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나그네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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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지난 주 설교를 통해 우리 주변에 소외된 이웃이 누가 있는지 함께 찾아보고 그들에게 사랑을 나누자고 결단하였습니다. 다들 한 주 동안 주변을 좀 둘러보며 소외된 이웃을 찾아보셨나요? 저도 나름대로 신성동에 어떤 이웃들이 사는지 돌아보려고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기도 하고, 주민센터에 가서 이것저것 문의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동네를 돌아보던 중에 ‘이도저도’라는 조그마한 서점을 발견해서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마음에 그곳을 들어가보았는데요, 서점 주인이 참 독특한 분이시더라구요. “독서야말로 가장 건강하고 생산성있는 취미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이 서점 주인은 서점을 운영하시면서 작곡도 하고 하시고 그곳에서 공연도 여시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나이는 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셨는데, 30분 정도 여러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교회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통해서 지금 이 사회에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지에 대해 정확히 들을 수 있었지요. 서점 주인이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리스도인이라면 지금 자신의 행동이 정말 사랑해서 하는 행동인지 언제나 돌아보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사랑을 볼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누가 보아도 사랑이라고 할 수 없는 일들이 교회에서 일어나는 것을 숱하게 보았습니다.” 교회의 세습, 공금 횡령, 성범죄, 혐오발언 등을 말하며 교회에 사랑이 없다 하는 그분의 말에 저는 무엇이라 대답해야할지 한참을 생각해야만 했습니다.
가슴아프지만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는 분명 사랑의 종교입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지향한다”라는 것을 모르는 비그리스도인들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말하는 사랑을 발견할 수가 없으니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는 것입니다. 점차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사라져가는 것, 이 시대의 교회들의 끔찍한 비극 중의 하나입니다. 일찍이 슈바이처 박사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기독교의 큰 이단은 바로 사랑이 없는 기독교이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이렇게 교훈하였습니다. 요일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인 이유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바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이제 우리를 통해 당신의 사랑을 세상 곳곳에 전하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곳이어야 함이 지극히 마땅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오셨는데요, 이것은 신약시대 뿐만 아니라 구약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 당신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는 대표적인 구약의 본문입니다.
오늘의 본문 17절과 18절은 구약의 백성들이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고백했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본문은 세 부분으로 끊어서 살펴보도록 합시다. 신 10: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먼저 이스라엘이 고백하는 하나님은 유일한 신, 유일한 주님이십니다. 새번역 성경에서는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이 세상에는 신도 많고, 주도 많으나, 당신들의 주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고, 참 주님이십니다” 하나님 외에는 세상에 어떠한 신과 주도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며 참 주님이십니다.
신 10:17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둘째로 이스라엘이 고백하는 하나님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시며, 이 세상 만물과 만사를 주관하시기에 부족함이 없을정도로 능력이 있으시며, 그렇기에 모든 만물이 그러한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하며 경외해야함이 마땅하신 분이십니다.
신 10:17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셋째로 이스라엘이 고백하는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것에도 속지 않으시고, 어떠한 것에도 흔들리지 않으시며 언제나 가장 올바른 판단을 하는 분이시기에, 이 세상을 다스리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신 10:18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넷째로 이스라엘이 고백하는 하나님은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지으신 모든 것들을 사랑하시고 자비를 베푸시되, 특별히 소외된 자들을 향하시고 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소망없는 자들이 의지할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19절을 한 번 주목해봅시다. 19절에는 하나님을 믿고 고백하는 자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행동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행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을 하고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19절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나그네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왜 나그네를 사랑해야 할까요? 이스라엘이 나그네 신세로 살았던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하기 이전에 이스라엘은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여기서 나그네에 해당하는 단어 ‘게르’는 자신들의 출신 사회를 떠나 다른 부족, 다른 도시, 혹은 다른 나라의 사람으로서 관례적인 사회적 보호나 특혜를 받지 못하고 불가피하게 스스로를 다른 사람의 지배권 하에 둘 수밖에 없는 처지의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 단어가 뜻하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은 이집트에 있는 동안 나그네로서 사회적인 천대와 괄시를 많이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크신 사랑으로 구원하시고 그들의 멍에를 벗겨주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이스라엘은 그들과 함께 거하는 나그네들에게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만큼의 사랑을 베풀어야 함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나그네들이며, 그 사랑을 받은 나그네들에게는 같은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거룩한 의무가 주어집니다.
이것은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 곧, 교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나그네 신세로 살다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땅에서 멍에를 메고 살았듯, 우리도 죄와 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멍에를 메고 살다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구원을 받고 멍에를 벗었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나그네들이라면,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과 같이 나그네들을 사랑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이것은 구약시대에서나 신약시대에서나 변함이 없는 불변의 진리입니다.

이 시대의 나그네들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나그네로서 나그네를 사랑하라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 주변에 어떤 나그네들이 있는지 둘러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어떤 나그네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을까요? 고민을 하던 중에 한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영상을 함께 보고 설교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주변에 살아가는 나그네들을 떠올리며 “외국인 이주 노동자” 정도만 떠올리던 저는 이 영상을 보고 크게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나그네들이 우리 주변에 사실은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이 시대의 사회가 낳은 21세기의 나그네들, 1인 가구에 대해서 함께 알아봅시다.
이 분야에서 몇가지 논문을 쓴 강덕구 박사는 1인 가구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합니다. “1인 가구란 20세 이상의 성인으로혼자서살림하는 가구,즉 1인이 독립적으로 취사 및 취침 등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가구이다.” 전통적으로 가구라고 하면 보통 4인 정도의 구성원이 하나의 가구를 이루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요, 사회가 급변하면서 이러한 가구의 구조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특히 2010년 이후에 이러한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통계에 따르면 2010년 대한민국 전체 가구 중 2인 가구가 24.3%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그 다음으로 1인 가구가 23.9%, 4인 가구가 21.3%로 변화하였습니다. 2015년부터는 1인 가구가 27.2%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이후 1인 가구 증가는 더해져 2019년에는 30.2%가 되었다. 이제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흔하고 일반적인 가구는 1인 가구인 것입니다. 한 사회에서 65세 고령 인구가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라고 하고, 한 사회에서의 총 인구 대비 5% 이상이 외국인 체류자면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것으로 여기는 것처럼 사회를 구성하는 집단이 일정 비율 이상이 될 때 그 특징을 살려 사회의 이름을 명할 수 있는데요, 한국사회는 이제 1인가구사회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1인 가구라는 작은 가구의 형태가 만들어내는 변화는 가히 놀랍습니다. 식생활, 주거 문화, 소비 행태, 인간관계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생활 전반의 변혁이 이루어지고 있지요. 편의점 등에서 1인 가구를 타깃으로 한 도시락의 판매가 호황이고 이전 시대의 4인 가구 중심의 주택 시장 또한 1-2인 가구용 소규모 주택을 만들고, 주택을 분할해서 사용할 수 있게 한 1가구 2세대 주택도 만들고 있습니다. 이렇듯 경제 관련 산업 분야에서는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1인 가구의 특성을 활용한 타깃 마케팅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의 1인 가구 증가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산업계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서 변화하고 있고 많은 학자들이 앞으로 사람들의 생활양식까지 크게 변화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왜 1인 가구가 이토록 늘어나게 되었을까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대학과 직장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다른 지방에서 대학 진학을 위해 도시로 이주해서 혼자 지내는 20대 청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기숙사와 쉐어하우스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형편이 좀 넉넉하면 원룸이나 오피스텔 같은 곳에서, 형편이 좀 열악한 경우에는 고시원 등에서 1인 가구로 생활합니다. 취업이나 취업 준비로 홀로 지내는 1인 가구도 많습니다. 20-30대 청년의 경우 취업 준비를 위해 재학했던 학교 인근이나 학원가 등에서 홀로 지내며 생활하는 경우가 많지요. 이전보다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1인 가구로 지내는 기간도 늘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취업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면서 홀로 지내는 청년 1인 가구도 많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의 3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1인 가구 중에 이러한 20-30대 청년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성동에는 1인 가구가 얼마나 있을까요? 주민센터에 문의를 해보았지만 아직 정확한 대답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략적으로 추측만 할 수 있는 상황인데요, 몇가지 데이터를 함께 살펴보며 추측을 해봅시다. 유성구의 통계에 따르면 올해 6월을 기준하여 신성동에는 25,933명이 주민으로 등록이 되어있고, 한 세대당 인구는 2.17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학생, 취준생, 직장인 1인 가구에 해당될만한 나이대의 인구 즉, 20살부터 36살까지의 인구를 보니 총 8014명이 신성동에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시겠지만 인근 대학교의 학생 중에 신성동 토박이는 상당히 드뭅니다. 그리고 직장인들 중에도 신성동 토박이는 거의 없지요. 대부분이 타지역에서 유입된 인구들입니다. 제가 추측하건대 아마 8014명의 청년들 중 대부분이 외부에서 유입되어서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청년들일 겁니다. 여기서 한 번 표본 조사를 해볼까요? 여러분 중에 타지에서 온 사람 한 번 손 들어보세요. 그리고 지금 1인 가구로 생활하는 사람 한 번 손 들어보세요. 신성동의 청년들의 구성이 여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왜 이러한 1인 가구에 주목해야 할까요? 1인 가구의 유형이 다양하고 경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상당수가 사회적 약자이거나 소외 계층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1인 가구 평균 소득은 다인 가구 평균 소득의 30% 내외로 열악하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월 100만 원 미만 소득층은 45%, 100-200만 원 소득층은 31%로 1인 가구 전체의 76%가 200만 원 미만 저소득층에 속한다고 하네요. 신성동의 청년들 중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연구원들이 많은 이 지역의 특성상 대학생을 제외한 직장인의 경우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크게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직장인들의 경우에도 소외 계층임에 분명합니다. 혼자가 아니었다면 느끼지 않았을 외로움과 고독함을 마주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디어가 발달해서 혼자 생활하면서도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의지하며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이 없다면 외로움과 고독함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신성동 지역의 청년들은 경제적인 면에서 또 정서적인 면에서 소외 계층에 해당합니다.
1인 가구로 생활하는 청년들을 실제로 인터뷰한 자료를 통해 이들이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 엿볼 수 있었습니다. 영상에서도 잠시 언급이 되었던 것처럼 처음에는 혼자라는 자유를 느끼다가 이내 많은 불편함을 겪게 되는데요, 생활의 측면에서 가장 많이 불편하게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의식주를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혼자이기 때문에 귀찮거나 게을러 끼니를 놓치거나 간편하게 때우는 식으로 지내는 경우가 많고, 주문에 있어서 1인 분량 주문은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배달을 시킬때도 항상 고민이 된다고 하더라구요. 또, 자칫 무절제하거나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일반화될 수 없는 것이지만 혼자 살면 생활이 흐트러지고 불규칙하게 지내기 쉽지요. 1인 가구의 청년들 중 많은 사람들이 수면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거나 음주나 흡연, 게임이나 미디어에 쉽게 중독이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와 함께 이 지역에서 살아가는 많은 청년들의 현실입니다. 혼자가 아니었다면 굳이 겪지 않아도 됐을법한 일들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지요. 점점 세속화되어가는 사회 구조 속에서 이들은 21세기의 나그네들로 살아가고 있고, 경제적이고 정서적인 멍에에 매여 여러가지 불편함을 호소하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이런 나그네들을 사랑하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가진 재능과 능력과 물질이 과연 그들에게 도움이 될만큼 충분할까 고민이 되십니까? 사랑은 재능과 능력과 물질이 전부가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정말 나그네들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재능과 능력과 물질을 주저함이 없이 나누겠지만, 가진 것이 많은 자가 더 잘 사랑하는 것도 아니요 가진 것이 적은 자가 더 못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정말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효용성에 대한 흥미로운 리포트가 하나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이탈리아 시칠리섬의 한 고아원에 대한 연구에서 나온 것인데요, 연합군이 세운 고급 고아원에서의 영아 사망률이 자생적으로 생긴 가난한 고아원보다 높은 것이었습니다. 고급 고아원은 연합군의 지원으로 시설도 좋고 제공되는 음식도 영양가가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자생적으로 생긴 고아원은 비바람을 제대로 가리지 못할 뿐 아니라 아기에게 분유도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예상과 정반대되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사망을 일으킨 질병은 놀랍게도 ‘사랑결핍증’이었습니다. 특별한 원인도 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을 수도 있는, 의외로 치명적인 질병이었습니다.
오늘날 강력범죄가 늘어나고 온갖 중독자들이 넘쳐나며 정신질환자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분명히 세상에서 점차 사랑이 식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2010년 이후로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1인 가구화의 상황도 사랑이 식어져가게 하는데 한 몫을 하고 있음에 분명합니다. 이런 21세기 도시의 사회와 환경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라 하시는 나그네가 누구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이제 나그네들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이 신성동이 얼마나 새로워질 수 있을까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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