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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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인가 제자인가?
팬인가 제자인가?
얼마 전 제자훈련 35기와 36기의 과정이 마쳤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훈련의 과정을 다 마친 제자 여러분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기를 다짐하신 모든 훈련생 여러분들을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응원하며 격려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제자훈련 수료식을 하며 교회에서 책을 한 권씩 선물했던 것 기억이 나시나요? 목사님께서 설교에서도 잠깐 언급을 하셨는데요. 바로 ‘팬인가 제자인가’라는 책입니다. 10년 전 쯤 번역이 되어 출판된 후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책인데,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이 자리를 빌어서 꼭 사서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추천할 만큼 제자로서의 삶에 대해 귀한 통찰력을 주는 아주 좋은 책입니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오직 한가지입니다. “진짜 제자란 어떤 사람인가?” 이 책이 나온 직후에도 아주 인기가 많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다는 것은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게 무늬만 그리스도인이 아닌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책의 제목을 빌려 말하자면 팬이 아니라 진짜 제자가 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교회의 강단에서도 참 그리스도인, 참 제자와 같은 제목의 설교가 어딜 가던 계속해서 전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유진 피터슨이라는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건강한 명사에는 형용사가 필요 없다. 형용사는 건강한 명사를 어수선하게 만든다. 그러나 명사가 문화 때문에 손상되었거나 병에 걸렸다면, 그때 형용사가 필요하다.” 우리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데에는 본래 그리스도인 혹은 제자라는 단어로도 충분한데 거기에다가 참, 진정한, 진짜와 같은 꾸밈말을 붙여야 할 정도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통탄할 노릇이지요...
점차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이 사라져가면서 지금 우리는 어떤 위기를 맞고 있습니까? 대한민국 사회 속에서 한국 교회는 신뢰를 잃어가고 있고, 이전의 위상은 그저 과거의 영광으로 기억될 뿐입니다. 이제 다음세대의 아이들은 여기 계신 분들이 추억하는 영광스런 교회의 모습을 마치 박물관에서 그 흔적을 어렴풋이 짐작해볼 수 있을 뿐입니다. 마치 예루살렘 성전을 잃은 유대인들의 자손이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만 과거에 찬란한 영광 속에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던 성전에 대해 경험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이러한 결과가 주어졌습니까? 세상의 박해와 위협이 이전과 비할 수 없이 너무나도 거세졌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죄와 허물 때문인 것임이 분명합니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위협하고 방해하지만, 한국 교회의 위기는 각자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였기 때문에 온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큰 위기를 맞은 한국 교회를 향해 심각한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참된 회개야 말로 구원을 향하게 하고, 잘못을 깨달아 돌이키면 언제나 소망은 다시 한 번 솟아오르게 되는 법이니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여 봅시다.
히브리서
히브리서
오늘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는 사실 설교하기에 쉽지 않습니다. 여러가지로 수수께끼가 많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기록했는지? 원래 누구를 위해 쓰여졌는지?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 기록되었는지?”라는 질문들이 해결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전하고자 하시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법인데, 히브리서의 경우에는 명쾌하게 답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연구된 결과를 통해 대체적으로 구약성경에 대해 아주 박식한 초대교회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 유대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쓴 편지라는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처음 이 편지를 받아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제국의 박해와 유대교의 핍박으로 인하여 아주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었는데요, 자신들이 본래 자리했던 유대교로 돌아가면 자신들을 향한 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느냐, 아니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느냐를 두고 아주 심각하게 고민하며 더러는 정말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도 했던 그런 상황 중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히 3:7-9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과 이전의 삶 사이에서 고민하며 갈등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마치 그들의 선조들이 하나님을 거역한 것과 같다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히브리 백성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후 광야에서 생활을 하였을 때, 저 유대인의 선조들은 자그마치 40년이라는 세월 동안 원망과 불평 가득한 마음을 품고 여호와 하나님이 진정으로 믿고 의지할 만한 분인지 끝없이 시험하였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생활하며 삶에 어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바로 “애굽에서의 삶이 더 나았다”라는 말입니다.
출 14:10-12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출 17:2-3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민 11:4-6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놀라운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통해 자신의 전능함을 드러내신 하나님께서 날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하시는데도 저 이스라엘의 선조는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광야의 생활이 척박하고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척박함과 불편함은 사실 이유와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백성인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백성인지 시험하시려 광야에서의 생활로 인도하셨던 것이지요. 하루하루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돌보심을 누릴수 있었던 광야의 생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야 할 태도는 불평과 원망과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히 3:10-11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삶의 길을 걷지 못한 자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의 길을 걷지 못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노하시며 맹세하셨습니다.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맹세하신대로 출애굽의 1세대들은 40년의 광야생활 중에 모두다 죽고 약속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지요.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히브리서 기자를 통해 다시 한 번 기억하게 하시며 분명히 경고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삶의 길을 걷지 못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는 삶의 길을 걷지 못한다면 그들도 저 선조들과 같이 약속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구요.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을 전하며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히 3:12-13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마치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 생활이라는 시험의 기간이 주어졌듯이, 지금 이 편지를 받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시험의 기간이 주어졌습니다. 로마의 박해와 유대교의 핍박은 마치 광야와 같이 척박하고 불편하였지요. 하지만 그럴지라도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였고, 하루하루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들의 선조들에게 행하셨던 것 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구원의 약속을 받은 그들에게 요구되는 태도는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삶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는 삶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하나님 앞에 보인 태도는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것과는 달랐습니다. 이들은 고난과 핍박 가운데 원망과 불평을 터뜨리며 급기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구원의 약속마저 의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믿음이 사라지고 의심이 찾아오자 이들에게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찾아왔는데요, 이것은 하나님 앞에 심각한 범죄입니다. 다시 한 번 죄의 종이 되더라도 잠시의 배고픔과 목마름과 삶의 위협을 벗어날 수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겠다는 뜻이니까요. 이것은 에서가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려고 장자권을 팥죽 한그릇과 바꾼 것보다 더욱 악하고 미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희생으로 값을 치르신 가장 귀한 선물을, 영원한 생명이라는 가장 크고 위대한 선물을 고작 이땅의 쾌락과 즐거움과 안락함으로 바꾸어버리는 것이니까요.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들의 마음을 향해서 악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마음 자체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악합니다. 그리고 이 악한 마음으로부터 모든 심각한 죄악들이 열매로 맺히게 됩니다. 복음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것, 이것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의 변질과 타락이 시작되는 것이고, 결국 그런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게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지금 악한 마음을 품고 이전의 삶이 더 좋았다고 여기는 자들,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자 한 걸음씩 구원의 길에서 멀어져가는 자들을 향해 이렇게 권면합니다. 히 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조금 번역이 어색한 감이 있어서 새번역 성경으로 다시 한 번 읽어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처음 믿을 때에 가졌던 확신을 끝까지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을 함께 누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처음 믿을 때에 가졌던 확신, 지금 이들이 반드시 회복해야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것,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구원의 길이라는 그 확신 말입니다. 약속을 의심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다면, 약속을 확신하는 것 자체는 반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합니다. 그리고 그 확신으로부터 모든 선한 행실들이 열매로 맺히게 되는 법이구요. 이 확신을 가진 자들은 분명 고난과 핍박 속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더욱 신실하게 따르며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진리의 말씀이 우리에게 분명히 교훈하는 바는 끝까지 믿는 자가 구원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어제의 믿음이 아니라 오늘의 믿음
변함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삶의 길을 걸어가는 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는 삶의 길을 걸어가는 자 구원
유대인 그리스도인 여기서 실패
그리스도인의 삶과 고난
약속을 의심x 이전 삶 그리워하기 x 돌아가기 x
팬이 되지 말라
서로 도우라
히브리서 3:13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