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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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들

창 1:26-28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딛 2:11-14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개념 1 - 하나님의 형상

실재론적 견해 - 이성, 의지, 영혼 등
관계론적 견해 -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존재
기능적 견해 - 하나님 통치의 대행자 혹은 하나님 통치의 동역자 /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반영하여 나타내는 존재

개념 2 - 구원

죄와 심판으로부터 건져짐
구원받은 결과로서 질적으로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시작 =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
칼빈 - “하나님은 아담에게서 마치 거울에 비치듯이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기를 원하셨다”(Inst II,12,6,7).
강유원 - “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신을 보고 싶으면 신의 모습을 닮은 존재, 인간을 보아야 한다.”(숨은 신을 찾아서, 47p)
3. 구원의 목적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

중요 단어

4084 παιδεύω (paideuō): vb.; ≡ DBLHebr 3579; Str 3811; TDNT 5.596—1. LN 33.226 teach, instruct, train, educate (Ac 7:22; 22:3; Tit 2:12+); 2. LN 36.10 discipline, train (1Ti 1:20; 2Ti 2:25+); 3. LN 38.4 punish, chastise (Lk 23:16, 22; 1Co 11:32; 2Co 6:9; Heb 12:6, 7, 10; Rev 3:19+)

설교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가르치고, 지도하고, 훈련한다. 첫째로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부인하고) 살도록, 둘째로 복스러운 소망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살도록.
첫째, “그 은혜는 우리를 교육하여, 경건하지 않음과 속된 정욕을 버리고(부인하고), 지금 이 세상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게 합니다.”
경건 - יִרְאָה, 두려움, 경외함. 모든 생활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태도를 말함.
경건하지 않음 -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하는 마음이 없이 살아가는 태도.
속된 정욕- 세상에 속한 욕심.
욕심 - 욕심 자체는 중성적인 의미.
은혜가 어떻게 우리를 교육하는가? 또한 그 은혜란 무엇인가?
은혜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죄의 용서와 자녀삼으심.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십자가는 죄(경건하지 않은 것, 세상 정욕)이 얼마나 더럽고 추악하고 끔찍한 것인지 폭로한다.
어느새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갔습니다. 청년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수련회로 상반기를 마무리 하고 하반기를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참 감사한 일입니다. 지난 상반기를 돌아보면 참 하나님의 은혜였다고밖에 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가득하였는데, 정말 조금의 과장도 섞지 않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잠깐 썰을 좀 풀어보자면, 제가 처음 청년부를 맡게 된 것부터가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있었습니다. 분명 중고등부 사역자로 청빙이 되어서 신성교회에 온 첫날 갑작스럽게 청년부를 맡게 되었고, 제가 계획한 모든 그림들을 다 내려놓고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죠. 아무런 계획도 세워두지 못한 채로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의지하며 한발 한발 내딛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청년부 안에서 먼저 다시 한 번 복음에 집중을 하게 하셨습니다. 지난 6달 동안 나누었던 설교가 죄다 복음 시리즈였지 않습니까? 자유, 은혜, 칭의 등등 여러가지 관점에서 다시 한 번 복음을 깊이 들여다보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복음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돌아보는 시간들이 있었구요, 이제 하나님께서 이 복음을 믿는 자로서 마땅히 살아가야 할 모습들에 집중을 하게 하고 계십니다. 여름 수련회가 이러한 변화의 분기점이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지금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은 이제 공동체의 내실을 다지는 것에서 공동체를 통해 선한 영향력을 드러내는 것으로, 복음의 능력이 우리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이웃과 지역사회에 흘러가는 것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련회를 통해 파라볼라노이라는 주제를 깊이있게 나누었는데, 이제 우리가 말그대로 파라볼라노이가 되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감사하게도 수련회를 마치고 바로 맞은 지난 주일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의 파라볼라노이 한 명을 우리에게 보여주셔서 그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선교사님의 선교 보고를 통해 참 많은 도전과 감동을 받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인도하시는 대로 우리 모두가 복음의 능력으로 세상으로 나아가 선한 능력을 나타내는 파라볼라노이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해봅니다.
오늘은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해서 조금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갑작스러운 질문이지만 그리스도인이 아닌 누군가가 여러분들에게 “구원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어본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겠습니까? 대부분이 아마도 이렇게 대답을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죄와 심판에서 건져주신 것. 훌륭한 답입니다. 진리 중의 진리요, 복음의 핵심임에 분명하지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구원에 대해서 충분한 설명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구원이 무엇인지 물어오는 이웃들의 마음에는 “당신들이 말하는 구원이 진짜입니까?”하는 의문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웃들이 정말 궁금한 것은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이 무엇인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우리에게 물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웃들이 정말 궁금한 것은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이 진짜인가?”하는 것이지요.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의 복음이 정말 믿고 의지하여 인생을 걸만한 것인가?”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구원을 물어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우리의 이웃들에게 우리가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이 진짜라고 대답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이 진짜임을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는 말과 논리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행실로 그들에게 대답해주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로서의 변화를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대답을 들려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이 시간 잊혀져가는 복음의 중요한 진리를 한가지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곧 구원을 죄와 심판에서 건져지는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인데요, 동방정교회에서는 이것이 오늘날까지 아주 잘 가르쳐지고 있지만,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는 소홀히 여겨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창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는 사람이 분명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았다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할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여러가지 설명을 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속성을 닮은 것들 즉, 이성, 도덕성, 인격성, 영혼 등이 있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구요, 하나님과 관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또 고대 근동에서의 신의 형상이라는 메타포를 추적해보면 하나님의 통치의 대행자 혹은 하나님의 통치의 동역자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반영하여 드러내는 존재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반영하여 드러내는 존재로서의 하나님의 형상의 개념에 집중을 해보도록 합시다.
칼빈은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사람에 대해 창세기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서 마치 거울에 비치듯이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기를 원하셨다”(Inst II,12,6,7). 사람은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이 거울에 비추어 나타나는 것처럼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세상에 드러내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강유원이라는 철학자는 이러한 진리를 잘 포착하여 책에 이렇게 기록을 하였습니다. “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신을 보고 싶으면 신의 모습을 닮은 존재, 인간을 보아야 한다”(숨은 신을 찾아서, 47p). 그렇습니다. 사람은 원래 서로에게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보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하지만 죄를 짓고 타락하여 더이상 우리는 서로에게 온갖 더럽고 추악한 면모들을 보이며 살아가게 되었지요.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을 잃은 사람이 다시 한 번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 곧 구원입니다. 더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회복되는 것이 곧 구원이지요.
이런 맥락을 염두에 두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자세히 한 번 살펴봅시다. 디도서는 전통적으로 사도 바울이 그의 제자인 디도에게 쓴 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다룰 부분은 디도가 맡아 양육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곧 우상숭배와 온갖 쾌락을 쫓던 삶에서 돌이킨 이방인들에게 바울이 교훈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11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딛 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고 분명하게 교훈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우리는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이 구원의 결과에 대해서 바울은 무엇이라 말할까요? 딛 2:12-13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바울은 구원받은 자들에게 두가지 중요한 변화가 나타난다고 가르칩니다. 개역개정의 번역이 조금 어색해서 제가 원어의 뉘앙스에 맞게 다시 한 번 번역해서 읽어드리겠습니다. “그 은혜가 우리를 훈련하여 / 1.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게 하고 / 2.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기다리며 살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는 분명히 성품에 변화가 생깁니다. 구원을 받은 자들은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게 되구요, 이제는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여기서 경건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경건이라는 말은 본래 경외를 뜻하는 히브리어 יִרְאָה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경건이란 모든 생활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태도를 뜻하지요. 경건한 자는 자신의 모든 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기를 힘씁니다.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동의 기준을 하나님께 두며 살아가지요. 반대로 경건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의 뜻에 개의치 않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동의 기준을 자신에게 두며 살아가지요. 그렇기에 이 둘의 삶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납니다. 경건한 자의 삶에서는 하나님이 드러날 것이요, 경건하지 않은 자의 삶에서는 사탄이 드러날 것입니다. 경건한 자는 하나님을 닮은 자요, 경건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을 닮지 않은 자입니다. 바울은 지금 구원받은 자에게는 경건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과 성품의 변화가 나타나며, 이러한 변화를 통해 그들의 삶에는 이전과 다른 모습이 생길 것이라고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을 하나 짚고 넘어가야합니다. “양육하시되”라는 단어를 한 번 보십시오. 이 단어는 원래 παιδεύω라는 단어로 “훈련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훈련한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결코 저절로 가만히 있으면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님을 가르치고자 하는 의도에서 사용된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새로운 성품, 새로운 마음을 우리 안에 새롭게 지어주시지만, 그러한 새로운 성품과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훈련해가야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닮은 모습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라고 하는 부분에서 그것을 버려야 하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는 일,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은 모두 우리가 노력하여 이루어가야 할 일들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같은 진리를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엡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마찬가지로 옛 사람을 벗어 버리는 일, 새 사람을 입는 일 모두 우리가 노력하여 이루어가야 할 일들이지요.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 아래에서 말입니다.
자 이제, 바울이 12절에서 교훈하고자 했던 것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는, 은혜의 결과로 마음과 성품의 변화가 일어나며, 이렇게 변화를 받은 자들은 계속해서 더욱 하나님을 닮은 자가 되어가는 노력을 하며 살아갑니다. 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였고, 계속해서 회복하여 간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 가운데에서는 완전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온갖 죄의 습관과 유혹이 자리잡고 있는 우리의 육신이 끊임없이 우리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부활의 몸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사모한다고 하였습니다. 고후 5: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우리가 새로운 부활의 몸을 갖게 되는 때는 언제입니까?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는 다 홀연히 변화되어 새로운 부활의 몸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고전 15:51-53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새롭게 갖게 될 그 몸은 경건하게 살아가고자하고 하나님을 닮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과 성품을 방해하는 몸이 아니라, 우리를 돕는 몸입니다. 바울이 13절에서 교훈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딛 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바울은 분명히 우리의 변화의 완성을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날로 미루어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 날 주시겠다 약속하신 새로운 몸을 기다리며 이 세상에서의 삶 가운데 포기하거나 좌절하거나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한걸음씩 나아가라고 가르치고 있지요. 12절과 13절의 교훈을 종합해서 구원의 결과를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과 성품에 변화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과 성품을 따라 계속해서 하나님을 닮고자 노력하는 자들입니다. 여전히 우리의 삶에 세상 정욕이 틈타 무너질 때가 종종 있지만, 완성될 그날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한걸음씩 걸어가는 자들입니다. 즉,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했고 계속해서 회복해나가며 마침내 완전히 회복될 자들입니다.
구원의 결과가 이렇기에 분명히 구원받은 자들의 삶에서는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나야 합니다. 칼빈이 말했듯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했다면 우리의 삶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비추는 거울과 같아져야 합니다. 우리의 이웃이 우리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을 보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보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비록 완전하지는 못할지라도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세상에 드러나고 그려지고 비춰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로 그런 삶을 살아가게 하시고자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딛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14절에서 구원의 목적에 대해 분명하게 교훈합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새롭게 되어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우리가 수련회 때 나눈 말씀이 기억나지 않습니까?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착한 행실과 바울이 교훈하는 선한 일은 쓰인 단어가 완전히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 스스로를 희생하셨고, 우리의 착한 행실은 우리의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에 대한 증거가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게 하시려 스스로를 희생하셨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우리를 통해 세상은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닮은 우리만이 그런 영광스러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 구원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분명히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의 삶은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의 증거가 되고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는 새로운 마음과 성품을 은혜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을 닮아가는 놀라운 변화를 시작하셨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을 닮아가는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가고 계십니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습니다. 날마다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버려야 합니다. 계속해서 옛 사람을 벗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계속해서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이 계속해서 반복되지만 포기하지 않고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노력하며 한걸음씩 나아가는 여러분의 삶을 통해 세상은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시키셨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아가라 말씀하십니다. 칼빈의 말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을 세상에 비추어내는 거울과 같은 자들입니다. 거울에 때가 묻어 거울을 통해 비춰지는 하나님의 모습이 흐릿해질 수는 있어도, 우리가 거울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모습을 더욱 잘 비춰낼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다시 한 번 깨끗이 닦아봅시다. 날마다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득 부은 온갖 선한 일들에 열심을 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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