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승리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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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엡 6:10-13
제목: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찬송: 350, 349
예전에 TV에서 이순신 장군에 관한 특집 프로를 방영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본 수군에게 연전연승을 거둔 이순신 장군의 승리의 비밀을 파헤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불과 열두 척의 군선으로 133척의 왜선을 물리친 것만 기억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거둔 승리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지형지물을 이용했습니다. 그래서 12:133이라는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울돌목이라는 특이한 지형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울돌목을 한자로 표기하면 명량이예요. ‘울 명’에, ‘들보 량’, 혹은 ‘제방, 좁은 수로 량’입니다. 제가 오래전에 김훈의 ‘칼의 노래’ 라는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서 휴가때 일부러 이 울돌목을 찾아가 봤어요. 기념관이 있더라구요. 그 곳을 방문하면서 두 번 놀랬는데, 이순신장군의 승전에 관한 기록들을 보고 놀랬고, 또 한번은 울돌목의 유속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만화에서나 가능할법한 승리들을 거뒀더라구요. 그리고 절벽위에서 울돌목을 내려다 보니, 그 유속이 어찌나 빠르고 거칠던지 바닷물이 흐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빨리 흐르는 것은 본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적과의 전투에서 항상 우세한 전력을 유지하려고 무척 노력을 했습니다. 한번은 해군사관학교 임원빈 교수라는 분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전쟁은 우연이 아니라 과학이다. 승리할 만한 위치에서 승리할 조건을 두루 갖추었을 때 이기는 것이 전쟁이다. 약할 때 전쟁하면 백전백패하고 만다. 강한 전력과 유리한 조건을 유지해야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라고 했어요. 손무는 그의 책 손자병법에서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라고 했구요. 만일 싸우게 되면, 꼭 이길만한 전쟁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만일 전쟁을 하게 되면 이기든 지든 빨리 끝내야 한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전쟁에는 막대한 군수물자가 투입되야 하기 때문에 전쟁을 오래 끌면 이겨도 손해라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이 손자병법이 현대를 사는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이 손자병법을 아주 감동있게 읽었구요. 심지어 나만 알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했어요. 금과옥조같은 내용이었던 거죠. 지금도 제 서재에 가장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었습니다.
제가 전쟁 얘기로 설교를 시작했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보면, 신앙생활도 전쟁이예요. 12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에베소서 6:12 (NKRV)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여기에 ‘씨름’ 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요, 이 말은 ‘전쟁’ 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 ‘팔레’ 라고 하는데요. ‘to struggle’, ‘to fight’ 라는 뜻이예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이 곧 싸움이라는 것이고, 전쟁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누구와의 싸움이라는 거예요?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관한 싸움이면 태권도도 배우고 사격술도 배우고, 검도도 배우고 해야 하겠죠.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한 싸움은 그런 종류의 싸움이 아니라는 거예요. 참고로 ‘혈과 육’ 이라는 것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예요. 방금 읽은 12절에서는 “우리의 씨름은 ➊통치자들과 ➋권세들과 ➌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➍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성도들이 맞서 싸워야 할 네 가지 영적 실체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요, 첫째, ‘통치자들’ 이라는 것은 세상에 타락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적인 힘을 의미합니다. 물론 그 타락한 통치자들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죠. 우리는 그동안 마귀적인 정치세력들을 수도 없이 봐 왔습니다. 스탈린, 히틀러, 크레르루주의 수장이었던 폴포트, 1970년대 우간다를 철권통치하면서 반대파를 대량학살했던 이디아민,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등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대량학살과 전쟁범죄들을 보면 이것이 과연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일까 싶을만큼 악랄하며 마귀적입니다. 세상의 타락한 문화를 봐도 그래요. 세상의 음란한 문화가 대표적이죠. 문학과 예술이라는 미명아래 온갖 더럽고 추하고 인간본성에 반하는 더러운 이야기들을 버젓이 행합니다. 물론 그 배후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둘째로 권세들이라고 했는데요, 이것은 사탄의 권세를 나타내는 세력들입니다. 이단종파와 그 단체들이죠. 귀신의 힘을 이용해 점을 치는 점쟁이들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점치는 사람들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주역을 공부해서 점을 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위 신접함으로 점을 치는 자들이 있다고 해요. 오늘날 다양한 동서양의 점술들이 들어와서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현혹이 되고 있습니다. 점집들이 성행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아간다는 거죠.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018년 2월 24일자 기사에서 한국 점술시장의 규모가 4조원에 이른다고 보도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K-culture 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영화산업의 규모가 2018년 기준 2조 3764억이었다는 거예요. 점술시장이 영화시장보다 1.7배 가까이 더 크다는 뜻이죠. 이 만큼 사람들이 어둠의 세력에 현혹되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알듯이 하나님이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중에 나일강이 피로 변하는 재앙과 개구리 재앙은 애굽의 술사들도 따라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어요. 그것은 무엇을 뜻하냐면, 이런 마귀의 수하에 있는 세력들도 인간을 혹하게 만들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분들이 그러더라구요. “목사님, 점보러 가면 신기하게도 맞춰요” 네, 맞출겁니다. 어느 정도까지는요. 왜 그러냐면, 그 마귀나 마귀가 부리는 귀신들이 영적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물론 전능한건 아니예요. 아주 제한적이죠. 애굽의 그 탁월한 술사들도 2번재 재앙까지만 따라할수 있었으니까요. 하나님은 레 19:31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레위기 19:31 (NKRV) 31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재미로라도 점치러 다니면 안되요. 타로점, 화투점, 토정비결, 오놀의 운세 등등... 그런걸 하면 안되는 거죠. 왜냐하면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거예요. 열왕기하 1장에 보면 아하시야라는 왕이 나옵니다. 북이스라엘의 여덟 번째 왕이었구요, 아합과 이세벨의 아들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어느날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떻게 했냐면, 부하를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보내서 자기의 이 병이 낫겠느냐 못 나겠느냐 물어보라고 했다는 거예요. 참고로 에그론은 이방 블레셋의 다섯 개의 도시국가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바알세붑은 그들이 섬기던 신이었는데요, ‘바알 제부브라고 해요. ’lord of flies’ 라는 뜻인데, ‘파리의 신’ 이라는 거죠. 파리 모양의 우상이었습니다. 얼마나 한심합니까? 아니 물어볼 데가 없어서 파리에게 물어봐요? 그래서 하나님이 사자를 선지자 엘리야에게 보내서 이렇게 말씀 하셨스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열왕기하 1:3–4 (NKRV) 3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4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결국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고 살지 못했습니다. 또 하나의 스토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사무엘상 28장에 보면, 사울이라는 왕이 거기에 나오는데, 때는 선지자 사무엘이 죽고 없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쳐 들어 왔어요. 그런데 삼상 28:5절에 보면 사울이 블레셋의 군대를 보고 심히 두려워했다고 되어있습니다. 마음이 크게 떨렸대요. 그래서 사울이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사무엘상 28:7–8 (NKRV) 7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8 사울이 다른 옷을 입어 변장하고 두 사람과 함께 갈새 그들이 밤에 그 여인에게 이르러서는 사울이 이르되 청하노니 나를 위하여 신접한 술법으로 내가 네게 말하는 사람을 불러 올리라 하니
신접한 자를 찾아가서 자기의 미래를 물어봤다는 거죠. 여러분, 재미로라도 점을 보러 다니면 안되요. 그건 재미가 아니예요.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이 세상에는 어둠의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안 계신것처럼 신도 아닌 엉뚱한 곳에 가서 기웃기웃하면 안된다는 거죠.
셋째,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폭력, 테러, 납치, 살인, 사기, 거짓말, 매춘, 노동착취 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의 배후에서 역사하는 영들이 있어요. 구체적인 통계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넷째,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부리는 더러운 귀신들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기본적으로 영적인 전쟁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싸워야할 대상이 누구인지도 알아야 해요. 링 위에 올라간 선수가 적이 누군지를 파악해야 이기든 지든 싸워라도 볼 것 아닙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가장 기본적인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한채 살아가곤 합니다. 내가 영적전쟁의 한 가운데 있다는 것도 전혀 모르고, 싸워야할 대상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죠. 눈에 보이는 것만 받아들이고, 영적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과 그 영적인 어둠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세력들이 있음을 아예 잊고 살아갑니다.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살아가요. 하지만 성경은 곳곳에서 이 마귀와 사탄의 존재에 대해서 언급을 합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곳은 창세기 3장이죠. 거기에서는 ‘뱀’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뱀이 아담과 하와를 타락하게 하죠. 가인이 아벨을 죽이도록 했구요, 노아시대의 모든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려서 홍수에 빠져 죽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오늘 현재 우리의 삶에도 여전히 활동을 하고 있죠.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문에서는 3가지를 말씀했습니다.
첫째, 주 안에서 강건해져야 한다고 했어요(10절)
왜 그래야 할까요? 왜 우리가 강건해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의 대적이 우리 힘으로 상대하기에는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느부갓네살 같은 왕을 어떻게 상대하겠습니까? 우리가 애굽의 술사들 같이 능력을 발휘하는 자들을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거짓말 하는 자들,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을 무슨 수로 대항하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마귀는 바울의 선교사역을 방해하기도 했구요, 성도들을 다양한 모습으로 유혹하기도 했습니다. 또 빛의 천사로 가장하고 나타나기도 했으며, 사람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여러 가지 함정을 파 놓기도 했죠. 몇구절만 볼까요?
데살로니가전서 2:18 (NKRV) 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고린도후서 11:14 (NKRV) 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디모데전서 3:7 (NKRV) 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구약의 예를 들면 다윗의 경우, 그는 비록 탁월한 믿음의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지만, 다윗조차도 사울의 배후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악령에 시달리는 사울왕의 증세를 덜하도록 현상적인 치유는 했지만, 근원적인 치유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거예요. 사무엘상 16:23 (NKRV) 23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비록 다윗이 수금을 탈 때 악령이 사울을 잠시 떠나기는 했지만,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우리 힘만으로는 사탄을 대적할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어둠의 존재들을 마치 없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무시하거나 가벼이 여겨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그들은 강하고 악하죠. 또 교활합니다. 때로는 우는 사자같이 덤벼 들기도 하고, 때로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처럼, 광명의 천사처럼 아름다움으로 가장하고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성경의 표현대로 말씀드리면,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이는 것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넘어지게 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강건해 져야 해요. 비결은 주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어느 한순간 만이 아니라, 매일, 매주, 매번 그리해야 해요. 무슨 일을 시작할 때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치고, 하루를 시작 할 때도 그냥 시작하는 것보다 기도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인생에 실패와 좌절이 찾아올때만 ‘주여주여’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에 형통과 성공이 찾아올 때에도 주 앞에 예배자와 기도자로 서야 해요. 왜냐하면 마귀는 우리가 성공할 때도 넘어뜨리고 실패할 때도 그걸 빌미로 넘어뜨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이, 마음이 은혜안에 머물도록 힘써야 해요. 야인처럼 세상사람처럼, 되는대로 살아가서는 안되는 거죠. 은혜안에 거해야 합니다.
둘째, 오늘 본문에서는 그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 져야 한다고 했습니다.(10)
주님의 능력으로 강건해 져야 한다는 것은 매 순간 주님의 지혜, 주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는 거예요. 마치 다윗이 왕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앞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주의 도우심을 구했던 것처럼 큰 일에도 작은 일에도 주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사모해야 하는 거죠.
고린도후서 10:3–5 (NKRV) 3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우리는 비록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육신을 가진 자들이 싸우는 방식으로 싸우지 않습니다. 우리의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고,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이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임하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인데,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바로 그 다음절에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는 거예요.
바울이 이 말을 했을 때 그는 당시 로마군인들의 완전무장한 모습을 보고서 이 말을 했을 거예요. 전신갑주라는 것은 한마디로 갑옷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철저히 무장하고, 강한 모습으로 마귀와 대적해야 승리를 거둘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2:29 (NKRV) 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라고 했죠. 우리가 마귀를 압도할만한 힘이 있지 않고는 결코 이길수가 없어요. 한마디로 주 안에서 강해져야 하고, 그분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리스도인들은 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사용하지 않는 걸까요? 달리 말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전쟁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뭡니까?
자신이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바와 같이 기본적으로 자신이 영적전쟁중에 있다는 것도 모르고 우리의 대적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무기를 갖추고 있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 무기들의 의미와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이죠.
무기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사용법을 모르거나 훈련 받은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군인들에게 K2소총을 나눠줘도 총을 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사용할 수가 없는 것과 같은 거예요.
혹은 안전지대에 있을수도 있겠죠. 아니면 적과 타협하고 있을수도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자들이 되었다고 해서 당장 유토피아적인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예요. 오히려 새롭게 된 그리스도인의 신분에 맞게 믿음의 싸움을 싸움으로 그리스인으로서의 본분과 지위를 지켜가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의 삶에 대해 오해함으로 영적으로 무장해제를 하곤 하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알아서 다 해주시겠지’ 라는 수동적인 태도로 살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미워하고 대적하는 사탄의 맹렬한 공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윌리엄거널(Willian Gunall)은 한 영혼이 구원함을 받을 때 하늘에서는 기쁨의 종이 울려 퍼지지만, 동시에 지옥에서는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라고 했습니다. 한쪽에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과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진행되어져 가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는 어둠의 세력들과 그들의 활동이 존재한다는 거죠.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 세력들의 적대적인 활동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영적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주의 힘과 능력으로 말미암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고 승리하는 분들 다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