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This automated analysis scores the text on the likely presence of emotional, language, and social tones. There are no right or wrong scores; this is just an indication of tones readers or listeners may pick up from the text.
A score of 0.5 or higher indicates the tone is likely present.
Emotion Tone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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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g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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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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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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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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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Tone
Analy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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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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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t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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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Tone
Open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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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cient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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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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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reeabl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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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al 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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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Anger
Disgust
Fear
Joy
Sadness
Language
Analytical
Confident
Tentative
Social Tendencies
Openness
Conscientiousness
Extraversion
Agreeableness
Emotional Range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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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연속으로 만나니 참 행복합니다.
저만 행복한거 아니쥬? 예수님 안에서 이런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 있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참 감사하고 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틀 인 것 같습니다.
우리 아기들의 심령에 잊혀지지 않는 하나님의 흔적이 남는 성경학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
오늘 함께 나눌 이 이야기는 밤에 일어난 한 사건에 관한 것입니다.
‘밤’.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밤이라고 하면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느낌이 먼저 우리에게 다가 올 것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사람들은 그 어두움에 숨어 다양한 특히 부정적인 일들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한복음 안에서 ‘밤’도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니고데모가 한밤 중에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이것은 니고데모라는 사람의 영적인 상태가 어둡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면서 동시에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었습니다.
산헤드린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며, 보증이 되는 사람만 가입하여 활동 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라는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사회적으로 고위층이었는지 알 수 있는 것이죠.
고위층이면서도 니고데모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랍비여”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표적들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표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죠.
왜냐하면 그는 바리새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세오경의 세계관을 갖고 있는 그에게 있어 예수님은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간 이유는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찾아가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면 이런 표적을 이룰 수 없다!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던 때와 같이 또 뜬금없는 대답을 하십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굉장히 쌩뚱 맞은 말씀 아닌가요?
니고데모는 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표적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말만 했습니다.
아직 그의 궁금증은 털어놓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라고 하신 것은, 니고데모가 말하지 않아도 니고데모의 마음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러운 예수님의 말씀에 니고데모는 되묻습니다.
“사람이 늙었는데 어떻게 다시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합니까?”
그의 질문에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나다’라는 말은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을 말하는데요.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이 말. 성령으로 태어난다는 이 말은 정말 중요해요.
왜냐하면 우리가 엄마 뱃속에 다시 들어갈 수 있다 해도, 다시 태어날 수 있다 해도 해결 할 수 없는 일이 있기 때문이죠.
바로 아담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원죄에요.
죄를 지은 아담으로부터 모든 인류가 이어졌어요.
다시 말해 우리 모두는 아담의 혈통이라는 것이죠.
동일한 조상.
아담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원죄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 마리아를 통해 이 땅에 성령으로 잉태 되어 오셨어요.
이 것은 아담의 혈통으로 오지 않았음을 이야기 하는거에요.
아담의 혈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예수님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그 분에게는 죄가 없는거에요.
죄가 있을 수 없죠.
예수님께서 거듭나야 한다.
라고 말씀하신 것.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은 바로 우리의 혈통이 바뀌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에 사로잡힌 인생이 아닌, 성령님으로 사로잡힌 인생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 것이죠.
구원을 받은 우리는 이 말씀을 이해하지만, 니고데모는 당시에 성령님을 알지 못했고 또 거듭나지 못했기에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또 묻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님은 그런 니고데모를 향해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세요.
이것은 이런 뜻이에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여 구원을 받아 성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내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알지 못하다!라는 것은 나는 하나님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하나님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에 필요하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라는 깨달음과 고백이 필요하다는 뜻이에요.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모세오경을 잘 알고 있었던 니고데모에게 가장 익숙한 출애굽 시대에 있었던 놋뱀 이야기를 통해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시작하셔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였습니다.
길이 험해지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입으로 원망하기 시작했죠.
그러자 광야의 불뱀들이 몰려와 백성을 물기 시작했고 이내 많은 사람이 죽어갔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회개하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높이 달라고 하셨죠.
그리고 그 놋뱀을 쳐다보면 다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놀랍게도 말씀에 따라 놋뱀을 쳐다본 사람은 모두 살았어요.
놋뱀을 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대로 죽어죠렸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미해요.
장대에 달린 뱀을 쳐다본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았던 것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됨을 말씀하신 것이죠.
만약 끝까지 믿지 않고 보지 않는다면, 놋뱀을 보지 않아 사람들이 죽었던 것처럼, 예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
영생을 얻지 못하고 죽어가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영생이 바로 ‘아는 것’과 관련되어 있어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 예수님을 알고 나의 입으로 고백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영생이에요.
거듭나는 사람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고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게 돼요.
어떤 상황에도 나를 포기하지 않고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에 보이지 않고, 답답한 현실과 미래도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빛으로 나아가는 삶
사랑하는 말랑이 부모님들, 거듭난 사람의 특징은 빛을 향해 걸어가요.
반면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한밤 중에 예수님을 찾아갔던 니고데모처럼 어둠 가운데 있게 될거에요.
거듭난 사람은 빛을 좋아합니다.
때론 그 빛이 너무 강렬해서 나의 허물들을 보게 해 힘들기도 하지만, 빛이 있기에 그 허물을 벗어 던질 수 있게 돼요.
그래서 계속해서 빛으로 나아가려 해요.
빛을 통해 나의 상황을 바로 보고, 나의 죄를 고백하며, 예수님이 내 삶에 필요합니다!
라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이죠.
지금처럼 그렇게 빛의 자리에 머물러 주세요.
빛의 자리에 머물러 주셔야 우리 아기들도 빛을 익숙하게 받아 드리고, 빛의 자리에 있으려고 하게 될 것이에요.
니고데모는 한밤 중에 예수님을 만나 어두움을 물러가게 하는 큰 빛을 발견했고 그의 삶이 변화되기 시작했어요.
그것처럼 저도 여러분들도 우리 아기들도, 빛 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봄을 통해 삶과 생각과 행동의 변화가 끝없이 일어나는 삶을 살아내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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