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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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Tone
Analy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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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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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tative
0UNLIKELY
Social Tone
Open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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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cientiousness
0.68LIKELY
Extra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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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reeableness
0.89LIKELY
Emotional Range
0.73LIKELY

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Anger
Disgust
Fear
Joy
Sadness
Language
Analytical
Confident
Tentative
Social Tendencies
Openness
Conscientiousness
Extraversion
Agreeableness
Emotional Range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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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베드로전서 2:9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일 하면 기분이 안 좋아요.
노동은 저주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힘들 거든요.
그래서 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노동을 저주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힘드니까요.
그래서 자기는 일 안 하고, 노예들한테 모든 일을 다 갖다가 맡겼습니다.
그래서 그리스 로마 세계관에 따르면 노동이나 일하는 것은 저주에요.
특히 육체 노동을 하는 것은 저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지 않죠.
창세기, 1장을 보시면,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빚으세요.
무슨 말인가요?
하나님은 도기 제조사, 그러니까 흙으로 그릇을 굽는 육체 노동자세요.
손으로 일을 하시잖아요?
그러니까 성경의 노동은 굉장히 포괄적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이, 정신 노동자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사무직/전문직/화이트 컬러/ 이런 일을 많이 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의사/판사/변호사/ 이런 ‘사’자가 들어가는 일을 하기를 바랍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육체 노동은 힘이 들고 고되니까요.
그렇지만, 적어도 성경을 믿는 우리는, 모든 직업이 고귀하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직업이 고귀합니다.
모든 일은 귀중합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고귀한 직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일이 가능할까요?
어떻게 우리가 직업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일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장 말씀을 한번 살펴보세요.
하나님이 에덴 동산을 창조하셨어요.
에덴 동산에는 수많은 나무와 보석과 동물들이 살았어요.
그리고 아담을 창조하시고, 아담이 에덴 동산에 살게 하셨어요.
그리고는 아담에게 에덴 동산을 경작하고 지키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직업은 하나님이 세상을 주셨기에 가능한 거에요.
하나님이 땅을 만드셨기에 농사가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동물, 식물을 만드셨기에, 어업, 목축업이 가능해지는 거에요.
하나님이 철광석을 만드셨기에, 제철소나 철강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직업은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시작되는 거에요.
*예전에는 직업 고르는 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고를 필요가 없었고, 고를 수도 없었죠.
계층 간 이동이 거의 없었습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에요.
부잣집에 태어나면 양반이 되는 것이고, 가난한 농노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평생 소작농으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양치기였고, 다윗도 양치기였어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건설현장의 노예였어요.
고를 수가 없었죠.
그런데 민주화가 되고, 계급사회가 철폐되면서, 누구나 교육을 통해 신분의 이동이 자유로운 사회가 되었습니다.
고를 필요가 없었는데, 이제는 누구나 능력만 되면 고를 수 있는 사회가 된거죠.
특히 한국사회는 교육열이 높고, 교육을 통해 신분 이동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강하기 때문에, 더더욱 직업 선택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또 직업 고르는 게 어려운 이유는,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 때문입니다.
유교 사회는 본래 ‘문’을 중시하였지, 육체 노동을 천시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몸을 쓰고 하는 것을 좋게 보지 않습니다.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을 ‘소인’이라고 부르고, 정신 노동을 하는 사람을 ‘군자’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구분했죠.
직업을 나누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긴 하죠.
그래서 직업 간에도 계층이 있고, 차별이 있고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직업 고르는 게 더 어려운 거에요.
아무 직업이나 하면 좋겠는데, 직업 간에도 우열이 있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 있기 때문에 고르기 힘든 것이죠.
*그리고 직업 고르는 게 힘든 이유는, 사회가 현대화되면서, 매우 세분화되었습니다.
어떤 일을 해도 마찬가지에요.
삶의 보람과 직업의 가치를 찾기가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제가 돕는 사람들이 실제로 함께 거주하는 마을 주민이 아닐 수 있어요.
예전에는 품앗이 가 있습니다.
같은 마을 주민이 이 밭도 돕고, 내 밭도 돕고, 나도 다른 사람이 하는 농사를 돕는 게 품앗이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비대면, 언택트 시대입니다.
만나지 않고도 일을 하고요.
모르는 사람과도 손쉽게 거래를 합니다.
쿠팡이나, 다양한 쇼셜 커머스, 인터넷 상거래를 통해서 누구나 외국 사람들과도 거래를 틀 수 있으니까, 얼마나 편리해졌어요.
기술사회의 특징이 이런 것입니다.
사람이 기술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사람을 지배하게 되어요.
사람은 점점 편리한 것을 추구하게 되고, 그렇게 기술에 의존하는 정도가 높아지다보면은, 사람이 아니라, 기술이 시키는 대로 일하고 행동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삶의 보람을 찾기는 어려워요.
내가 생산하는 것은 제품의 정물 일부분일 뿐이지, 전체 완성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완성 제품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이 제품이 내가 아는 소비자에게로 팔려가는 게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게로 전달되기 때문에, 모든 유통망을 간찰하고 지켜보지 않는 이상, 직업을 통해 삶의 보람을 찾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산부인과도 필요에 의해서 찾아다니는 것이지, 의사를 알고, 간호사를 알고, 모든 사람이 같은 마을 주민이고 그렇지 않습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했기 때문에, 충분히 비인격적인 방식으로 상거래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내가 모르는 사람이 주문을 하고, 내가 모르는 사람에 나에게 일을 맡기고, 단지 적정한 돈만 지불하면, 얼마든지 제품이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것만큼 고역이 없지요.
그래서 일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드니까, 직업이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죠.
일 자체가 굉장히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다보니까, 내가 누굴 위해 일하는지, 무엇 때문에 일하는지 그 의미와 보람을 찾기가 매우 힘든 사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나야 해요.
하나님을 만나야 일에 대하여 보람이 생깁니다.
사역자도 마냥 사역을 한다고 해서 보람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이 은혜주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사역도 할 맛이 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사역보다 힘든 일도 없어요.
다른 일도 힘들겠지만, 사역자들이 병에 걸리고, 스트레스 받고, 신경질환에 걸리고 하는 것 보면은, 사역도 만만치 않은 직업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나야 해요.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붙들린 인생이 되어야, 일에도 보람을 찾고, 직업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는 것입니다.
아까 기독교 세계관 했는데, 창조, 특히 타락에 대하여서 다루어보자면,
이 세상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악이 침입하였고, 악이 범람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도 고통스럽고, 노동도 저주같아 지게 되었죠.
아무튼, 악이 범란한 세상에는, 마음으로 짓는 죄, 몸으로 짓는 죄, 다양하게 인간 세상이 혼란스럽게 악하게 변질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버려두지 않으세요.
악한 세상을 고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신 게 뭐에요?
직업입니다.
직업은 세상에 범람하는 악과의 투쟁입니다.
농사가 무엇입니까?
생계를 위협하는 자연세계의 생태적 악과의 투쟁입니다.
가뭄, 홍수, 메뚜기, 다양한 생태적 악으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여, 나 자신과 가족과 타인에게 싱싱한 농산물을 제공하는 일이 바로 농사 아닙니까?
악과 투쟁이죠.
농사를 제대로 지으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죠.
하나님은 인간에게 먹을 거리를 공급하셨어요.
그런데 타락 이후에, 먹을 거리 공급이 잘 안 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말미에 보면, 이제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거리를 먹게 되는데,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먹을 거리를 확보하는 게 굉장히 힘들어 졌습니다.
농사, 이거 하나님의 일이에요.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을, 인간의 손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브루스 데머레스트는 일반은총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일반 은총의 선물을 통해 하나님은 비록 세상이 그분을 보편적으로 인식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이 세상에 보편적으로 현재하고 계심을 증거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증거하는 게 일반인총입니다.
하나님을 사람들이 모르고, 거부하고, 대적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은혜를 베푸시는데, 그것을 일반은총이라고 하고요.
예를 들면, 하나님 안 믿는 사람도 부자가 될 수 있어요.
공부 잘 할 수 있구요.
오래 살 수 있고요.
숨도 쉴 수 있고, 물도 마실 수 있고, 다양한 창조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데, 이것을 일반 은총이라 합니다.
또 읽어 보겠습니다.
전능한 창조의 하나님은 선하심과 은혜의 하나님이다.
일반 은총 속에서 제공된 하나님의 과분한 선물은 불신자들의 마음이 진실한 회개와 믿음 속에서 은혜로운 공급자에게로 다가가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과분한 선물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집나간 아들이에요.
지가 스스로 가출을 했어요.
나는 부모도 싫고, 부모도 모르고, 나는 부모가 없다.
무신론자죠.
철저하게 하나님을 부인하는 아들이에요.
그러면 더 이상 부모와 자식 관계가 안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식이 부모를 모른다고 하고, 없다고 하는데, 부모가 더 손 쓸 도리가 없죠.
그런데 이 부모가 참 은혜가 많아요.
그래서 집 나간 자식, 자기를 모른다고 하는 자식인데도, 몰래몰래 다른 사람을 통해서 돈을 주고, 먹을 것을 주고, 잘 곳을 마련해주고 하는 거에요.
이걸 어려운 말로 일반 은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거절하고, 모른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이 비와 결실기를 주시고, 마실 것과 입을 것과 잘 곳을 마련해주시는 선하신 하나님이라는 의미죠.
여러분도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공기를 끊으십니까?
엇? 너 나 안 사랑하네?
하면서 갑자기 전기 끊듯이 물을 끊어버리십니까?
그러지 않죠?
계속해서 공기를 주시고, 물도 마시게 하시고, 생명도 주시고 하시죠?
이게 일반 은총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이 은혜를 이해해야 일 하기를 기뻐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보람있고 기쁘게 하려면 이 은혜를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해요.
하나님을 깊이깊이 만나고, 나의 죄를 용서하신 죄 용서의 은혜를 깊이깊이 만나고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 받으면 삶이 바껴요.
태도가 달라져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사고방식으로, 다른 시선으로 살아가게 되는 거에요.
눈이 달라져야 합니다.
생각이 달라져야 해요.
이때까지는 공부도 싫고, 일도 싫고, 도대체 왜 사는가 했던 생각이 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쓰시는 일꾼이다.
나는 하나님의 손이다.
나는 하나님의 발이다.
나는 하나님의 머리다.
이런 생각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아야지.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도록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수련회하는 목적이에요.
여러분이, 세상 사람들처럼, 똑같이
이기적인 마음으로 직업을 대하거나
유교적인 세계관으로 직업을 군자의 직업 / 소인의 직업 등등으로 구분하거나 해서는 이 수련회의 올바른 목적이 아닌 것입니다.
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직업이에요.
미술도 하나님의 직업이에요.
그림도 하나님이 하신 일을 그리는 것입니다.
전혀 없는 것을 그릴 수 없어요.
전혀 만들어지지 않은 색깔을 칠할 수는 없어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하나님이 만드신 색상을 가지고 묘사하는 게 미술이고 예술이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동물들도 소리를 내요.
새들도 새소리를 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새소시를 음악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혀 창조적이지 않거든요.
동물들은 그저 본능대로 소리를 낼 뿐이지, 찬송가를 부르거나, 랩을 하거나, 알앤비를 하거나, 그러지 않아요.
오직 사람만 하나님을 닮아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고, 창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직업이에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
집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떤 사람은 동그란 집, 어떤 사람은 네모난 집, 우리 나라는 한옥집, 다른 나라는 동굴 집, 다양한 집들이 있잖아요?
동물들이 짓는 집을 문화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느 지역에나 비버는 똑같이 댐을 만들어서 살아요.
어떤 지역의 표범도 나무 위에서 살아요.
어느 지역의 거미들도 똑같은 거미줄을 쳐요.
물론 땅 속에 사는 거미도 있지만, 대체로 다 똑같은 거미집을 짓습니다.
사람만 놀랍게도 문화를 창조할 수 있어요.
이게 직업입니다.
문화는 단순히 생계를 넘어섭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모방하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처럼 세상을 질서있게, 더 아름답고 고상하게 만드는 것도 직업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창조정신을 무시하지 마세요.
타고난 고상한 취미를 무시하지 마세요.
다양한 달란트와 능력들을 무시하지 마세요.
돈이 되든 되지 않든 하나님이 부여하신 귀중한 달란트들입니다.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직업이에요.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했는데, 왕 같은 제사장에 주목해 보세요.
제사장은 은혜의 전달자입니다.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중개하는 중개자입니다.
은혜받을 통로가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제사법을 주시고, 제사드릴 제사장을 따로 세우십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을 유지하고, 하나님께 제사드림으로써, 죄인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거에요.
우리 교회 다니는 여러분들이 바로 이러한 제사장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중개하는 중개자이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전달하는 은혜의 전달자에요.
*무엇보다 하나님을 만나야 해요.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을 깊이깊이 만나야 합니다.
거룩을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거에요.
모든 직업이 거룩한 일입니다.
성직자만 성스러운 직업자가 아니라, 모든 직업이 성직이에요.
여러분, 종교개혁 때 루터가 했던 말 혹시 아시나요?
모든 사람이 제사장이다.
만인 제사장.
들어본 적 있나요?
이때 이후로 모든 직업은 거룩한 직업이 되었습니다.
로마 가톨릭이, 사제만 거룩하다.
교황만 거룩하다고 거짓말 했지만,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어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에덴 동산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 이시고, 아담에게 먹을 거리를 공급하시는 농사꾼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새들에게 먹을 거리를 주시는 축산업에 종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사람들에게 맑은 물을 공급하시는 수자원공사 공무원이 바로 하나님이세요.
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물을 관리해야 해요.
자연을 관리해야 해요.
이런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연과학 쪽으로 진출해야 되겠지요.
자연도 종류가 많죠.
그냥 철이나 금속 같은 광물들도 있고요.
이런 건 기계나 전자 / 컴퓨터 등도 될 수 있겠고,
동물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애견 미용도 할 수 있고, 다양한 동물원이나 수의사, 동물 관리사 등도 될 수 있겠죠.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농업이나 원예사, 농어촌 기술 지도사 등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겠죠.
수학 :
물리학 :
자연 과학 :
생물학 :
수의학 :
기계 / 전자 :
지리 :
우주 :
여러분, 우리는 사람을 관리해야 해요.
사람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육체를 관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건강을 관리하는 건강 관리사, 영양사, 생활체육지도사, 의사, 간호사, 한의사, 약사, 다양한 일을 해야 합니다.
영혼을 관리하는 일도 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다스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심리상담사, 정신과 의사, 또는 좋은 자연환경을 제공하는 동산지기나 산림자원관리사 등, 이런 일들도 해야 합니다.
건축 :
음식 :
교육 :
음악 :
미술 :
경제 :
경영 :
윤리 :
법률 :
사람들의 삶을 돌보는 사회복지사, 노인 복지, 아동 복지 이런 일들도 사람들을 돌보기 관리하기 위한 직업이 되겠죠.
다 하나님의 일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지,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이 은혜로운 공급을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은혜로운 선물을 주시기를 원하시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욕심내지 말고, 우리의 물질과 재능들을 직업을 통해서 널리 널리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과, 다른 민족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을 가지고, 다른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기 인생을 투자하는 거에요.
그게 우리가 말하는 선교사 아니겠습니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직업을 통해 물질과 재능을 다른 민족에게 흘려보내는 거죠.
이런 일들을 여러분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는데요.
여러분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따라하는 거에요.
물을 관리하시고, 공기를 관리하시고, 자연을 관리하시고, 동물을 관리하시고, 사람을 관리하시는 하나님을 따라하는 행위가 직업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먼저 하세요.
하나님이 가장 많이 일하십니다.
지금도 일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깊이 깊이 만나고 알아야 해요.
그래야 하나님처럼 나도 열심히 일해야 겠다.
봉사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 하나님은 놀고 계신다.
하나님은 잠자고 쉬고 계신다.
유투브 보고, 티비 보고 쉬고 계신다.
이렇게 생각하면 일하는 게 정말 그렇게 싫을 수가 없는 것이죠.
성경에서 하나님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심지어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면서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으로 나와요.
무슨 말이에요.
가장 일 많이 하시는 분이라는 거에요.
우리는 우리가 일 제일 많이 한다고 생각하죠?
교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에요.
우리는 새벽에는 쉬잖아요.
밤에는 자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새벽에도 일하십니다.
별들을 돌보시고, 행성들을 돌보고, 밤에 잠자는 동물들과 식물들도 여전히 가꾸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슨 자랑을 하겠습니까?
말씀을 정리하면서 이것만 가져가면 됩니다.
첫째, 모든 직업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직업에는 우열이 없다.
차등이 없다.
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일이다.
육체 노동도 하나님의 일이고, 정신 노동도 하나님의 일이다.
둘째, 하나님을 깊이 깊이 만나야 직업에 보람을 찾을 수 있다.
일하고 싶은 마음은, 가장 일을 많이 하시고 봉사를 많이 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때 찾을 수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했는데도, 사람들이 몰라주고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실망하고 열정을 상실하죠?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람보고 일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하나님보고 일하는 것이고, 믿음으로 일하는 것인데,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하신다는 믿음으로 일할 때, 우리가 기뻐할 수 있습니다.
보람도 찾을 수 있고요.
그러니까 10대 때, 말씀과 기도로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깊이 깊이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생각이 달라져요.
자세가 달라지고, 눈빛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오늘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깊이 깊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의 통로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평생에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분명한 목적이 있어서 여러분을 만드셨어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각자 좋아하는 분야, 흥미가 달라요.
하고 싶은 일, 하고자 하는 분야가 다 다릅니다.
그게 분명한 목적이에요.
어떤 이는 태어날 때부터 힘들게 자라기도 했지만, 또 어떤 이는 유복하게 태어나 좋은 혜택을 많이 누리기도 합니다.
이 모든 삶의 조건들도 하나님이 부여하신 거에요.
다 달라요.
다양한 조건들과 능력들이 조합되어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인물이 탄생하는 것인데, 무엇보다 하나님을 깊이깊이 만아야 합니다.
*기도회찬양
-나의 안에 거하라
-주님이 주신 땅으로
*이시간 같이 기도할 텐데,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세요.
-이 나라 이 민족, 이 교회를 위해 기도하세요.
여러분이 은혜의 통로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하고자 하는 일이 잘 풀어지도록 기도하세요.
사람을 붙여주시고 길을 열어주시고, 하고자 하는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은혜 달라고 기도하세요.
-여러분의 학업에 지혜 달라고 기도하세요.
사역
9 그러나 너희는 에크렉토스(선택된, 뽑힌) 게노스(혈통, 동족, 민족), 바실레오스(왕 같은), 히에라튜마(제사장), 거룩한 에스노스(이방민, 민족, 족속), 페리포이에시스(얻음, 소유)가 된 라오스(무리, 백성들, 사람들)이다.
그 아레테(덕, 덕성, 품성의 탁월함)를 에크스앙겔로(선포하다, 보고하다)하기 위하여, / 그 스코토스(흑암, 어둠)으로부터 너희를 칼레오(부르다)하여서, 그의 사우마스토스(기이한, 놀라운, 이상한) 포스(빛) 안으로.
교회는 하나님께 선택된 민족,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가 된 백성들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흑암으로부터 너희를 놀라운 빛으로 불러내신 그 덕을 선포하기 위해서이다.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이사야 43:21을 반향한다.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이사야의 “찬송”이라는 단어는 베드로가 “아름다운 덕”이라고 번역한 것과 동일한 아레타스[aretas, 70인역]이다).
그 구절은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구속(redemption)을 약속하며(사 43:14), 하나님이 그 자신을 위하여 그분의 백성을 용서하고 속량할 것이고, 그분의 영광이 전파될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강조하기 때문에(사 42:8, 12; 43:7; 43:25; 44:23) 문맥에 맞게 인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바벨론으로부터가 아닌 어두운 가운데서 속량하였고 그들을 당신에게로 불러냈고, (예루살렘이 아니라)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였다(참조, 고후 4:6; 엡 5:8; 골 1:12–13; 살전 5:4–5; 요일 2:8–11).
아레테(aretē)는 “탁월함, 인정과 찬송에 합당함”을 의미하고(빌 4:8, “무슨 덕이 있든지”; 벧후 1:3, 5), 그러한 의미가 확실히 이 문맥에 잘 어울린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은 그분의 모든 덕, 즉 그분의 완전함을 선포하는 것이 마땅하다.
사실상, 하나님이 우리를 속량한 목적은 단지 우리 자신의 기쁨이 아니라, 너희가…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that you may declare)라는 어구에서 베드로가 “그것”(that)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가리키는 바와 같이, 우리가 그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다(참조, 사 43:7, 25; 48:9–11; 계 4:11).
우리 자신의 영원한 복지를 추구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옳은 일일지라도, 일생을 위한 진정으로 만족스러운 목표를 결코 제공할 수 없을 것이다.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우리의 시도에 대한 답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데” 있다.
강의논리
공부를 하지 않았을 때의 일
공부를 하는 유익함
공부가 가능한 이유
Re + Seach
다시 찾다.
누군가가 집을 정교하게 지었다.
순서대로 설계도를 따라서 지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그 지어진 집의 규칙과 패턴을 찾아낸다.
이것이 리서치이다.
공부가 가능한 이유가 무엇인가?
수학, 과학, 의학, 철학 등 다양한 공부가 가능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누군가가 이 세상을 질서와 패턴에 따라 건축했기 때문이다.
공부는 이미 만들어진 법칙과 규칙을 찾아내는 것이다.
수학도 무에서 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연구해서, 법칙과 규칙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는 하나님의 창조질서 + 도덕법칙을 찾아내는 탐험과 같다.
목표를 정하라
원하는 목표, 동경하는 사람을 정하라.
2.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을 체크하라.
3.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지금 해야 할 것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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