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와 승리의 그리스도

사도신경 해설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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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1 – 예수님은 사망에게 완전히 패배하셨습니다.
사도신경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여기에 대해서 말씀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성경책을 보면 앞에 보통 부록으로 주기도문이랑 사도신경이 실려 있습니다. 거기 사도신경을 보면 어떤 곳에서는 밑에 설명이 되어 있어요.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이 부분에 설명이 되어 있는데, 여기 설명을 보면 ‘장사 되시어 지옥에 내려가신지’가 공인된 원문에는 있으나 대다수의 본문에는 없다. 이런 식으로 적혀 있어요. 그러니까 사도신경에는 원래 예수님이 지옥에 갔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는 거예요.
혹시 예수님이 지옥에 가셨다는 말 들어본 적 있으세요? ‘와 예수님이 어떻게 지옥을 가나? 아! 우리가 원래 지옥가야 하는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에 지옥에 가셨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예수님이 지옥에 갔다는 말이 없어요. 그러면 성경을 잘 요약했다고 하는 사도신경에 잘못된 부분이 있나? 그건 또 아닐 거예요. 여기는 약간 골치 아프면서 재밌는 문제가 있습니다. 사도신경을 번역하는 문제예요.
원래 사도신경 이 부분은 ‘장사 되시어 음부에 내려가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으며’라고 되어 있었어요. 이 음부는 뭐냐? 시편 같은 곳을 보면 이전에 음부라고 설명한 곳을 이제 스올이라고 설명했는데, 간단하게 설명하면 음부, 스올은 무덤 혹은 죽음의 자리, 죽음의 고통 이런 식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원래 의도는 장사 되시어 무덤에 내려가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으며 이거란 말이에요.
영어로 된 사도신경 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영어로 된 사도 신경은 음부나 스올을 번역할 마땅한 말이 없어가지고 이거를 그냥 Hell이라고 번역한 것 같아요. 그래서 영어로 사도신경을 고백하면 지옥에 내려가신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냥 Tomb라고 번역했어도 됐을 거예요.
어떤 사람은 사도신경에 이 부분을 예수님의 고통이 너무 커서 지옥의 고통이랑 비슷하니까 지옥에 내려갔다고 표현 했구나 이렇게 말해요. 또는 예수님이 지옥의 권세를 완전히 정복했으니까 이렇게 표현 했구나 이렇게 말해요. 이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건 사도신경을 있는 그대로 해석한 게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신학적인 해석을 붙인 거예요. 이렇게 하면 사도신경이 원래 간단한 건데 복잡하게 됩니다.
그냥 무덤에 내려갔다고 하면 됩니다. ‘장사 되어 무덤에 내려가신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입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어 무덤에 내려가신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거예요. 예수님은 이 땅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으셨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으셨다는 증거가 아까 본 것처럼 예수님이 무덤에 내려가셨다는 거예요. 무덤이라는 건 완전한 죽음이에요. 절망의 극치를 말하는 거예요. 무덤 안에 생명이 있어요? 없습니다. 무덤 안에 희망이 있습니까? 없단 말이에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으시고 죽음과 절망의 절정인 무덤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에게 완전히 패배하셨습니다. 이렇게 보면 십자가는 승리의 상징이 아니라 패배의 상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권세 앞에서 완벽하게 패배하셨습니다. 그 증거가 무덤입니다. 거기는 신적인 권능도 없고, 영광도 없어요. 그냥 밑바닥이에요.
예수님은 왜 패배의 상징인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 무덤에 들어가셨을까요? 바로 우리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완전히 패배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와 사망권세로부터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 아득한 절망의 무덤으로 들어가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소망이 생긴 거예요. 예수님이 패배와 절망의 극치 속에 계신 이유는 우리가 패배하지 않고 우리가 절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은 우리 대신에 패배하시고 우리 대신에 절망하신 그런 사건입니다. 원래 예수님은 패배하실 수 없는 분입니다. 그분이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기 때문이에요. 원래 예수님은 절망할 수 없는 분입니다. 그 분 자체가 소망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 때문에 우리를 대신해서 패배하시고 모든 소망을 잃으셨습니다. 사도신경은 이것을 예수님이 무덤에 내려가셨다. 혹은 음부에 내려가셨다고 표현합니다.
(증명) 예화)작년에 성탄 발표할 때 청년부 형님, 언니들이 콩트를 너무 잘했어요. 정말 재밌게 잘 봤는데 그 장면이 아직 기억나요. 로마 군인 역할을 맡은 청년부 형님들이 예수님 역할을 맡은 잘생긴 형님을 막 때리면서 끌고 가잖아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군인들이 예수님을 욕할 때 예수님이 그러잖아요. ‘에잇 못 참겠다.’ 이러고 칼을 가지고 거기 있는 로마 군인들을 다 처치하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이 다 이겨버렸어요. 만약에 진짜 그렇게 됐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패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죽음에게 패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죽음에게 패배하게 되는 거예요. 저도 그 콩트를 보면서 되게 많이 웃었지만 사실 그렇게 되면 되게 무서운 거예요. 그 콩트 뒤에는 이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똑바로 알려 줬었죠? 정말 훌륭한 콩트였어요.
(전환문장) 그 다음으로, 예수님은 죽음에게 완전히 패배했을 뿐 아니라 죽음에게 완전히 승리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론2 – 예수님은 사망에서 완전히 승리하셨습니다.
(설명) 예수님께서 사망에게 어떻게 승리하셨습니까? 오늘 사도신경 다섯 번째 문장을 보면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완전한 죽음에 얼마동안 묶여있던 예수님은 그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셨어요. 우리는 이걸 두 글자로 부활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에게 완전히 패배하셨지만 그리고 나서 완전히 승리하셨습니다. 죽음을 정복하셨습니다. 부활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예수님이 죽음으로부터 계속해서 패배했는지 패배했다가 다시 승리했는지 우리가 알 길이 없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죽음과 사망 권세를 정복했다는 걸 우리가 알 수 있어요.
근데 여러분 예수님의 탄생을 믿는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도 믿습니까? 예수님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태어나셨다는 것을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건 믿기 쉽습니다. 믿음이 없는 불신자들도 예수님이 태어난 거 다 알아요. 세계 4대 성인 중에 예수님 있잖아요. 세계 4대 성인 알죠? 공자,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예수님이잖아요. 불신자들은 예수님을 그냥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4대 성인에 넣어놨어요. 그 사람들도 예수님이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생각은 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진 않아요. 진짜 믿음이 있는 사람만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께 묻고 싶어요.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을 믿도록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사십 일 동안이나 이 땅에 계셨습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 그걸 본 증인이 오 백 명이나 됩니다. 부활이 꾸며낸 이야기 일 수가 없습니다. 오 백 명 증인을 어떻게 매수하겠어요?
(증명) 복음서 기록에 대해 의심을 품은 어떤 경찰이 있었어요. 이 경찰은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전문가예요. 이 사람은 원래 복음서에 있는 내용들이 진짜인가 의심하던 사람이에요. 무신론자예요. 워너 윌리스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첨단 수사 기법을 활용해가지고 복음서를 읽기 시작합니다. 복음서 저자들은 사건 현장에 있었는가? 그들의 기록은 정확하고 정직한가? 그들의 증언은 다른 방식으로 입증될 수 있는가? 그들에게는 복음서를 기록할 만한 숨은 욕망이나 동기가 있었는가? 이런 질문에 부가해서 포렌식 수사 기법으로 복음서를 읽은 결과 복음서 내용이 진짜고 예수님의 부활도 진짜라는 결과를 얻었어요. 범죄 수사 기법으로 복음서를 조사하면 이 복음서 기록이 허구가 아니라 팩트고 거기 나온 부활도 팩트라는 거예요. ‘베테랑 형사 복음서 난제를 수사하다.’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사람은 복음서를 수사하고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깨닫고 지금은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기술적으로만 읽어도 복음서에 사건 특히 부활이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우리처럼 믿음으로 읽으면 부활은 여지없이 있었던 사건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적용)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예수님이 무덤에 내려가신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완전한 패배를 경험하신 것이에요. 우리가 패배했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대신 패배해주셨어요.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최종적으로 사망 권세에게 승리하신 것을 말해요. 지난주에 말했죠. 율법의 저주를 해결하신 거예요.
성경은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라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라는 말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또 다른 부활이 있다는 말이겠죠? 누구의 부활일까요? 바로 우리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부활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랑 굉장히 밀접한 연관이 있어요.
그러면 우리는 언제 부활하게 될까요? 예수님 믿는 사람이 죽게 되면 바로 부활할까요? 그건 아니에요. 죽으면 바로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 마지막 날에 부활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끝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끝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끝이 됩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끝이 옵니다. 사도신경에 끝 부분에 재림에 대해 나오기 때문에 아마 다음번에도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거예요. 어쨌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이 그 날이 이 세상이 끝나는 날이에요. 그 날에 우리는 부활하게 됩니다. 지금의 몸과는 다른 몸으로 훨씬 더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죄 짓지 않는 몸으로 부활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님 믿을 때는 맨날 죄 짓고 싶은 마음과 싸우면서 믿음을 지키면서 살아가지만 부활할 때는 죄 짓지 않는 몸으로 부활합니다. 부활한 우리는 이 땅에 완전히 이뤄진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이 세상에서 도저히 누릴 수 없던 기쁨 가운데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때에 죽음을 맞이하는 거예요. 죽음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일 뿐입니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사건을 경험하지만 그 죽음이 우리를 정복하지 못합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죽음을 정복하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으면 다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삶이 끝이라고 생각 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삶이 끝이면 어떻게 될까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집착하던지 죽으면 끝이니까 포기하던지
한 번 사는 인생 뭔가 이뤄보고 죽어야지 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열심히 삽니다. 그렇게 살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때론 하나님께 맡기면서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하나님 때문에 그렇게 살아갑니다.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선 어차피 죽으면 끝이니까 대충 대충 사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이 세상에서 살 때 죄를 짓기 쉬운 상황 속에서, 죄 짓고 싶은 욕망을 가진 몸으로 끊임없이 말씀과 성령을 의지하며 부활을 기대하며 살잖아요. 그렇게 노력하며 살던 삶은 굉장히 의미가 있는 거예요. 부활을 믿는다고 해서 부활 전에 살았던 삶이 의미 없는 게 아니라 굉장히 값진 의미가 있어요.
(전환문장)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결론
오늘은 사도신경 다섯 번째 문장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에 대해 말씀을 나눴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에 내려가셨습니다. 무덤은 아무런 생명도 희망도 없는 곳이 무덤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에게 완전히 패배하셨습니다. 우리가 죽음에게 패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패배해 주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죽음에게 패배하시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패배한 동시에 완전히 승리하셨습니다. 그 승리의 증거가 바로 부활입니다. 부활은 전설이나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도 이 세상 마지막 날이 되면 부활하게 됩니다. 우리는 부활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집착하지도 않고 되는대로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기 때문에 이 세상사는 것은 끝이 아닙니다. 또 이 세상에서의 삶은 부활하기 이전에 한정된 삶이예요 죄 가득한 세상에서 죄와 싸우며 하나님 뜻대로 사는 의미 있는 삶입니다. 우리를 위해 완전히 패배하시고 완전히 승리하신 예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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