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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서론
신대원 다닐 때 친한 형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 형은 먼저 결혼한 상태였고, 저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을 때입니다. 만나면 항상 꼭 결혼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형 결혼생활이 정말 행복한가봐요. 이렇게 결혼을 꼭 하라고 하는 거 보니’ 하니까 그 형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만 당할 순 없지, 너도 당해봐라!’ 물론 농담이겠지만 어떻게 보면 뼈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결혼생활, 분명 행복하기도 하면서도 고달픈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대답이었습니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은, 분명 행복하면서도 또 쉽지는 않은 여정입니다. 우리가 사회생활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하는 것은 우리 삶에 활력소가 됩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 일이라는 것은 분명 즐겁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일이 고통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과 일은 양면을 다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분명 행복하면서도, 때로는 지치고 힘든 부분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결혼과 일에 대하여 어떻게 이야기를 하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확인해보겠습니다.
주해1 : 인간만 특별하게 창조하신 이유(26-27)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는 부분입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읽은 오늘 본문은, 하나님 창조사역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드시는 부분입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십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이런식으로 명령하시면 빛이 있고, 궁창이 있게 되고, 땅과 바다가 나뉘게 됩니다. 또한 동식물을 창조할 때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그대로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인간만 조금 독특한 형태로 창조하십니다. 26절 앞부분에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다른 땅과 하늘, 그리고 동식물들은 그냥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는 방식으로 창조하셨지만, 오직 인간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만드십니다. 말씀으로 쉽게 창조하신 다른 창조물들과는 달리 사람만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음받았다는 것,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는 바로 하나님과 사람과의 고유한 관계, 그리고 둘째는 사람과 나머지 피조물들과의 고유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과 사람과의 고유한 관계는 다른 피조물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사람에게만 허락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다른 창조물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은 피조물 중 유일하게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로 인하여 형성되는 또 다른 고유의 관계. 바로 인간과 나머지 피조물들 간의 관계입니다. 26절 뒤에 보면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고” 바로 인류는 피조물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것의 의미입니다. 첫째는 인간만이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 수 있으며, 그 하나님과 맺은 관계로 인하여 둘째로 인간은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권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만물을 다스리고, 지금의 이 문명을 지배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27절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인간만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십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지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스스로 성을 결정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 창조 원리를 거스르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성’은 인간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의 창조 사역 가운데 부여된 것임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해2 :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주신 복(명령)(28)
그렇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로 창조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십니다. 28절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이란 28절에 나오는 5개의 동사입니다. 생육하라, 번성하라,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 생육하고 번성하고 그리고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복이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이 선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지만 창조된 그 세상은 여전히 길들이고, 정복하고, 다스려야 하는 거친 세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러나 여전히 거친 이 세상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며 식물을 재배하고 작물을 수확하는 활동들로 그 공간들을 채워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소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복이냐? 생육하고 번성하고 정복하며 다스리는 것 자체가 왜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냐,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통하여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며 다스리는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통치를 행사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주어진 일, 공간을 채우고 작물을 재배하는 활동들은 저주가 아닌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리고 자기 형상대로 우리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의 목적은 바로, 우리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권을 행사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세계 가운데 인간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그리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모든 활동들을 통하여 자신의 통치권을 행사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이 목적 때문에 인간을 자기 형상과 모양으로 지으시고 그들로 하여금 모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 만물을 다스리는 인간의 활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온 세계에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복입니다. 내 삶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통치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복은 그 모든 인생의 활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드러나는 것인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명령 5가지,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의 의미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다섯가지 명령 중 앞의 3개의 명령,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는 것은 결혼과 가족제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뒤에 2개의 명령,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것은 바로 인간 사회에서의 모든 활동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로 창조된 인간은 결혼하여서 아이를 낳아 가족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땅을 정복하고 생물을 다스리는 것은 이제 인간의 모든 사회활동, 직업, 공부, 이웃과의 관계 등 가족 공동체를 벗어나는 모든 사회활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기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의 결혼과 가족, 그리고 사회활동을 통하여서 자신의 통치권을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인간 또한 하나님의 이 창조 명령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나타내는 복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이 하나님의 통치를 무너뜨리고자 그 시작을 막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인 성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마치 세련된 지식인인 것처럼 이 세대 가운데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드러나는 그 시작이 남자와 여자의 결혼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성을 부정함으로 첫 번째 명령인 생육부터 못하도록 막는 것입니다. 교묘한 사탄의 전략인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가족 공동체를 이루고, 사회활동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드러나는 복된 삶을 살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또한 청년들 가운데 비혼주의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다행히 저와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 청년들은 웬만하면 다들 결혼을 하고 싶어해서 안심이 됩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혼자 사는게 낫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하나님의 창조명령을 점점 외면해가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전환 – 복이 복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 : 타락
그런데 아마 그런 젊은 사람들이 아예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 그리고 사회에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삶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가끔씩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이것을 복으로 여기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결혼생활, 자녀를 기르는 것, 그리고 밖에서의 사회활동이 때로는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또 가끔씩은 이 모든 것들이 너무 버거워서 복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복이 아니라 무거운 짐처럼 느껴질 때도 분명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봐도 나의 결혼생활과 우리 가족, 그리고 나의 사회활동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때론 그 짐이 너무 무거운 어른들이 생각없이 청년들에게 결혼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분들의 마음이 이해 안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을 잘못 짚었습니다. 결혼과 사회활동, 이것들이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안느껴지는 것은, 결혼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바로 인간의 타락 때문입니다. 바로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타락한 것이 원인이지, 결혼제도가 문제가 아닙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복이 아니라 짐으로 느껴지는 것은 죄의 타락으로 발생한 문제입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복으로 느껴지지 않고 고달프기만 한 것은 육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로 타락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입니다. 사회에서 직업을 가지고 여러 활동들을 해 나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느껴지지 않고 고통스럽게만 느껴지는 것은, 타락한 우리 죄의 본성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명령이 복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잘못된 해결책입니다. 결혼이 힘들다고 결혼하지 않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육아가 힘들다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가장 안타까운 선택입니다. 근본 문제를 해결해야죠. 바로 우리의 죄의 문제입니다.
적용
이 죄의 문제는 우리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누가 해결할 수 있나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은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리고 죄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바로 삶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회복이라는 것은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상태일까요? 바로 타락 전, 창세기 1장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을 때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이 십자가 복음입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타락 전 세상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 그리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권이 드러나는 복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고 타락한 인류에게 있어서 결혼과 육아, 그리고 사회활동은 하나님의 통치권이 드러나는 수단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무거운 짐으로 그들을 누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명령을 통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아가야 할 자들이 죄로 타락하여 오히려 그 모든 활동들이 고통스럽게만 느껴지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회복하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예수께서 해결하신 죄의 문제는 우리의 삶을 타락 전으로 회복시켜 가십니다. 고통스럽던 우리의 가정과 사회활동들이 예수님을 만나 복음으로 회복되어가면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우리를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결혼과 육아, 그리고 자녀 양육을 통하여 형성되는 가족 공동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다스림을 이 땅 가운데 나타내고자 하십니다. 또한 여러분들의 사회활동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이 땅 가운데 펼치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여전히 죄로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복으로 주신 이 삶을 누리지 못하고, 이것이 고통스럽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고통스러움에 대한 결론으로 다음세대들에게 너희들은 결혼하지 마라, 애 낳지 마라, 이런 이야기나 하는 것이 어리석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 삶의 고통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해결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우리 삶을 회복시키면,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 그리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이 모든 행위는 더 이상 고통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복된 삶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받았기 때문에 그 목적대로 살 때 가장 행복하고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 때 가장 평안하고 기쁨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는 피조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있으면, 여러분의 가정생활, 사회 활동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이 온 세상에 선포되고 여러분은 가장 복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복이라고 주신 가정과 사회활동들은 오히려 재앙이 되고 무거운 짐이 되어 여러분을 누르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청년들에게 반드시 결혼하라고 합니다. 그것이 창조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도바울처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교회를 세워야 하는 특별한 사명을 받은 자는 예외입니다. 종종 특별한 사명으로 인해 독신의 은사를 받은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조건 결혼하라고 합니다. 단!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 안에서 만나고 결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없는 가정은 재앙입니다. 예수가 없는 사회활동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입니다. 그러나 예수로 충만한 청년끼리의 만남을 통하여 그 가정이 교회가 되고, 거기서 출생한 자녀들과 형성되는 그 가족 공동체는 하나님의 주권이 선포되는 가장 귀한 도구가 됩니다. 가장 복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이죠.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모든 사회 활동, 온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뻗어나가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 안에 있을 때 가능한 것들입니다.
예수 안에 머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수 안에 있을 때, 여러분의 가정이 회복될 것입니다. 무거운 짐처럼만 느껴지는 가정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으로 회복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 안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한 가정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회 활동이 버거우십니까, 그럴수록 더욱 예수 안에 머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안에 머물 때,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여러분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선포되는 가정 속에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회복되는 것입니다. 선 순환이라고 하죠. 예수로 충만한 가정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과의 회복된 관계가 우리를 예수로 충만하게 하시고, 예수로 충만한 우리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이 온 세상에 선포되고 하나님 나라는 확장해 가는 것입니다. 이 선순환이 여러분의 가정 가운데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로 충만하여,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회복된 하나님과의 관계로 여러분들의 삶의 현장에 하나님 나라가 선포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