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쫓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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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열심의 불완전함과 그리스도 희생의 완전함

히브리서 9:1–10 NKRV
1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2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3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4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5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6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 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8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에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헌금을 드리고, 구제하고, 봉하사고, 선교하는 모든 것들을 한 마디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한 방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그 예배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구제하고, 봉사하고, 선교하는 그 행위 자체를 우리 신앙의 만족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봉사를 통해, 선교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되면서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좋다", "믿음이 좋다"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몸부림 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찾아 헤매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고 노력하지만 늘 실패하고,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함과 죄라는 전혀 상반된 속성은 본질적으로 서로 만날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야만 살 수 있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듯이, 나무가 흙에서 뿌리가 뽑혀서는 살 수 없듯이, 그렇게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하나님으로 부터 비롯된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올 수 있는 정해진 틀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그게 바로 율법이죠.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완전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 율법이 완전하면 완전할 수록 인간은 절망하게 되었던 거죠. 왜냐하면 인간은 율법을 지키려고 하면 할 수록 지킬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치기 때문이죠. 율법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또 하나의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게 바로 성막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그분의 임재를 위한 장막, 즉 거룩한 성소를 짓게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는 죄인들이 용서받고, 구원받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신 겁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그 관계를 이어가는데 필요한 제사제도. 아무데서나 제사 드릴 수 없었고, 반드시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규례에 따라야 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재물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방법을 벗어난 채, 드리게되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하나님께서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그분의 백성이 된 사람들은 항상 그 점을 염두에 두어야 했습니다.
그 장막 안에는 첫 장막와 둘째 장막이 있었는데, 장막 안에 있는 것이 성소이고, 둘째 장막이 지성소(the most Holy Place)입니다. 성소에는 제사장들만 아침 저녁으로 들어가서 분향하고 날마다 등불을 켜야 했습니다. 또 안식일마다 진설병을 바꾸어 드렸습니다. 게다가 이 제사장들도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둘째 장막, 지성소(the most Holy Place)에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 1년에 한 번 있는 속죄일 (The day of Atonement)에만 들어갔습니다. 그날도 피를 가지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이 피는 자기 자신과 백성들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희생 제물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이 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서 수양의 피를 속죄소 동편에 뿌리고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렸습니다(레 16:14,15).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첫 언약 아래 죄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좁은 길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성전 뜰에서 기다렸고 오직 제사장들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율법과 성막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장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장치를 의지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향해서 한 걸음도 옮길 수 없었습니다. 여차하면 하나님에 대한 불신으로, 또 우상숭배로 하나님과 멀어지기를 밥먹듯이 했습니다. 율법과 제도로는 인생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그분의 거룩하심을 닮아간다는 것이 한계가 있음을 하나님도 아셨습니다. 8,9 절을 보십시오.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은 아직 하늘 성소에 들어갈 길이 열려 있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휘장이 여전히 가로막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건 지상에 세우신 하나님의 성소가 여전히 불완전한 상태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좁힐 수 없는 한계를 담고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입니다. 그래서 성막제도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 온전케 할 수 없습니다. 첫 장막에서 섬기는 규례는 완전한 제사와 예물이 올 때까지 잠시 맡겨 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땅에 두신 성소와 성소에서 섬기는 규례 모형으로 삼아서 사람에게 진짜 실체를 보여 주고자 하신겁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이런 식의 방법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입니다.
그 실체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을 통한 개혁입니다. 이 땅에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짓지 않은 장막, 곧 창조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인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첫 언약 아래 속한 대제사장들은 염소나 송아지의 피를 뿌려 자기와 백성들의 죄를 속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짐승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성소와 그 제도는 예수님을 통해 들어갈 참 장막과 완전한 제사의 비유에 불과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오직 예수님 한 분 이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으면서도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가까이 할 능력이 없어,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살 길, 곧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장치 마저도 버겁게 여기는 불완전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모든 율법과 제도를 완성하신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한계를 뛰어넘어서 우리에게 찾아오신, 그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복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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