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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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 /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염미정: 어려서 교회 다닐 때 기도 제목 적어내는게 있었는데, 애들이 쓴거 보고 '이런걸 왜 기도하지? 성적, 원하는 학교, 교우관계 고작 이런걸 기도한다고? 신한테? 신인데?' 난 궁금한 건 하나 밖에 없었어. '나 뭐에요? 나 여기 왜 있어요?' 91년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고 50년 후면 존재하지 않을 건데, 이전에도 존재했고 이후에도 존재할 것 같은 느낌. 내가 영원할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에 시달리면서도 마음이 어디 한 군데도 한 번도 안착한 적이 없어. 이불 속에서도 불안하고, 사람들 속에서도 불안하고. '난 왜 딴 애들처럼 해맑게 웃지 못할까? 난 왜 늘 슬플까? 왜 늘 가슴이 뛸까? 왜 다 재미 없을까?' 인간은 다 허수아비 같아. 자기가 진짜 뭔지 모르면서 그냥 연기하며 사는 허수아비. 어떻게 보면 건강하게 잘 산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모든 질문을 잠재워 두기로 합의한 사람일 수도. '인생은 이런거야'라고 어떤 거짓말에 합의한 사람들. 난 합의 안 해. 죽어서 가는 천국 따윈 필요없어. 살아서 천국을 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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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대사입니다.
제 기억에 남는 가장 인상적인 대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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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염미정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습니다.
기독교는 죽어서만 천국에 간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살아서 이 땅에서부터 천국을 맛보게 하는 게 기독교입니다.
그런데 살아서 천국을 맛보려면 필요한 게 딱 한가지 있습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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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중 가장 어렵다고 알려진 히브리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엇일까요?
저는 히브리서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 무엇보다도 우월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히브리서를 보면서 딱 잡아야 할 유일한 단어는 예수님입니다.
그 분이 누구시며, 그 분이 어떤 일을 하셨기에 우월한 지 아는 것이 히브리서가 우리에게 바라는 목표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누구시며,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우리 믿음의 전부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는 안전한 항구에 내린 배의 닻처럼 믿음을 통해 우리의 삶을 견고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세상에 넘쳐나는 가치관들 속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삶을 위한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도와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더 나은 선택이 무엇인지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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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히브리서에는 당시 유대인들이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기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천사, 모세, 제사장, 제사 등 이런 것들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율법과 관련된 핵심 요소들입니다.
종교사회다보니 유대인들의 삶은 모두 율법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율법의 의식을 지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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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를 믿는 사람들보면 얼마나 철저히 율법을 지키나요?
제가 영국에서 학교다닐 때 제 옆집에 유대인이 살았습니다.
하루는 큰 맘먹고 그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한국에서 온 깨강정을 들고 옆집문을 두드렸습니다.
유대교 모자를 쓴 사람이 나와 저를 맞아주었습니다.
그에게 제가 한국에서 가져온 비스켓이라며 내밀었는데 그는 자꾸 받기를 거부했습니다.
자신들은 먹는 음식이 따로 있기 때문에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먹는 음식을 코셔라고 하는데 그것 아니면 먹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정도로 율법은 그들이 먹는 것, 사는 것과 같은 삶의 모든 것을 통제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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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들은 그들과 다를까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옛날처럼 종교사회는 아니지만 우리 역시 특정 세계관에 물들어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무엇인가요?
나를 움직이는 것들이 바로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치관들입니다.
무엇이 나의 삶을 움직이는 동력입니까?
돈입니까 아니면 명예입니까 아니면 행복입니까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들이 나를 움직인다면 그것들은 나의 믿음의 현주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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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히브리서는 율법, 제사 이런것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율법도 제사도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왜 나쁘겠습니까?
그런데 그것보다 더 나은 선택, 더 우월한 선택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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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흑백 텔레비전과 컬러 텔레비전이 있습니다.
그럼 우리들은 어떤 텔레비전을 보려할까요?
더 나은 선택이 무엇일까요?
빈티지 감성 이런 목적이 아니라면 상식적으로 당연히 컬러 텔레비전을 보려고 하겠죠?
지금 히브리서는 그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흑백 텔레비전같은 옛 언약, 구약만 붙들고 살래? 아니면 컬러 텔레비전같은 새 언약, 신약을 붙들고 살래?
이것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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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 말씀에서는 율법이 정한 제사장들보다 예수님이 훨씬 더 낫다, 우월하시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성경에 나온 신비한 인물인 멜기세덱을 이야기합니다.
멜기세덱이 누구일까요?
이 사람은 성경에서 두번밖에 등장하지 않는 신비한 인물입니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은 창세기 14장입니다.
아브라함이 주변 나라들의 연합군을 쳐부시고, 돌아오자 멜기세덱왕이 그를 축복해줍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왕에게 십일조를 바칩니다.
이것이 독특한 점은 멜기세덱이 왕이기도 하고, 제사장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왕이면 왕이고, 제사장이면 제사장인데 왕이면서도 제사장이라는 점이 특이합니다.
이것이 왕이자 제사장이신 예수님의 특징과 동일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이시자,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를 위해 영원히 기도하시는 제사장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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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성경에는 멜기세덱의 족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출생과 죽음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멜기세덱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신비한 인물로 남아있습니다.
예수님도 출생은 있으시지만 인간에게서 태어나지 않으시고 성령으로 잉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그래서 이러한 멜기세덱의 존재는 예수님의 예고편과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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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17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17절, 그를 두고서 말하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서, 영원한 제사장이다” 한 증언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시편 110편 4절에 나온 구절입니다.
​
하나님이 멜기세덱을 잇는 영원한 제사장을 예비하고 계시다는 예언입니다.
당시 레위 제사장들이 있었는데 왜 멜기세덱과 같은 또다른 제사장이 필요했을까요?
레위 제사장들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11절은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불완전한 것은 여러 명이 필요하지만, 완전한 것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죄의 문제를 결국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제사장들이 계속해서 필요하지만,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면 여러명의 제사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
그것을 23절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23절,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음때문에 그 직무를 계속할 수 없어서, 그 수가 많아졌습니다.
​
제사장들은 사람이기에 죽으면 또 세워야하는 육체적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율법에 따른 레위 제사장들이 오랜 세월동안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것 자체가 그들이 하는 제사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임시방편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했지만 완전히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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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제사장들은 자신들도 죄인들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죄도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27절입니다.
27절, 그는 다른 대제사장들처럼 날마다 먼저 자기 죄를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리고, 그 다음에 백성을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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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그’는 예수님인데 예수님과 인간 대제사장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인간 대제사장들은 자기 죄부터 먼저 해결해야하고, 그 다음에 백성들을 위해 제사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날마다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점, 먼저 자기 죄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 모두 인간 제사장들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완전히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날마다 제사를 드릴 필요도 없어야하고, 자기 죄를 해결할 필요도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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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맞는 예는 아니지만 이해를 돕기위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마블 영화를 보시면 영웅들이 여러명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힘도, 능력도 모두 완전하지는 못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완전한 히어로가 1명만 있어도 다른 영웅들은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매번 히어로물들은 다른 시리즈를 만들기 위해 히어로를 완벽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약점이 하나씩 있죠.
슈퍼맨도 우주원석에 약하잖아요.
그런것처럼 레위제사장들만으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루기에는 불완전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자손대대로 제사장들이 세워져야만 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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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우리 삶에 적용해볼까요?
우리는 돈도 필요하고, 명예도 필요하고, 성공도 필요하고, 행복도 필요합니다.
돈만 있다고 완벽해지는 게 아닙니다.
명예만 있다고 완벽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불완전합니다.
이것만 있으면 행복할 거 같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결국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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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만 얻으면 삶이 완벽할 거 같지만 어디 그렇습니까?
가요를 찾아보면 대부분의 주제가 사랑이야기입니다.
사랑이 완벽했다면 그렇게 주저리 주저리 쓸 말할 이유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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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남을 돕는 일이 우리에게 궁극적인 만족을 주나요?
이런 봉사도 내 마음을 일부 위로해줄 수는 있지만 일시적일 뿐입니다.
그게 그렇게 우리를 만족시킨다면 모든 사람들이 벌써 했겠죠.
다른 것들보다 좀 더 나은 선택일수는 있지만 우리를 완전히 만족시키지는 못합니다.
​
이처럼 우리를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무분별하게 추구할 때 그것들로부터 ‘마상’, 즉 마음의 상처를 입기 쉽습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결국 모두 불완전하기 때문이죠.
​
그런데 역설적으로 인간인 우리가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완전한 무엇인가를 원한다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완전한 것을 원하기 때문에 불완전한 것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완전한 구원을 제공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완전한 분 밖에 없습니다.
그 분이 바로 멜기세덱처럼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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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기에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레위지파의 자손이 아니고, 유다지파의 자손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따르면 제사장은 레위지파에서만 나와야 하는데 예수님은 아닌 것이죠.
그럼 예수님은 어떻게 대제사장이 되셨을까요?
​
먼저 예수님은 율법에 따라 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맹세와 약속으로 대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17절에 나온 “너는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서, 영원한 제사장이다”고 하신 게 바로 하나님이 하신 맹세입니다.
그래서 20,21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20-21절,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맹세없이 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레위 계통의 사람들은 맹세없이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분의 맹세로 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
그러므로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레위자손만 제사장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던 율법도 변화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제사장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
예를 들어, 시대가 변화되면 옛날 법들도 변해야 하는 것과 같은 것이죠.
구약과 신약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옛 언약을 새 언약으로 대체하신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으라는 예수님의 유명한 말도 이런 의미입니다.
​
18절입니다.
18절, 전에 있던 계명은 무력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게 되었습니다.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
그러니까 율법에 따라 주어진 레위 제사장들을 통해서는 하나님이 뜻하신 구원을 이룰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 레위 제사장들이 불완전하기에 그들이 드리는 제사도 불완전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율법은 무력하고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율법 그 자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우리를 구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
그러나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님은 다릅니다.
16절입니다.
16절, 그는 제사장의 혈통에 대해서 규정한 율법을 따라 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니라, 썩지 않는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셨습니다.
​
완전한 것은 영원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혈통으로 제사장을 세우는 율법이 아닌 썩지 않는 생명의 능력으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썩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 바로 부활의 생명입니다.
영원한 것 앞에 일시적인 것들은 그 빛을 잃어버리는 법입니다.
​
27후반절부터 28절입니다.
27-28절, 그는 자기 자신을 바치셔서 단 한번에 이 일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약점이 있어도 율법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대제사장으로 세우지만, 율법이 생긴 이후에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아들을 대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
인간제사장들은 매일마다 흠없는 동물들을 바쳐야 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없는 자기 자신을 흠없는 제물로 드리셨고, 단 한번의 십자가 죽음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더이상의 동물제사는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영원한 분이 영원한 제사를 십자가에서 드리셨기 때문에 영원한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
우리 영혼은 끊임없이 영원한 것을 목말라 합니다.
그 영원한 것을 찾지 못하면 우리 영혼은 방황하고 갈급한 불만족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요즘 왜이리 우울증이 많은가요?
수년동안 통계를 보면 40세 이하 사망원인 1위가 매년 자살입니다.
청년 우울증이 심각하다보니 이렇게 자살률이 높은 것입니다.
40세 이상은 뭘까요?
사망원인 1위가 암입니다.
사람들이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
제가 아는 목사님도 우울증에 걸렸다고 합니다.
영원한 그리스도를 설교하면서도 자신은 눈에 보이는 일시적인 것을 좇았기 때문입니다.
저도 항상 경계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목회자도 우울증에 걸릴 정도니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얼마나 위험하겠습니까?
​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한 진리의 말씀을 믿으며, 영원한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앞에 두고도 눈에 보이는 것, 일시적인 것만 따라갈 위험성이 있습니다.
교회도, 사람도, 목회자도 모두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
[결론]
오늘 말씀을 예화로 마무리 하려합니다.
​
사막에서 길을 잃은 한 사람이 있었다.
오랜시간을 헤맨 후라서 그의 목은 점점 타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저 멀리 허름한 오두막같은 곳이 보였다.
미친듯이 그곳을 갔는데 그곳에는 물 펌프와 작은 물주머니 하나,
그리고, 한 장의 메모가 놓여있었다.
그 메모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이 물펌프를 작동시키려면 위에 물을 부으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원하는 만큼의 물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남자는 선택의 길로에 서게 되었다.
만약, 이 메모를 믿고 그곳에 물을 부어 그 펌프가 작동한다면,
그는 원하는 만큼의 물을 충분히 얻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만약, 이 메모가 거짓이어서 펌프가 작동하지 않으면,
그는 적은 물도 잃고 목말라 죽게 될 것이었다.
그가 만약, 그 작은 물주머니의 물을 마시면 잠시 동안 갈증은 해결하겠지만,
충분하지 않아 어차피 결국 죽게될 가능성이 컷다.
그는 잠시 생각한 후, 위험을 감수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는 물주머니의 물을 모두 그 펌프에 넣고 핸들을 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지나자 많은 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원하는 만큼의 물을 여러 통에 담고, 심지어 샤워도 했다.
그는 잠깐동안의 만족을 포기했기에 그는 이것을 얻을 수 있었다.
​
그런데, 가만 메모를 보니 뒤에 또다른 메모가 써 있었다.
"당신이 잘 마쳤으니, 이제 다음 사람을 위해 그 물주머니를 채워놓으십시오."
그래서 그 사람은 그 작은 주머니에 다시 물을 채워놓고, 펜을 꺼내
그 메모에 덧붙여 이렇게 써 놓았다.
"저를 믿고, 물펌프를 작동시키세요"
​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목말라 합니다.
그들은 그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일시적 만족과 기쁨을 주는 세상적 즐거움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할 뿐입니다.
우리가 일시적 만족을 내려놓으면 우리의 영원한 만족이 되신 그 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위해 더 나은 선택을 더 탁월한 선택을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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