튼튼하고 견고한 영혼의 닻. 소망

히브리서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187 views

1. 허락된 소망에 대한 불안감 2. 불안감을 없애는 확신 3.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 4. 하나님의 목적

Notes
Transcript
Sermon Tone Analysis
A
D
F
J
S
Emotion
A
C
T
Language
O
C
E
A
E
Social
View more →

허락된 소망에 대한 불안감

오늘 함께 나눌 본문은 허락된 소망에 대한 불안감을 가진 사람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이 허락된 소망의 의미는 다양하게 볼 수 있지만, 그 중 한가지를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바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한 계획에 대한 신뢰. 믿음을 이야기 합니다.
히브리서를 받아 읽는 독자들은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그 소망에 대한 확신을 다시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허락된 소망에 대해 불안감을 갖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향한 세상 사람들의 경멸어린 시선 때문입니다.
이 당시 대부분의 도시에서 종교적 의식은 곧 그들의 삶이었습니다. 그리스-로마에도 수많은 우상과 신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섬기고 예배하는 종교적 의식이 정말 넘쳐나는 곳에서 그들이 살고 있었던 것이죠. 다양한 종교와 문화들이 혼합되다 보니 신들을 향한 제사들이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종교의식과 삶을 살지 않겠다 다짐하고 구별된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예배를 철저히 구별하여 드린 것이죠.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의 다짐을 보고 경멸하기 시작합니다. 삶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그리스-로마 신들과 거리를 두는 그리스도인들을 보며 자신들의 수치로 여기기 까지 합니다. 비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볼 때마다 상처 주는 말을 했고 그들을 몰아세웠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운동선수로 비유했던 것입니다. 운동 경기의 혹독함을 견디듯 박해를 견디고, 달리기 선수가 경주의 긴장을 참아내듯 다스리고 인내해야 함을 이야기 합니다.
운동 경기의 혹독함을 견뎌내고 승리하듯, 달리기 선수가 긴장을 이겨내고 끝까지 완주해서 기쁨을 얻는 것처럼, 지금의 이 어려움을 인내하며 견뎌야 함을 강조합니다.
비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희들은 우리와 함께 사는 것을 포기했다. 너희들은 우리의 삶을 이끌고 있는 우리 신들을 버렸다. 너희는 배신자! 배교자다!”
아무리 믿음 좋은 사람이라도 이런 말을 계속해서 들으면 마음이 참 불편할 것입니다. 마음의 평안함이 깨어질 것입니다. 이제 막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사람들의 마음은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자신과 가까웠던 사람이 혹은 함께 동역하며 일을 했던 누군가가 갑자기 돌아서서 “너는 배교자다!”라고 말을 한다면, 참 견디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에 히브리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너희는 배교자가 절대 아니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9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가치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너희가 속해 있음을 확신한다! 라고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만들어낸 세상 신들을 배신한 배교자가 아닌, 세상을 실제로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을 받은 자들! 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죠.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부르고 있는데요. “사랑하는 자들"은 히브리서 오직 6장 9절에만 사용된 독특한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우리가 확신하는데, 너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며 구원을 받은 자이다. 우리는 한 하나님을 바라보고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흔들리지 마라! 라는 의미를 같습니다.
“배교자"라는 단어에 갇혀 힘들어하는 저자들에게 “사랑하는 자들!”이라 부르면서 배교자가 아니라고 말하며 위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완전한 소망의 확신

위로한 다음 그들에게 강력한 확신을 심어줍니다. 그들에게 익숙한 한 인물을 소개하며 그 확신을 심어주기 시작합니다.
바로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약속하셨고 심지어 맹세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한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약속이 성취된 시기가 인간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가운데 아브라함이 사람의 방법으로 이스마엘을 낳는 등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결국 하나님은 약속을 지켜내셨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이루시는 과정 속에 여러 일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을 주지 않자 당시 합법적이었던 방법인 종을 통해 자녀를 낳는 방법을 아브라함과 사라가 선택합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에 대해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셨고, 그러한 계획을 세울 때에도 잘못되었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마엘이 태어나고 15년동안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낳은 아들이 아니기에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에 대한 확신이 처음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타나지 않는 하나님을 보며 이 아들이 약속의 자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들이 약속의 아들이 맞다. 이제 나와 사라는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다! 라고 생각하며 긴장을 풀었던 순간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 아들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차라리 일찍 나타나시지, 아니 계획을 세울 때부터 잘못되었다 말씀해주셨더라면 이렇게 애정을 쏟지 않았을텐데 하는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요? 이것만으로도 충격적인데 하나님께서 한마디 더 하십니다.
“내년 이 맘때 쯤 너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이와 몸이 되었는데, 이제서야 그 약속의 아들을 주겠다고 하시는 것이죠.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을까요? 이해 할 수 없지만 받아드리고 믿기로 합니다. 그리고 1년 뒤 정말 그에게 아들이 생겼습니다.
그 아들이 잘 자랍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또 말씀하십니다. “그 아들을 나에게 제물로 받치라.”
솔직히 이건 선 넘은 행동 아닌가요? 이스마엘을 잘 키웠더니 그 아들도 아니라고 하고, 약속의 아들이라고 주셔서 잘 키우고 있는데 갑자기 바치라고 하고, 이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선을 넘은 행동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한술 더 뜹니다. 또 이해할 수 없지만, 납득할 수 없지만 받아드립니다. 순종합니다. 그리고 이삭을 데리고 말씀하신 산으로 올라갑니다.
이 이야기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지금 ‘배교자'라는 말을 듣고 흔들리고 있는 독자들에게 이 이야기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요?
히브리서의 저자는 단순히 독자들에게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단순하게 ‘세상이 강요하는 것에 넘어가지 마라. 흔들리지 마라. 하나님이 주실 구원을 바라보라'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삶은 믿음과 인내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날 때부터 보장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터전을 버리고 가면 새로 시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길을 떠났습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의 응답은 더뎌보이고, 답도 보이지 않지만 계속 인내함으로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불변한 보증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정말 밑도 끝도 없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 상황 속에서 약속에 대한 확신으로 버텨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

히브리서 저자는 아브라함의 인내와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것을 기다리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결국 아브라함은 해냈습니다. 그가 뛰어난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까요? 아브라함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저자는 아브라함이 뛰어났고 그만 이러한 인내를 할 수 있다!를 말하려 한 것이 아닙니다.
배교자라는 타이틀 속에 힘들어하는 독자들이 그리고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동일하게 “인내"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 19절을 함께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19절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소망을 갖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닻은 튼튼하고 견고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요. 여러 고민들과 어려움 그리고 낙심되는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만이 유일한 피난처 되시고, 소망 되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망을 붙잡기 위해 그 어떤 것보다 단단하고 튼튼한 피난처를 붙잡으라. 그 피난처는 나 예수 그리스도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죠.
우리는 늘 흔들립니다. 넘어집니다. 그리고 고민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언제 들어주실지, 응답해주실지. 아니 들어주시기나 할지에 대한 의문을 갖습니다.
우리는 배교자! 라는 소리를 직접적으로 듣지는 않지만, 사실 배교자라는 말을 들었던 이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우리를 향해 계속해서 미련하다 말하거든요.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왜 헌금하느냐. 왜 쉬지 않고 가서 앉아 있느냐. 왜 거기에 몸과 마음을 쏟느냐!”
“눈 한번 딱 감으면 이렇게 편할 수 없는데, 왜 그렇게 스스로 힘들게 사는지 모르겠다. 세상을 즐기면 참 좋다.” 등으로 우리를 유혹하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내 모습을 초라하게 만들어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흔들립니다.
흔들리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히브리서를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인내하며 참아야 하는 이유. 그리고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소망이 분명히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첫째 영혼의 닻입니다.
영혼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 하나님께서 불어넣어주신 본질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지어졌고, 그 분께서 불어넣어주신 이 영이 닻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이죠.
닻은 영원한 안전의 수단입니다. 제대로 닻을 내린 배는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흔들릴지언정 좌초되거나 넘어지거나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닻을 말씀하시며, 세상의 유혹 때문에 흔들릴 수는 있으나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자리를 지키게 될 것이며, 결국 태풍이 지나 물이 다시 들어올 때, 닻을 거두고 항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자의 소망. 우리가 가져야하는 믿음과 인내 그리고 소망. 아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소망은 이 닻처럼 떠내려가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있을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두번째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님입니다.
20절의 말씀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을 만나려면, 성막을 들어가 가장 안쪽에 있는 휘장 안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곳은 대제사장만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그 경계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 분이 죽으셨을 때 휘장이 갈라졌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거처였던, 아무도 갈 수 없었던 휘장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과 직접 대화하며 교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휘장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다. 이 것은 우리에게 분명하고도 강력한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헤매고 흔들리는 것을 막으려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의 고민과 갈등. 그리고 인내할 수 없게 만드는 모든 상황.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잃어가도록 만드는 순간이 오면, 우린 지체하지 말고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앞에 엎드려 하나님과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린 삶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소망에 대한 완전한 확신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고난이 오면 흔들릴 것이고, 평안함이 찾아오면 둔해져서 하나님의 약속을 잊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성경에 기록된 많은 믿음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요셉도, 모세도, 다윗도, 바울도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고난과 시련이 있었고 그들은 믿음과 인내로 그 일들을 견뎌 냈습니다.
그들이 했다면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와의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킬 능력과 힘도 있으십니다. 그 분의 일하심을 확실하게 보고 느끼기 위해 우리는 믿음과 인내로 지금 이 시기를 견뎌야 합니다.
흔들릴 수 있으나 떠내려가지 않도록 막아주는 영혼의 닻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지금의 이 시기를 잘 견뎌내고 결국 승리의 기쁨을 맛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