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열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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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이틀동안 우리는 짧고 굵게 하지만 예수님 안에서 즐거운 교제의 시간! 성경학교를 진행합니다. 토요일에 이렇게 우리 아기들과 부모님들 그리고 선생님들을 만나니 참 즐겁고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짧고 굵은 성경학교인만큼 말씀도 짧고 굵게 딱! 나눌 예정이에요. 그러니 집중해서 말씀을 듣고 반 별 모임 때 함께 그 은혜를 나누어 주시기를 부탁드려요!
우리 성경학교 주제를 함께 읽어볼까요? 시작!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
지난 주일 나눴던 말씀처럼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주셨던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 새롭게 변화시켜주실 것을 기뻐하는 우리 말랑이 영아부가 되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목적을 잃고 더럽혀진 성전
목적을 잃고 더럽혀진 성전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분명한 목적들을 갖고 만드셨어요. 하나님은 작고 보잘 것없는 잡초 혹은 돌을 통해서도 영광 받기를 바라셨어요. 우리가 그러한 것들을 보며 하나님을 떠올린다면 그것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죠.
하나님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이 만든 것에도 분명한 목적들이 있어요. 저는 지금 아이패드에 설교문을 작성하고 조금씩 보면서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요. 만약 제가 아이패드를 충전하지 않며다면, 아니 갑자기 이 것이 지금 고장나서 켜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제가 이것을 가져온 목적이 사라지게 되겠죠.
그것처럼 세상에는 목적 없이 만들어진 것은 없습니다. 만약 물건이 그 목적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이 좋아하고 아끼는 물건들이 분명 있을텐데요. 그 물건이 그 목적과 용도를 잃어버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나요?
대부분 버리지 않을까요? 고쳐보려 하다 더 망가질 수도 있고, 혹은 종종 실수로 인해 잘못 사용하거나, 괜한 욕심을 부렸다가 오히려 기능을 망가뜨려 버리게 되는 경우가 있죠.
무엇이든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따라 쓰여야 합니다. 만들어진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기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될거에요.
오늘 말씀에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그 본래 목적을 상실하고 완전히 변해버린 곳이 나와요.
어디 일까요? 맞추시는 부모님에게는 제가 커피 기프티콘을 쏘겠습니다! 맞아요! 성전입니다!
구약 시대의 성전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의미했어요. 성전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고 죄를 용서 받을 수 있었어요. 여러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성전은 무너지기도 했고, 다시 재건되기도 했어요. 그 크기는 점점 작아졌지만, 그럼에도 성전의 역할은 그대로였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사셨을 때 당시 성전은 그 목적과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렸어요. 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해 성전이 변질된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은 1년에 세 번. 절기 때마다 성전에 나아가 속죄제를 드림으로 자신들의 죄를 용서 받았어요. 이 때 제물은 소, 양, 비둘기 등이었어요. 비둘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리는 제물이었구요.
그런데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살지 않았다는 것이죠. 성전에서 먼 곳에 떨어져 사는 사람들이 소나 양을 데리고 시기에 맞춰 성전에 오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린거에요.
비둘기야 새 장에 넣어서 올 수 있겠지만, 소나 양은 걸음도 느리고 또 사람의 마음대로 빨리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을 드려야 하는데, 보채거나 강하게 끌고 오면 최상의 제물이어도 약해지거나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먼 곳에서 오는 사람들의 또 하나의 문제는 사용하는 화폐가 예루살렘의 화폐가 달랐다는 것이죠. 성인이 되면 성전에 성전세를 내야 하는데, 자신들이 사용하는 화폐는 예루살렘에서 사용되지 않으니 낼 수가 없었던 거에요.
이것을 알았던 사람들이 성전 근처에서 제물을 팔기 시작했고 또 환전을 해주기 시작했어요.
속죄제를 위한 제물을 팔고 환전을 해주는 것은 참 좋은 목적에서 시작되었어요. 그런데 이 좋은 목적이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고 점점 문제가 되기 시작했어요.
소, 양, 비둘기를 파는 장소가 성전 뜰 안으로 들어와 버렸어요. 제사를 위해 제물을 파는데, 제물들이 제사를 준비하고 드리는 곳까지 들어와 버리니 실제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된 것이죠.
거룩하고 경건하고 조용해야 할 그 제사의 장소가 완전 도때기 시장이 되어서 아무도 집중할 수 없게 되었어요.
새로운 길을 여신 예수님
새로운 길을 여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성전을 엎으신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어요. 제물을 파는 목적을 잃어버렸어요. 환전을 하면서 폭리를 취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성전은 예배를 드리는 장소가 되지 못했어요.
완전히 변질되어진 것이죠. 이 광경을 보고 예수님은 몹시 분노하셨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소, 양을 쫓아내시면서, 환전상들의 상을 다 엎어버리셨어요.
만약 우리가 제물을 팔고 돈을 바꿔주는 환전상이었다면 이 상황을 보고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어이가 없었겠죠. 그리고 화가 났을거에요.
그들도 그랬고, 또 예수님의 행동을 바라보던 유대인들도 예수님께 따지듯 묻기 시작해요.
“당신! 무슨 자격으로 우리에게 이런 일을 하는 것이죠? 표적. 기적을 보여주시오!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그 근거를 대시오!”
근거를 대라고 했어요. 그러면 근거를 대야겠죠. 그런데 예수님이 또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해요.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황당하지 않았을까요? 아니 무슨 권한으로 이렇게 엎어버리고 소란을 일으키는지 물었는데, ‘성전은 허물라. 사흘 동안 일으키겠다’라고 대답하세요.
이해할 수 없는 대답에 다들 어이가 없었을거에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사흘동안 일으킬 성전’은 바로 예수님 자신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곧 십자가의 길을 걷고 죽어야 하실 자신에 대한 이야기였죠.
허물어지는 성전은 예수님의 죽음이고
사흘동안 세워지는 성전은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죠.
근거와 표적을 보여달라는 사람들의 말에 예수님은 확실한 표적을 보이며 대답을 하셨어요. 이스라엘이 요구하는 표적이 바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어요. 어쩌면 우리도 이 사건에 대한 뜻을 알지 못했다면 예수님이 이상한 대답을 했다고 생각했을 거에요.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에는 더 이상 이러한 건물로써의 성전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셨어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어디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라는 것을 성전 정화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셔요.
누구든지, 어디서든지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죠.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는 예배자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는 예배자
사랑하는 영아부 아기들 부모님들 그리고 선생님들! 지금 우리 앞에는 새로운 길이 열려 있어요. 새로운 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매우 익숙한 길이에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고 사심으로 열어주신 새로운 길!이에요. 우리가 그분을 구세주로 고백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함으로 발견하게 된 길!이에요.
죄로 인해 목적을 잃고 살아가던 우리에게 하나님 지어진 목적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셨어요. 그 길은 이미 우리에게 열려 있어요. 아주 활짝 열려 있어요.
힘들고 넘어져도, 마음이 아프고 낙심이 되고, 자녀로 인해 속상하고 복창이 터져도. 얘가 커서 뭐가 될까 싶은 마음이 들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바로, 우리 앞에 열려져 있는 이 길이 있기 때문이에요.
제가 가끔 인도에서의 일을 이야기 하죠. 전 인도에 있었을 때 하나님께 끊임없이 물었어요.
“하나님 제가 가고 싶었던 나라는 지난 1년간 사역을 했고, 아직도 사역이 남아 있는 필리핀이었습니다. 그런데 인도로 하나님이 보내셨어요.”
“그런데 여기 솔직히 너무 힘들어요. 온통 우상 밖에 없고 나를 넘어뜨리는 일밖에 없어요. 여기만큼 지독한 광야는 없을거에요!”
아침마다 피어오르는 우상들을 위한 제사와 향들 그리고 피 냄새. 방에도 학교에도 강의실에도 있는 이방신들의 초상화.
하루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큐티하지 않으면 머리가 아파서 지낼 수가 없는 곳이었어요.
정말 힘들었는데 1년정도 지나 한국으로 돌아오게 될 때 그 이유를 알게 되었어요. 인도에서의 삶은 저에게 있어 하나님을 가장 찐하게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저를 향한 하나님의 분명하고도 확실한 계획을 제가 확신하는 시간이었어요. 저는 광야의 길을 걷고 있다 생각했지만 사실 저는 예수님을 통해 걷게 된 이 새로운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죠.
우리 모두 각자 처한 상황은 분명 다릅니다. 하지만 똑같은 것은 바로 모든 고난, 슬픔, 역경, 아픔을 이겨 낼 수 있는 길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죠.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통해 걷게 된 그 길이 우리에게 주어졌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의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목적 있는 삶을 드러내고 있는거에요.
사랑하는 말랑이 영아부 여러분! 우리 모두 새로운 성전이신 예수님, 새로운 길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지금처럼 잠시 흔들리더라도 끊임없이 그 길을 걸어나가는 복된 삶이 되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