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느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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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2년 7월 17일 주일
제목 : 위로
본문 : 느헤미야 1장 1-11절 *구727
[도입]
여러분들은 느헤미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많은 이들이 느헤미야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가지거나, 또는 눈길을 준 적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로 성경을 통독하다보면, 창세기는 넘기지만, 어찌어찌하여 출애굽기까지는 넘겼다 하지만, 레위기를 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느헤미야까지 읽을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로 “우리 그럼 신약부터 함께 읽어볼까?”라는 권유와 함께, 구약은 뒤로 한채 신약을 우리는 접하게 됩니다.
실제로 저도 그렇게 성경 통독을 권유해왔고, 또 실제로 신약의 성경이 말씀을 준비함에 있어 훨씬 더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교회 다니며 나름 말씀에 집중했다 하는 친구들은 구약이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신약이 헬라어로 기록되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헬라어의 경우 영어와 매우 유사합니다. 그래서 헬라어를 보았을 때, 난생 처음 보는 단어이고, 처음 듣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영어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 이 뜻인가?” 라며 유추하여 맞춰볼 수라도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어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 이 성경을 읽을 수 있음에 있어 참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원어성경사진) 사진을 볼 때 우리는 이유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사진을 보시면, 우선 해석이 안된다는 것을 둘째치고, 절의 구분이 보이십니까? 정말 애석하게도 히브리어는 그다지 친절한 친구가 아닙니다. 절의 구분조차 없습니다. 즉, 오늘날 우리가 읽는 이 구약의 말씀들은 오랜 연구와 주해끝에 학자들이 절을 나누어 둔 것이지요. 또 히브리어 성경에는 모음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학교를 표현하고 싶은데, 히브리어 원문 성경에서는 “ㅎㄱ”만 적혀있다는 것이지요. 이 또한 오늘날 많은 연구와 주해 끝에 온전한 단어로, 그리고 문장으로 완성한 것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하튼, 이래저래 구약은 쉽게 접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또 재미도 신약에 비해 덜하기에 크게 이목을 끄는 성경이 아님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라고 하니 더더욱 관심도 안가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을 기점으로, 당분간 느헤미야의 말씀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느헤미야, 그는 누구인가?]
먼저는 느헤미야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보면 어떨까 합니다. 물론 오늘 본문을 바로 나눔으로 시작해도 되지만, 그래도 몇 주간 느헤미야를 접하게 될 터인데, 이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 함께 나누고 시작했으면 합니다.
우선 느헤미야, 그의 이름의 뜻은 무엇일까요? 많은 성경 인물들이 각자의 이름마다 뜻을 지니고 있듯, 느헤미야 또한 그 이름에 뜻이 있는데, 바로 “여호와께서 위로하신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 그의 이름에 “위로”라는 뜻이 담겨져 있었을까요? 이제부터 우리가 함께 읽어 나갈 이 느헤미야는요, 느헤미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또 1절을 보면, 그가 어디에서 나고 자랐는가 알 수 있습니다. 1절입니다.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우선 이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느헤미야의 아빠는 누가 됩니까? 하가랴가 됩니다. 하가랴의 뜻은 “주님을 기다립니다.”라는 뜻으로, 70년간 이어진 바벨론 포로생활을 겪으며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소망과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본 아버지 덕분에 느헤미야의 집안은 건강한 신앙을 지닌 기독교 집안이라 말할 수 있었지요.
뒤이어 보니 어떤 왕이 등장합니까? 아닥사스다 왕이 등장을 하는데, 이 왕이 어떤 왕이냐? 바로 페르시아 제국의 왕이었던 것이지요.
[고난 속 하나님의 위로를 구하라]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되어있을 때, 과연 그들이 한 날 한 시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과연 그들이 마음편히 자신이 사랑하는 조국을 향해 노래하며 소리를 높일 수 있었을까요? 잠이야 잤겠지만, 조국을 향해 소리야 높일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했지만, 결코 아무런 걸림돌 없는 편안한 마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그랬을 것입니다. 조국 백성들과 함께 있으나 포로의 시기를 보내고 있기에 결코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2절과 3절입니다.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1차 포로 귀환과 2차 포로 귀한을 겪음으로 이스라엘로써 돌아간 백성들이 어떤 삶을 보내고 있습니까?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성들이 불태워짐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또 그들의 삶 또한 결코 편하지 아니한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이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느헤미야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4절입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헤미야는 자신의 동료들을 보며 슬피 울며 또 금식하며 수 일을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였습니다. 어떻게 기도합니까? 그의 기도 제목은 무엇입니까? 6절입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어떤 기도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든 환경에 놓여있으나 느헤미야의 기도는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했음을, 또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였음을 고하며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며 주 앞에 나아갑니다.
느헤미야의 이름이 기억나십니까? “하나님은 나의 위로자”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어려움과 고난 속에 있을 때 사람을 통해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자 되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감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라]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음할 때, 하나님께 나아가 무릎을 꿇어 기도하며 긍휼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위로가 임하길 기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8절부터 9절입니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우리는 8절과 9절을 통해 느헤미야가 무엇을 가지고 기도했는가 볼 수 있는데, 함께 읽어보니 무엇이 보입니까?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행하실 것을 기도합니까?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말씀을 행하실 것을 구하는 기도를 지금 느헤미야가 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느헤미야의 모습을 통해 “우리도 이렇게 행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때]
우리는 고난 속에서, 사실 고난 뿐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은, 첫째, 내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아닌 단순 나의 요청에 의하여 기도하게 될 때, 우리는 헛된 것을 구할 때가 있습니다. 나의 잘남을, 나의 권력을, 세상의 부와 영광을 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내가 우선이 아닌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지요.
둘째,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물론 말씀을 반드시 가지고 기도해야 들어주신다는 공식은 없습니다. 또 그럴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하지만, 이미 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우리가 붙들고 기도할 때, 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기록시킨 말씀이기에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적용]
사랑하는 청소년부 여러분. 고난이 늘상 있는 삶은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해서 고난이 우리의 삶에 없을 것이라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그런 고난 속에서 매번 넘어지고 힘들어하며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청소년기의 친구들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선택을 하실 것 같습니까? 고난이 여러분들에게 다가올 때, 여러분들이 택할 길은 무엇입니까? 오늘 느헤미야가 우리에게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가 명확히 전하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고난 속에 우리는 어떤 길을 택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택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에 힘입어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그 말씀에 응답실 것입니다.
바라옵기로는, 늘상 말씀을 가까이 하여,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며 날마다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위로가 여러분들에게 귀히 임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