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을 붙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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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438장 - 사도신경 - 성경봉독(교독)
찬송가 438장 - 사도신경 - 성경봉독(교독)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를 숨쉬게 하는 공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혼, 세상을 따뜻하고 밝게 만드는 사랑 같은 것들은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분명히 있는 것이며, 보이는 것들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지요. 또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도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분명 세상에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 중에 우리에게 훨씬 더 중요하고 크게 영햐을 끼치는 것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보이는 것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신뢰하는 어리석음에 종종 빠지곤 합니다. 이 세상의 많은 현자들도 일찍부터 인간의 이러한 어리석음에 대해 깨달아 보이지 않는 것을 주목하며 살았습니다. 완전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 저들도 보이지 않는 것을 주목하며 살았는데, 하물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더 보이지 않는 것을 주목하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고후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오늘은 히브리서 말씀을 통해 우리의 평생에 붙들어야 할 것, 가장 소중하며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함께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히브리서를 기록한 기자는 9장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계속해서 대조하며 보이지 않는 것의 완전함을 설명합니다. 여기서 보이는 것이라 함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으로 제정된 것들을 말합니다. 율법대로 지어진 성전과 성소, 율법대로 세워진 제사장, 율법대로 바쳐지는 희생제물의 피, 이것들은 모두 보이는 것들이지요. 분명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한계가 있는 것들이고, 일시적인 것들이었지요.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보이는 것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히 9:9-10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 보이는 성전과 성소에서, 보이는 제사장이, 보이는 희생제물의 피로 드리는 제사는 보이는 육체를 깨끗하게 할 수는 있지만 보이지 않는 양심까지 깨끗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통해 제정된 것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 오직 보이는 육체를 위해서 세워진 일시적인 것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히 9: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성전과 성소, 제사장, 희생제물의 피와 같이 보이는 것들은 사실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이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하늘은 우리에게 보이는 하늘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늘 즉, 하나님께서 계신 하늘을 뜻합니다. 이 구절에 사용된 모형이라는 단어에 집중해봅시다. 모형은 원래의 것을 설명하고 가리키는 것을 말합니다. 즉, 모세의 율법을 통해 세워진 성전과 성소, 그리고 제사장과 제물의 피는 더욱 완전한 원래의 것들을 가리키고 있고, 세워진 제사법은 그저 죄와 부정함을 씻기 위해서는 피가 필요하다는 원리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히 9:22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모세의 율법이 증거하는 것은 확실히 이전의 시대에 속한 것들이었습니다. 아까 이야기 하였듯이 분명한 한계가 있었지요. 모세의 율법으로는 새로운 시대를 넌지시 바라보며 소망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모세의 율법을 통해 세워진 것들로는 이룰 수 없었던 것들을 이루심으로 새롭고 영원한 시대를 여셨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율법처럼 우리에게 보이는 영역에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이루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히 9: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예수님은 보이는 성소가 아닌 보이지 않는 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보이는 성소에 대해서 손으로 만든 성소라, 참 것의 그림자라 말하고 있구요, 보이지 않는 성소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계신 그 하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씻는 제사를 드리시기 위해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히 9:25-26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예수님은 보이는 희생제물의 피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희생제물의 피 즉, 자신의 피로 죄를 씻는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이것은 분명 우리가 볼 수 있는 제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드려진 제사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제사보다 더욱 확실하고 완전한 제사입니다. 모세의 율법대로 드리는 제사는 단순히 죄로 더럽혀진 육체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도 죄를 지을 때마다 반복해서 드려야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제사는 우리의 육체뿐 아니라 양심까지 깨끗케 함에도 단 한번으로 충분합니다. 모세의 율법이 모형으로서 가리키던 완전한 제사를 예수 그리스도 께서는 단번에 이루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강조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제사는 완전한 제사이기 때문에 더 이상 반복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완전하기 때문에 단 한번만으로도 모든 믿는 자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들을 해결하기에 충분합니다.
보이는 성소에서 보이는 제사장이 보이는 희생제물의 피로 드리는 보이는 제사보다 보이지 않는 성소에서 보이지 않는 제사장께서 보이지 않는 희생제물의 피로 드리는 보이지 않는 제사가 이토록 훨씬 더 중요하고 완전한 것입니다. 보이는 제사보다 보이지 않는 제사가 이토록 믿는 자들의 삶에 더더욱 큰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계속해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대조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드리신 완전한 제사를 강조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 중에 예수님을 믿게 된 자들 중에 모세의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사이에서 더욱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갈피를 못잡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던 옛 생활에 향수를 느끼며 유대교로 돌아가려 하던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그들을 현혹되게 만들었을까요? 보이는 것을 주목하고 보이는 것을 의지하며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연약함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연약함을 가진 인간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이제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는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붙드는 것보다 당장의 눈에 보이는 것들을 주목하고 의지하며 중요하게 여기기 쉽습니다. 당시 유대인들 중에 예수님을 믿게 된 자들의 눈앞에 있었던 것들을 생각해보십시오. 여전히 그 화려함을 뽐내며 서있는 예루살렘 성전과 그럴듯한 예복을 입고 제사를 집전하는 제사장들, 그리고 죄책감을 느낄 때마다 흘릴 수 있는 무수한 제물의 피가 그들에게 허락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히브리서 기자가 분명하게 밝히듯 그저 옛 시대에 속한 일시적인 것들이며 모형일 뿐입니다. 그저 육체만을 깨끗하게 하는 한계가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니 무엇을 주목하고 의지하고 중요하게 여겨야 하겠습니까? 모세의 율법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이 편지가 읽혀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루살렘 성전은 로마 군대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완전하게 무너졌습니다. 마 24:1-2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이렇게 보이는 것이 우리에게 아무리 의지할만할 것처럼 여겨져도 결국에 보이는 것들은 다 지나갈 뿐입니다. 완전하지 않습니다. 오직 보이지 않는 것만이 영원하며 완전합니다.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이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붙드십시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십시오. 얼마나 크고 화려한 예배당에 출석하는지가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그럴듯한 예복을 입은 교역자들이 많은 교회인지가 또, 얼마나 구색을 갖춘 예배의 형식과 장비들과 환경들이 충분한 교회인지도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보이는 것들이 다 갖추어져 있다 할지라도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모든 것이 헛될 뿐입니다. 물론 방금 제가 말한 모든 것들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모든 보이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가 진정으로 주목하고 붙들고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보이는 것들로 성도님들의 공허한 마음을 채우려 하기보다 예수 그리스도로 그 마음을 가득 채워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