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19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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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294 하나님은 외아들을
본문 벧전4:7-11
하나님, 감사합니다. 말세의 때를 살아가는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어 세상 풍조와 유혹과 시련 속에서도 요동치 않게 하시고, 견실히 주님만 붙드는 믿음 가운데, 소망을 품고, 더욱 사랑할 수 있는 주의 권속들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마24 장은 예수님의 종말 비유를 담고 있는 장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묻는다. “예수님, 말세의 때가 오면 어떤 징조가 있습니까?” 이에 주님은 말씀하셨다. 수많은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나게 되어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게 될 것과, 세계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일어날 것과,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고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이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막상 오늘을 돌아보면 이러한 징조들이 너무나도 잘 보인다. 점점 더 자칭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셀 수 없이 많이 일어나고 있고, 전쟁이 여전히 끊이질 않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고 있다. 이 말인즉, 이 자리의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가 곧 말세라는 것이다. 종말이 임박했다는 것이다. 그 날이 가까워오고 있는데 우리는 이 시대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것이 오늘 설교의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왔다' 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만물의 마지막 날'은 신랑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이요, 심판의 날이자 동시에 구원의 날이다. 성경은 그 날이 가까이 올수록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리라 말하는가? 히브리서의 말씀을 보면 모이기를 폐하려 하는 자들이 많아질 것을 말씀한다. 그 날이 가까이 올수록 서로를 대적하고 미워하는 일들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대를 바라보면서 주님의 날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 날이 다가오고 있음에 더욱 본문의 말씀처럼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여야' 한다.
특별히 그 가운데 우리가 붙들고 기도하여야 할 제목이 무엇인가? 오늘 본문의 말씀 8절을 보면,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라고 말씀한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헬라어로 '사랑'을 표현하는 단어는 여러가지가 있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친구들간의 사랑, 이성간의 사랑, 스승과 제자 사이의 사랑, 이웃간의 관심과 사랑 등 모두 한글로는 사랑이라고 번역한다. 본문에 기록된 사랑이라는 단어는 '아가페'이다. 이 사랑은 성경 속에서 오직 하나님께만 사용되던 단어이다.
우리가 잘 아는 바, 그 사랑은 무엇인가? 독생자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으신 사랑이요, 자기의 모든 지위와 명예와 신분도 내려놓고 낮고 천한 이 땅까지 친히 육신을 입고 내려오신 사랑이며, 자기 생명도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내놓으신 자기 희생적인 사랑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랑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내가 마땅히 받아 누릴법한 모든 권리들, 지위들, 대접과 대우들을 포기하고 자기희생적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랑을 우리에게 요구하시는가? 이러한 자기희생적 사랑은 수많은 죄들을 덮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허다한 죄'에서의 '허다한' 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무한정의 수를 의미한다. 셀수 없을 정도로 무한한 죄들을 덮어주고 가려줌을 의미한다. 생각해보라. 택하신 백성들을 위하여 쏟으신 보혈은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 왜냐하면 창조 이래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모든 주의 백성들의 죄악들을 단번에 씻어주셨고, 그 사랑의 피는 지금도 계속해서 죄를 짓는 우리의 셀 수 없이 많은 죄악들까지도 모두 덮어주셨다. 주님께서 이 사랑의 너비와 깊이와 높이와 길이가 어떠한지를 친히 보이셨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특별히 말세를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 우리 양문교회에게 이러한 사랑을 요구하신다. 가끔 성도님들을 심방하다보면 다른 성도들과의 관계적 부분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들이 있더라. 내가 기대한 만큼 누군가가 응해주지 않을 때, 혹은 나에게 누가 모질게 이야기하거나 차갑게 대할 때 시험에 드는 것이다. 비록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모임이지만, 여전히 교회는 죄인들의 모임이고 부족하고 연약한 부분들이 있겠다. 인간적인 기준과 시선으로 보면 누구나 허물이 있고, 죄가 보이고, 부족함이 있더라도, 그럴지라도....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희생적인 사랑으로 그 모든 연약함들을 덮어주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그 사랑으로, 우리가 입은 그 사랑으로, 우리의 형제들에게 행하라는 것이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은 모든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주님께서 그 사랑으로 우리를 덮어주셨던 것처럼,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역시 우리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들의 연약함을 대할 때, 그것을 비난하거나 정죄함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외면하거나 포기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보이시고 명하시는 그 사랑으로 더욱 뜨겁게 사랑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축원한다.
이어서 9-10절에서는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법에 대해 예를 들어 말씀하시는데, 9-10절을 함께 읽어보자.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먼저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라고 말씀한다. ‘대접하다’라는 단어는 진심과 관대함으로서 손님 혹은 이방인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를 행하되 원망이나 수근거림 없이 하라는 것이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우리의 형제, 우리의 성도들에게 해야 하며, 또한 아직 복음을 접하지 못한 자들, 우리의 전도대상자들에게 그리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먼저 측량할 수 없는 은혜로 하나님께로부터 이러한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자리의 모든 여러분들이 이와 같은 대접 행할 수 있기를 축복한다.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측량할 수 없는 대접을 내가 받았음을 알고 고백한다면, 우리 역시도 값 없이 받았던 대접을 이제는 우리의 형제들을 향하여, 그리고 아직 복음 바깥에 놓인 자들을 향하여 흘려보내줄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어떠한 수근거림도 없도록, 어떠한 원망도 없도록 행해야 함을 기억하라.
둘째로, 10절에서 봉사하라고 말씀한다. ‘봉사하다’라는 단어는 본래 식사의 자리에서 수종드는 것을 의미한다. 섬기고 수종들고 봉사하라는 것인데, 본문에서는 ‘봉사하다’ 라는 단어를 강조하면서, ‘바로 그 봉사를 하라’ 라고 말씀한다. 이 봉사는 어떤 봉사인가? 바로 앞에 보면 ‘선한 청지기 같이’ 라고 말씀한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청지기란 무엇인가? 주인께서 허락하신 권한과 권세로 맡은 직무들을 담당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냥 청지기가 아니라 선한 청지기라 하셨다. 선한 청지기란 주인의 뜻에 합당하게 주인께서 맡기신 모든 권세들을 사용하여 맡겨진 직무들을 선하게 사용하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청지기로 부르신다는 것은 무언가를 우리에게 맡기셨다는 것인데, 그것이 무엇일까? 본문 10절은 두 가지를 말하고 있는데, 은사와 은혜이다. 이 두 단어의 뿌리는 본래 하나로서 그 기본은 은혜, 원어로는 ‘카리스’이다. 그리고 이 단어에서 선물 혹은 은사라고 번역된 ‘카리스마’ 라는 단어가 파생된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선물로 주셨는데, 이것이 각 사람에게 여러 은사들로 주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은사는 11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교회의 직분을 가리킨다.
주님께서는 벧전4:10 에 ‘여러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말씀하신다. 여러분,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자로서, 먼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해 가는 성숙한 자들로서, 우리는 먼저 우리의 형제들을 이와 같이 섬기고, 그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특별히 교회의 직분을 받은 여러분들, 우리는 봉사하기 위하여 이 직분을 받았음을 기억하라. 이를 위해서는 내가 마땅히 받아 누릴 법한 모든 기득권과 이득과 권리들을 포기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나의 것들을 포기하고 내려놓음이 먼저 필요하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모든 권세를 포기하여 낮고 천한 이 땅 가운데 내려오지 않으셨더라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교회가 세상 가운데 신뢰를 잃어버린 이유가 무엇일까? 또한 교회의 문턱이 지나치게 높다고 평가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어쩌면 나의 것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섬김을 받으려는 사람은 많고, 섬기려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오늘 본문의 권면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서로 원망없이, 수근거림 없도록 대접해야 하고,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다양한 은혜들, 선물들을 적극 활용하여, 그 은혜들을 전달해주어야 할 선한 청지기로 나의 형제들을, 나의 이웃들을, 그리고 세상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섬기고 사랑하고 봉사해야 한다. 이러한 모습들이 우리 가운데 회복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주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받으신 여러분, 이 자리의 저와 여러분들 모두는 주님께서 베푸신 그 크고 놀라운 은혜를 전달받은 자들이다. 믿으시는가? 마지막 때가 다가옴을 볼수록 세상에는 점점 더 사랑이 식어지고, 사랑없음 가운데 분쟁과 마찰이 빈번해지며, 사탄은 이런 일들을 교회 가운데에서도 일으키려 할 것이다. 말세의 때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가 먼저 받은 그 측량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들을 이제는 나보다 연약한 지체들을 위해, 그리고 아직 주님을 만나지 못한 자들에게 흘려보내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다. 거룩한 주의 몸된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허락하신 직분이라는 은사를 통하여 이 귀한 사역을 감당하시는 이 자리의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기도하자.
주여, 말세의 때에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오늘 말씀처럼 더욱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하게 하여 주옵소서. 더욱 뜨겁게 사랑하며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게 하여 주옵소서, 서로를 원망없이 대접하고자 하는 일들이 우리 가운데 넉넉하게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대로 선한 청지기같이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봉사 헌신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