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This automated analysis scores the text on the likely presence of emotional, language, and social tones. There are no right or wrong scores; this is just an indication of tones readers or listeners may pick up from the text.
A score of 0.5 or higher indicates the tone is likely present.
Emotion Tone
Anger
0UNLIKELY
Disgust
0UNLIKELY
Fear
0UNLIKELY
Joy
0UNLIKELY
Sadness
0UNLIKELY
Language Tone
Analytical
0UNLIKELY
Confident
0UNLIKELY
Tentative
0UNLIKELY
Social Tone
Openness
0.29UNLIKELY
Conscientiousness
0.27UNLIKELY
Extraversion
0.54LIKELY
Agreeableness
0.6LIKELY
Emotional Range
0.29UNLIKELY

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Anger
Disgust
Fear
Joy
Sadness
Language
Analytical
Confident
Tentative
Social Tendencies
Openness
Conscientiousness
Extraversion
Agreeableness
Emotional Range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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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은 일평생 한 번 주어지는 걸까요? 여러 번 주어지는 걸까요? 구원은 단 한 번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격 없는 우리에게 저항할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구원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구원이 주어지고 난 후 끝일까요?
구원 받은 순간에만 반짝 말씀대로 살았다가 그 후론 우리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요? 그렇지 않죠.
모든 성도들에게는 믿음의 길이 주어졌습니다.
천국에 이를 때까지 우리는 그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 길 위에 세우셨으니 우리 힘으로 돌아설 수도 없습니다.
다른 길로 빠질 수도 없습니다.
아니, 그런데 우리 삶을 돌아보면, 죄 짓기를 너무나 좋아하고 쉽게 다른 길로 빠지는 것 같지 않나요? 그건 죄인 된 우리의 모습이죠.
구원은 우리가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이루어 주시는 겁니다.
우리는 너무 연약하고 계속 넘어지지만, 성령님께서 우리를 견인해 가십니다.
신천대로를 타다 보면, 가끔씩 렉카가 고장난 차량을 끌고 가는 걸 봅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우리 인생과 참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장 난 우리를 완전하신 성령님께서 견인해 가시는 인생.
그것을 ‘성도의 견인’이라고 부르죠.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성도는 나 자신의 연약함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집중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메세지의 대상자들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기본적으로 성도의 배교 문제를 다루는 편지글의 성경입니다.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은 외부의 박해와 핍박, 그리고 성도들 간의 신학적 갈등으로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위기 의식을 가지고 펜을 든 겁니다.
히브리서가 쓰인 시기는 AD 64년경인데, AD 2022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참 귀한 교훈을 줍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구원을 얻고 부여 받게 된 믿음의 길에서 돌이키지 말고 끝까지 완주하라는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어떻게 믿음의 길을 완주할 수 있는지 두 가지 영적 교훈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대지
첫 번째,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어야 완주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7절과 8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마음이 완고해 지는 것 사이에 비교 대상이 하나 나옵니다.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마음이 완고했던 출애굽 세대에 대해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말씀하신 것도 아니고, 홍해를 가르시는 기적,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던 은혜,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지켜 보호해 주신 은혜를 함께 베푸시며 말씀하셨는데도 그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습에 대해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자가 스승을 시험할 수 있나요? 자녀가 부모를 시험할 수 있나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되죠.
그런데 백성이 하나님을 시험하다뇨.
이 모습이 8절에서 말하는 완고한 마음인 겁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왜 출애굽 시대의 그 완고했던 백성들의 모습을 언급하는 걸까요? 이 히브리서 편지를 받는 수신자들이 그 당시 출애굽 백성들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당시 백성들에게, 그리고 히브리서를 읽는 독자들에게,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11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설교 서두에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태초 전에 택정하신 자들에게 주시는 선물이며, 거부할 수 없는 은혜이기 때문에 한 번 주어지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 여겼던 자들은 예외적으로 구원이 주어졌다가 말을 안 들으니까 구원을 도로 빼앗아 가신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진정한 성도가 아니었던 겁니다.
이 곳에 모인 모든 성도님들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믿음의 자녀이심을 믿습니다.
믿음의 길을 끝가지 인내하며 완주하여 저 천국에 입성할 천국 시민들이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말은 말씀은 전심으로 믿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내 삶이 달라집니다.
고난 중에도 인내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내 몸의 양약입니다.
말씀은 어두운 내 앞길을 밝히는 등불입니다.
큐티 본문 외에 다른 본문들도 깊이 묵상하시고 온전히 믿으심으로 오늘의 사명도 잘 완수하시길 축복합니다.
2대지
두 번째,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서로 도와야 함께 완주할 수 있습니다.
12절과 13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우리는 한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성도는 혹 없는지,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려는 목원은 혹 없는지 조심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말하고 있죠.
조심해야 된다고 말이죠.
조심한다는 게 뭐죠? 우리는 조심할 때 어떻게 행동하나요?
우리 무거운 물건을 잔뜩 쌓아 들고 계단을 내려갈 때 계단 밑을 보지도 않고 터벅 터벅 과감하게 내려가나요?
아니죠.
한 계단, 한 계단, 유심히 살펴 보며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죠.
그렇습니다.
자알 살펴봐야 합니다.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목자든, 목원이든 관계 없습니다.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의 심정을 닮아 ‘나는 목원이지만 목자의 심정으로 다른 목원들을 살피고 관심을 가져주고 연락하고 기도해주고 도와야겠다.’고
마음 먹고 말씀을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요즘 이 세상은 더욱 바빠지고 더욱 복잡해져서 내 인생 하나 챙기기도 버겁다고들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 씻음 받고 구원 얻은 성도는 달라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머리 누일 곳도 없이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시고,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시며 새벽에 일어나 늘 기도하셨습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으시고 자신이 못 박힐 십자가를 직접 지고 언덕을 오르시고 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우리를 하나님과의 교제에 참여시키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14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내가 죽음을 선택할 때 다른 이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가 죽음으로 다른 이가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된다면 그것보다 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곳에 모인 모든 성도님들이 가정에서 목장 안에서 여러 관계들 가운데에서 예수님처럼 낮아지고 희생하며 다른 이를 살리는 사명을 잘 감당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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