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19 기도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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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이들에게 믿음을 전달하기 위하여 사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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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가: 190장(성령이여 강림하사)
본문 : 역대하 7:11-14
11 솔로몬이 여호와의 과 왕 건축을 마치고 솔로몬의 심중에 여호와의 과 자기의 궁궐에 그가 이루고자 한 것을 다 형통하게 이루니라
12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듣고 이 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성전을 삼았으니
13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을 고칠지라
*죄 용서와 땅의 회복의 연결됩니다.
12절부터 14절까지를 보십시오.
12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 곳을 택하여 네게 제사하는 성전을 삼았으니
성전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친히 땅을 구별하여 임재하시는 영역입니다.
에덴동산이 그랬죠.
에덴동산은 최초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이 에덴 동산을 걸어다니시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최초의 성전이죠.
그런데,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은 문이 잠깁니다.
아무도 못들어가요.
이제 성전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에서 아담과 하와를 살피시며, 그들을 돌보셨지요.
오늘날 신약교회의 성전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함께 예배 드리는 교회가 성전이고, 무엇보다 우리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의 성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전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드려야 하는데,
오늘날 성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 안에서 예배 드리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사마리아 여인이 어디서 예배드려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이, 이 산에서도 말고, 저 산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제대로 예배 드리는 날에 오게 될 것인데,
특정 장소가 아니라,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예수 그리스도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리는 예배와 기도와 말로, 진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요, 기도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아이들이 어디에 들어가야 하느냐면,
진짜 성전에 들어가야 하는데,
진짜 성전이 어디 있느냐면, 이스라엘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닙니다.
어디냐면, 바로 예수님 안,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것이 진짜 성전이라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는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마치고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11절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과 왕궁 건축을 마치고 솔로몬의 심중에 여호와의 전과 자기의 궁궐에 그가 이루고자 한 것을 다 형통하게 이루니라” 고 했습니다.
7년만에 성전 건축을 완성한 것이죠.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하나님이 얼마나 이 땅에 개입하시기를 원하셨으며, 이 땅을 위해 일하기를 기뻐하셨겠습니까?
그래서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날,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12절입니다.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 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성전을 삼았으니”
이미 기도를 들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곳을 내가 제사를 받는 성전으로 삼았다고 하십니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13-14절에 부정적인 예견을 하십니다.
13절과 14절입니다.
13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부정적인 예견을 하십니다.
성전 건축을 완성하고, 기대에 차 있는 솔로몬에게, 마치 앞으로 범죄라도 할 것처럼 예견을 하고 계신 거죠.
너희들이 범죄할 것이다.
너희가 성전 건축을 마쳤다. 7년에 걸쳐서 정말 웅장하고 대단한 성전을 건축하였다.
그런데 내가 예견하기로, 너희는 반드시 나를 배반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내가 하늘을 닫을 것이다.
하늘을 닫는 다는 것은 비가 오지 않는다.
당시 이스라엘은 유목민 생활을 접고, 가나안 땅에서 농경 생활을 했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 것은 생계가 막히는 것과 연결됩니다.
비가 안오면 작물이 말라 죽는 것이죠.
희한하게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과, 그 땅에서의 형통과 번영이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표현합니다.
예를 들어, 사사기 성경을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바알 신을 숭배하거나, 아세라 신을 숭배하게 되면,
이 죄로 인해 이방 민족들이 이스라엘 땅을 쳐들어와서, 그 땅을 점령하고, 그 땅의 농산물을 빼앗아가는 것을 볼 수 있는 데, 이런 사건들이 무려 7번이나 반복됩니다.
땅이 하나님과 연결되고,
땅의 형통, 땅의 번영이 하나님과의 관계와 연결되어 있죠.
이게 사사기의 신학입니다.
너희가 내 언약을 지키고 행하면 그 땅이 번영하여 복을 받을 것이지만,
너희가 나를 떠나 내 언약을 배반하면, 그 땅이 너희를 토해낼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는 것이죠.
그게 구약성경이고, 특히 사사기에서 두드러집니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이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 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이미 구원은 받았지만, 구원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제대로 예배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께 불성실할 때, 우리는 예수님과의 은혜로운 관계성을 상실합니다.
계속해서 누리려면 말씀을 지켜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대충대충 해서는 안 되고,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던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확실한 믿음이 생겨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맡깁니까?
믿음이 없이 우리 귀한 인생을 어떻게 하나님께 맡기겠습니까?
하나님이 내 인생의 답이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참 주인이시다.
이런 믿음이 확고하게 생겨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늘로 승천하셨는데, 어떻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습니까?
또다른 보혜사, 그리스도를 증언하시는 증언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힘차게 일해주셔야 그리스도의 말씀이 전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느냐면, 말씀에 기름부음이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에, 성령 하나님께서 아주 세밀하게 역사하시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아시고,
성령님께서 가장 필요를 잘 아십니다.
가장 필요를 잘 아시는 성령님께서 일하셔야지, 사람이 일해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죠.
*오늘 본문에 하나님은 성전에서 그 기도를 들으시겠다고 하십니다.
성전에서 그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고, 그 땅을 고치시겠다고 하십니다.
14절 말씀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내 이름으로 기도하는, 또는 내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내 백성들이,
뭘 해야 하느냐?
먼저, 자기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 땅의 회복을 위한 첫걸음입니다.
우리는 죄를 너무 가볍게 생각합니다.
특히 말로 지은 죄를 가볍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말은 힘이 있어서, 그 힘이 역사를 이루어갑니다.
그러므로 말로 지은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지은 죄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말씀을 대적하고 지은 죄는 무엇이나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먼저 자기 죄를 회개하는 것이 우리 삶이 회복되는 첫 단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둘째로, 하나님의 얼굴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세상을 너무 크게 봅니다.
세상을 너무 크게 보니까,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무 만만하게 봅니다.
하나님은 자기보다 작고, 세상은 자기보다 크다고 믿습니다.
이게 기독교 세계관이 아니죠.
기독교 세계관이 뭡니까?
하나님이 가장 크시고,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을 가장 크게 보아야 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너무 교만합니다.
자기 말이 다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너무 큰 것입니다.
또 어떤 아이들은 용기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설 용기도 없고, 세상에 나설 용기도 없습니다.
이것은 자아상이 너무 작은 것입니다.
어떤 아이들은 자기를 너무 크게 보아서 기도 응답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회개하라고 말씀하셔도 반응하지 않으니까요.
또 어떤 아이들은 자기를 너무 초라하게 보아서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해도 자기는 안될 거라는 믿음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건강한 자아상을 되찾아야 합니다.
살이 쪄서 너무 비대해진 자아상을 가진 아이들은, 살을 좀 뺄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면 회개할 줄도 알고, 잘못을 인정할 줄도 알고, 고칠 줄도 알 수 있도록 살을 좀 뺄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자기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기 쉽고,
다른 또래 친구들에게도 교만하게 행동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반대로 자아가 너무 작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뭘 해도 자신이 없고, 하나님 앞에서도 죄인이고, 사람들 앞에서도 주눅이 들어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차라리 이런 아이들이 가능성이 더 있습니다.
은혜 받으면 바뀌니까요.
교만한 아이들은 뒤집어진 물컵처럼, 은혜가 안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문제가 없고, 자신은 회개할 죄가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자아상이 작은 아이들이 하나님을 만날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자아상이 너무 작기 때문에, 하나님도 무서워하고, 부모님도 무서워하고, 세상은 더더욱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막연하게 자기도 일을 해야 하고,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은 없어요.
그래서 염려합니다.
하고 싶은 일은 없는데, 앞으로 직업을 가져야 하니까, 막막한 것이죠.
이런 아이들은 세상을 작게 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도 좀 작아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마냥 두려운 분이 아니라, 우리를 보듬어시고 사랑하시는 따뜻한 분이라는 사실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자아상이 너무 크고 비대한 아이들은, 허용적 부모 밑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크고요.
한마디로 자율성을 최대치로 강조한 것입니다.
반대로 자아상이 너무 작고 쪼그라든 아이들은, 통제적 부모 밑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예 자기가 없어요.
누군가가 명령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스스로 해내려고하지 않습니다.
이건 자아가 쪼그라들었다는 의미입니다.
누군가의 비판이 무섭고, 누군가의 지적이나 화내며 호통치는 것이 두려워서, 전혀 자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하는 거죠.
이런 아이들은, 세상도, 사람도 하나님보다 훨씬 작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어요.
그러면 스스로 용기가 생깁니다.
스스로 힘이 생겨서 하고 싶은 일도 생기고, 스스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잘 하는 분야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말씀을 맺는데요.
우리가 성전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성전은 바로 살아서 친히 자기 몸을 제물로 드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을 기도해야 하느냐?
무엇보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철저히 말씀대로 살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이미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죄 용서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담대하게 우리의 죄를 아뢰며, 죄 용서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안식을 얻는 비결,
땅의 형통을 얻는 비결,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선물을 누리는 비결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임재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다보면, 문제가 문제가 아니게 됩니다.
내가 두려워했던 세상과 사람이 작아지게 됩니다.
이게 문제 해결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크게 보고,
세상과 나를 작게 보는 믿음이 생겨야 합니다.
나는 작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된다는 긍정적인 믿음도 생겨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감을 가지고, 하나님 안에서 일도 하고, 직업도 갖고, 좋은 가정도 이루며 살지 않겠습니까?
*이 시간 기도하실 때,
우리 자신을 위하여
여름수련회와 성경학교를 위하여,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을 깊이 만나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돌아가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않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치겠다고 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말씀대로 일하여 주시고, 오늘날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하게 기도할 때에, 그 기도에 응답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임재가 회복되고, 우리 성도님들의 삶의 영역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고쳐지고 회복되는 역사가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석
예수님이 친히 성전을 건축하셨다.
그는 자기 몸을 성전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이라는 성전 안에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땅을 고치실 것이다.
하나님은,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하는 땅을 고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으로 계시되신다.
그분은 온 땅을 다스리시며, 그 땅을 고치실 수 있는 능력자이시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다윗의 후손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삼하 7:13)
그러므로 그가 범죄할지라도, 하나님의 언약이 취소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언약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에 따르는 삶이 필요했다.
“땅”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신 선물이다.
땅은 언약의 부산물이자, 언약의 선물이다.
사사기를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릴 때마다, 그 땅에 이방 민족이 쳐들어와, 그 땅을 점령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역대하 ① 하나님은 솔로몬의 기도와 성전 건축을 받아들인다(7:12b)

예배는 내적 마음뿐만 아니라 외적인 양식도 필요하고, 기도가 받아들여지려면 죄에 대한 보이는 제물이 동반돼야 한다.

역대하 ②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기도를 듣고, 그들의 땅을 고칠 것이다(7:13–6)

하나님의 이름을 여기서 다르게 사용하는 것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즉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소유권을 가리키고, “이름을 부르는 것”은 예수님이나 여호와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에 대해 말하는 것이며,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이 성전”(6:33; 참조. 6:5–8, 10, 20)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킨다. 모든 경우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희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역대하 ②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기도를 듣고, 그들의 땅을 고칠 것이다(7:13–6)

회개는 역대기서의 여기서부터 계속 새롭게 두드러지는 주제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더 악해지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성전이 회복과 용서를 위한 새로운 토대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회복의 원리와 회복하게 될 수단이 14절에 근거하여, 이제부터 계속 어떤 개인들을 통해 예증된다. 예를 들어, 스스로 낮추고는 르호보암(대하 12:6, 7, 12), 히스기야(30:11; 32:26), 므낫세(대하 33:12, 19, 23)의 기사에서 핵심 주제이다. 기도는 역대하 6:19 이하, 30:18, 32:20, 33:13(참조. 또한 대상 4:10; 5:20; 21:26, 거기서는 다른 동사들이 발견된다)에서 회개에 대한 호소로 사용된다.

역대하 ②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기도를 듣고, 그들의 땅을 고칠 것이다(7:13–6)

내 얼굴을 찾다는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일반적인 태도를 가리킬 수 있지만(대상 16:10, 11; 대하 22:9; 26:5), 회개나 일반적인 고통의 상황에서 나온다(대하 11:16; 15:4; 20:3–4). “회개하다”를 가리키는 구약의 주요 단어들 가운데 하나인 떠나(turn)는 역대하 15:4, 30:6, 9(참조. 또한 36:13)의 위 어구와 연관된다.

겸손한 회개는 사하고 고치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에서 필연적인 단계이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필수적인 요소는 기도를 듣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해서 마소라 본문에는 내가 듣겠다 앞에 강조의 “나”가 나오는데, 이는 곧 “내가 정말로 듣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하게 솔로몬 자신의 요청에 대한 직접적인 응답이다(참조. 6:19, 20, 21, 25 등).

역대하 ②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기도를 듣고, 그들의 땅을 고칠 것이다(7:13–6)

첫째, 역대하 30:20의 “백성을 고치셨더라”는 하나님을 구하기로 자신들의 마음을 정한 자들이 구하는 용서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한 것이다.

둘째,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14절)라는 약속은 역대하 30:20에서 “백성을 고치셨더라”라는 구절로 성취되는 것 같다(이것은 아마도 6:25, 27, 31, 38에 대한 응답일 것이다).

셋째, 구약 전반에서 치유는 영적인 적용과 신체적 적용을 혼합한 것이다. 때로 치유는 구체적으로 용서와 동일시되고(예를 들어, 호 14:4; 사 53:5; 57:18–19; 시 41:5), 때로 신체적인 치유와 관련 있다(예를 들어, 창 20:17; 민 13:20; 왕하 20:5, 8).

여기서처럼 치유가 땅에 적용될 때 추방된 자들을 약속의 땅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것(렘 30:17; 33:6–7)이나 땅과 그 땅의 사람들을 평화와 안전으로 회복하는 것(렘 33:6; 사 57:19)을 가리킬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는 엄밀하게는 이스라엘 백성과 약속의 땅을 위한 하나님의 모든 목적을 회복하는 것을 가리키는 종합적인 구절로 묘사될 수 있다.

사역
11 솔로몬이 여호와의 바이트(집)과 왕의 바이트(집)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모두
기도, 땅, 자연질서, 기계적 세계관
예비부모를 위한 향심기도교육에 관한 연구
* 지친 영혼들이 하나님 안에서 쉬고 안식할 수 있는 기도
*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바라며 우리를 맡기는 기도
* 개인의 변화를 통해 삶 속에서 내적 평화를 이루고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발전시켜나가는 기도
기도란 무엇인가?
영적이고 실존적인 관심
기도는 영혼의 상담이다.
영혼을 가진 인격체가 하나님이라는 따듯하고 지혜로운 상담자와 더불어 교제하고, 대화하며, 중요한 결정들에 관한 심도 있는 토론을 하고, 상처나 위기와 관련해서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정서적인 지지와 지혜로운 통찰력을 공급받는 경험이다.
캐나다에서 겨울을 보내는 나비는 ‘서로 붙어서’ 추운 겨울을 따뜻한 온기로 지낸다. 하늘 아버지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꼭 붙어서’ 추운 인생 살이를 하나님의 온기로 통과한다. 이것이 기도이다.
영적인 인간은 먼저 ‘영혼의 추위’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영혼의 추위를 경험한 사람만이 ‘가장 따뜻하신 하나님의 온기’를 추구할 수 있다. 기도를 통해 영혼의 따뜻함을 회복한 사람은, 자신이 왜 그 일을 하는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누군가를 찾아다니고, 대화하고, 만나고, 여러가지 일을 하고, 성취하는 이유는 영혼의 온기를 유지하기 위한 인간적 방편이다.
2. 기도를 통해 왜곡된 인식론의 전환이 일어난다.
기도를 통해 생각의 전환이 일어난다.
(1) 성경은 하나님이 가장 크시다고 말한다.
(2) 그리고 성경은 인간은 피조물이라고 말한다.
(3) 성경은 자연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기도를 통하여 이러한 인식 능력이 회복된다.
(1) 우리는 하나님보다 나 자신과, 타자를 더 크게 본다. 그래서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자기 자신에게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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