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리로 빚어내는 소망
Notes
Transcript
서론
새벽기도에 오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어제 본문은 사무엘을 통해 소망을 찾게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은 어제 발견한 소망이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그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나눠보려 합니다.
1- 하나님은 섭리하시는 분이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하나님은 섭리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섭리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물과 상관없는 분이 아니라 피조세계에 모든 것을 조율하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대해 말합니다.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다윗이 천거되어서 사울이 있는 왕궁에 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면 설명이 안되는 일입니다.
14절에 보시면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영이 떠난다고 할 때 이제 사울이 구원을 못 받는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직분의 문제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떠났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통해서 구원 역사를 펼치지 않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사기를 보시면 그 사람의 인격이나 신실함과 상관 없이 여호와의 영이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삼손입니다. 삼손은 이방인하고 결혼하고 나실인 조약도 어기고 개인적인 감정으로 싸우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영이 임하고 결국 이스라엘을 구원하는데 쓰임 받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여호와의 영이 임한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직분을 행하여서 구원 사역을 감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았을 때 시편 51편에서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말라는 것도 왕의 직분을 계속 행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제 하나님은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영을 거두셨습니다. 사울을 통해 구원 역사를 펼치지 않으십니다. 이 일은 바로 윗 절인 13절과 동시에 일어난 일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 되었을 때 다윗이 이제 구원역사의 일꾼으로 지목받았을 때에 사울은 그 일꾼의 자격을 박탈당했습니다. 그리고 14절 중간 부분에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부분이 학자들 사이에서 적지 않는 논쟁을 빚었습니다. 원어 그대로 읽으면 이게 하나님으로부터 온 악령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악령이 올 수 있나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통제하실 수 있습니다. 악한 영일지라도 결국 하나님의 손아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 따라 설정하신 영역에서 움직이는 것이지 악령들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서 하나님이 손대지 못 하는 어떤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령이라는 표현을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학자는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데 이 악령이 악한 일을 하는 천사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악한 일을 하는 천사가 무엇입니까? 재앙을 내리는 천사입니다. 출애굽 할 때 애굽의 모든 장자를 죽인 천사, 소돔과 고모라에 재앙을 내린 천사, 예루살렘을 포위한 앗수르 군을 전멸시킨 천사, 하나님께 명령을 받아서 세상의 악한 것들에게 재앙을 내리는 천사를 의미합니다. 사울을 힘들게 하는 천사는 이렇게 재앙을 내리는 천사가 아닌가 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이것이 악령이든 재앙을 내리는 천사든 상관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섭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사울이 악령에게 시달리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다윗이 사울의 궁으로 가도록 합니다. 다윗이 중앙으로 진출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드십니다. 다윗 왕조를 준비하시고 다윗왕조를 통해 그리스도가 오실 길을 준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섭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16절을 보시면 신하들이 사울 왕에게 말하기를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면 왕이 나을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17절에 사울이 수금 타는 사람을 데리고 오라고 명령을 합니다. 18절에 어떤 소년이 사울에게 다윗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 소년은 베들레헴에서 다윗을 보았는데 수금을 탈줄 알고 용기와 부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사람이라고 보고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고 말합니다. 이 무명의 소년은 언제 다윗을 보았습니까? 다윗과 관계를 맺은 것도 아닌데 다윗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알고 있습니까? 다윗을 보기만 했는데 어떻게 다윗이 음악도 잘하고 지덕체를 겸비한 인물로 생각을 했습니까? 다윗은 정작 그 집안에서 형들에 비해 인정도 받지 못하는 인물인데 어떻게 외부인의 눈에는 그렇게 나무랄데 없는 청년으로 보입니까? 그 집에서는 궂은 일을 하는 별로 인정도 못 받는 아들인데 하필 왕의 곁을 지키고 있는 자에게는 이렇게나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 받았습니까? 이 모든 것이 의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두고 오직 하나님의 섭리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울에게 악한 영이 임하고 어떤 신하는 그걸 수금으로 치유해야 한다고 그러고 마침 곁에 있던 어떤 소년은 베들레헴에 수금을 잘 치는 사람을 안다고 이야기 합니다. 몇 개의 사건이 모이고 합쳐서 하나님이 섭리하시고 이 섭리는 필연으로 나아갑니다.
(적용)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은 피조세계를 두고 그냥 구경하는 분이 아니라 그 세계 안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가지고 섭리하시는 분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악령이라는 영적인 존재를 사용하시고 눈에 보이는 사건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우리는 섭리하시는 하나님,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으면 이 세상은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때문에 세상이 아무리 고달프고 힘들어도 우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일과 모든 사건들은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내가 겪는 모든 일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내가 겪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간구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섭리로써 소망을 구체적으로 만드신다.
(설명)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은 섭리로써 소망을 구체적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데 무엇을 향해 일하시는지가 중요합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데 그것이 우리랑 전혀 상관이 없다면 우리에게 섭리도 하나님도 어떤 의미인지 우리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에게 만들어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소망입니다. 어제 본문에서 사무엘이 다윗이라는 소망을 찾을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 새우신 왕입니다. 이 왕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나라로 가꾸어 나갈 것이며 장차 이 왕이 세우는 왕조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낼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베들레헴에만 갇혀 있어서는 소망이 현실에 구현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섭리를 통해 소망을 현실에 구현시키십니다. 다윗이 왕이 되기 위해 우선 중앙무대로 다윗을 부르십니다. 다윗이 수금을 타게 하셨고 왕궁에 있는 소년이 어느 시점에서 베들레헴을 방문하게 하셔서 수금을 타고 있는 다윗을 목격하게 하셨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메시아의 소망이 뜬구름처럼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 소망이 구체화되도록 하셨습니다.
19저에 보시면 사울이 전령들을 시켜서 이새의 아들 다윗을 데리고 오도록 합니다. 어제 본문에서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들 중에서 누가 왕인지 몰라가지고 7명을 보고도 찾지 못하고 겨우 찾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고 사울은 선지자도 아닌데 이새의 아들 다윗을 한 번에 지목하게 되었습니다. 지혜와 경험이 뛰어난 선지자의 선택보다 몇 개의 사건을 겹쳐서 선택을 발생시키는 하나님의 선택이 더 정확한 모습을 봅니다. 사람이 볼 때는 우연이라는 것은 불규칙적이고 불안정한 것이지만 하나님이 그 우연을 사용하시면 가장 빠른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이 이뤄진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의 선택사건, 사울의 선택사건이 대조되며 하나님의 섭리가 소망을 구체화시켜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소망을 찾아 헤메였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 우연을 섭리로 사용하셔서 소망을 구체화시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1절에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렀습니다. 나중에 쫓고 쫓기는 사이가 될 두 인물이 만났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합니다. 성경에 크게 사랑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자기의 무기를 맡기는 자로 삼게 됩니다. 무기를 맡기는 자는 신뢰하지 않으면 맡을 수 없는 직책입니다. 14장에 요나단이 블레셋을 치러갈 때 무기를 든 자를 데리고 가지 않습니까? 무기를 든 자는 보통 그의 주인이 적을 상대할 때 주인이 완전히 처리하지 않는 적의 목숨을 처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자신의 등을 맡길만큼 신뢰하지 않으면 자신의 무기를 맡기지 못합니다. 처음 본 사람이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이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중앙에 진출할 수 있도록 여러 사건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일이 다윗이 수금을 타서 악령을 쫓아내기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제 23절에 다윗이 수금을 탑니다. 다윗이 수금을 탈 때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떠납니다. 이것은 다윗이 수금을 탈 때 하나님께서 악령이 사울에게서 떠나가도록 하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다윗을 통한 구원역사를 이루기 위해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소망이 구체화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적용)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섭리를 통해 우리의 소망이 현실이 되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도 우리가 그 환경에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 잘 믿는 사람을 지인으로 두신 분도 있고 예수님을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소망으로 두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련하신 섭리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살아갑니다. 다윗이 자기 힘으로 사울의 궁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우리 힘으로는 절대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의 소망을 드러내는 사역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사역에 써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섭리하셔서 우리를 통해서 참된 소망이 세상가운데 구현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준비해야 합니다. 다윗이 수금을 탈 줄을 몰랐다면 믿음의 사람으로 준비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렇게 섭리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준비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는 은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인격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렇게 준비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서 절대 생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를 사용하시되 세상에 소망을 가져다주는 사역에 우리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결론
설교를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섭리로 이 땅에 소망을 가져오는 분입니다. 이 방법으로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고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우리가 앞으로 하나님의 소망을 땅에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이 일에 쓰임 받는 저와 성도님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