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유전하는 이들에게 오신 구세주
창세기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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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viewsAG1 아브라함, AG2 예수님, AP 노아, CP 롯의 딸들, PW 구원, MIW 조상이었더라, SC 은혜로 주신 구원, (A 대속자, C 죄의 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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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환영 및 인사
S1. 환영 및 인사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은혜 충만하세요’하고 인사 합시다.
네 감사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기도 덕분에 휴가를 잘 보냈습니다.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지난 한 주는 주일학교의 여름 행사가 은혜 가운데 잘 진행이 되었습니다. 우리 중등부는 코로나 확진자가 생겨 마지막 날 일정을 조정하여 안전하게 잘 귀가했고, 오늘 모임을 영상으로 가지도록 했습니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어려움 속에서도 모두가 힘을 합쳐 잘 대응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수고하신 모든 교사 분들과 봉사자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이번 주는 대학부가 교회당을 중심으로 해서 여름 수련회를 가집니다. 은혜 풍성하고 안전한 시간이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종 코로나로 인해 다시 방역에 힘을 써야 할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모든 분들이 한마음으로 방역에 최선을 다해 주시고, 무엇보다 교회를 위해 함께 기도하셔서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나가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S2. 주제 제시
S2. 주제 제시
오늘은 소돔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이후 롯의 삶을 살펴보면서 죄를 유전하고 살아가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함께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소돔에 관한 심판 이후 롯의 삶은 우리 모두를 충격에 빠뜨립니다. 그것은 그의 두 딸들이 아버지를 통해 자녀를 낳아 민족을 이어가기 때문입니다. 소돔이 죄로 인해 심판을 받은 이후에도 인간의 삶에는 죄가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역사를 이어가는 큰 동력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먼저 롯은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딸들을 데리고 산으로 피신합니다. 본문 30절 말씀을 같이 읽어 봅시다.
창세기 19장 30절
30.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아마도 롯은 소돔과 비슷한 악에 젖어 있던 소알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겨 이곳에서도 안심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안전을 약속하셨으나, 롯의 마음은 이를 온전히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롯은 딸들을 데리고 소알을 떠나 산의 굴에 거주하는 힘든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런 형편을 만난 롯의 딸들은 더이상 배필을 얻을 수 없음을 직시하게 됩니다. 이에 이들은 아버지에게 술을 먹여 자녀를 얻고자 합니다. 31, 32절입니다.
창세기 19장 31, 32절
31.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32.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두 딸은 함께 모의하여 먼저는 큰 딸이, 다음 날에는 작은 딸이 각각 아버지로부터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롯은 아무것도 모른 체 딸들을 통해 자녀를 얻게 된 것입니다. 33절을 봅시다.
창세기 19장 33절
33.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렇게 두 딸들은 아버지로부터 자녀를 얻어 모압과 암몬 족속이 세상에 존재하게 됩니다. 36-38절입니다.
창세기 19장 36-38절
36.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37.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38.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
모세는 이 일에 대해 다른 평가를 하지 않고 이 사건이 모압과 암몬의 시작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타락 이후 인류는 아버지와 딸 사이에서도 민족의 기원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S3. 문제 제기
S3. 문제 제기
우리는 소돔 심판 이후 롯의 행적을 통해 어떻게 성경에 이런 충격적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지 의아해합니다. 딸들이 아버지를 술취하게 한 뒤 아버지를 통해 자손을 이어가는 이런 비윤리적인 이야기를 거룩한 성경이 담고 있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에는 아름다운 삶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방 여인 룻과 같이 시어머니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믿고 믿음의 어머니를 정성껏 잘 보필하여 큰 은혜의 복을 누린 삶을 산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족보에도 며느리를 통해 자녀를 얻은 유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왜 이렇게 거룩한 성경에 있을 수 없어 보이는 이런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일까요?
J1. 하나님의 속성, 마음, 그리고 방법
J1. 하나님의 속성, 마음, 그리고 방법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지으셨을 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존재였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이 아름다운 이야기, 혹은 윤리적으로나 도덕에 있어 문제가 없는 복된 삶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이러한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죄로 인해 타락하여 부패한 삶을 사는 존재로 변질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거룩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으나, 죄로 인해 인간의 삶은 깨어지고 무너진 삶으로 전락된 것입니다.
금지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서로를 비난하던 삶은 형이 동생을 죽이고, 자신에게 조그마한 상처를 입힌 약자를 무참하게 짖밟아 죽이는 부패한 삶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러한 죄의 유입은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항상 악할 수밖에 없도록 우리를 부패시키고 무너지게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노아 시대는 홍수로 인해 노아를 포함한 여덟 명을 외의 모든 인류가 죽음의 형벌을 당하는 대심판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스스로 죄를 끊을 수 없었고, 이후 계속하에 죄에 압도되어 유전적 범죄를 자행했습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우리는 롯의 이 사건에서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잠자던 노아를 떠 올립니다. 물론 노아의 벗음을 본 이는 아들 함이었고, 성적인 범죄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롯의 이야기는 더 심각합니다. 그러나 술에 취하여 옷을 벗고 쓰러져 주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몰랐다는 공통점이나 심판 이후에 죄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 등은 두 사건이 매우 연관이 있음을 말해 줍니다. 즉, 인간은 홍수 심판처럼 소돔의 심판 이후에도 여전히 죄성을 해결하지 못하고 죄를 유전하는 존재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죄없는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죄성이 유전되는 세상을 구원하러 찾아오신 구세주가 되십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노아 시대의 죄성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롯에게까지 이어집니다. 롯이 모르는 중에 행해진 일이라고는 하나 그의 딸들은 아버지를 통해 자손을 낳아 역사를 이어갔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인류 역사는 죄 가운데 잉태되고 죄를 유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J3. 사람이신 예수님
J3. 사람이신 예수님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인류를 버리지 않고 품에 안아 주시며, 구원주를 통해 구속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실 모든 인간은 다 범죄한 죄인이어서 노아의 홍수와 같이 심판받아도 아무런 변명을 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롯의 딸들과 같이 아버지를 통해 자녀를 얻는 파렴치한 행위를 한 사람만이 죄인이 아니라 착한 일을 조금씩 하는 우리들도 여전히 죄인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내가 행하는 좀 착한 일들 몇 가지를 통해 내가 남을 정죄하는 자리에 갈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자신의 의를 내세울 수 있는 이가 없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성도는 우리의 구세주로 오셔서 자신을 낮추시고 본디오 빌라도 아래에서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을 메시야, 곧 그리스도로 믿고 그분의 의를 힘입어 거룩한 의인이 되는 복 외에 우리의 구원의 길이 없음을 시인하고 인정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W1.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를 유전하는 세상을 사랑하신 아버지의 선물이십니다.
W1.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를 유전하는 세상을 사랑하신 아버지의 선물이십니다.
인간은 자력으로 구원을 얻을 만큼 의롭지 못하지만, 찾아오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인으로 여겨져 영생을 누립니다. 구원주로 오신 예수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내 삶의 구주로 영접할 때 죄를 이기고 영생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 13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 13절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믿음은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영으로 다시 태어나는 새생명을 줍니다. 이 새생명 안에서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권세를 얻은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W2. 어떤 죄인들도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 안에서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W2. 어떤 죄인들도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 안에서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오늘 본문이 소개하는 대로 모압과 암몬은 당장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백성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을 박해하는 악한 일을 행했던 이들로 하나님의 선지자들로부터 여러 모습으로 심판을 예고 받았던 족속들입니다. 선지자 아모스는 암몬과 모압의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1장 13절과 2장 1절 말씀을 봅시다.
아모스 1장 13절
1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암몬 자손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 하여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
아모스 2장 1절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모압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가 에돔 왕의 뼈를 불살라 재를 만들었음이라
이 두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암몬은 영토 확장을 위해 아이 가진 여인의 배를 갈랐고, 모압은 에돔 왕의 뼈를 불살라 재를 만드는 악을 범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 다 심판을 면하지 못하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에 믿음이 온 땅에 전파됨으로써 이 모든 죄악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W3. 하나님은 죄성을 유전하는 죄인들에게 구세주를 주시는 아버지가 되십니다.
W3. 하나님은 죄성을 유전하는 죄인들에게 구세주를 주시는 아버지가 되십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모압과 암몬이 형편없는 기원을 가진 민족으로 여겨지지만, 하나님은 이들을 결코 저급한 자들로 대하지 않으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모압 평지로 향하던 중, 암몬이나 모압의 땅을 결코 빼앗지 말라고 강하게 명령하셨습니다. 신명기 2장 9절과 19절 말씀을 함께 봅시다.
신명기 2장 9절, 19절
9.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 19. 암몬 족속에게 가까이 이르거든 그들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과 다투지도 말라 암몬 족속의 땅은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롯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하나님께서는 모압과 암몬의 출생 과정을 탓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셨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들을 괴롭혀 그 땅을 빼앗지 못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암몬과 모압을 그들의 출생의 악으로 보지 않으시고, 오실 그리스도의 구세주 되신 은혜 안에서 그들을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하나님은 범죄로 탄생한 모압과 암몬까지도 사랑하신 구원의 아버지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T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아버지 되신 사랑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T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아버지 되신 사랑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강건너 땅에서 우상을 숭배하며 살던 아브라함이 구원을 얻고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누린 이유도 오직 은혜 외에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부르신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의를 얻었습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고 부인하는 회개의 삶을 통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오직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아브라함의 복이야말로 오늘 우리 모두의 복인 것입니다. 비록 모압과 암몬처럼 죄악의 자손으로 태어난 자라 할찌라도 독생자를 주신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으면 누구나 구원을 얻고 회개를 통해 새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죄로 시작하였다고 해서 죄로 끝나는 것이 삶이 아닙니다. 성도의 삶은 죄로 시작하였으나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거룩한 자녀로 거듭나게 되고, 새로운 삶의 열매를 맺으며 영생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T2. 이 땅은 자력을 의지하기 때문에 구세주를 영접하지 못합니다.
T2. 이 땅은 자력을 의지하기 때문에 구세주를 영접하지 못합니다.
죄인은 죄를 유전하며 사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어도 이미 이렇게 자연적으로 죄를 유전한 것을 부인하거나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는 이미 죄성이 존재하고 본성적으로는 아니어도 출생을 통해 선천적으로 죄성의 유전은 우리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의지하거나 내 힘을 신뢰하지 않아야 합니다. 돈이나 권세나 학력이나 혹은 학연, 지연 등의 모든 것들은 하나의 도구이지 내가 믿고 살아갈 의지처가 아닙니다. 어리석게도 세상은 이런 것들에 무게를 둡니다. 그것을 얻어 스스로 높아지고자 온갖 노력을 다하고 삽니다. 내려놓고, 손해 보고, 화해하고 용서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을 행하는 삶이 불가능하고 항상 이기고 자기를 내세우는 것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T3. 그러나 성도는 구세주 안에서 새로운 생명과 소명을 얻습니다.
T3. 그러나 성도는 구세주 안에서 새로운 생명과 소명을 얻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십자가에서 못박히셨기에 우리의 삶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7-19절은 이렇게 성도를 말합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7-19절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여기에 보면 사도 바울은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났을 뿐만아니라 화목의 소명도 부여받았다고 선언합니다. 내 힘이 아닌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거듭난 사람이 되고, 그 은혜 안에서 우리는 세상에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화목의 은혜를 증거하는 증인으로 부름을 받은 소명자가 된 것입니다.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도 동일하지는 않아도 출생은 모압과 암몬과 같이 죄성 안에서 태어났고, 죄로 인해 오염된 것이었습니다. 본문에서처럼 딸들이 아버지를 통해 낳은 아들이라는 신분은 항상 감추고 속여야 하는 비밀입니다. 이런 것들을 감추려고 오히려 큰소리치고, 아무도 나의 참모습을 못보게 하려고 힘을 가지고 우격다짐을 할 수 있습니다. 혹은 돈으로, 혹은 실력으로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모압과 암몬도 그런 이유로 이스라엘을 박해한 것입니다. 자신을 감추려고..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은 다 헛된 노력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이 감추인 비밀은 오히려 영광이 됩니다. 내가 죄인이고 내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약점은 오히려 나의 강점이 되어 주님이 주시는 새 생명을 누리게 되고, 나아가 화목자의 소명을 얻는 힘이 됩니다.
L6.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L6.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인 우리는 모압과 암몬과 같이 죄인된 내 출생의 모습에만 갇혀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떤 집안 사람이냐, 어떤 혈통의 사람이냐가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에서 요한복음을 통해 확인한 대로 그리스도를 영접한 모든 이들에게는 아버지께로부터 태어난 그 은혜가 전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믿음을 가지고, 여호와의 자녀가 될 때 우리의 신분과 출생은 결코 우리를 제한하는 요소가 되지 못합니다. 이런 것들은 구세주 안에서 오히려 나의 힘이 되고 지혜가 되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의 은혜 안에서 나의 구세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참된 자유와 평강을 누리는 온전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