많은 월급을 받으려고 발버둥 치지 않는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 더이상 높아질 수 없는 하늘의 그리스도 옆자리에 앉아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 어느 것과 감히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자신을 최고의 상급과 최고의 기업으로 이미 받은 자들이다. 가장 최상의 풍요로움 속에 이미 거하는 우리는, 이제 내가 더욱 가지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내가 가진 극강의 풍요로움을 나누어줄 수 있는 방향으로 수고의 땀을 흘려야 한다.
자, 그렇다면 한가지 질문이 떠오를 수 있다. 아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지 않았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살리셔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보좌 우편에 앉히셨을까? 7절을 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그 목적이 무엇인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의 풍성함을 다음 세대들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이다.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은 단지 나만 누리고 끝나는 신앙의 전유물이 결코 아니다. 오늘 지금 내가 입은 하나님의 은혜는 단지 나만 누리고 끝낼 목적으로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지극히 크신 은혜를 베푸사 영원한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기시고, 음부에서 건져내어 하늘보좌 우편에 앉히신 목적이 무엇인가? 이는 분명 나 자신을 위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다가오는 모든 세대들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삼으신 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각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관심은 그분의 나라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즉 그 나라에 속한 자들이 온전히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받아 누려 이 땅 가운데 그분의 나라가 점차적으로 확대되어 가기를 원하신다. 물론 천국은 그 자체의 강력한 힘으로 점점 확장되어 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에 열심을 가지시니, 우리도 이에 열심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에 부지런히 임하시니, 우리도 이에 부지런히 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천하보다 귀하다는 그 영혼들을 지금도 찾으시니, 우리도 그 영혼들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바 된 영혼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시니, 우리도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들에 우리도 전해야 한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지금의 믿음의 지경에 이르기까지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는가? 내가 지금 예수 믿어 구원받고, 또한 내가 지금 굳건한 믿음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주의 종들의 헌신이 있었으며, 얼마나 많은 형제자매들의 수고가 있었는지 생각해보라. 지금 우리의 신앙은 내가 이룬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이 자라도록 성령께서 일하시되 때로는 우리의 내면에서 일하시고, 때로는 우리 주변의 헌신된 일꾼들을 통하여 우리를 자라가게 하신 것이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오늘 우리 역시도 내가 받은 은혜, 내가 받은 구원, 내가 받은 놀라운 사랑, 내가 하늘보좌 우편에서 누리는 이 영광스러움을 우리의 후배들에게, 우리의 후손들에게 전수해 주어야 한다. 이것은 다른 특별한 사람들만 가질 사명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라면 누구라도 이를 감당해야 한다. 그 크신 사랑을 깨닫는 자라면 누구라도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순종할 수 있는가? 먼저는 우리 가족을 돌아보아야 한다. 혹 우리 가족원 중에 아직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자들, 아직도 바른 믿음 가운데 성장하지 못한 자들, 시험에 들어 낙망하고 넘어진 자들을 일으켜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 주변 이웃들 가운데에도 자비의 주님, 은혜의 주님을 전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교회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가 준비중에 있다. 헌신된 교사들과 충성된 일꾼들이 일어나서 이 사명 감당하고자 열심히 준비중에 있다. 그러므로 이 일을 위해 전심으로 기도해 달라. 하나님께서 신앙의 선배들인 저와 여러분에게 자비와 은혜를 베푸신 것은,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하셨다. 우리 교회의 여름사역들을 위해 많은 관심도 가져주시고 또 마음을 합하여 기도해 주셔서, 우리교회의 교회학교가 이 사명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기를, 그래서 우리 양문교회를 통하여 많은 영혼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들이 충만해지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기도하자.
우리에게 놀라우신 은혜를 더하신 것이 단지 나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통하여 주님의 자비하심과 주님의 은혜를 다른 이들에게 전하게 하기 위함임을 살펴보았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통로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하자. 내 주변에 여전히 주를 믿지 않는 자들, 아직 장성한 믿음에까지 이르지 못한 자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내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고, 특별히 우리교회 교회학교의 여름사역들을 위해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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