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장

박솔
새벽기도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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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선지자는 주전 8세기에 이스라엘에서 예언을 했던 선지자입니다. 1장 1절에서 설명하듯이, 웃시야 왕때부터 기록되어 있진 않지만, 므낫세 왕때까지. 그때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한 50년정도 예언을 한거죠.
그시절은 어떠했는가, 오늘 말씀을 보면 알 듯이, 배교의 시대였습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을 찾기가 힘든시대였었죠. 시대가 무시하던 진리를 이사야 선지자는 전했는데, 63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이 돌아서 이스라엘 백성의 적이 되실 것이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적이 아니라, 이방인들의 적이 될것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많이 들었지만. 하나님이 돌이켜서 이스라엘의 적이 될것이다라는 누구도 원치않던 진리를 선포했던것이죠. 하지만 선지자들이 늘 얘기했던 것,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이사야 선지자도,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은 남은자를 남겨두신다.
이 남은자라는 것은. 신실한 백성. 엘리야때에 바엘에거 무릎꿃지아니한. 칠천. 이런 남은자를 두신다는것이죠. 그런데 남은자 자체가 소망이라기 보다는. 메시야. 오실 메시야.가 바로 참된 소망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요. 고난 받고 죽으심으로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사야라는 것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말인데, 뜻이. 그가 전한 메시지가 곧 그의 이름이였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시편다음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게 이사야서죠. 물론 양이 많기도 하지만. 당시의 시대. 공의가 버려진 시대. 믿음은 있다고 하지만. 신앙생활은 한다고 하지만. 불의하고 폐역한 시대. 그 시대에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지금 알고있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선명하게 예언한 선지자입니다.
오늘 웃시야왕부터 전체를 살펴보면. 웃시야는 어린나이에 16살에 왕이 되어 처음에는 신실하고 믿음으로 행했는데, 나라가 강해지니까. 자신의 힘으로 이렇게 된줄알고 교만해져서, 분향하다가. 제사장이 못하게 하니까. 자기가 성을 내면서. 억지로 하니까. 결국 하나님이 문둥병걸리게 해서. 물러가게 된 왕입니다. 그런 시대인거죠.
요담은 좀 괜찮았고, 아하스는, 구약역사에서 제일 타락한 왕중에 하나였습니다. 가나안 종교를 다 가져왔고, 자신의 아들을 산체로 태워서 제사를 드렸고, 성전의 금은을 앗수르에 조공으로 바치고. 타락의 끝을 달린 왕이였습니다. 이런 배교속에서도 하나님은, 한시대를 위해서 히스기야를 보내셨고, 그는 다윗이래로 경건한 왕이였죠. 이를 통해서 다시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소생케하는 은혜를 주시기도 하죠.
이런 시대라는 것을 1장 1절에서 분명하게 이야기 합니다. 근데, 2절의 상황을 보면,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부르셔서, 한번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유다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 자식이 부모를 알텐데, 소도 주인의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깨닫지 못한다. 은혜를 은혜로 알지못하는. 짐승만도 못하는 백성이라는 거죠.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면, 5절과 6절을 보면, 매를 너무 많이 맞아서 거의 죽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깨닫질 못한다는거죠. 약에취한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잖아요? 매를 맞아도, 감각이 없으니까. 자신이 죽는지도 모른체로 죽는다는거죠.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주변의 나라들을 통해서 많이 매를 맞고,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곳이 없이 터져서 맞은 흔적뿐인데도, 그들은 깨닫지 못한다는거예요. 징계의 목적이 교정하고, 고치는것인데. 징계를 해도 똑같다는게 유다백성의 모습이라는것이죠.
여기에 쓰진 단어들을 보면, 맞았다. 상했다, 터졌다 근데 이런표현들은. 나중에 고난받은 여호와의 종.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쓰여진 표현의 동사들과 똑같은 동사들이 쓰여져있죠. 그러니까. 이렇게 해도 깨닫지못한 유다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방식이 뭔가하면, 예수그리스도를 이와 똑같이 맞아서 죽게하시고, 상하게하시고, ㄷ터지게 하셔서, 우리가 받아야할 모든 것을 그리스도가 감당케 함으로서,
우리는 때려도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때려서 고치는게 아니라, 예수님을 때려죽이는 방법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죠. 이사야 1장부터 나와있는 복음의 내용입니다.
지금 유다백성들을 살펴보면, 너희 소돔이나 고모라나 전혀 다를게 없다. 말씀하시죠. 근데, 겉모습 아무문제가 없어요. 11절에 보면, 무수한 제물. 이라고 하죠. 그러니까 제사를 많이 드렸다는거죠. 예배를 많이 드렸다는거예요. 숫양의 번제, 살진 짐승의 기름. 숫송아지나 전부다 있었습니다.
근데 하나님께선 12절에, 너희는 내 마당만 밟는다. 시끄럽고, 번잡하다. 하지마라. 그렇게 말씀하시는거예요. 왜냐면, 마음이 없으니까. 몸은 열심히 왔다갔다 하는데, 마음이 없으니까. 또, 13절도, 분향을 했다고 합니다. 할건 다했죠. 월삭. 한달의 첫날. 절기들. 다했습니다. 성회. 모였습니다. 근데 하나님은 그런걸 견딜수 없다는거예요. 누굴 위한 예배냐. 이런 절기는 싫다. 말씀하시는겁니다.
15절도 그렇죠. 공식적인 기도도 그들은 했지만, 하나님은 안듣겠다고 하십니다. 왤까요. 모든게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이상하잖아요. 절기잘지키지, 무수한재물 바치지, 기도열심히, 예배열심히 드리지. 근데 그 이유가 17절에 있습니다.. 읽음. 근데 이런걸 찾아봐도 없다는거예요. 23절도, 똑같은 말씀이시죠.
그러니까, 이스라엘백성들에게서는 선행도, 공의도, 자비도 찾아볼수 없다는거예요. 제사만 드릴뿐. 그래서 하나님은 18절에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거죠. 한번 따져보자. 지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지않는다고 말을 하는데, 한번 따져보자. 나는 너희의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같이 희어질 것이요. 나는 너희들의 죄를 씻겨준다~ 죄가 있음에도, 계속 씻겨줬지않냐. 나는 너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줬지않냐.
지금, 주홍같다라고 하는 것이 어느정도 죄냐면, 은유인데, 살인자가 누군가를 해했을 때, 흘리게한 피를 뜻합니다. 너희가 누군가의 삶에 위해를 가하면서, 제사드린다는거죠. 거기서 얻은 수입가지고. 그래도 살려줬지않느냐.
그럼에도, 21절에 뭐라고 합니까, 예루살램이, 창기가 되었다. 아무사람에게나 몸을 파는거죠. 유다의 모습이 그런모습이라는겁니다. 하나님만을 신랑으로 섬거야 했지만, 누가 신랑인지, 알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선지자가 말하고 있습니다. 22절에도 보시면, 읽음. 누가 이걸, 마시겠어요. 누가 이걸 은이라고 하겠어죠?
래서 마지막에 보면, 29절에. 읽음. 결국 하나님말고, 우리가 귀중히 여기는 그것들. 그것들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할날이 올거다. 라고 얘기를 하시는겁니다.
말하자면 너희가 즐거워하고, 너희들의 애정과 마음을 드려야 할 것은, 바로 너희의 하나님 나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 외의 것들을 즐기느라 나를 버린 것. 그리고 선행과 공의가 사라져버린 것, 형식적으로 예배드리는 것. 이런 것은. 심판을 자초하는것이다라고 하시는거죠.
근데 하나님이 이렇게 구원을 약속하시면서도, 그 구원의 약속을 주시는데,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고합니다.. 27절에 보시면, 읽음. 돌아온 자. 회개하는자들, 고치는자들.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사람들. 이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을 받습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여러분 이시대는, 할 건 다하는 것 속에서, 제사와 제물과 예식속에 자신을 숨기는 시대였습니다. 겉모습은, 겉모습만 괜찮았던거죠. 진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하나님 앞에 서기보다, 제물만 갖다가 던져주고 그리고 정해진 절기에 몸만 보여주고 정작 자신의 속마음과 자신의 탄식하는 마음을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는.
오늘말씀은, 우리가 내세울 만한 어떤 것 뒤에 숨어, 그분이 주시는 복만 바라며 살아가는것은아닌지 고민케 됩니다. 형식적인 예배와 그리고 수많은 절기들 그리고 많은 제물들을 바치며 살았던 유다백성들처럼, 바로 그런것이죠. (바리세인)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걸로 구원을 약속하시는게 아니라, 니가 터진걸 아는자, 니가 상함입음을 아는자.바로 죄인임을 아는자가 바로 그 구원의 약속을 받는 자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아는자, 이것 때문에 사는것이고, 이것으로 하나님 앞에나오는 자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사야를 읽으면 읽음으로서 더욱 나는 예수로 사는 자다라는 고백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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