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당부와 문안과 축복

히브리서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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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 2. 기도 3.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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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는 크게 두 가지에 대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바로 기도와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

서신서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바로 은혜입니다.
이 은혜는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애절한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신의 자리를 기꺼이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죽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분께서 스스로 죽음의 길로 들어가셨습니다. 죽음이 절대 침범하거나 넘어설 수 없는 영역에 계시던 분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더럽고 추한 죄의 자리에 내려오셔서 죽음을 맞이 하셨죠.
죽음의 자리로 가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정말 구원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다. 라는 것입니다.
누구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우리를 구원하고 대신 죽어달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께 죽음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스스로 죽음의 길 가셨습니다. 일방적인 은혜가 아니고선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죽음의 경험을 우리 때문에 하시고,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은 다시 하나님 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그 곳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면서 때에 따라 피할 길과 은혜를 부어주고 계시죠.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라는 표현을 여러번 들어보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다.”라는 이 말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죽음과 부활을 이루어 내시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잊고 살아갈 때가 더러 있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히브리서를 처음 받아보았던 독자들도 그랬습니다.
지난 주 말씀을 나누었던 것처럼 “성령을 욕되게 하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는 것이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으로 개인적으로 모욕을 주는 모습들이 나타날 때가 분명 있습니다.
바울도 이러한 모습을 보였을 때가 있었습니다. 로마서 7장 23절인데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내 지체 속에는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도다. 아멘”
나는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을 받았고 그 분을 위해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지만, 내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다른 법. 옛 습관과 같은 모습들이 자꾸 내 의도와는 다르게 나를 죄인으로 만들어간다는 바울의 고백입니다. 우리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옛 습관 등의 모습들이 남아 있기에,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행동을 할 때가 있는 것이죠.
욕되게 한다는 표현이 강해서 거부감이 느껴질 수 있다 생각이 듭니다. 이것을 다른 식으로 표현을 하면, 우리가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못하고 살아가는 모습들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죠. 배려가 계속 되면 권리인 줄 안다. 그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배려를 너무나 내가 당연하게 받아드려 그것이 마치 나의 권리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은혜의 성령을 저버리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그 배려와 사랑을 절대 끊지 않으시죠. 계속해서 앞으로도 죽 ‘모든 사람’에게 자비의 마음으로 은혜를 부어주실거에요.
그러한 배려와 사랑을 아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 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은혜와 기도가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누리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이 바로 기도인데, 이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로를 향한 기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먼저 히브리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다른 사람의 도움과 지원 없이 그리스도를 위해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없다는 것을 저자는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우리를 위해 기도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렇게 기도 부탁을 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독자들이 함께 모여 서로 기도하고 하면서 예수님을 향한 마음을 더 키워나가기를 바랬습니다.
마음이 갈라지지 않도록, 다른 것들에 흔들리지 않도록 함께 모여 예배하며 기도함으로 한 마음을 갖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기를 원한 것이죠.
또한 이렇게 기도해주는 이들이 있다면 저자 자신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서로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고 한 곳을 바라보고 달리기 위해 기도를 부탁하고 있는 것이죠.
신앙이 자라고 성숙해지는 공동체일수록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서로를 향한 기도와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며 사랑하는 공동체가 우리 제2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독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한 저자는 이제 나도 너희를 위해 기도하겠다. 라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21절입니다.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시기를 원한다.”라고 말합니다.
너희가 나를 위해 기도할 때, 그리고 내가 너희를 위해 기도할 때 이 기도를 듣고 하나님께 반드시 응답해주신다. 라는 확신의 고백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하는 기도들이 의미없이 땅에 떨어지거나, 허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다! 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 ‘온전하게 하다’라는 단어의 의미는 적절한 상태로 돌아가다. 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에 적절한 상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이죠.
우리 힘으로는 절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낼 수 없습니다.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흔드는 세상의 공격과 어려움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는 여러 일들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매일 온전하게 바꾸어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예배의 자리를 지키며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죠.
‘온전하게 하다’는 또 회복하다. 수리하다. 고치다 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회복시켜주신 다는 것이죠.
이 온전하게 하다. 라는 단어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 그물을 깁고 있던 제자들에게 사용되었던 단어입니다. 꼬이고 찢어진 그물을 풀고 깁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물을 던져 물고리를 잡기 위해 수리하고 고치고 있는 것이겠죠. 자신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또 고기를 잡아야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으니 꼬인 것을 풀고 찢어진 것을 기워야 합니다.
그것처럼 하나님은 히브리 독자들 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을 회복하고 수리하고 계십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그 성령님께서 끊임없이 움직이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다른 법이 다시 죄의 자리로 끌고가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회복하고 고치고 계셔요.
사실 제자들이 풀고 고친 그물은 고장 난 것이 나아진 상황의 모습이에요.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공급과 이 은혜는요. 고장 난 것에서 조금 더 나아진 상태가 아니라,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서지고 상처 받은 모습에서 생채기 하나 없는 완전한 모습으로의 회복이에요.
히브리 저자는 그러한 ‘온전케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가 구했던 온전케 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지금 이시간 저와 여러분에게 동일하게 있기를 정말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22절에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독자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이야기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우리가 용납해야 할 그의 권면의 말은 무엇일까요?
히브리 저자가 이야기한 권면의 말을 정리하면 “내 삶에 일어난 실제적 변화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권면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의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모두를 축복하며 히브리서를 마무리 합니다. 그가 축도하는 내용을 보면 특정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 메시야로 따르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결단은 단순히 “나는 예수님을 믿을거야!”가 아닙니다.
그 고백은 이들로 하여금 유대인들의 모든 삶과 경제 그리고 신앙 공동체인 회당에 들어갈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가족에게 의절 당했습니다. 그 누구도 그들과 말을 나누지 않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이들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절교와 박해를 받으며 “정말 그리스도가 나에게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그들을 기억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러한 박해 속에서 회복시키고 온전하게 하실 하나님을 기억하라 말하며, 예수님으로 인해 “내 삶에 일어난 실제적 변화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삶에 일어난 실제적 변화를 스스로에게 질문”하다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고, 묵상하게 되며 다시 일어서 걸어갈 힘이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히브리서 저자는 단순히 히브리 독자들에게만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일어난 실제적인 변화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나를 넘어서 서로를 향한 사랑과 기도’ 그리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에게 던지는 그 질문이 우리의 삶을 지금보다 더 은혜를 누리는 삶으로,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삶을 살아내도록 할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님 안에서 찾는 오늘 하루 되시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마무리 기도 시 헌금기도 잊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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