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24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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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274 나 행한 것 죄 뿐이니
본문 시51:1-12
하나님, 감사합니다. 날마다 베풀어주시는 크신 은혜를 기억하며 늘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더욱 많은 감사의 제목들이 맺혀질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요. 하지만 주님, 그 크신 은혜 앞에 우리의 연약함을 돌아봅니다. 쉽게 주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불평과 불만의 열매를 맺었던 우리는 아니었는지 돌아봅니다.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또한 우리의 생각을 주장하여 주셔서 죄악된 생각 품지 않도록 인도하시고, 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의 방향을 확인하며 주님 뜻대로 걸어가는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여러분, 혹시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가슴을 치며 애통해 본 마지막 경험이 언제였는가? 갈수록 우리 사회는 무감각해져 양심이 마비되고 있다. 뉴스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는가?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시대이다. 최근에도 아내가 남편을 제주도에서 죽인 사건이 화제가 되고 있다. 우리는 이처럼 남의 죄에 대해 잘 흥분하고 쉽게 정죄하지만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처음에 드렸던 질문이었는데 여러분, 과연 나는 나의 죄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가슴을 치며 울며 애통해 본 마지막 때가 언제였는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의인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거듭나기 전에 하나님을 부인하고 거부했던 모든 죄에 대해서는 단번의 회개로 완전이 끝이 났다. 롬8:1-2 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데, 그 이유는 그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났다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는 완전한 거룩의 삶을 살 수 없다. 주님을 만난 이후에 누구보다도 완벽에 가까운 삶을 살았던 사도 바울조차도 죄악된 육신에서 벗어나고자 롬8:23 에서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는 죽는 그 순간까지 꿈틀대는 육신의 죄성과 싸워야만 한다. 렘17:9 의 말씀처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는데,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붙들고 날마다 거룩을 향해 내달려야만 한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본문은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앞에서 온 마음을 다해 처절한 심정으로 회개한 한 사람, 이스라엘의 성군, 의로운 왕이었던 다윗이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강탈한 사건 이후 선지자를 통해 책망을 들은 이후 회개하며 기록한 시이다. 본문의 배경이 되는 삼하 11장을 참고하시면 될 것이다. 시간적으로 다 살펴볼 수 없지만, 다들 아시는 내용이기 때문에 바로 본문으로 들어가겠다. 본문인 시51:1 을 함께 읽어보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의지하여 죄사함의 은혜를 구하고 있다. 여기서 ‘인자’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헤세드인데, 이것은 언약에 기초하여 자기 백성에게 베푸는 무조건적 사랑을 의미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는 무조건적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공로를 보시고 죄를 사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러나 이를 악용하여 하나님께서는 나의 모든 죄를 무조건적으로 용서하시는 분이시니 방종의 삶을 살아도 괜찮다고 여기는 부류가 있다. 반면 하나님의 헤세드를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경건이나 공로를 통해 하나님께 용서를 받으려고 하는 부류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양극단을 피해야 한다. 지나친 죄의식에 빠져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비롯된 죄사함의 은혜를 바라보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하나님의 무조건적 용서를 이용해서 자신의 죄의 욕망대로 방종의 삶을 사는 것도 문제이다. 이 양극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식을 분명히 가져야 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이자,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죄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하고 있다. 4절 상반절을 보면 .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라고 기록한다. 내가 주께만 범죄했다는 고백에 주목하라. 이 고백은 우리가 보기에 좀 이상하다. 왜냐하면 다윗은 하나님께만 범죄했는가? 그렇지 않다. 그는 우리아에게도 범죄했고 그 아내인 밧세바에게도 범죄했다. 그럼에도 다윗은 주님께만 범죄했노라고 고백한다. 이 문장의 본래 의미는 ‘오직 당신께, 당신께만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라는 것으로, 이 표현방식은 히브리식 표현법으로서 어떠한 죄라도, 무슨 죄라도 그 죄는 필히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너뜨린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윗이 사람들에게도 죄를 범했지만 가장 특별히 하나님께 더욱 범죄헸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여러분 생각해보라. 우리는 보통 하나님께 짓는 죄와 사람들에게 짓는 죄를 구분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형제자매에게 잘못을 저질러 놓고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회개하고 끝내버린다. 또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만 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여 사람들에게는 전혀 용서를 구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모두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요셉을 생각해보라. 창39:9 를 보면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라고 말한다. 그는 보디발의 아내와 동침하는 것이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것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다윗도 마찬가지이다. 마비된 신앙의 양심이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범한 모든 죄들이 결국 하나님께 직결되고 있음을 보게 된 것이다. 여러분, 우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형제자매에게 범하는 잘못들은 바로 하나님께 직결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 따로, 이웃 따로가 아니다. 남에게 죄를 범하는 사람은 그 순간 하나님께 범죄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며 살아간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인 골3:23 에 보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라’ 라고 하신 말씀을 붙들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코람데오의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란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 앞에서 그분과 아무런 상관이 없던 자들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의 모든 죄를 심판하시는 재판장이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값없이 은혜로 우리를 선택하시고 우리 대신 자기 아들을 사형시키셨다. 우리는 우리의 죄값으로 영원형벌을 받아야 했지만 그분의 아들이 우리 대신 사형당하심으로 우리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더이상 그분을 두려워하고 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과 더불어 말할 수 없는 화평을 누린다. 롬5:1 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자는 12절 다윗의 고백대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날마다 누리는 자이다. 다윗은 자신의 죄 때문에 구원의 즐거움을 누리는 화평을 잃어버린 사실을 두고 한탄하면서, 다시 그것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한다. 그는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구원의 즐거움을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자원하는 심령’으로 자신을 붙들어 달라고 간구한다. 여기서 자원하는 심령이란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심령이다. 기꺼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구원의 즐거움을 다시 누리고 싶어하는 강한 소망이다.
여러분, 마찬가지로 우리도 나 자신의 경건생활에 의거하여 구원의 즐거움을 계속해서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날마다 끊임없이 구원의 감격을 회복시켜 주셔야만 우리가 이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감사와 찬송으로서 그분의 은혜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나를 구원해 주신 위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날마다 노래하며 찬송해야 한다. 심지어 죽음이라 할지라도 주께서 함께 하시는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을 소멸시킬 수 없음을 확신해야 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라고 담대히 고백했던 시편기자의 고백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러분, 본문에서 다윗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나오는 회개의 눈물과 함께 영광스러운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한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 속에도 이러한 간절함이 있는가? 갈수록 메말라가는 자신의 영혼을 바라보시면서 다시 한번 주님과의 뜨거운 사랑이 회복되기를 소망하는가? 그렇다면 11절처럼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라고 간구해야 한다. 12절처럼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강하게 역사하사 나를 붙들어 주시기를 간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 이와 같은 간구의 부르짖음을 통하여 거룩하신 성령께서 우리의 무감각해진 양심을 새롭게 일깨워 주시는 역사가 일어나길 축복한다. 그래서 죄로부터는 점점 더 멀어지고, 거룩을 향하여 달려가되, 날마다 구원의 풍성한 기쁨 속에서 담대히 주님만 붙들며 살아가는 이자리의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기도하자.
주님,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죄사함의 은혜를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과 말할 수 없는 화평을 누릴 수 있길 소망합니다. 날마다 베푸시는 은혜에 충만하게 젖어들어서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에 사로잡히게 하여 주옵소서. 늘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영적으로 민감하게 하시어 더욱 주님을 붙들게 하시고 믿음의 확신과 구원의 기쁨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되게 하소서. 오늘 주일 예배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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