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

킹덤스토리 해설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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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수요 기도회에 오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그 유명한 모세가 홍해를 가른 기적에 대해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분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 말씀을 나눌 때 저와 성도님들이 많은 은혜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하나님 나라 백성은 위기가 찾아와도 하나님만 의지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하나님 나라 백성은 위기가 찾아와도 하나님만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완악한 바로와 애굽백성들에게 열가지 재앙을 내리셨고 바로는 그제서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는 것을 허락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고 난 뒤에 바로와 그 신하들의 마음이 변합니다. 5절에 보시면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놓아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합니다.
이런 상황은 돌발 상황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두고 모세에게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 바로가 뒤를 따를텐데 이 일을 인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고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기가 닥쳐오지만 사실 이 위기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절에 바닷가 앞에 장막을 치게 한 것도 이 바다를 이용해서 하나님께서 큰 일을 하실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위기이지만 실은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여기에 믿음으로 반응하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이야기를 처음엔 잘 알아들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말씀하셨을 때 4절 끝에 보면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고 바닷가 근처에 야영지를 잡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애초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 계획을 신뢰하지 않았으면 “애굽 군대가 쫓아온다고? 이럴 때가 아니다. 빨리 더 먼 곳으로 도망가서 숨자!” 이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애굽의 전차부대가 다가오니까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7절에 보면 선발된 병거 육백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니 지휘관들이 다 거느렸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말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병거 육백대가 선발되었다고 말하고 나서 애굽 모든 병거를 동원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냥 생략해서 애굽의 모든 병거를 다 동원했다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새 번역 성경을 보니까 선발된 육백대를 특수병거 육백대로 번역했습니다. 애굽의 특수 병거와 그냥 병거 전체가 다 동원된 대규모의 추적부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이렇게 많은 전차가 동원되는 일이 얼마나 흔했겠습니까? 지금 우리도 길 가다가 탱크 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과 같습니다. 멀리서 쳐들어오는 애굽의 군대를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넋이 나갑니다. 두려워서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10절에 여호와께 부르짖는다고 할 때 이것은 원망을 담은 부르짖음을 뜻합니다. 11절에는 백성들이 모세에게 원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가지고 우리를 여기서 죽게 하느냐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서 여기서 죽게 하느냐” 이렇게 말합니다. 심지어 12절에는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더 낫다고 이야기 합니다. 440년동안 노예 체질로 길들여진 것이 바꾸는 게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내리신 열 가지 재앙으로 애굽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고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믿음 없는 말이 튀어 나옵니다.
이것을 보며 우리는 위기 상황에서 과연 내가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도달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는 당장 나에게 위기가 온 것이 아니라서 좀 더 객관적이고 신앙적인 답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위기가 당장 내 눈앞에 들이닥치면 마음이 흔들리고 꺾입니다. 14장 4절에서 하나님께서 애굽 군대 온다고 하셨을 때 백성들이 바닷가에서 잘 대기하다가 막상 전차부대 소리가 들리니까 정신을 못 차리지 않습니까? 이것이 날 것 그대로 죄인들의 모습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나의 경험과 생각과 나의 성향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행동하는 것이 참 쉽지가 않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나의 판단을 믿고 내 손안에 가진 것을 믿고 사람을 붙들고 의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힘으로 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만을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을 보며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삶의 모든 순간 하나님을 의지할 때 나오는 그 찬양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는 그 고백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여러 가지 상황을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그 허락하신 상황 가운데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심지어 우리를 놀라게 하고 두려운 상황이 왔을 때도 하나님은 우리의 손이 아닌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길 원하십니다.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려 하나님의 능력을 간구하며 하나님께 향할 찬양을 준비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말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믿으며 그 구원 역사가 내 삶 가운데 일어나길 소망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보며 이 말씀 가운데 일어난 사건들이 내 삶에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40년치의 노예체질이 형성된 것처럼 우리에게도 각자 삶의 무게만큼 죄인의 습성이 자리잡고 있어서 하나님을 의지하려 해도 잘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거은 하루 아침에 안되고 이런 과정이 필요합니다.
2- 하나님은 용사로서 하나님 나라 백성을 위해 친히 싸우신다.
(설명)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은 용사로서 하나님 나라 백성을 위해 친히 싸우신다는 것입니다. 13절과 14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싸우시니까 백성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모세의 말이 나옵니다.
13절에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원어상으로는 여호와의 구원이라고 하는데 원문 그대로 읽으며 예수아 야웨입니다. 이 예수아는 우리가 아는 여호수아,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예수아 라는 명사는 전쟁을 통한 구원을 의미합니다. 예수아라는 단어를 통해서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용사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14절에도 보시면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 싸우신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가만히 있게 됩니다.
사람은 위기가 오면 가만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본문에 가만 있으라는 말이 두 번이나 나오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만히 있어야 하는 이유는 움직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구원이 너무나도 완전하기 때문에 그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 받을 때 우리가 그 십자가에 뭔가 보태기를 한 적이 있습니까? 그걸 보태야 한다고 하는 게 로마카톨릭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가만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모세가 하나님의 구원이 베풀어질 때 가만히 있으라는 이야기는 복음이 얼마나 완전한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물셀 틈 없이 그분의 백성을 보호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용사 되셔서 전쟁을 통해 구원을 베푸실 때 하나님의 백성은 절대적으로 안전한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이번에 일어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알 수 있지만 전쟁을 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강한 나라라도 피해가 아주 없을 수는 없습니다. 전쟁을 하면 일방적인 승리는 없습니다. 승전국이나 패전국이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죽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주 된 목적은 애굽을 무너뜨리는 것이 일번인지 그분의 백성을 지키는 것이 일번인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홍해 바다에서 구원을 베푸실 때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다름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신 일입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으로 백성을 지키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3장 21절 22절에 보면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나옵니다. 이 구름 기둥이 이스라엘 백성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게 표현이 좀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되려면 낮에서 밤이 될 때 구름 기둥이 떠나야 하고 밤에서 낮이 될 때 불기둥이 떠나야 합니다. 그런데 떠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22절에 떠나지 않는다는 동사를 보면 이 동사가 단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서로 다른 기둥이면 이 동사를 복수로 표현했을텐데 이게 같은 기둥이라서 단수를 썼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두 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아마 불기둥을 구름이 둘러싼 모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보이고 밤에는 구름 안에 불이 보여서 불기둥이 되는 것이 아닌가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특수한 구름으로 백성들을 보호하십니다.
19절을 보면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뒤로 갑니다. 이 여호와의 사자는 13:21절에 하나님이 앞서 가신다고 했을 때 그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뒤로 가실 때 구름기둥도 같이 갑니다. 아까 나온 불과 구름 기둥입니다. 말씀드린것처럼 구름과 불기둥은 하나이기 때문에 불기둥이 따로 안 갑니다. 하나님께서 이 기둥을 옮기셔서 저기서 막 다가오는 애굽의 군대와 이스라엘 사이를 막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전쟁하실 때 자기 백성을 철저히 보호하십니다. 완전한 구원을 이루십니다. 20절에 보면 특이한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구름이 애굽과 이스라엘 사이를 막았는데 저기 애굽 쪽은 구름과 흑암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쪽, 이스라엘 백성 쪽은 밤이 밝습니다. 그런데 참 특이합니다. 밤이 어떻게 밝습니다. 밤은 원래 어둡지 않습니까? 그런데 밤이 밝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이 구름기둥이 불과 구름기둥이라는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불구름 기둥은 낮엔 구름만 보이고 밤엔 불을 비출 수 있는 그런 구름입니다. 이 구름이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할 땐 저쪽 애굽을 향하는 방향은 어둡게 만들고 이스라엘 백성 쪽만 밤에도 환하도록 한 것입니다. 놀라운 기적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깜깜한데다가 구름이 막고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 한테 갈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성경에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가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본문에 자세히 설명이 안 되어 있지만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 소리는 들렸을 텐데 그 소리를 좇아서 가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혹시 이 구름이 방음 기능까지 있나 하고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전쟁으로 구원하실 때 그분의 백성을 이런 방법으로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이쪽 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밤새 동풍이 불어서 바다가 갈라집니다.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썰물이 아니라 바다가 갈라져서 벽처럼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바다가 지나간 바닥이 물기가 젖어서 질척여야 하는데 땅이 말랐다고 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자연현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행하시는 기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장면을 다 봤습니다. 그 쪽은 밤이 밝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을 것입니다.
밤이 지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갈라진 바다를 지나갑니다. 새벽이라 이제 뭔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니까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은 좇아갑니다. 하나님께서 그걸 가만 두고 보시지 않습니다. 24절에 보시면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히십니다. 그들이 자랑하는 병거 바퀴가 빠지고 달리기가 어렵게 됩니다. 이 때 애굽 사람들이 뭔가 느낀 것 같습니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신다. 도망가자!”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십니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벽처럼 쌓여있던 바닷물이 애굽 군대를 향해서 쏟아졌습니다. 애굽 부대가 자랑하던 그 전차와 기병과 군사들이 다 몰살당했습니다. 놀랍게도 29절에 이스라엘이 지나가는 부분에는 물이 좌우로 벽을 이뤄서 육지로 안전하게 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적용)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위해 용사가 되시고 싸우십니다. 백성들을 절대적으로 안전하게 지키시며 싸우십니다. 백성들은 가만히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자기가 싸우겠다고 애굽 군대에게 달려들었으면 오히려 하나님의 싸움을 방해하는 일이 생겼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가 싸우려 하고 우리가 나서려고 합니다. 살아남기 위한 우리의 본능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싸운다고 모든 것을 이길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싸우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만의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기위한 싸움을 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싸우시면 반드시 이기십니다.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로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거뜬히 이기십니다.
세상의 수많은 것들이 우리를 향해 덤벼듭니다. 물질문제, 인간관계문제, 가정에서의 문제, 건강문제, 이외에 생존의 문제들이 우리와 싸우자고 덤벼듭니다. 우리는 내가 가진 것으로 어떻게든 싸워보려고 하지만 지치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우리의 용사 되셔서 우리를 지키시고 구원하시는 싸움을 한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용사이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까? 이미 하나님께서는 사탄에 나라에 대항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복음의 토대 안에서 앞으로도 우릴 위해 싸우시는 용사를 믿습니다.
이렇게 삶의 현장에서 우리의 하나님이 승리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어려움을 해결해주시는 분이며 하나님만이 나의 고통을 돌봐주시는 분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찬양과 고백을 기뻐하십니다. 자녀들이 부모님을 인정해주면 너무 기쁘지 않습니까? 젊은 엄마 아빠들은 아이가 엄마 최고 아빠 최고라고 하면 그게 너무 기쁩니다. 그것 때문에 더 힘이 납니다.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하신 일에 놀라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정말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용사되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결론
설교를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용사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우리의 용사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승리하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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