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굳이!(느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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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일시 : 2022년 7월 24일 주일
제목 : 굳이? 굳이!
본문 : 느헤미야 2장 1-8절 *구728
결단찬양 :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도입]
혹시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는 친구 있습니까? 오늘 말씀의 결론이기도 한데, 바라옵기로는 배우자 기도는 매우 구체적으로, 글자 한토시 한토시 세밀하게 작성해서 기도하시길 소망합니다. 우스겟처럼 말해볼 수 있는 이야기이긴 한데, 다른 기도보다 배우자 기도만큼은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들어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배우자 기도를 하실 때 매우 구체적이고, 길고, 자세히, 그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한 여성분이 배우자 기도를 이렇게 했다고 합니다. 세 가지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첫번째, 쌍커풀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두번째, 키가 180이 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번째, 듬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결과 그 여성분은 세 가지의 요건에 딱 들어맞는 남성분과 결혼했다고 합니다. 바로 이분 입니다. (오지헌 사진)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 배우자 기도하실 때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토시 하나 빠짐없이 작성하여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독 배우자 기도만큼은 잘 들어주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인내 속 기도로 나아간 느헤미야]
오늘 본문은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 년 니산 월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런데 이 연도의 표기가 눈에 익지 않으십니까? 1장 1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 년 기슬르 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기슬르 월이 언제입니까? 우리나라의 월력으로 볼 때, 11-12월이라 볼 수 있는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니산 월”은 3-4월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 수 있음은, 느헤미야가 자신의 백성들이 신음하고 있는 것을 보고 주 앞에 무릎 꿇어 기도하기 시작한지 어느새 4개월이 흘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힘들 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인내란 없습니다. 그 즉시 싸우고 봅니다. “내가 잘했네, 너가 잘못했네.” 등으로 말입니다. 크리스천들은 조금 더 생각합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납니다. 하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싸웁니다. “내가 잘했네, 너가 잘못했네.” 라고 말이죠.
그런데 느헤미야는 달랐습니다. 그는 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히 주님 앞에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기도의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1절을 다시 읽어 볼까요?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 년 니산 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1절 마지막을 보면, 그가 기도하던 중 왕의 “술 관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왕 앞에 나아가 포도주를 주는 역할을 감당하게 된 것이죠. 술 관원에 있어서 조금의 내용을 전달하자면, 그저 술집에서 술 파는 장사꾼 정도가 아닙니다.
여러분 요셉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때 갇혔던 감옥이 어떤 감옥이었습니까? 왕의 최측근들이 죄를 범했을 때 가둬지는 곳이었습니다. 그때 함께 있던 자가 누굽니까? 떡 맡은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이었습니다. 그들이 요셉과 함께 있었습니다. 즉 술 관원은 왕의 최측근이자 왕을 위해 일하는 고위 관리직이었던 것이지요.
느헤미야도 그렇습니다. 단순히 술 파는 장사꾼이 아니라 왕 바로 옆에서 지내는 고위 관리직이자 고문의 역할까지 감당해야 했던 자였습니다. 그런 그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왕 앞에서 얼굴이 찌푸려지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왕 앞에서 얼굴이 구겨진 행색을 하게 되면, 그는 그날로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1절을 보니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지요.
근데 2절을 보니 느헤미야가 큰일나게 생겼습니다. 2절입니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하더라 그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무슨 일입니까? 이전까지는 나름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닙니다. 근심이 쌓이고 쌓여 그 모습이 왕에게 까지 비춰졌으니, 이제 느헤미야는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느헤미야의 지혜]
이에 느헤미야가 대답합니다. 3절입니다.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하니”
죽음 앞 느헤미야는 담대했습니다. 그리고 지혜로웠습니다. 당시 페르시아에서 목숨만큼 중요시했던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조상의 묘실”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 사실을 알아 “성이 불에 탄” 사실을 언급하기에 앞서 “조상의 묘실”이 불에 타 황폐 해졌음을 먼저 언급함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습니다.
이에 아닥사스다 왕은 어찌 대답합니까? 4절입니다. “그러면 네가 무엇은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느헤미야를 벌하기 보다 그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먼저 물었습니다. 이에 느헤미야는 즉시 대답합니다.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다시 한 번 더 왕의 묘실을 언급하며 “내가 이스라엘로 돌아가 성전을 다시 재건축 하게 해주시옵소서” 라며 왕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또 다시 아닥사스다 왕이 묻습니다.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그래서 느헤미야는 그 즉시 “기한”을 정합니다. 그럼과 동시에 이렇게 제안합니다. 7절입니다.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지금까지의 상황을 쭉 보십시오.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의 근심 어린 표정을 보았습니다. 왕 앞에서의 근심 가득한 표정은 곧 죽음은데, 느헤미야는 이를 지혜롭게 사용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그들이 목숨만치 중요하게 여기는 “왕실의 묘실”을 언급하며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이에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를 불쌍히 여겼고 “무엇을 도울 수 있는가”를 물었고, 이제 느헤미야는 자신이 이스라엘을 돌아갈 수 있도록, 뿐만 아니라 강 서쪽 총독들이 왕의 조서를 보고 내가 가는 길을 막지 아니하도록 허락해달라 말합니다.
이 상황을 통해 무엇을 느끼게 됩니까? 막힘이 없습니다. 한 장소에서, 다른 시각이 아닌 같은 시간대에 대화가 이루어졌음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느헤미야는 4개월간 단순히 기도만 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인가, 또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이며, 어떻게 대화를 이어갈 것인가를 끊임없이 준비하고 또 준비한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오늘날 우리게 주는 은혜]
이런 느헤미야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먼저, “기도만 하지 말고 행동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만 하며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소원을 비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나는 모르겠고, 소원은 빌었으니 알아서 되겠지 뭐~”의 태도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지요.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영적 대화 아닙니까? 소원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한 후 행동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행동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을 기대하길 소망합니다.
둘째, “구체적인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느헤미야의 계획은 상당히 구체적이었습니다. 기한도 정해져 있고,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있어 위험 또한 계산하여 조서를 통해 막고자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기도할 때 구체적인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저 “하나님 시험 잘 보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보다는 “하나님, 이번 수학 성적이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10점만 올랐으면 합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할테니, 하나님 저에게 지혜를 허락해주세요.” 라는 기도가 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는 8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8절 함께 읽겠습니다. “또 왕의 삼립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 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어찌 기도합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습니까? 우리와 같은 크리스천들에게 있어 가장 큰 무기가 무엇입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신이 아닌, 정말 강하고 위대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실 것을 믿고 기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적용]
사랑하는 청소년부 여러분. 우리의 기도를 뒤돌아 보면, 허무맹랑한 기도할 때가 많지 않았습니까? 물론 기도의 방법을 잘 알지 못해 그럴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땐, “건강하게 해주세요. 시험 잘 보게 해주세요.” 등의 기도를 했었습니다. 그렇다 하여 이러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듣지 아니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기도를 골라 들으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할 수 있는데, 기도하지 않는 모습, 구할 수 있는데, 내 삶이 바쁘다며 뭉태기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서 결코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바라옵기로는, 우리의 기도는 이 순간부터 더 구체적이고, 또 즉시 응답이 없다한들 느헤미야처럼 인내 속에서 기도의 자리를 지켜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신들의 이름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주의 삶을 살 때, 특히 수련회를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다림에 있어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기도하며 나아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