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선물로 받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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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신자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이렇게 표현할 때가 많습니다. 삶이 어렵고 힘드니까 종교를 믿는 나약한 사람들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그들은 믿음을 하찮은 것으로 치부합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 불신자들은 믿음을 하찮은 마음의 속성이라고 말하지만, 자신들도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불신자들은 임진왜란이 1592년에 일어난 것을 역사적 지식으로 ‘안다.’고 하지만, 사실 믿고 있는 겁니다. 직접 눈으로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확실히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불신자들은 4천만년 전에 원숭이가 진화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는데, 그 시절에 그것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그것을 확실한 지식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그들도 믿는 겁니다. 그런데 그들의 믿음은 완전한 믿음이 아니죠. 이 사회 구조에서 필요에 의해 믿은 겁니다. 비참한 현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자신들은 비굴해 보이기 싫으니까 자신들의 불완전한 믿음을 ‘지식.’이라고 바꿔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하찮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인데, 어찌 하찮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완전한 믿음이며, 존귀한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고난 후에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과 영광을 주시겠다 하신 약속을 믿으니!
매번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거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길 수 있는 겁니다.
히브리서의 11장 1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 안에서 무엇을 바라고 계십니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무엇을 바라며 살아가나요? 시련의 극복, 신앙의 회복, 가정 복음화, 직장 복음화, 대구에 있는 교회들의 부흥, 대구 성시화, 학국 교회의 부흥.
이 모든 것들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시나요?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것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는 거죠. 오늘 본문에서도 선하신 뜻을 이루실 하나님을 굳게 믿는 자들이 나옵니다. 그 모습을 통해 우리 함께 두가지 영적 교훈을 나누겠습니다.
1대지
1대지
첫 번째로,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들은 세상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우리 함께 2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믿음이 있었던 모세의 부모는 절대 권력, 바로 왕을 무서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23절을 보면, 모세가 아름다운 아이였다고 나옵니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가 아름다운 아이여서 석 달동안 숨겼다고 합니다. 이 행위가 믿음의 행위였다고 하는데요. 믿음과 모세가 아름다운 아이였다는 게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이 표현은 출애굽기의 2장 2절을 인용한 겁니다. 제가 출애굽기의 2장 2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히브리서 본문에서는 아름다운 아이라고 표현되었는데, 출애굽기 본문에서는 잘 생겼다고 나옵니다. 의미상 같은 말입니다. 히브리어 표현으로는 ‘토브.’인데요. 토브 라는 표현, 많이 들어보셨죠? 하나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실 때,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신 대목. 여기서 ‘좋았더라.’가 히브리어로 ‘토브.’죠.
하나님은 창조하신 세상을 보시고 어떤 점이 좋으셨을까요?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지음 받은 모습이 좋으셨던 겁니다.
모세의 부모도 그 마음이었습니다 여러분. 단순히 모세가 잘 생겨서 그를 숨겼던 것이 아니라, 모세가 앞으로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쓰임 받을 것을 바라보고 숨겼던 겁니다. 그러니 이것이 믿음이죠.
아직 갓난아기인 모세가 자라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쓰임 받을 것을 믿은 요게벳. 그녀의 믿음은 실상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났을까요? 24절에서 25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이는 곧 애굽의 바로 왕을 거역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모세도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세상 권세를 무서워하지 않은 것이죠. 어떤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까요? 하나님이 모든 세상을 다스리시는 절대적 통치자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24절과 25절과 같은 설명은 출애굽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출애굽기에서는 디테일하게 설명하지 않은 모세의 믿음과 심정을 오늘 본문에선 디테일하게 담아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무슨 의도로 이런 디테일을 살린 걸까요?
히브리서의 수신자가 누구라고 했죠? 로마 네로 황제로부터 엄청난 박해를 받고 있던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극심한 박해를 이기지 못하고 예수님을 저버리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갔습니다.
로마 황제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아직 예수님을 붙잡고 있던 이들이 오늘 히브리서 본문을 마주했을 때 어떤 은혜를 받았을까요?
모세의 부모가 바로 왕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 강한 호소가 되었을 겁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한 모세의 모습이 큰 도전이 되었을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변에 바로 왕처럼, 네로 왕처럼 내 마음을 두렵게 만드는 사람이나 상황이 존재합니까?
세상은 좋은 것으로 나를 유혹하며 예수님을 저버리라고 속삭입니다. 그리고 그 속삭임을 거부할 때는 온갖 수모를 겪게 합니다.
그 때 우리는 믿음을 구해야 합니다. 나를 두렵게 만드는 존재로부터 나를 구원하실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는 믿음! 그 믿음을 구해야 합니다.
고등부 한 학생이 얼마 전에 학교에서 어떤 한 친구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너 고3인데 아직 교회 나가?” 고3이 예배 드리러 교회에 가는 것이 미련한 일로 여겨지나봅니다. 그 말을 들은 고등부 학생은 아마 그 친구가 바로 왕처럼, 네로 왕처럼 크게 느껴지지 않았겠습니까?
이 학생은 다른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수모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위한 거니 괜찮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귀한 믿음입니까? 26절의 모세의 모습과 같지 않습니까? 제가 26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예수님을 위한 수모라면 괜찮다는 겁니다. 오히려 내게 상급이라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고등부 학생에겐 친구의 말 한마디가 바로 왕의 명령만큼 무섭게 다가왔습니다. 여러분에겐 이런 무서운 순간들이 있으셨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역전시키시니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때를 믿음으로 기다리시며 날마다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2대지
2대지
두 번째로,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압니다. 우리 28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애굽의 장자들을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말씀을 두려워 할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해 순종했습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는데, 그걸 모르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이게 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것도 축복입니다. 아무나 하나님을 두려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만이 하나님을 두려워 할 수 있습니다.
31절에 등장하는 여리고 성의 라합도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께 믿음을 선물로 받은 것이죠.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정탐꾼들을 숨겨주고,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점령할 수 있게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라합은 자신의 가족과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들은 살려달라고 간구하고 자신을 하나님께 의탁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의 특징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할 줄 압니다. 하나님이 가장 크고 위대하시니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장 크고 위대하시니 내 삶을 다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 또한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믿어야만 하나님을 두려워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믿어야만 자신의 삶을 다 맡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공포심이 아닙니다.
마땅히 높임 받아야 할 분을 공경하는 두려움입니다. 경외심이라고 하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자신의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이끌어 가지 않고 하나님께 다 맡깁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 인생을 아름답게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모습으로 가꾸어 가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하는 자들에게만 주시는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하며 오늘 하루를 살아갑시다. 나 혼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이 바로 내 앞에 계신 것처럼 겸손하게 거룩하게 살아갑시다. 작은 말씀 하나도 다 순종하며 살아갑시다.
그 때 부어주시는 은혜와 평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겁니다. 그 은혜를 오늘 하루 풍성히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